귀환천화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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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0화
10화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자, 소항진이 다급히 나섰다.
“혹시 광운마방 분들 아니시오?”
“그래도 눈이 제대로 박힌 놈이 있군. 맞다, 우린 광운마방의 어르신들이다.”
소항진은 기분이 상했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성질을 죽였다.
악양은 광운마방의 앞마당과 같은 곳 아닌가.
“형주 풍혼문의 소항진이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소.”
장한도 풍혼문이라는 말에 멈칫했다.
광운마방이 호남에서 제법 행세깨나 하는 문파라 하나 풍혼문을 무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소항진이라면……?
“혹시 귀하가 풍호 소항진?”
“그렇소.”
장한의 말투가 곧바로 달라졌다.
“워낙 다급한 일이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소.”
“무슨 일인데……?”
“방주께서 손님과 함께 계시다가 암습을 당하셨는데, 그만 범인을 놓치고 말았소.”
“저런, 방주님께선 괜찮으시오?”
“약간 부상을 입으시긴 했소만, 큰 이상은 없으시오.”
“그나마 다행이군요.”
이야기는 나누는 사이 위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오십 대 중년인 넷이 사십 대 중반에 갈색 무복을 입은 중년인과 육십 전후로 보이는 키 작은 노인을 호위하고 있었다.
표정이 굳어 있는 갈색 무복의 중년인은 어깨의 옷자락이 찢겨져 나간 상태였다. 옷자락이 붉게 물든 걸로 봐서 상처가 제법 깊은 듯했다.
그를 호위하는 중년인 중 하나도 옆구리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온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발 먼저 내려온 중년인 하나가 혁무천 일행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삼십 대 장한에게 물었다.
“뭐하는 자들이냐?”
“풍혼문의 소항진 공자십니다.”
의외라 생각한 듯 질문을 던졌던 중년인의 눈이 커졌다.
“풍호 소항진?”
뒤이어 갈색무복의 중년인이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자네가 풍환일기 소 형의 아들인가?”
그가 바로 광운마방의 주인인 장소중이었다.
“그렇습니다. 소항진이 방주님을 뵙습니다.”
“이런 식으로 만나서 아쉽군. 좀 더 조용한 자리에서 만났으면 좋았으련만.”
“근일 내에 정식으로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언제든 찾아오게. 아무래도 오늘은 먼저 가봐야 할 것 같군, 손님이 계셔서 말이야. 그럼 다음에 보세.”
장소중은 건성으로 인사를 받고 옆의 키 작은 노인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가시지요, 왕 노사.”
키 작은 노인은 장소중과 소항진이 대화하는 동안 날카롭게 찢어진 눈초리로 혁무천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장소중이 걸음을 재촉하자 마지못한 듯 발을 뗐다.
혁무천은 노인이 미소를 지은 채 다섯 자 거리를 두고 앞을 지나갈 때까지 바라보기만 했다.
예사 노인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 찰만 한 자는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절정수준을 넘어선 고수였다.
‘방주라는 자보다 강하군.’
그런 자가 광운마방의 방주와 회동을 한 자리에서 암습 사건이 벌어졌다.
어쩌면 광운마방 방주를 살해하려는 것 외에 또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광운마방 무사들이 떠나가자, 악양루 일대가 고요해졌다.
소항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악양루를 힐끗 올려다보고 고개를 저었다.
“오늘 악양루에서 석양 구경하기는 틀렸군.”
은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싸움이 나서요?”
그에 대해서는 소항진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광운마방의 방주가 암습을 당했으니 악양의 밤거리가 살벌해질 거요. 아무래도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소.”
혁무천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소항진을 바라보았다.
덤벙대고 어린 소녀나 치근대는 줄 알았는데 제법 사리판단이 빨랐다.
“저 친구 말이 맞아. 돌아가자.”
***
상황은 소항진이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했다.
광운마방 무사 수백 명이 악양을 이 잡듯이 뒤졌다.
항구에 정박한 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나마 풍양표국의 배는 풍혼문이라는 확실한 뒷배가 있어서 겨우 조사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배들은 내부까지 조사를 받아야 했다.
혁무천은 뱃머리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광운마방의 방주를 암습한 자들, 무당파의 경공술을 사용하는 것 같았는데…….’
악양루에서 몸을 날려 사라지던 자들이 펼친 경공은 그가 아는 한 무당파의 무공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광운마방 방주의 암습에 무당파가 관여되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사실이라면 왜 무당파 사람이 광운마방 방주를 암습한 거지?’
아무리 몰락했다 해도 무당파는 무당파다.
광운마방 정도의 수장을 죽이기 위해서 암습을 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고.
“잡아라! 놈들이다!”
항구 끝 쪽에 있는 배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비명과 함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혁무천은 물론이고, 배 위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배에서 뛰쳐나온 대여섯 명이 광운마방 무사 십여 명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칠팔 명이 쓰러졌다. 대부분 광운마방 무사들이었다.
“놈들을 막아!”
다른 곳을 수색하던 무사들도 소리치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쓰러지는 자들보다 달려가는 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배에서 나온 자들은 포위망이 강해지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전력을 다했다.
“놈들이 도주한다! 쫓아!”
삐이이이익!
혁무천은 그 광경을 무심한 눈으로 주시했다.
‘역시 무당파 제자들이군.’
배에서 나온 자들이 무당파의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조금 변형을 시키긴 했지만 본질까지 지우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혁무천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떠올랐는지 황금빛 반달이 중천에 걸려 있었다.
‘그래도 진양진인이라는 도인은 괜찮았는데…….’
자신의 손에 죽어가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사람은 그가 유일했었다.
‘무당이라…….’
한바탕 살풍이 휩쓸고 간 항구는 곧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때까지도 광운마방 방주를 암습한 자들이 잡히지 않은 듯 살얼음을 같은 침묵이 악양의 밤거리를 짓눌렀다.
선실에서 상단 측 무사 하나가 나온 것은 해시쯤이었다.
은설과 함께 배에서 내려 경비임무를 맡고 있던 혁무천이 그를 보고 눈빛을 반짝였다.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자, 자신이 눈여겨봤던 자 중 하나였다.
‘이름이 서원청이라 했던가?’
경비를 서고 있던 표사 하나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딜 가시려는 거요?”
“뭐 좀 살 것이 있어서 다녀오려 하네.”
“거리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조심하쇼.”
“그러지.”
중년인은 나직이 대답하고 악양의 밤거리를 향해 몸을 틀었다.
그러다 고요히 서 있는 혁무천을 보고 멈칫했다.
악양까지 내려오는 동안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 청년이었다.
소항진과 소하민이 표행에 나선 것도 저자 일행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데 풍혼문주의 아들과 딸이 동행하는 걸까?
창백하게 보일 정도로 하얀 얼굴. 수염만 없으면 아름다운 여인이 남장을 한 것으로 오해하고도 남을 정도다.
검을 차고 있는 걸 보면 무인임이 분명한데,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
‘계획에 방해가 되면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할 자일지도…….’
내심 각오를 다진 그는 몸을 돌리고 배에서 멀어졌다.
그를 따라 움직이던 혁무천의 눈에서 차가운 눈빛이 반짝였다.
‘역시 단순한 상단이 아니다, 이건가?’
그는 중년인이 시선에서 사라진 후에야 눈을 돌렸다.
어느새 그의 눈빛은 처음의 무심함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수상한 면이 있긴 하나, 자신에게 해가 되지만 않으면 상관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일이 터진 것은 중년인이 배를 떠난 후 반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악양의 중심지 쪽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악에 바친 고함소리가 들렸다.
선실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개중에는 유철응도 있었고, 상단의 무사 중 혁무천이 주시했던 삼십 대 장한도 있었다.
눈이 콩알만 한 자도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고.
은설이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일까요? 아까 광운마방 방주를 암습한 자들이 들킨 걸까요?”
“그럴지도.”
짧게 대답한 혁무천은 이마를 찌푸렸다.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싸움이 더욱 격렬해지는 듯했다.
“숨어 있다가 들켰나 보군. 멍청하기는. 경비가 이렇게 삼엄한데 멀리 도망갈 것이지, 쯔쯔쯔.”
유철응이 말하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뿐, 자신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라 생각한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소항진과 소하민은 물론 풍양표국 표사들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악양의 밤거리만 바라보았다.
반면 상단 사람들은 태연할 수가 없었다.
그들 일행 중 한 사람이 중요한 만남 때문에 번화가로 들어갔다.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
만약 그가 저 싸움 속의 당사자 중 하나라면 태연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때마침 유철응이 물었다.
“표사 중 저 안으로 들어간 사람 있느냐?”
표사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각진 얼굴의 삼십 대 장한이 입을 열었다.
“서 대형이 물건을 사러 갔는데,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
“응? 그래?”
“아무래도 우리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저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저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단 말인가?”
“위험이야 하겠지만, 그래도 서 대형을 찾아봐야지요.”
“나는 허락할 수 없네. 자칫하면 표행까지 싸움에 휘말릴 수 있네.”
“상황만 알아보고 오면 되지 않겠소?”
정화상단의 책임자인 여충민마저 그리 말하자, 유철응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그어졌다.
이해 못할 것은 없었다.
일행이 위험에 처했을지 모르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겠지.
잠시 생각하던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그럼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바로 돌아오게.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저희도 표행에 위험이 되는 일은 할 생각이 없습니다.”
무거운 어조로 대답한 장한이 바로 옆의 동료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나랑 함께 가세.”
“예, 감 형.”
배에서 뛰어내린 두 사람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어둠 속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즈음, 무심한 표정이던 혁무천이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은설이 그의 움직임을 눈치 채고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세요?”
“뒷간에.”
은설은 더 묻지 않았다. 사람들도 대부분 신경 쓰지 않았다.
뒷간에 가서 볼 일이야 뻔한 것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눈이 콩알만 한 자는 작은 눈을 움직여서 혁무천의 뒤를 쫓았다.
그 사이 배에서 내린 혁무천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선창 끝자락에 있는 뒷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 그래도 흑의를 입은 그였다. 십여 장쯤 멀어지자 짙은 어둠과 동화되었다.
혁무천은 거적으로 입구를 막아놓은 뒷간 앞에서 방향을 틀었다.
한 걸음 내딛은 순간,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악양의 번화가인 웅번대로.
그 중 이층으로 된 화몽루의 지붕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검은 장포를 걸친 청년, 혁무천이었다.
뒷짐을 지고 지붕 위에 선 그는 고함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몇 사람이 주루와 객잔에서 새어나온 옅은 불빛을 받으며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개중에 그들이 있었다.
무당파의 제자들.
그런데 무당파 제자들 사이에 이질적으로 보이는 자가 끼어 있었다.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자.
그자는 무당파 제자들보다 더욱 강하게 광운마방 무사들을 몰아붙였다.
잠깐 사이 서너 명이 그자에게 당해서 쓰러졌다.
그자를 바라본 혁무천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옷 색깔이 달랐지만, 정체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자는 정화상단의 서원청이란 자였다.
‘무당파와 관련이 있는 자였나?’
바라보는 동안 광운마방 무사들이 더욱 많이 몰려들었다.
복면인과 무당파 제자들은 전력을 다해서 포위망을 벗어났다.
“놈들을 쫓아라!”
“놓치면 안 된다! 신호를 보내서 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
삐이이이이이!
날카로운 소성이 어둠을 가르며 사방으로 퍼졌다.
지붕 위에 있던 혁무천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