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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8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5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8화

8화

 

 

동생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는데, 한 떨기 꽃봉오리가 구석진 자리에 피어 있었다.

평범한 복장에 찢어진 곳도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꽃봉오리의 아름다움을 감출 수 없었다.

“호오, 정말 아름다운 소저군.”

작게 중얼거렸는데도 가게가 작아서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여인도 듣고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꽃에 시선이 꽂혔다.

“어머……!”

 

혁무천은 은설이 그릇을 내려놓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자.”

“예.”

은설도 아쉬움을 털고 일어났다.

한쪽에서 바라보는 눈길이 신경 쓰였다. 악의적인 눈빛은 아닌 듯했지만, 곱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두 사람이 일어나자, 청년이 포권을 취하며 말을 건넸다.

“하하하,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풍혼문의 소항진이라 하오. 이곳에 정말 잘 온 것 같소. 멋진 노형과 아름다운 소저를 만났으니 말이오.”

여인도 끼어들었다. 포권을 취하는 방향은 달랐지만.

그녀는 오직 혁무천만 바라보았다.

“저는 소하민이라고 해요, 공자.”

풍혼문이란 말에 은설의 눈빛이 흔들렸다.

풍혼문은 형주 일대에서 제일가는 세력을 과시했다. 마도 문파는 아니었지만 정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무공보다는 상업적인 면으로 세력을 형성한 문파.

그리고 소항진은 호북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열세 마리의 젊은 호랑이, 호북십삼호 중 한 마리였다.

“가자.”

혁무천은 두 남매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돌아섰다.

은설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소항진의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다.

황당하다는 표정. 설마 자신의 인사를 못 들은 척할 줄은 생각도 못한 듯하다.

만약 소항진이 화를 낸다면 그녀와 혁무천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 참, 그냥 이름이라도 말하고 가시지.’

하지만 혁무천은 그녀의 처지를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았다.

“안 갈 거야?”

“이분들이 인사를 해서…….”

“아는 사람들인가?”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알아서 해.”

그제야 은설이 어색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저는 은설이라고 해요. 저기…… 오……빠하고 지금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어서 그러니 이해해주세요.”

그녀는 최대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말을 건네고 돌아섰다.

그 와중에 나온 ‘오빠’라는 단어에 혁무천이 움찔했다. 하지만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소매, 오빠의 성함은 어떻게 돼?”

소하민이 은설에게 물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혁무천에게만 쏠려 있었다.

“오빠는…….”

“은설, 안 가면 나 혼자 가겠다.”

“아, 아니에요. 가요. 죄송합니다, 지금 좀 급해서요.”

은설은 혁무천이 말을 끊은 뜻을 짐작하고 서둘러서 뒤를 따라 나갔다.

소항진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다.

“거, 웃긴 친구군. 저 아가씨만 아니면 혼을 내주는 건데.”

“그래도 멋지잖아. 여기 오길 잘했어.”

“여긴 소면 먹으러 온 거고.”

“소면보다 더 맛있는 눈요기를 했는데 뭐. 눈요기만 하고 끝내기는 너무 아쉽지만.”

소항진은 소하민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이는 걸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여동생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의 고집도.

그녀는 마음에 드는 것을 보면 절대 포기할 줄 몰랐다. 그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리고 반드시 쟁취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냥 낯짝만 희멀건 놈 같던데, 뭐가 그리 마음에 드냐?”

“다른 사람하고 다르다는 거. 특히 혀를 내밀고 꼬리나 흔드는 오빠 친구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지닌 사람이야.”

소항진의 머릿속에서 강아지 몇 마리가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드는 광경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오빠의 친구를 강아지에 비유하다니.

“다르긴 개뿔이나. 신경 끄고 소면이나 먹자.”

“난 저 사람하고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오빠가 내 것까지 다 먹어.”

결국 소하민은 소면을 포기하고 혁무천과 은설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후우, 제길.”

혼자 남은 소항진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어쩔 수 없었다. 어린 꽃과 함께 있는 자에게서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느낌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스치듯 눈이 마주친 순간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는 것이다.

호북십삼호 중 풍호(風虎)인 자신이.

자존심이 상했음에도 그가 나가는 것을 붙잡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설마 자신이 얼어붙은 것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냥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을 뿐이야.’

그렇게 자위를 해보지만, 찜찜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민아가 건드리기에는 부담이 가는 자야. 으음, 아무래도 그자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어.’

그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운 소녀에 대해서도.

 

***

 

“왜 그랬어요?”

“그냥.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서.”

“예? 왜요? 그 여자 분은 굉장히 아름답던데.”

혁무천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은설의 말마따나 소하민은 아름다웠다. 혁무천이 지금까지 본 미녀 중에서도 능히 열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는 미모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당연히 인사도 나누지 않고 소면집을 나온 것도 그녀 때문이 아니었다.

‘그자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소항진, 그자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은설을 바라보는 그자의 눈빛 때문에.

그자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눈빛을 본 순간 이상하게 기분이 상했다.

‘어디서 감히 어린 은설에게 욕심을 품어?’

그때 은설이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아까요, 제가 오빠라고 해서 기분 상했어요?”

“기분 상한 것 없다. 그럼 오빠지, 친구냐?”

“…….”

“아저씨보단 나아.”

“……큭.”

은설이 짧게 웃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혁무천은 못 들은 척하고 화제를 돌렸다.

“돈은 어떻게 벌 거냐? 이제 진짜로 빈털터리인데.”

마땅한 방법이 없으면 정말 빛이 나는 구슬이라도 팔 작정이었다.

그런데 구슬이 빛 좀 난다고 해서 살까?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그의 고민을 알 리 없는 은설이 자신 있게 말했다.

“형주는 큰 성이어서 항구에 상단의 배들이 많아요. 그리고 상단은 자신의 물건을 지켜줄 호위무사가 필요하죠.”

 

항구에는 장강을 타고 내려가는 배가 수십 척이나 정박해 있었다. 대부분 상단의 배였다.

그 배들을 둘러본 은설이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가는 쪽에는 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십여 명 모여 있었다.

검보다는 칼이나 창, 기형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이 많았다.

척 봐도 삼류무사 냄새가 나는 자들.

혁무천은 은설의 뒤를 따라갔다.

무사들 있는 곳에서는 삼십 대로 보이는 장한이 소리쳐 묻고 있었다.

“자자! 영풍상단에서 다섯 명이 필요하다는구려. 누가 갈 거요?”

무사들 중 칠팔 명이 손을 들며 답했다.

장한이 그들 중 다섯을 골라냈다. 그러고는 다시 소리쳤다.

“이번에는 백양상단, 네 명!”

무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백양상단의 배는 낡아서 호위무사들이 싫어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수적들에게 털린 전력까지 있어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자원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지나도 두 명만 손을 들었다. 나이가 많거나 실력이 떨어질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었다.

“두 명 더! 갈 사람 없소?”

장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재촉했다. 무사들은 더 이상 손을 들지 않았다.

“에이 씨, 두 명 더 채워야 하는데…….”

장한이 짜증내듯 투덜거리는 걸 보고나서야 은설이 물었다.

“배가 어디까지 가나요?”

장한은 은설을 못 미더워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평소였다면 ‘애들은 가라!’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한 사람이 아쉬운 터라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무창까지 갈 거다.”

은설은 혁무천을 돌아다보았다.

무창까지 간다면 구강까지의 거리가 삼분의 이는 줄어든다.

돈도 벌고 목적지도 가까워지고, 꿩 먹고 알 먹고.

혁무천이 은설을 뜻을 간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은설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우리 두 사람이 함께 갈게요.”

은설을 위아래로 훑어본 장한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없다 해도 소녀티가 물씬 나는 은설을 호위무사로 쓰기에는 좀 그랬다.

상단의 배는 어린 여자를 반기지 않으니까. 부정 탄다는 이유로.

“신분이 확실해야 한다는 거, 모르진 않겠지?”

“걱정 마세요. 저는 사흘 전까지 양양 오호표국의 표사보조였어요. 알아보시면 바로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표국에서 표사보조로 썼다는 것은 신분이 확실하다는 뜻.

‘좀 어리면 어때? 말투를 보니 완전 초보는 아닌 것 같은데.’

누가 되었든 머릿수를 채워야 한다. 그래야 자신에게도 수당이 떨어지니까.

묵묵히 서 있는 청년이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저 사람은 누구지?”

“이 분은…… 제 오빠예요.”

장한은 혁무천을 쓸어보다가 움찔했다. 무심한 혁무천의 눈을 본 순간 이상하게 몸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씨발, 요즘 몸이 좀 안 좋나? 왜 이렇게 기가 약해졌어?’

어쨌든 일단은 머릿수를 채우는 게 우선이다.

“좋아, 그럼 너희 둘이 백양상단의 배를 탄다. 수당은 숙식 제공하고 한 사람 당 은자 한 냥이다.”

“언제 출발하죠?”

“이각 후다. 혹시라도 뒷간에 일보러 가려면…….”

“잠깐!”

누군가가 장한의 말을 끊었다.

은설은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소항진과 소하민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소항진이 장한을 바라보며 넌지시 압박했다.

“이봐, 이 사람들은 우리 풍혼문에서 데려가겠다. 불만 있나?”

장한은 소항진을 보고 바짝 얼어붙었다.

형주에서 호위무사를 중개하는 그가 어찌 풍혼문의 소문주를 모를까.

속으로는 ‘니 똥 굵다.’라며 투덜거렸지만 겉으로는 당연한 말이라는 듯 깔끔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소항진은 상황을 마무리 짓고 은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소저, 일자리를 구하려는 거요?”

“그래요.”

“백양상단의 배는 위험합니다. 제가 더 나은 곳을 추천해드리지요.”

“우린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가려는 거예요. 제가 구강에 가야 하거든요.”

“우리 풍혼문에서는 풍양표국을 운영하고 있소. 표국의 표행 중 동쪽으로 가는 표행에 넣어주겠소. 표국에서 운영하는 배도 있으니 구강까지 훨씬 안전하고 빨리 갈 수 있을 거요.”

“왜 이런 친절을 베푸시는 거죠?”

그에 대한 대답은 소하민이 했다.

“원래 오빠는 예쁜 여자에게 약해. 소매처럼 어린 소녀에게는 더더욱 약하고.”

아주 확실한 대답이었다.

은설은 당황하지 않고 소항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뜻이라면 사양하겠어요.”

소항진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동생의 말은 신경 쓰실 것 없소.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다시 말하지만,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겠소.”

은설은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대가가 없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혁무천을 돌아다보았다.

“괜찮겠어요?”

혁무천은 의외로 소항진의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

상당히 집요한 자였다. 마다하면 계속 귀찮게 할 것이 뻔했다.

대가가 없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고.

‘허튼 짓하면 목을 따버리지 뭐.’

소항진은 혁무천의 속마음도 모르고 표정이 환해졌다.

“하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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