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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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화
2화
어느 가을날 밤, 하늘에서 수백 개의 유성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쿠구구구구구궁!
콰아아아아아아!
대부분은 지상에 도달하지 못하고 불에 타 스러졌다. 마치 하늘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일부는 형체를 보존한 채 천하 곳곳으로 떨어졌다.
그 유성들은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자주색, 녹색 등 형형색색의 신비한 빛을 발했다.
그 중 푸른 불길에 감싸인 유성 하나가 촉산의 제왕, 설산산맥 제일의 대산인 공가산의 빙벽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대지를 쪼개는 폭발음과 함께 웅장한 공가산 전체가 뒤흔들렸다.
곧이어, 고고하게 서서 세상을 지켜보던 빙벽이 도끼에 찍힌 장작처럼 갈라졌다.
쩌저저저적!
수십 장 두께로 얼어붙은 얼음덩어리가 바위에서 떨어져 나오며 지상으로 낙하했다.
콰과과광!
수십 줄기 벼락이 한꺼번에 떨어진 듯 거대한 충격이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 대지가 비명을 내지르며 광란하듯 출렁거렸다.
유성 충돌의 충격으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수백 장 높이의 암벽이 썩은 송판처럼 쪼개지고,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던 암봉이 통째로 허리가 꺾여 쓰러졌다.
쩍쩍 갈라진 대지는 배고픈 괴물처럼 건물과 사람을 삼키고, 일천 장 높이 거산에서 폭류처럼 쏟아져 내린 흙과 바위더미가 마을을 눈 깜짝할 새에 흔적도 없이 뒤덮었다.
최악의 지진이 강타한 사천성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아우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바로 그 시간, 빙벽 안쪽 깊은 곳에서 멈추었던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방 삼십 자 크기인 정방형의 석실.
안 그래도 야명주로 인해 푸르스름하던 동굴광장은 훨씬 더 짙으면서도 신비스런 푸른빛으로 가득차서 마치 파란 물로 채워진 듯했다.
그런데 진동이 멈출 즈음,
그그그그긍.
광장 중앙에 있는 빙백관의 두꺼운 뚜껑이 조금씩 옆으로 밀려났다.
동시에 눈부신 백광이 밖으로 뿜어졌다.
바로 그때, 동굴광장을 가득 채운 채 휘돌고 있던 푸른빛이 백광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듯 빙백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동굴광장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푸르스름한 빛만 남았다.
그리고 다시 일 각이 지났을 때……
“여긴…… 어……디?”
백옥관 안에서 사람의 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래가 끓는 듯하면서도 묵직한 목소리였다.
“으으으음.”
뒤이어 흘러나온 나직한 신음.
백옥관 안에 있던 목소리의 주인이 마저 뚜껑을 밀어내고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백설처럼 하얀 백옥관, 칠흑의 장포, 창백하게 보일 정도의 하얀 얼굴, 검고 기다란 머리카락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
그였다.
냉혹한 시선을 들어 수천의 시신으로 뒤덮인 혈야를 바라보던 마천제 혁무천.
심장의 지옥불을 꺼뜨리기 위해 빙백관에서 잠든 그가 마침내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성공…… 했나?”
한참 만에 말을 내뱉은 그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다행히 대법이 성공한 듯했다.
지옥화는 꺼진 듯 고요했고, 자신은 숨을 쉬고 있었다.
“염왕이 아직 나를 데려갈 마음이 없나 보군.”
백옥관에서 나온 혁무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몸이 오랫동안 묶여서 꼼짝도 하지 못한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서 삐거덕 소리가 나는 듯했다.
대법은 백 일 동안 시행될 예정이었다. 자신이 깨어났다면 백 일이 지났다는 뜻.
‘하긴 그동안 움직이지 못했으니 관절이 비정상인 것도 당연하지.’
문제가 있는 것은 신체뿐만이 아니었다. 공력마저 굳어버린 듯 기해혈의 기운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다 뭔가를 생각하려고 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치 토막 난 기억 사이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그래도 살아 있는 게 어딘가.
일단 그는 뻑뻑하게 굳은 몸을 풀기 위해서 팔다리를 움직였다.
당장은 몇 걸음 걷기도 힘들었다. 지금 상태로 나갈 수는 없었다.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벌떼처럼 달려들 테니까.
아마 그 중에는 자신에게 무릎을 꿇었던 마도의 고수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원래 그런 자들이지.’
혁무천은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발가락까지 천천히 몸을 주물러주었다.
관절을 풀어준 지 한 시진쯤 지나자 그럭저럭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후 두 번에 걸쳐서 소주천을 행했다.
마침내 공력의 일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이군.’
공력이야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돌아올 터. 당장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문득 든 생각에 목을 만져보았다.
빙백관에 들어가기 전, 귀령자가 말했다.
‘주군, 대법이 성공하면 지옥화의 기운이 빙정에 의해 굳어서 목과 심장 사이에 뭉쳐 표식이 생긴다 했습니다. 그 표식이 모두 사라지면, 숯불이 다 타서 하얀 재가 되어 대지로 돌아가듯 몸의 생기가 다할 거라 했으니, 이후 무공을 펼칠 때는 주의하셔야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실처럼 가늘게 튀어나온, 조금은 딱딱한 핏줄 같은 것이 손끝에 느껴졌다.
‘이것이 그 표식……?’
귀령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표식은 곧 자신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손끝에 느껴지는 선의 숫자는 모두 열 개. 그 선이 모두 사라지면 자신의 목숨도 끝이란 말이었다.
과연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조심하면 제 명은 다 살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삶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복수를 마쳤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삶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남들처럼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싶었다.
자신이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원수들은 행복하게 지냈을 것 아닌가. 자신이라 해서 행복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지이잉.
머릿속이 울렸다.
바늘로 쿡 찌른 듯 짧은 고통이 뒤따랐다.
그의 짙은 눈썹 사이 미간에 세 줄기 골이 파였다.
무언지 모를 괴이한 느낌.
‘뭐지?’
하지만 그는 곧 머리를 흔들고 몸부터 추슬렀다.
‘일단은 살아 있는 걸로 만족하자.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된 혁무천은 한쪽에 놓인 검을 집어 들었다.
검을 본 그의 눈에 의혹이 가득했다.
그와 함께 피의 복수를 함께했던 천망검(天亡劍)이었다.
검집이 시커멓게 보이는 것은 수천의 피가 배어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단순히 검은 것만이 아니라 검집을 두른 가죽이 삭은 상태였다.
그는 검을 뽑아보았다.
끼기기기기기.
기괴한 소리가 나며 검이 뽑혔다.
녹이 슨 검신이 검붉은 모습을 드러냈다.
‘백 일 사이에 검이 이렇게 녹슬다니…….’
천망검의 본래 이름은 천추검.
신검이라 불리던 명검이다.
더구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서 기름으로 닦아놓지 않았던가.
그런 검이 백 일 만에 이 정도로 녹슨 것은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었다.
자신과 생사를 넘나들었던 천망검을 놓고 갈 수도 없고……
손을 보면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천망검을 옆구리에 찬 그는 검과 함께 놓여 있던 주머니를 집어 들고 펴보았다.
백옥관에 들어갈 때 빼놓았던 주머니였다. 천잠사로 만든 주머니 안에는 약간의 은자와 몇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주머니를 품속에 넣은 그는 몸을 돌리려다 멈칫하더니, 벽에 박혀 있는 야광주를 하나 빼들고 석실을 나섰다.
‘어두운 곳에서는 쓸모가 있을지 몰라.’
석실을 나서자마자, 통로의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온몸이 하얗게 얼어서 목내이처럼 말라붙은 시신이었다.
시신을 내려다 본 혁무천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얼굴은 바짝 말라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옷차림은 눈에 익었다.
그의 기억 마지막에 새겨져 있는 자.
대마천의 군사였던 귀령자였다.
엊그제 본 것처럼 기억에 선명한 그가 죽었다니.
‘그런데…… 왜 이곳에서 죽어있지?’
살을 에는 한기가 머무는 공간. 얼어붙은 몸에 대해서는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의아한 것은 그가 빙천동 안에서 죽어 있다는 것이다.
왜 밖에서 기다리지 않고?
게다가 바짝 말라붙은 시신은 또 뭐란 말인가.
사람이 저렇게 목내이처럼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도대체 자신이 대법을 펼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혁무천은 귀령자의 시신에서 눈을 떼고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입구가 무너져 있었다.
벽과 천장은 물론이고 바닥에도 금이 가 있었다.
‘지진이라도 났나?’
그의 추측대로 지진이 있었다.
그러나 통로가 무너진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었다.
‘나가보면 알겠지.’
***
동굴 앞은 본래 빙벽이 삼 장 두께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지진이 나면서 빙벽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고, 얼어붙으며 갈라진 암벽마저 무너졌다.
그 바람에 돌덩이로 막혀 있던 동굴 역시 칠팔 장이나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콰르르릉.
동굴을 막고 있던 부서진 돌덩이들이 무너져 내렸다.
한쪽 바위 위에서 졸고 있던 독수리 한 마리가 깜짝 놀라서 푸드득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곧, 돌덩이가 무너진 곳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먼 흑의 장포를 걸친 청년, 혁무천이었다.
동굴을 나선 그는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서서 빛에 적응했다.
수많은 상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공기, 정말 좋군. 숨을 쉰다는 게 이리 기분 좋은 일일 줄이야.’
천천히 눈을 뜬 그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무너진 빙벽과 암벽으로 걸음을 내딛기도 힘든 지형.
천지가 뒤틀릴 만큼 엄청난 지진이 난 듯했다.
동굴이 무너진 걸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했다.
그런데……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찜찜한 느낌.
곧 찜찜함의 정체를 깨달은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을이 깊어갈 때 빙천동에 들어갔다.
백일이 지났다면 지금쯤은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이어야 했다.
그런데 가을 날씨, 태양이 가라앉은 높이만 봐도 아직 겨울이 오려면 한두 달은 남은 듯했다.
‘어떻게 된 거지? 백일이 안 지났나?’
그럴 리가 없다.
천망검의 상태를 봐도 그렇고, 귀령자의 시신만 해도 세월이 흘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근의 지세도 왠지 전과 다른 듯 느껴졌다.
***
황금빛 석양이 형형색색으로 물든 산야를 비칠 때, 흑색 장포를 걸친 청년이 목석처럼 굳은 표정으로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의 마을은 그도 아는 곳이었다. 빙천동으로 가면서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
지진으로 인해 곳곳의 건물이 무너져 있긴 하나 분명 그때 그곳이었다.
‘사현이라 했던가?’
그런데 마을의 모습이 전에 봤을 때와 많이 달랐다.
백 일이 지났을 뿐이거늘…….
자신이 아는 마을이 아니었나?
그럴 리가 없다.
마을 뒤쪽으로 펼쳐진 산 정상의 거북을 닮은 바위봉우리. 분명 몇 달 전에 지나오면서 봤지 않은가.
눈이 삐지 않은 이상 저렇게 생생하게 거북을 닮은 바위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구암봉이라 했지.’
점소이가 봉우리의 이름도 말해주었었다.
봉우리에 얽힌 전설도.
그런데 마을이 낯설었다.
건물이 부서진 것을 떠나, 마을의 규모가 자신이 봤던 때보다 훨씬 컸다.
결단코 몇 개월 만에 변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후우우우우, 이해할 수가 없군.”
길게 한숨을 내쉰 그는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득 생각해 보니 마을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길도 달라져 있었다. 자신이 공가산으로 갈 때의 길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길이 나 있었다.
관도가 몇 달 만에 그렇게 변했을 리 없으니 자신이 잘못 보았나 했다.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다.
‘뭔지 몰라도 대법을 펼치는 동안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졌어.’
마을로 들어가자 부서진 잔재를 치우는 자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마을 중앙쯤 들어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진으로 인해 피해가 큰 와중에도 문을 연 객잔이 있었다.
방향을 틀어 객잔으로 들어간 혁무천은 주문을 받으러 온 점소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앞쪽에 있는 건물은 언제 지은 건가? 전에 왔을 때는 못 보았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