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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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화
1화
“진정…… 아수라가 현신했단 말인가!”
마지막까지 버티던 노도인이 탄식하듯 말을 마치자마자 입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쓰러졌다.
“나를 아수라로 만든 건 그대들이다. 그대들은 나를 원망할 자격이 없다.”
냉소를 지은 혁무천은 노도인에게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시신으로 뒤덮인 혈야가 펼쳐져 있었다.
수만 마리 까마귀들이 시뻘건 시신 위로 날아들었다.
그 자신 역시도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늘 아래 어느 누가 감히 마천제(魔天帝)를 평할 수 있겠습니까.”
대마천의 군사이자, 천하만사(天下萬邪)를 손아래 부리던 귀령자가 허리를 깊게 숙이며 말했다.
마천제를 따르는 일천의 마도고수 중 살아남은 자는 사백여 명.
피에 젖은 장포를 휘날리며 서 있던 그들 중 몇이 강렬한 눈빛으로 귀령자의 말에 동조했다.
“누구든 천제를 욕하는 자는 입을 찢어버릴 것이외다!”
“혈천의 하늘이시여! 버러지들이 짖는 소리는 다 개소리니 신경 쓰지 마시구려!”
“염원을 이룬 것을 감축드리오!”
“감축드리오오오오!”
“그대가 이제 마의 하늘이외다, 마천제시여!”
혁무천은 천지를 울리는 함성을 들으며 몸을 돌렸다.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길을 걸으리라.
복수의 길을!
썩을 대로 썩은 강호의 심장을 도려내리라!
마음을 굳게 다진 혁무천은 이를 악물고 걸음을 내딛었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복수를 마쳤다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또 다른 지옥을 찾아가야 한다.
심장에서 피어난 지옥화 덕분에 복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옥화가 피어난 지 삼 년이 지나면, 지옥의 불길은 주인의 몸을 숯덩이로 태우고 지옥으로 돌아갈 거라 했다.
죽음을 피할 방법은 단 하나.
지옥화를 잠재우기 위해 극양의 상극인 극음의 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하면 극양의 지옥화에 심장이 타든가, 극음의 빙정에 온몸이 얼어 조각조각 쪼개져서 녹아내릴 것이다.
<곧장 빙천동으로 가실 건지요?>
귀령자가 전음으로 말했다.
혁무천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
칠 일 후.
귀령자와 단 둘이서 공가산에 도착한 혁무천은 만년빙벽 중간에 뚫려있는 빙천동으로 들어갔다.
빙천동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푸른빛을 내는 구슬이 사방 벽에 박혀 있는 광장이 나타났다.
빙옥을 깎아 만든 거대한 빙백관이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빙백관에는 세상에서 가장 차고 깨끗하면서도 얼지 않는 천음수가 가득했다.
빙백관 옆에는 서리가 내린 백색 옥함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오리알만 한 빙정(氷晶)이 담겨 있었다.
“백 일 후, 대법이 끝나면 정신이 들 것입니다.”
혁무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원히 못 일어날 수도 있겠지.”
성공 확률 삼 할 이내.
실패할 확률은 칠 할 이상.
아마 그가 전 재산을 걸고 내기를 한다면 절대 자신에게 걸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주군을 세상에 보냈을 때는 이유가 있을 터, 결코 주군을 이대로 데려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염왕도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군.”
“오히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봐 주군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말이라도 안심이 되는군.”
“아무 걱정 마시고 한잠 푹 주무십시오, 주군.”
“정말 이 방법밖에 없을까?”
“다른 방법이 있다면 무엇 하러 천만금을 들여서 빙백관과 빙정을 구했겠습니까.”
“훗, 이걸 구하느라 광천곡의 재정이 말라버렸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를 많이 원망하겠군.”
“돈이야 다시 모으면 되는 것, 돈 걱정 마시고 시작하시지요.”
“귀령자 할아버지는 나를 빨리 보내고 싶은 모양이군.”
“그게…….
갑작스런 호칭에 귀령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혁무천이 커오는 걸 지켜본 지 이십 년.
어렸을 때의 혁무천은 그를 할아버지라 부르며 친손자처럼 따랐다.
하지만 열세 살 생일 이후, 지옥수련을 시작한 후부터는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마음의 상처가 컸을 것이다.
할아버지라는 사람이 매일같이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으니…….
당시 수련 중 생사의 고비에 처한 것만 해도 수십 번.
하지만 그는 도와주지도 못하고 가슴만 졸여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힘을 얻어 마천제가 되었거늘, 또 다시 죽음과 싸워야만 하다니.
“……주군께서 빨리 정상이 되신 걸 보고 싶은 거지요.”
“알았어. 들어갈 테니 울지 마.”
“울긴 누가 운다고…….”
붉어진 눈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렸던 귀령자가 시선을 돌려서 혁무천을 흘겨보았다.
어느새 돌아섰는지 혁무천의 등만 보였다.
다행이었다. 붉어진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는데.
“이걸 복용하고 저 안에 들어가란 말이지?”
혁무천이 등을 보인 채 백옥함에서 빙정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던 귀령자가 깜짝 놀라서 소리치듯 말했다.
“안 됩니다! 주군, 제가 시키는 대로 복용하셔야……!”
그때는 빙정이 이미 혁무천의 입안으로 반쯤 들어간 후였다.
혁무천의 입 주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서, 어서 빙백관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귀령자는 떠밀 듯이 혁무천을 빙백관 안으로 밀어 넣었다.
혁무천은 천지의 음기가 뭉친 빙정을 엉겁결에 복용하고 천음수가 든 빙백관에 몸을 눕혔다.
그러고는 지옥화를 끌어올린 후 천지음양조화공을 끊임없이 운용했다.
[……극양은 극음을 만나 조화를 이루고…… 궁극에 달하면 천지교감하리니……]
대법 시작 일각 후, 지옥화와 빙정의 기운이 충돌하면서 서서히 의식이 끊어졌다.
그 와중에도 그는 천지음양조화공을 멈추지 않았다.
귀령자는 빙백관의 뚜껑을 닫은 후에야 털썩 주저앉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히 잘못 되진 않은 것 같은데……”
슬쩍 빙백관을 내려다 본 그의 눈매가 살짝 떨렸다.
설마 무슨 일이 있진 않겠지?
***
귀령자는 빙벽 아래쪽에서 기거하며 하루에 두 번 정도 빙천동 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대법 시행 구 일째 되던 날.
“응?”
빙천동 입구 쪽에 앉아있던 귀령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멀리, 계곡의 입구로 사람들이 들어서는 게 보였다.
이 계곡은 인근의 마을 사람들조차 접근을 하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다.
일 년 내내 인간의 그림자를 구경할 수 없는 곳.
심지어 짐승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적지 않은 숫자. 최소 십여 명은 될 듯했다.
제법 빠른 속도. 평범한 마을 사람들은 아니었다.
“누구지?”
눈을 가늘게 뜬 그는 시력을 집중해서 다가오는 자들을 지켜보았다.
곧 그의 눈이 커졌다.
몇 명의 옷차림이 눈에 익었다.
마운평 대회전 이후 각자 자신들의 세력으로 돌아간 마도의 고수들.
개중에서 오대마종 중 셋이 눈에 띄었다.
천붕십이마도 몇 사람도 섞여 있었다.
“저들이 왜 여길……? 아니 어떻게 여길 알고……?”
빙천동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네다섯 명에 불과했다.
혁진학과 자신, 당사자인 혁무천, 그리고 비밀리에 빙백관과 빙정을 수급한 제자 둘뿐.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여기를 알고 몰려오는 걸까.
의문은 곧 풀어졌다.
치켜뜬 그의 눈매가 세차게 떨렸다.
“설마…… 현오, 네가……?”
등현오.
그가 아끼는 수제자이자 외조카다. 다가오는 사람 중에 그도 있었다.
귀령자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주군이 걱정되어서 오는 건가 보다.
혹시 모를 위험에서 지키려고 오는 거겠지.
그런 것이겠지…….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사람들이 계곡 안쪽으로 들어섰다.
“어쩐 일로 이곳까지 오셨는가?”
귀령자가 빙천동 입구에 서서 아래쪽을 향해 물었다.
빙벽 아래에 열세 명이 늘어서 있었다.
그 중 회색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노인이 말했다.
“마천제를 뵈러 왔소이다, 귀령자 선배.”
그가 바로 오대마종 중 하나, 구유마종 사공두였다.
“주군께선 지금 수련 중이시네. 아무도 만날 수 없으니 그만 돌아가게나.”
“매우 긴급한 일이오.”
“그럼 일단 노부에게 말해보게. 주군께서 수련을 마치면 노부가 전해주겠네.”
솔직히 거부할 거라 생각하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사공두가 순순히 응낙했다.
“알겠소이다. 그럼 말씀드리지요.”
“고맙네. 어디 말씀해보시게.”
“마천제께서는 원하던 복수를 이루었으니, 이제 대마천의 상좌에서 물러나주시기 바라는 바요.”
“뭐라?”
“대마천은 천하마도의 미래라 할 수 있소. 하거늘 언제까지 개인의 복수를 위해서만 움직일 수는 없지 않소이까?”
“사공두! 네가 감히……!”
“후후후후, 게다가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분을 우리는 주군으로 받들 수 없소이다.”
귀령자는 그 말을 듣고 등현오를 노려보았다.
주군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 사람들조차 주군에게 존재하는 문제가 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모르고 있지만.
“네가 말했느냐, 현오?”
등현오는 죄스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고개를 쳐들고 대들었다.
“사부, 제 나이 서른아홉입니다. 언제까지 혁무천의 발바닥만 핥으면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군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는 걸로 봐서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하다.
“그래서…… 그래서 역모를 꾀하겠다? 그럼 세상이 너를 인정해줄 거라 보느냐?”
“천하는 곧 마도가 지배하게 될 터. 제자도 그 주역 중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놈!”
참담해진 귀령자가 등현오를 다그쳤다.
그때였다.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있겠소이까? 일단 마천제부터 찾아봅시다!”
“내가 힘을 보태겠소!”
“석문을 닫기 전에 귀령자를 잡아야 하네!”
세 사람이 빙천동을 향해 솟구쳤다.
그러자 뒤지지 않겠다는 듯 다른 자들도 앞다투어 땅을 박찼다.
귀령자는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났다.
그는 머리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무공도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혼자서는 그들 중 하나도 제대로 상대하기 벅찼다.
일단은 뒤로 물러나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는 수밖에.
빙천동 안에는 외부와 차단할 수 있는 석문이 세 단계에 걸쳐서 설치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그가 첫 번째 석문을 닫고 어린아이 팔뚝 굵기의 무쇠로 된 걸쇠를 걸었다.
빙천동에 들어선 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석문을 향해 공력을 쏟아냈다.
쩌저적! 콰과과광!
반각도 되지 않아 석문이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동굴이 무너질까봐 걱정되어서 공력을 조절했기에 그 정도 걸린 것이었다.
두 번째 석문이 부서지는 데까지는 반의 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세 번째 석문 안에 있던 귀령자는 절망에 찬 암울한 눈으로 석문을 노려보았다.
‘저들의 욕망을 너무 간과했어. 어리석은…….’
쿵!
강력한 충격에 석문이 요동쳤다.
쿠궁!
우수수수.
석문에서 돌가루가 떨어졌다.
이제 몇 번만 더 충격을 받으면 석문이 부서질 것이다.
‘주군, 아무래도 이번 생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소이다 그려.’
자신의 능력으로는 배신자들을 막을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한 사람이라도 지옥으로 데려가는 것 정도.
데려갈 사람은 이미 정해놓은 터였다.
‘내가 잘못 키웠으니 내가 책임을 져야겠지.’
그때 세 번째 굉음이 울렸다.
콰르르르릉!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석문뿐만이 아니라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콰과과광!
다시 굉음이 이어지고, 이번에는 벽과 바닥이 갈라졌다.
귀령자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설마…… 지진?”
그에 대해 대답이라도 하듯, 동굴 전체가 뒤흔들렸다.
콰르르르르릉.
진동은 강약을 반복하며 한참 동안 이어졌다.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었다.
분노한 하늘이 공가산 전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지진으로 인해 동굴이 무너진다면 배신자들 때문이 아니라 해도 주군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게 될 터.
천장을 올려다보는 귀령자의 눈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