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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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6화
26화
시우와 금가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모두 셋. 눈빛이 형형한 이삼십 대 무사들이었다.
“어쩌면 그 정보가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얼마 전, 놀라운 정보가 들어왔다.
칠십 년 전에 사라진 정파고수들의 무공이 있는 장소를 누군가가 발견한 것 같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무공이 있는 장소가 동해 쪽이라는 것이었다.
“사실일 경우 정보가 새면 욕심 많은 쥐새끼들이 영파로 몰려들 겁니다.”
“아무래도 그러겠지. 문주께 알려라. 백마궁이 정말로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것 같다고.”
“예, 당주.”
삼십 대 초반에 눈이 칼날처럼 뻗은 장한이 명령을 내려놓고 차가운 눈빛으로 선창을 바라보았다.
금가휘와 시우가 몸을 돌려서 선창가의 객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장한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정말 사라진 정파의 무공을 찾아냈을까?’
사실이라면 강호가 요동칠 것이다.
마도의 대문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겨우 목숨줄만 보존하고 있는 정파에서도 사활을 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라졌던 정파의 비전무공이 나타났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아마 그 무공을 차지하기 위해서 많은 피가 흐르겠지.’
일단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때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한번쯤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해도문의 비마당주 엽기천은 주먹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언제까지 이 구석에서 썩을 수는 없어.’
***
양 노인은 동이 트자마자 주산도에서 배를 출발시켰다.
배는 순풍을 타고 동으로, 동으로 미끄러져갔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내달린 배는 이틀 후 새벽이 되어서야 돛을 내렸다.
안개로 뒤덮인 새벽 바다는 고요했다.
철썩, 철썩.
뱃전을 때리는 파도소리만이 을씨년스럽게 들려왔다.
양 노인은 돛을 내린 후 노를 잡았다.
“여기서부터는 암초와 소용돌이가 많기 때문에 노로 저어서 천천히 들어가야 합니다요.”
“얼마나 더 가야 하오?”
황보수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바다를 잘 모르는 그도 암초가 얼마나 위험한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노를 저어서 두 시진 정도만 들어가면 됩죠. 한분이 앞에 앉아서 저 긴 장대를 바다에 넣고, 장대에 암초가 걸리면 바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요.”
“내가 하겠소.”
황보수가 직접 장대를 잡았다. 수하에게 맡기기에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 시진이 어쩌면 하루, 아니 한 달보다 더 긴 한 시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 시진쯤 전진하자 안개가 점점 옅어졌다.
그동안 황보수는 다섯 번이나 암초가 있다며 소리쳤다.
이제는 누구도 양 노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다시 반 시진쯤 지나자 안개 속에 숨어 있던 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섬의 절반쯤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절반은 숲이 우거져 있었다.
사람들은 안개가 걷힌 바다를 바라보고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물속 사방에 암초가 산재해 있었다. 조금이라도 물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그나마 눈으로 식별이 가능했다. 문제는 바다 속에 감춰진 암초였다.
더구나 회오리치며 휘도는 해류 때문에 바다 속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암초요!”
바짝 긴장한 황보수가 장대를 잡고 힘을 주며 소리칠 때마다 선수가 한쪽으로 틀어졌다.
섬이 가까워지면서 암초가 점점 많아졌다. 백여 장을 전진하는데 대여섯 번이나 황보수의 외침이 들렸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앞면과 좌우의 바다 속을 주시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쿵!
배가 뭔가와 충돌했다.
“헛! 아무것도 없었는데…….”
황보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하며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세웠다.
양 노인이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유령암초요. 물색과 똑같은 암초가 바다 속에 숨어 있습죠.”
“이런 젠장…….”
“바닥이 깨졌습니다! 물이 샙니다!”
정은맹 무사 하나가 다급한 어조로 소리쳤다.
깨진 곳은 좌측 바닥 부분.
깨진 판자 사이로 바닷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일단 옷을 벗어서 누르고 있어라. 고이면 물을 퍼내!”
정은맹 무사가 겉옷을 벗어서 깨진 곳을 막고 있는 사이 배는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섬을 삼십여 장 남겨 두었을 때 배에 고인 물이 한 뼘은 차올랐다.
정은맹 무사들은 두 손을 이용해서 물을 퍼냈다.
“무사 양반, 닻을 먼저 저 자갈밭으로 던져주십쇼!”
해변이 십여 장쯤 남았을 때 양 노인이 소리쳤다.
종환이 나서서 선수에 있는 닻을 집었다.
심호흡을 한 그가 무거운 닻을 서너 번 빙빙 돌리더니 해변의 자갈밭을 향해 힘껏 던졌다.
닻줄은 일반적인 닻줄보다 훨씬 길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것일까.
종환이 던진 닻은 간신히 자갈밭에 떨어졌다.
“업혀라.”
혁무천의 말에 은설이 고개를 쳐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싫으면, 헤엄쳐서 가든가.”
“아뇨. 업힐래요.”
은설은 행여나 혁무천이 마음을 바꿀까봐 두렵다는 듯 말을 뱉자마자 혁무천의 등을 향해 폴짝 뛰었다.
혁무천은 은설이 업히자 배를 박차고 섬을 향해 몸을 날렸다.
황보수와 정은맹 무사들도 경공을 펼쳐서 섬으로 향했다.
은설을 업은 혁무천과 황보수는 무사히 자갈밭에 내려섰다. 그러나 경공 실력이 떨어지는 무사들은 섬에 안착하지 못하고 물 위로 내려섰다.
다행히 깊이가 허리 정도여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무사들이 배에서 내리자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더뎌졌다.
혁무천은 은설을 내려놓고 닻줄을 잡아당겼다.
배에 실린 짐도 짐이지만, 짐보다 배 자체가 더 중요했다. 배가 온전해야 섬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황보수도 달려들어서 함께 닻줄을 잡아당겼다.
배는 이미 선수가 물속으로 가라앉기 직전이었다.
사람들은 배를 최대한 뭍 위로 끌어당긴 후에야 휴식을 취했다.
***
섬은 겉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컸다.
숲은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우거졌고, 바위산 한쪽에서는 바다 새가 떼를 지어서 날아다녔다. 족히 수천 마리는 될 듯싶었다.
“노인장은 배를 살펴보시오. 우린 섬을 둘러보겠소.”
황보수는 배를 양 노인에게 맡겨놓고 혁무천과 은설에게 다가갔다.
“은 소저, 이제 말해보시게.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차피 아버지의 말에 따르기로 한 은설은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서 바위산 쪽을 가리켰다.
“저 바위산과 숲 사이에 곰을 닮은 커다란 바위가 있다고 했어요. 일단 그 바위부터 찾아야 해요.”
“앞장서게.”
은설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오빠도 가실 거죠?”
혁무천도 어차피 그녀 혼자 보낼 마음은 없었다.
“네 아버지가 얼마 전까지 머물렀다면 흔적이 있을 거다. 주위부터 둘러보자.”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숲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우거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곳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해안의 자갈밭을 따라 올라가자 이방인이 오간 흔적이 엿보였다. 혁무천 말대로 은석추가 지나다닌 길이 아닌가 싶었다.
그 길을 따라서 숲속으로 들어간 지 일 각쯤 지났을 때 앞장서서 걷던 종환이 걸음을 멈추고 소리쳤다.
“기주님! 저기 곰처럼 보이는 바위가 있습니다!”
정말 곰처럼 생긴 바위였다. 크기가 이층 전각만큼이나 컸다.
은설은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오십 장쯤 가자 경사가 급박한 바위산의 갈라진 틈이 보였다.
너비가 이 장 정도 되는 커다란 틈이었는데, 은설이 그 앞에서 멈춰 섰다.
“이 안에 동굴이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바로 그 동굴 안에서 원하던 것을 찾았다고 했어요.”
황보수는 마침내 전설을 눈앞에 두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당시 사라진 고수 중에 황보가의 어른도 계셨다. 그 바람에 황보가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신공절학 중 최강이라는 패왕신권이 절전되고 말았다.
패왕신권만 되찾을 수 있다면 마도 무리와 정면대결도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은설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틈바구니를 따라서 안쪽으로 십여 장 가량 들어가자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단순히 바위가 갈라진 틈이 아닌, 오랜 옛날 이 섬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해온 동굴이었다.
황보수를 필두로 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몇 걸음 옮기던 황보수가 걸음을 멈추고 동굴 안의 입구 쪽 벽을 바라보았다.
벽 곳곳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바다에서 길을 잃고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우리는 이곳에서 목적한 바를 이룰 때까지 지내기로…….]
[어느 덧 일 년, 무공 구결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 예상보다 쉽지 않다. 그래도 모두 각자가 계획한 대로…….]
섬에 들어온 초기는 그래도 긍정적인 글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섬에 들어온 지 삼 년째, 비무를 하며 무공을 시험해보던 중 팽 형이 부상을 당했다.]
[인간의 시기심이 이토록 지독할 줄이야. 사소한 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졌다. 그로 인해 영성진인과 남궁 형이 중상을 입었다. 다른 사람들도 감정의 골이 깊어져…… 결국 단목 형이 자진해서 동굴을 떠났다.]
[영성진인이 그동안의 깨달음을 천지벽에 남기고 우화등선하셨다. 이제 남은 사람은 다섯. 그러나 마도를 무너뜨리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니…….]
글을 적은 이는 자신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글에서 느껴지는 투로 보아 속인인 듯했다.
[……이십이 년……. 오늘 공명선사께서 해탈하시고 노부만이 남았다. 말년에 겨우 무공의 끝자락을 엿보았으나 섬을 빠져나갈 수 없어 전할 수 없으니…… 오호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후손은 과연 이곳을 찾아올 수 있을까?]
황보수는 마지막 글까지 읽고 눈을 감았다.
읽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공의 완성을 미루고 섬을 빠져나가려 했다면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도를 궤멸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무공을 완성시키려다 나이가 드는 바람에 결국 섬에 갇힌 신세가 된 듯했다.
그 절망감이 오죽했으랴.
그에 비하면 자신들에게는 배가 있었다. 그리고 빠져나갈 길을 알고 있는 양 노인이 있었다.
반드시 전설을 얻어서 빠져나가리라!
“일단 위치를 알았으니, 횃불을 준비한 후에 들어가는 게 좋겠군.”
황보수가 결정을 내렸다.
원하던 것을 얻으려면 상당한 깊이까지 들어가야 할 듯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그런데 은설이 한마디 덧붙였다.
“밧줄도 만드는 게 좋을 거예요. 길이는 이십 장쯤.”
혁무천은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정파의 무공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오직 하나, 은설의 안전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위험이 닥친다면 황보수 일행은 살아서 섬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횃불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밧줄도 우거진 숲 속에서 넝쿨을 수집한 후 몇 줄기씩 꼬아서 그럭저럭 이십 장을 채웠다.
준비가 되자, 한 사람 당 횃불 두 개씩 들고 동굴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십여 장까지는 평탄해서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십오 장쯤 들어가자 조금씩 험해졌다.
때로는 다른 곳으로 뻗은 동굴도 있었는데, 폭이 좁거나 높은 곳에 있어서 사람이 들락거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은설은 일행을 더욱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삼십 장쯤 갔을 때, 통로가 아래쪽으로 낭떠러지처럼 꺾어졌다.
밧줄이 필요한 이유였다.
“아버지는 바로 이 동굴절벽 아래쪽에서 그걸 봤다고 했어요.”
은설의 나직한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황보수가 그녀를 보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봤다는 게 무공비급이었다고 하던가? 아니면……?”
“무공은 맞아요. 하지만 책자는 아니었다고 했어요.”
“책자가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