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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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4화
24화
조금 전, 옆집의 중년여자가 대장간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 순순히 털어놓았다.
그들 중 두 사람이 신경을 건드렸다.
마흔이 넘은 그녀의 방심을 흔들었다는 잘생긴 흑의 청년과 소녀 무사.
그들에 대한 설명을 들은 순간 며칠 전 황학루에서 봤던 자가 떠올랐다.
‘만약 그들이라면 일이 재미있게 흐르겠군.’
***
혁무천과 은설, 그리고 황보수 일행 열한 명은 배를 타고 파양호를 건넜다.
은설은 배를 타고 가며 목적지를 밝혔다.
“아버지는 동쪽 바다의 주산도에서도 더 동쪽으로 간 섬에서 그들이 남긴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어요.”
황보수가 반색하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섬이라고?”
“폭풍우를 만나서 우연히 도착한 섬이었다고 해요.”
“섬의 이름은?”
“사람이 없는 무인도여서 섬 이름도 모른대요.”
“그럼 어떻게 찾아간단 말이냐?”
“일단 영파 남단의 해궁이라는 곳에 가서 한 사람을 찾아야 해요.”
“누구를……?”
황보수가 애를 태우며 물었지만, 은설은 그쯤에서 살짝 옆으로 빠졌다.
“그 정도면 저도 성의를 표시한 것 같은데요. 나머지는 영파에 도착해서 말씀드릴게요.”
그녀는 만만한 소녀가 아니었다.
혁무천은 은설이 너무 쉽게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말리려다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황보수 등도 애가 탔지만 일단은 그 정도로 만족했다.
경덕진은 파양호 건너편에 있었다.
혁무천은 저 멀리 까마득한 곳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잠깐 들렀다 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간다 한들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고향 아닌가.
어쩌면 아픔만 더할지도 모를 일.
‘나중에 가보자. 은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후에.’
고향으로 가서 도자기나 구우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혁무천이 상념에 잠긴 사이 배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영파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장강을 따라 내려가는 방법, 삼청산과 황산 남쪽을 통해서 육로로 가는 방법.
일행은 백마궁 때문에 장강을 포기하고 삼청산과 황산 남쪽을 돌아가기로 했다.
구강을 떠나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석양 무렵.
상요에 도착한 일행은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긴장이 풀어진 그들은 오랜만에 여유 있는 마음으로 식사를 즐겼다.
밖은 이미 어둠의 장막이 하늘과 땅을 뒤덮은 상태였다.
그런데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였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혁무천이 허리를 세웠다.
“은설,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내 곁에 붙어 있어라.”
은설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왜 그런가?”
황보수의 좌측에 앉아 있던 장한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종환이라는 자였는데, 묻는 말투에 가시가 돋아 있었다. 그는 전부터 혁무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소.”
“훗, 이런 시골마을에서 누가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거지?”
혁무천의 말투도 냉랭해졌다.
“그 말은 이곳을 벗어난 후에 하시오.”
“보기보다 겁이 많군.”
혁무천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진짜 겁이 나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시오?”
“뭐?”
“한번 시험해 보겠소? 나도 보고 싶은데.”
종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혁무천의 말뜻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너를 죽도록 패서 겁을 내는 모습이 어떤지 보고 싶다.
그런 말.
하지만 그가 화를 터트리기 전에 황보수가 눈빛을 번뜩였다.
가슴을 옥죄는 살기가 객잔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모두 조심해라.”
그 말이 떨어진 직후,
콰당!
나무로 된 문이 부서질 듯 세차게 열렸다.
그 후 머리를 파란 끈으로 질끈 묶고 남방 특유의 짧은 옷을 입은 무사 칠팔 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대다수가 면이 넓은 칼을 들고 있었다.
객잔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곧장 혁무천 일행에게로 다가갔다.
황보수는 바위 같은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고수로 보이지는 않았다. 정은맹 무사 서너 명만 나서도 그들을 처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문제는 저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린 마호방 사람들이다. 혹시 구강에서 오지 않았나?”
들어온 자들 중 수염이 덥수룩하고 덩치가 큰 장한이 물었다.
사투리가 심해서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말뜻을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황보수가 거짓으로 대답했다.
“우린 구강이 아니라 경덕진에서 왔네.”
“어디로 가는 길이지?”
“금화에 들렀다가 항주로 갈 예정이네.”
“그래?”
장한이 대답하며 씩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
한쪽에서 은설과 앉아 있던 혁무천은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군.’
그 생각에 답하듯 마호방의 장한이 말했다.
“우리를 따라가자. 너희들 말이 사실이라면 털끝 하나 손대지 않고 풀어주지.”
황보수는 그들에게 협조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군.”
“어렵다? 그럼 할 수 없지. 팔다리를 잘라서 데려갈 수밖에.”
채채챙!
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사불란하게 칼을 뽑았다.
황보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쳐라!”
마호방 무사들과 가까이 있던 정은맹 무사 다섯이 먼저 몸을 날렸다.
그들은 그동안 혁무천으로 인해 쌓인 불만을 마호방 무사들에게 쏟아냈다.
“으아악!”
“이 개새……! 커억!”
셋을 셀 시간에 서너 명이 피를 뿌렸다.
대경한 마호방 무사들은 눈을 치켜뜨고 칼을 휘둘렀다.
“놈들을 죽여!”
장한이 악을 쓰듯 외쳤다.
조용하던 객잔 안에 피바람이 몰아쳤다.
비명이 터져 나오고, 악다구니가 객잔을 뒤흔들었다.
와직!
소리치던 장한이 황보수의 일장에 가슴뼈가 으스러지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 사이 무사 수십 명이 객잔의 입구와 창문 쪽, 뒤쪽을 봉쇄했다.
황보수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객잔의 벽을 향해 일장을 뻗었다.
쾅! 와르르르르.
굉음이 터지고, 벽이 두어 사람 통과할 크기의 구멍을 내며 무너졌다.
장한 둘이 먼저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황보수와 은설, 혁무천이 나가고, 정은맹 무사들이 뒤따라서 움직였다.
입구와 뒤쪽, 창문에서 마호방 무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입구와 뒤쪽 문 근처에 몰려 있던 무사 중 절반은 난데없이 뚫린 구멍 쪽으로 달려왔다.
종환을 비롯한 장한 둘이 선두에 선 적을 막아선 동안 구멍을 통해서 황보수와 은설, 혁무천이 나왔다.
“내가 선두에 서지!”
호기롭게 소리친 황보수는 자신의 실력을 모두 드러냈다.
그가 정은맹 최강의 무력조직인 칠기 중 하나를 맡은 것은 운빨이 아니었다.
그의 실력은 절정경지에서도 상급에 도달해 있었다.
그가 두 손을 휘두를 때마다 강맹한 기세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어둠을 부셔댔다.
강맹한 기운에 휩쓸린 마호방 무사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 사이에서도 서너 명이 폭풍 같은 공세를 뚫고 황보수의 뒤쪽을 공격했다.
그들은 얼굴이 반반한 혁무천과 약해 보이는 은설을 목표물로 삼았다. 더럽게도 운이 없는 자들이었다.
시간을 오래 끌 마음이 없던 혁무천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치명적인 공격로를 택했다.
특별한 초식을 펼친 것도 아니었다. 화려하지도 않았다.
냉정하게 상대의 빈틈을 파고든 검은 간결하고 정확하게 상대의 사혈을 잘라냈다.
“끅!”
“커억!”
단말마가 찰나의 차이를 두고 이어졌다.
다급히 고개를 돌린 황보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공세를 뚫고 지나간 무사 넷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저 고개를 돌린 짧은 순간이었거늘.
마침 그때 갈의를 입고 칼을 든 중년인이 날아들었다.
방향은 혁무천 쪽.
황보수는 몸을 날리려다 멈칫했다.
갈의중년인은 다른 마호방 무사들과 수준이 달랐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느껴지는 강렬한 도기.
절정 경지를 밟아본 고수가 분명했다.
무천의 무위를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기회.
그가 멈칫한 사이 대지에 내려선 갈의중년인이 혁무천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죽어라, 이놈!”
쒜에에엑!
웅혼한 도기가 어둠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혁무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서 상대의 칼에 맞섰다.
상대가 든 칼은 무게가 몇 배나 나가는 중병이었다. 거기다 웅혼한 경력까지 실려서 바위조차 두 동강 낼 수 있을 듯했다.
그럼에도 혁무천은 눈썹 한 올 흔들리지 않고 상대의 도세 속으로 검을 들이밀었다.
‘저런!’
황보수의 눈매가 움찔거렸다.
그가 보기에는 무모한 대응이었다.
은설을 지키기 위해서 무리를 하는 건가?
그런데 혁무천이 검을 뻗은 순간, 어둠속으로 검이 빨려 들어가는 듯 느껴졌다.
뭐지?
황보수의 눈이 살짝 커짐과 동시, 갈의중년인 얼굴도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흡!”
칼을 든 손이 그의 몸에서 벗어나 빙글빙글 돌며 튕겨졌다. 잘린 팔꿈치에서 뿜어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혁무천은 그런 상대를 보며 좌수를 뻗었다.
쾅! 하는 일성과 함께 갈의중년인의 몸이 거꾸로 날아갔다.
눈 깜짝할 새, 갈의중년인을 처리한 혁무천은 은설의 앞에 고요히 서서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
황보수는 경악을 가슴 속에 눌러놓고 일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이곳을 빠져나가라!”
마을을 벗어난 후로도 십 리를 달렸다.
추적해오는 자와의 거리가 제법 벌어지자 황보수가 걸음을 늦추었다.
수하의 숫자가 넷이나 줄어든 상태였다.
착잡함과 분노가 가슴을 먹먹하게 짓눌렀다.
“아무래도 백마궁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종환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백마궁에서 도움을 요청했다면, 마호방의 뜬금없는 공격을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밤길을 재촉해서 이동한다. 가자.”
황보수는 입술을 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 인원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든 항주까지만 가면 수가 나겠지.’
항주에는 정은맹과 비밀협약을 맺은 세력이 있다. 그들이 정은맹과의 관계가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줄지는 알 수 없다.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컴컴한 어둠을 노려보며 걷던 황보수는 고개를 돌려 무천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잘게 떨렸다.
‘그 검법……!’
무천의 일검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혹했다.
언젠가 그런 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너무 오래 되었고, 지나가듯 들은 이야기여서 잠시 잊고 있었을 뿐.
“혹시…… 자네가 사용한 검법이 탈혼마검 아닌가?”
질문을 던진 그는 혁무천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터럭 하나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만약 자신의 예상이 옳다면, 무천이란 자는 마도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럼 동행을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아쉽게도 혁무천의 무심한 표정은 털끝만큼의 변화도 없었다.
“나는 그런 검법을 알지 못하오.”
“그럼 그자의 팔을 자를 때 쓴 검법은 무엇인가?”
“상대의 빈틈을 이용했을 뿐이오.”
“그자는 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였네. 단순히 빈틈을 이용해서 팔을 자를 수 있는 자가 아니었던 것 같네만.”
“정 궁금하면 시험해보시든가.”
“…….”
황보수는 눈을 부릅떴지만 손을 쓰지는 못했다.
속으로 ‘끄응.’하고 분노를 삼킨 그는 걸음을 빨리했다.
‘건방진 놈!’
***
상요에서 오 리 정도 떨어진 곳. 마호방이라는 현판이 달린 커다란 장원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런 멍청한……!”
전청의 상석에 앉은 시우가 눈을 치켜뜨고 다그쳤다.
그의 앞에는 사십 대 초반쯤 되는 중년인이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주위에는 삼십여 명이 서 있었는데, 개중 절반은 마호방 사람이 아니었다.
“조사만 하고, 혹여 그들을 발견해도 건들지 마라 했거늘, 감히 명령을 어겨?”
“몇 놈 되지 않아서 떠나기 전에 잡아 놓으려고…… 본 방에서 초청한 고수들이 쫓고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시우가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뻗었다.
쾅!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몇 마디 내뱉던 중년인이 뒤로 튕겨나가 나뒹굴었다.
“네놈들 손으로 잡을 놈들이 아니니까 건들지 마라 한 것 아니더냐!”
싸늘하게 한소리 내지른 시우가 칼날 같은 눈빛으로 중년인, 마호방주 노궁두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잘라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숙부, 그만 참으시지요.”
금가휘가 포권을 취하며 시우를 말렸다.
“지금은 놈들을 추적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젠장. 급해서 연락했더니, 어리석은 놈이 일을 어렵게 만들어 놨어.”
“그래도 놈들이 가려는 방향은 확인되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
시우는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노궁도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그들을 쫓고 있느냐?”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킨 노궁도가 다급히 대답했다.
“마침 구주삼살이 근처에 있어서 부탁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