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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22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22화

22화

 

 

“우리는 은석추가 지닌 정보를 얻고자 할 뿐이네. 그러니 그에게 몇 마디 물어볼 시간만 주게.”

“아마 귀하가 원하는 것을 얻기는 힘들 거요. 저 사람은 지금 단 한마디도 말할 수 없는 상태니까.”

“그 정도로 심한가?”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요.”

“으으음.”

곤혹스런 표정을 지은 중년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은석추의 딸은 어디에 있는가?”

“안전한 곳에 있소.”

“여기서 얼마나 걸리지?”

“한 사흘쯤?”

“그럼 은석추와 그의 딸이 만날 때까지 우리가 함께 가겠네. 그 와중에 은석추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잠깐만 시간을 주게.”

혁무천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좋소. 단, 도착한 후에는 은설의 허가가 있어야만 저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거요.”

“좋아, 받아들이지.”

이것저것 따져본 후 결론을 내린 중년인은 궁금해 하던 질문을 하나 던졌다.

“나는 황보수라 하네. 자넨 이름이 어떻게 되나?”

“무천.”

중년인, 황보수는 머릿속을 뒤져보았지만 무천이라는 이름은 그의 기억 어디에도 없었다.

‘강호초출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태연하고, 강한 자였다.

‘뭐하는 놈이지?’

 

***

 

혁무천은 정은맹 무사들과 함께 서쪽으로 이동했다.

황보수의 말이 사실인지 하루가 지나도록 백마궁의 추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혁무천은 정은맹이 백마궁의 눈을 영원히 속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한 우려는 이틀째 되던 날 현실로 드러났다.

구강을 칠팔십 리쯤 남겨 놓았을 때였다. 호숫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정은맹의 정보원으로 보이는 무사가 달려와서 황보수에게 말했다.

“기주님, 백마궁 놈들이 꼬리에 따라붙었습니다.”

“몇 명이나 되느냐?”

“모두 삼백여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거리는?”

“지금쯤은 삼십 리 안쪽으로 들어왔을 겁니다.”

“앞쪽의 상황은?”

“백마궁이 명령을 내렸다면 적지 않은 자들이 앞을 막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삼십 대 무사가 혁무천에게 말했다.

“이봐, 자네도 들었지? 그 사람을 무사히 빼내려면 우리에게 맡겨라.”

황보수도 일리가 있다 생각했는지 그대로 놔두었다.

“그럴 수는 없어. 나는 이 사람을 은설에게 데려가기로 했거든.”

“우리가 데려다 준다니까?”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은석추는 우리가 은설에게 데려갈 거다.”

“정말 끝까지 고집을 피울 거냐? 백마궁 놈들이 뒤를 쫓아온다고 하지 않나?”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그럼 여기서 헤어지지.”

혁무천은 무심한 어조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대안도 일어서고, 장대산이 은석추를 안았다.

정은맹 청검기 무사들이 혁무천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혁무천은 차가운 눈길로 황보수를 바라보았다.

“다 죽이고 싶으면 막으시오.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어쩌면 우리도 그게 나을지 모르겠군.”

“이 자식이 진짜!”

황보수 옆에 있던 삼십 대 무사가 버럭 소리치며 검을 빼들었다.

“종환, 멈춰라.”

황보수가 급히 손을 들어서 그를 제지했다.

혁무천의 눈빛은 고요했다. 심지어 눈썹 한 올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위협쯤은 조금도 걱정거리가 아니라는 듯.

정말 자신 있어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자신들이 은석추를 해칠 수 없다는 걸 알고 만용을 부리는 것?

한번 쳐 봐?

황보수의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혁무천의 흔들림 없는 눈빛은 결코 만용을 부리는 자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인지 허세인지 시험을 해보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시간이 없으니 다툼은 그만하고 출발하지.”

상황을 결정지은 그는 정보원을 바라보았다.

“우린 앞을 뚫고 양산으로 갈 거다. 청검기는 뒤를 따라오는 백마궁의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고 전해라.”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황보수의 눈이 다시 혁무천 쪽으로 향했다.

“서두르세.”

혁무천은 두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꼬리가 잡히면 은석추와 은설의 만남이 무산될 수 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은석추는 은설 앞에서 죽어야만 한다.

 

일행은 곧장 양산으로 향했다.

양산에 갈 때까지만 이상이 없으면 바로 장강의 물길을 타고 구강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십 리쯤 갔을 때 첫 번째 방해꾼이 나타났다.

오십여 명으로 이루어진 방해꾼들은 반원형으로 서서 그들의 진로를 막았다.

백마궁 무사는 아니었다. 아마도 백마궁의 지시를 받고 수색망에 참여한 자들인 듯했다.

그들 중 하나가 혁무천 쪽을 향해 소리쳤다.

“멈춰라! 오늘은 아무도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

“우리는 오늘 꼭 이곳을 지나가야 하오. 누군데 길을 막는 거요?”

황보수가 나서서 소리쳐 물었다.

“우린 대검방에서 나왔다. 잔소리 말고 조사를 받아라!”

대검방이라면 백마궁의 수족 중 하나다.

더 물어볼 필요도 없이 백마궁의 명령을 받고 길을 막고 있다는 뜻.

혁무천은 검을 빼들었다.

북쪽이나 동쪽으로 갈 수 없는 그들로서는 백마궁이 쳐놓은 벽을 뚫고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돌아가면 될 것 같아도 호수가 가로막고 있어서 마땅치 않았다.

“우리가 처리하지.”

황보수가 나섰다.

혁무천은 가타부타 아무 말도 없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황보수와 그의 일행이 무기를 뽑으며 전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황보수와 그의 일행은 숫자가 적지만 모두가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대검방의 힘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공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대검방 무사 삼십여 명이 쓰러졌다.

“함께 손을 써서 막아!”

“으악!”

“크어억!”

“죽어라, 개자식…… 켁!”

비명과 악다구니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갈대 무성한 아름다운 길이 잠깐 사이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겁에 질린 대검방 무사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동료들의 시신을 내팽개친 채 도주했다.

길이 뚫리자, 혁무천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동대안과 대산이 그림자처럼 뒤따라갔다.

숨을 고르던 정은맹 무사들은 이마를 찌푸리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황보수도 입맛이 썼다.

‘어째 길잡이 신세가 된 것 같군.’

혁무천은 그들의 눈길을 신경 쓰지 않았다.

촌각이 아쉬웠다. 백마궁의 추적대가 오기 전에 배를 타고 장강을 건너가야 했다.

 

한 시진 후.

양산에 도착한 황보수는 혁무천 일행을 배로 안내했다.

정은맹에서 미리 준비해둔 배였다.

그들의 철저한 준비 상황을 보고 혁무천은 정은맹에 대한 판단을 한 단계 상향 조절했다.

하긴 마도 세력에 맞서려면 그 정도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겠지.

 

***

 

그 날 저녁 무렵.

혁무천 일행은 장강을 건너서 구강의 대장간에 도착했다.

“아버지…… 아버지…….”

은설은 침상에 누워 있는 은석추를 보고 눈물을 쏟아냈다.

혁무천과 황보수가 조용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일각쯤 지나서야 겨우 눈물을 멈춘 은설이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두덩이 붉게 부었다.

“오빠,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는 않겠죠?”

간절한 은설의 표정을 본 혁무천은 마음이 착잡했다.

걱정할 것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거짓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나도 뭐라고 장담할 수 없다. 혈맥을 너무 많이 상했어.”

“그럼 아버지가 이대로 돌아가실 수도 있단 말이에요?”

“잠깐 정신을 차리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안돼요. 이제 저는 아버지밖에 없는데, 이대로 돌아가시게 할 수 없어요! 살려주세요, 오빠.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오빠라면 살릴 수 있잖아요?”

보다 못한 동대안이 한마디 나섰다.

“무천이라 해서 살리고 싶지 않겠냐? 사실 지금 네 아버지 숨이 붙어있는 것만 해도 무천이 손을 썼기 때문이다. 아니면 백마궁을 나설 때 숨이 끊어졌을 거다.”

은설도 억지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혁무천밖에 없었다.

“오빠…….”

그때 황보수가 끼어들었다.

“우린 은석추에게 들어야 할 말이 있다. 일단 정신부터 차리게 했으면 싶은데.”

혁무천은 자신들의 목적만 따지는 황보수의 말에 짜증이 났다.

그러나 어차피 정신을 차리게 해서 은설과 말을 나누게 해야만 했다. 자칫하면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일단 나가서 기다리시오.”

“내가 방 안에 있다 해서 방해될 것은 없지 않은가?”

“귀하의 차례는 은설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후요. 그러니 나가 있으시오.”

냉랭한 혁무천의 말에 황보수가 입을 꽉 다물었다.

좌우에 있던 삼십 대 무사들이 대신 분노를 표출했다.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은석추를 깨우지 않으면 네놈부터 가만두지 않을 거다.”

“동 형.”

혁무천의 입에서 한 마디가 떨어지자, 동대안이 꼬챙이 같은 검을 뽑아서 뻗었다.

그야말로 번갯불이 번쩍이는 듯했다.

“죽이진 마쇼.”

이어진 말에 동대안이 동작을 멈추고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그의 꼬챙이 같은 검이 황보수 좌측에 있던 정은맹 무사의 목에 꽂혀 있었다.

검첨을 타고 핏방울이 맺혔다.

정은맹 무사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검이 깊게 꽂히지는 않은 듯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여전히 황보수를 바라보고 있던 혁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나가서 기다리면 부를 거요. 선택은 귀하가 알아서 하시오. 여기에 있기를 고집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귀하가 져야 할 거요.”

황보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상대는 자신이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무천이란 자의 실력은 보지도 못했고.

밀어붙인다면 모두 죽음을 각오해야 할 터. 더구나 은석추의 입을 열지 못하면 이긴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었다.

“좋아, 나가서 기다리지. 그 검부터 치우게.”

“동 형.”

동대안이 검을 회수했다. 상대의 목에 구멍을 내지 못한 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면서.

안색이 하얗게 질린 무사는 동대안이 검을 회수하자 반사적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검첨에 찍힌 그의 목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돌아선 황보수는 이를 부서져라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무천이란 자의 앞에서는 기분대로 할 수가 없었다.

진득한 거미줄에 휘감겨서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곤충이 된 느낌.

‘빌어먹을.’

황보수 일행이 입술을 깨물며 방을 나가자, 혁무천이 동대안을 바라보았다.

동대안이 씩 웃었다.

“나도 죽일 생각은 없었네. 죽여 봐야 귀찮기만 하지.”

“동 형도 나가 있으시오.”

“…….”

생각지 못한 축객령에 그러잖아도 작은 동대안의 눈이 더욱 작아졌다.

“저들이 엉뚱한 짓을 하지 못하게 지켜봐야 할 거 아니오?”

“대산을 시키면…….”

“어차피 대산도 내보낼 거요.”

입술을 삐죽인 동대안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은석추의 몸 상태는 다른 사람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했다.

동대안의 말처럼 혁무천이 손을 쓰지 않았으면 숨이 끊어져도 진즉 끊어졌을 것이다.

혁무천은 일단 은석추의 명문혈을 통해서 진기를 부드럽게 유입시켰다.

혈맥이 워낙 많이 상해서 조금만 기운이 세도 버텨낼 수 없었다.

실낱처럼 가느다란 기운은 십이경맥을 타고 사지백해로 퍼졌다.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죽은 듯 누워있던 은석추의 몸이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손끝과 발끝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운공요상을 시작한 지 이각.

천근만근 무겁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서서히 올라갔다.

일 장 떨어진 곳에서 두 손을 꼭 잡은 채 지켜보던 은설이 침상을 향해 주춤주춤 다가갔다.

“아버지…….”

은석추의 눈이 반쯤 떠진 상태에서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 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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