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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9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9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9화

19화

 

 

철문 안쪽에는 등잔이 이삼 장 간격으로 벽에 붙어 있었다.

흐릿한 불빛이 흐르는 동굴은 안쪽으로 칠팔 장 뻗다가 좌측으로 구부러지는 듯 보였다.

벽에 군데군데 자연적인 형태가 남아 있는 걸 보면 자연동굴을 손질해서 만든 듯했다.

“동 형은 여기서 기다리시오. 내가 들어가 보겠소.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알려주시오.”

“알았네.”

어차피 동대안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함께 들어가자고 하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남을 작정이었다.

“놈들이 오면 즉시 알릴 테니, 어서 가보게.”

혁무천은 등 떠미는 동대안을 밖에 남겨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흔들리는 등잔의 옅은 불빛으로 인해 귀기마저 느껴졌다.

혁무천이 꺾어지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누구야? 누가 이 시간에 들어온 거야?”

누군가가 좌측으로 꺾어진 동굴 안에서 구시렁거리며 나왔다.

“나야.”

태연히 대답한 혁무천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한 줄기 뇌전이 삼십 대로 보이는 간수의 이마를 직격했다.

어, 하는 소리와 함께 간수가 뒤로 넘어갈 때, 좌측 동굴 안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홍가야, 누가 들어왔어?”

혁무천은 좌측 동굴로 꺾어졌다.

오 장쯤 떨어진 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감옥을 지키는 간수였다.

간수는 천으로 얼굴을 가린 혁무천을 보고 다급히 등 뒤의 검을 잡았다.

“웬 놈이냐?”

하지만 그의 검이 다 뽑히기도 전, 혁무천이 그의 코앞에 이르러 있었다.

퍽!

혁무천이 뻗은 일수에 간수의 몸이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치고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 않으면 내가 묻는 말에 답해라.”

온몸이 부서지는 충격에 간수는 겨우 눈만 껌벅였다.

“아마 이곳에 은석추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나?”

“그, 그게…….”

혁무천은 말을 더듬는 간수를 보며 오른손을 쳐들었다. 그의 오른손에서 묵빛 광채가 어른거렸다.

“대답을 미루면 사지가 하나씩 부서질 것이다. 그리고 처절한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죽겠지. 고통스럽게 죽을 건지, 아니면 살 것인지 그대가 택해.”

간수는 무심한 혁무천의 말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살고 싶었다.

개처럼 살아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나았다.

“그, 그 사람은…… 저기 안쪽… 사호실에…….”

간수가 떨리는 손을 들어서 동굴 안쪽을 가리켰다.

동굴 양쪽에는 흑갈색 철문이 달려 있었다.

모두 여덟 개. 철문의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린 곳 아래에 하얀 색으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혁무천은 지풍을 튕겨서 간수를 기절시킨 후 사(四)자가 적힌 철문 앞으로 갔다.

철문에는 굵은 걸쇠가 걸려 있고, 걸쇠의 고리에는 자물통이 매달려 있었다.

혁무천은 손바닥만 한 구멍으로 안을 살펴보았다.

어두컴컴한 곳 구석에 누군가가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잠시 보고 있으니 안쪽에서 역겨운 냄새가 흘러나왔다.

간수의 방에서 열쇠를 찾아낸 그는 자물통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뇌옥은 네 평 정도 될 듯했다. 밖에서 맡았을 때보다 훨씬 더 심한 피비린내가 숨 쉬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이마를 찌푸린 그는 구석진 곳에 걸레쪽처럼 널브러져 있는 자에게 다가갔다.

반쯤 무릎을 꿇은 그는 널브러진 자를 조심스럽게 뒤집어보았다.

갈가리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갈라지고 헤진 살이 보였다. 피딱지가 엉겨 붙은 몸은 죽은 시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나마 맥이 가늘게라도 붙어 있는 게 다행일 지경.

혁무천은 그의 명문혈에 공력을 천천히 불어넣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부르르 몸을 떤 중년인이 힘겹게 눈을 떴다.

바짝 마르고 피가 엉긴 입술이 부들거리며 열렸다.

“누, 누구……?”

“은석추. 맞소?”

혁무천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중년인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혁무천은 더 확인할 것도 없다는 듯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어깨에 걸쳤다.

엉망인 중년인의 얼굴에서 유독 눈매가 눈에 띄었다. 설아의 부드러우면서도 조금은 고집스럽게 보이는 눈매와 닮아 있었다.

“설아에게 데려다 드리지요.”

“설…아……?”

숨이 넘어갈 것 같던 중년인이 안간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그렇소. 설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어깨에 걸쳐진 은석추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딸을 한번이라도 보고 죽을 수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랄까.

“정말……?”

“당신은 딸을 너무 고생시켰소. 딸에게 그 빚을 갚으려면 어떻게든 살아야 하오.”

은석추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준 혁무천은 뇌옥을 나섰다.

그런데 입구로 향하려던 그가 멈칫했다.

동굴 저 안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이 그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원망, 분노, 한탄, 고뇌가 모조리 뒤섞이면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혁무천은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세 걸음 만에 다시 멈춰 섰다.

“날 꺼내줘.”

기이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눈살을 찌푸린 혁무천은 다시 발을 떼었다.

“날 꺼내줘요.”

조금 전보다 더 절실한 느낌.

우뚝 멈춘 혁무천이 말했다.

“내가 당신을 꺼내주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만 말해봐.”

셋을 셀 때쯤 답이 왔다.

“나를 꺼내주면…… 당신을 주인으로 모실게요. 제발…….”

혁무천은 하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머뭇거릴 시간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마를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왠지 몰라도 목소리 주인의 절실함을 외면하면 안 될 듯했다.

팔(八)자가 새겨진 철문 앞에 도착한 그는 자물통을 손으로 잡고 뜯어냈다.

철문이 열린 안쪽은 사호실 뇌옥보다 훨씬 더 깊었다.

그 깊고 컴컴한 뇌옥 저 안쪽, 한 사람이 벽을 기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제멋대로 자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허리까지 늘어진 자. 그의 거친 수염과 머리카락 사이에서 은은한 광채가 번뜩였다.

혁무천은 그에게 다가갔다.

온몸이 쇠사슬로 묶인 그는 덩치가 무척 컸다. 커다란 불곰이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혁무천은 은석추를 그대로 어깨에 걸친 채 허리의 검을 잡았다.

쉬아악.

검이 어둠을 두어 번 가르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직후 괴인의 몸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철그렁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둥처럼 굵은 두 다리를 묶고 있던 쇠사슬도 삭은 새끼줄처럼 끊어졌다.

괴인은 자유의 몸이 되자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혁무천의 눈이 절로 커졌다.

괴인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거대했다.

남들보다 크다는 그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있었다.

게다가 몸집이 어찌나 큰지 커다란 불곰이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서 있는 듯했다.

“조금 전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돼.”

혁무천은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지금쯤 백마궁의 순찰무사들이 다가오고 있을 텐데…….

입구로 빠르게 걷는 그의 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인이 뒤따라 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랬어, 약속을 어기면 남자가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생각보다 젊었다.

그런데 왜 머릿속에서만 울리지?

분명 귀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혁무천은 걸음을 늦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거인이 일 장 반 정도 떨어져서 절룩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약속을 어기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뿐.”

“그래도 나는 약속을 지킬 거야. 당신이 마음에 들거든.”

혁무천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거인의 입술이 달싹이긴 하는데,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전음은 아니었다.

전음은 머릿속이 아니라 귀청을 울린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펼칠 수 있다는 심령전어(心靈傳語)도 아니었다.

그의 마음을 눈치 챈 듯 거인이 말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잘 못했어. 그래서 할아버지가 이 재주를 가르쳐주신 거야.”

흐릿한 등잔불에 비친 그는 예상 외로 젊었다.

게다가 커다란 눈은 황소처럼 순박하게 느껴졌다. 말투도 아이 같았고.

하지만 그것만 보고 거인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거인의 내면에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가공할 기운이 웅크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당해서 당장 그 기운을 쓸 수는 없는 상태지만.

“구했나? 놈들이 오기 전에 나가야 하네.”

입구에서 밖을 살펴보고 있던 동대안이 재촉했다.

“구했소.”

혁무천은 은석추의 몸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동굴에서 나왔다.

문 근처에 서 있던 동대안이 혁무천을 바라보다 흠칫했다.

뭔가 거대한 것이 혁무천의 뒤를 따라 동굴에서 나오고 있었다.

“저, 저, 저건 뭐야?”

“신경 쓸 것 없소. 갇혀 있던 자를 구해준 것뿐이니까.”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뒤따라 나오는데.

“진짜 괴물이군.”

“나 괴물 아냐, 말라깽이 양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자, 동대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혁무천이 지금까지 봤던 그 어느 때보다 큰 눈이었다.

“나갑시다.”

피식, 쓴웃음을 지은 혁무천이 다가가자, 동대안이 문을 열기 위해 돌아섰다.

그때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침입자가 있다! 백마옥의 경비무사들이 당했다!”

“경비를 강화하고 일대를 뒤져라!”

삐이이익!

길게 울리는 호각소리가 밤하늘을 찢어 놓았다.

“제길, 숨겨놓은 놈들을 발견했나 보군.”

투덜거린 동대안이 문틈으로 밖을 살펴보았다.

아직은 많은 자들이 모여 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땔감을 넣을 사람이 없다보니 화톳불이 많이 약해져서 감옥 앞이 어두컴컴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 건가? 지금 나가겠나?”

동대안이 혁무천에게 물었다. 불안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

혁무천이 그 말에 대답하기도 전,

탕탕!

밖에서 문을 두들겼다.

동대안은 긴장한 표정으로 문을 쳐다보았다. 숨을 깊이 들이쉰 그가 목을 두어 번 비틀고 태연히 말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침입자가 있다. 밖에 있던 경비무사들이 당했다. 안은 괜찮나?”

당했으면 대답할 수 있겠어? 멍청한 놈!

동대안은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놀란 것처럼 대답했다.

“그래? 안은 잠겨 있어서 괜찮아. 우리 걱정 말고 범인이나 빨리 잡아.”

“알았네. 조심하게. 당분간 밖으로 나오지 말고.”

그 말 직후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동대안은 다시 문틈으로 밖을 살펴본 후 혁무천을 돌아다보았다.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나가세.”

고개를 한번 끄덕인 혁무천이 거인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발각되면 저들이 우릴 쫓을 거야. 그때 반대쪽으로 도망쳐.”

그러고는 동대안에게 말했다.

“소리 나지 않게 천천히 문을 여시오.”

동대안이 빗장을 잡고 소리 나지 않게 올렸다.

문을 몸 하나 빠져나갈 정도로만 연 그가 밖을 살짝 살펴보고는 먼저 백마옥을 빠져나갔다.

혁무천이 뒤따라 나갔다.

거인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문을 열고 백마옥을 나섰다.

 

동대안은 철저히 어둠을 이용해서 움직였다.

그를 뒤따라가는 혁무천이 감탄할 정도로 은밀하고 적절한 움직임이었다.

덕분에 백마궁 무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백마옥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쯤 갔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 가면 집마원이야. 위험해.”

거인의 목소리였다.

혁무천도 그제야 눈에 익은 광경을 보고 멈칫했다.

‘이런!’

하필이면 그의 신경을 건드렸던 후원으로 들어선 것이다.

추적을 따돌리기 급급해서 미처 방향을 생각하지 못한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걸 알고 아차 했을 때는 동대안이 이미 십 장 앞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가 급히 전음을 보냈다.

<동 형, 우측으로 틀어서 달리시오.>

동대안은 의아해하면서도 방향을 틀었다.

방향을 튼 그가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십여 장을 나아갔을 때였다.

그의 앞쪽으로 그림자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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