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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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57화
57화
“그렇다네. 축시 말에서 인시 초(오전 3시 경)가 좋겠어.”
우문척은 우문홍의 말에 대해서 토를 달지 않았다.
새벽에 출발하는 뜻을 그가 왜 모를까. 문제는 떠날 준비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떠날 준비를 하려면 바삐 움직여야겠군요.”
“서두르면 그때까지 준비하는 거야 어렵지 않을 거네. 모자라는 것은 나중에 해결하면 돼.”
“알겠습니다. 이번 작전에 나설 총 인원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계십니까? 수련장이라지만 정예가 지키고 있을 텐데, 그들이 사활을 걸고 대항하면 철혈마령대만으로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만.”
“장로 몇 명과 추멸단을 동행시킬 생각이네.”
추멸단은 잠입과 암살에 능한 철혈마련의 주력 중 하나다.
그들이 보조를 맞춰준다면 임무수행이 한결 수월해질 터. 우문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정도라면 임무를 완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군요. 그럼 철혈마령대를 준비시키겠습니다.”
***
철혈마전에서 천하를 피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 결정이 내려질 무렵, 한상귀의 호위무사가 혁무천을 찾아왔다.
혁무천은 그가 부른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이 늦은 밤에 부른다는 것은 은설에 대한 소식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좋은 소식이었으면…….
그가 한상귀에게 가기 위해서 방을 나서려 하자, 목량이 나직하게 불렀다.
“저, 대형.”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왜? 할 말 있으면 해봐.”
“만약 이곳을 떠나게 되더라도 저희를 데려가주세요.”
생각지 못한 말에 혁무천은 미간을 좁히고 목량을 바라보았다.
“왜 내가 떠날 거라 생각했지?”
“그냥 그럴 것 같아서요.”
목량에게 초감각이라는 능력이 있다고 했던가?
혁무천은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한상귀의 호위무사는 그를 전에 갔던 외곽 건물로 안내했다.
혁무천이 들어가자, 한상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최대한 태연하려 했지만, 혁무천은 그가 살짝 들떠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아이의 행방을 찾으셨나 보군.”
비수처럼 던져진 말투에 한상귀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를 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이익을 챙길 심산이었다. 그런데 무천이 눈치 챈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게 말이야…….”
그래도 일단 말을 돌리며 기회를 엿보려는데, 혁무천이 한발 더 찌르고 들어갔다.
“말장난 하지 맙시다. 그럴 기분 아니니까.”
빌어먹을 놈.
한상귀는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좀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살아 있는 것 같네.”
혁무천은 입을 꾹 닫은 채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의자에 앉았다.
흥분을 가라앉히려다 보니 무의식중에 무형의 기세가 폭사하듯 뿜어져 나왔다.
한상귀는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찻잔을 잡고 있는 손가락조차 까딱할 수가 없었다.
‘뭐, 뭐야……?’
그저 자신이 어쩌지 못할 만큼 강한 놈!
그렇게 생각했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받은 모욕을 되갚아주고 말리라!
이를 갈며 그렇게 다짐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상상했던 한계를 넘어선 이 압박감은 또 뭐란 말인가.
그는 아주 오래 전, 이와 비슷한 압박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아마 스무 살을 막 넘었을 때였을 것이다.
만마의 주인, 천양신마 천궁탁을 처음 본 그날, 그는 하늘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절치부심해서 절정 경지의 고수가 되었고, 철혈마련의 장로가 되었다.
이제는 누굴 만난다 해도 그때의 그 기분을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때는 너무 젊었고, 힘이 약할 때여서 그런 압박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대 철혈마련의 장로 아닌가.
그런데 아니었다.
심장이 짓눌려서 곧 터질 것 같은 이 느낌!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자세히 말해보시오.”
나직한 목소리마저도 그에게는 뇌성벽력처럼 느껴졌다.
힘겹게 숨을 들이쉰 그는 가까스로 가슴을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으으음…… 알았네, 그런데 그 전에 약속한 것을…….”
“약속은 지킬 거요. 허나 말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요.”
조용히 서 있던 호위무사 중 하나가 눈을 치켜떴다.
“어디서 감히……!”
순간, 혁무천이 우수를 들어서 허공을 찍어 눌렀다.
“커억!”
호위무사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듯 무너졌다.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시뻘겋게 충혈되고, 목을 움켜쥔 손은 덜덜 떨렸다.
“용서는 한번뿐이다. 두 번 다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혁무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털었다.
털썩.
호위무사의 몸뚱이가 맥없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끄으으, 컥컥컥…….”
허리를 구부린 호위무사가 온몸을 떨면서 거친 기침을 밭아냈다.
혁무천의 차가운 시선이 다시 한상귀에게로 향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소. 나는 동생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한상귀도 흥정할 생각이 싹 달아난 터였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호위무사를 손짓 한 번으로 개처럼 기게 만든 자다.
어설프게 흥정을 시도했다가는 저 어린놈의 손에 자신 역시 개처럼 바닥을 길지도 모른다.
“험, 그럼 자네의 약속을 믿고 말해주겠네. 영파의 한적한 어촌에 사는 어부가 한 이야기인데…… 배를 몰고 주산도를 지나던 중 용왕의 딸이 바다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하네.”
***
한상귀와 헤어진 혁무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부는 ‘용왕의 딸’을 보고 벌벌 떨며 뱃전에 엎드려 있었다고 했다.
그 사이 ‘용왕의 딸’이 바닷가 숲속으로 사라져버려서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정말 은설일까?
은설이 아닐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어쩌면 어부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고, 한상귀가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한상귀는 수하들이 그녀를 찾고 있으니 며칠만 지나면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거라 했다.
그 며칠이 몇 년처럼 느껴질 것 같다.
‘내가 직접 가서 찾아볼까?’
은설로 추정되는 여자가 아직도 주산도에 있다면 그게 나을 것이다.
그러나 어부가 ‘용왕의 딸’을 본 지 열흘이 넘게 지났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녀가 육지로 나왔다면, 강호의 소식에 조금만 귀를 기울인다면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될 것이다.
자신이 마룡선발대회에 출전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말이다.
어쨌든 바다에서 나온 ‘용왕의 딸’이 은설이라면 바다에 빠져 죽지는 않았다는 말.
혁무천은 그녀가 제발 은설이길 빌었다.
‘그래, 네가 죽으면 안 되지. 나도 살아 있는데…….’
객당에 도착한 그가 방으로 들어가자,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목량이 말을 건넸다.
“떠나실 겁니까?”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난데없는 말인데도 왠지 자연스럽게 들렸다.
가만, 그러고 보니 방을 나갈 때 목량이 말했지 않은가. 자신들도 데려가 달라고.
“내가 떠날지 모른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목량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게요, 정확히 어떻게 알았다고 말씀드리기는 좀 애매해요. 그냥 그럴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것뿐이니까요.”
그제야 혁무천은 목량이 지녔다는 초감각이라는 능력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서운 능력임을 깨달았다.
“그렇군. 좌우간 네 질문에 대답하자면, 바로는 아니어도 조만간에 떠나야 할 것 같다.”
그 말에 동대안이 벌떡 일어났다.
내내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아마도 잠을 자는 척하고 있었던 것 같다.
“떠난다고? 언제?”
“은설에 대해서 정확한 소식이 오면 떠날 거요.”
동대안의 작은 눈이 배는 커졌다.
“뭐? 그럼 은설에 대한 소식을 들었단 말이야?”
“은설로 추정되는 여인을 본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소.”
“정말?”
“그렇소.”
“휴우우우, 그 여자가 정말 은설이면 좋을 텐데…….”
“며칠이면 알 수 있을 거요.”
그때 밖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천, 방에 있나?”
사공곽의 목소리였다.
방을 나선 혁무천은 자신을 찾아온 사공곽과 문인여진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내 여동생이 보이지 않네.”
“당신 여동생이 보이지 않는데, 왜 나를 찾아온 거지?”
“자네를 찾아왔다가 화가 나서 나갔다는데, 혹시 여기로 다시 오지 않았나?”
사공곽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나도 밖에 나갔다가 이제 왔어.”
혁무천은 이마를 찌푸리며 대답하고 일행을 돌아다보았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모두 고개를 저었다.
“안 왔는데?”
동대안은 확실하게 대답했고.
혁무천이 다시 사공곽을 바라보며 그들이 내놓은 답을 전했다.
“안 왔다는군. 다른 곳에 가서 찾아봐.”
“이미 몇몇 사람에게 미미를 보면 말해달라고 부탁해 놓았네.”
“그럼 곧 연락이 오겠지.”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그런데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아무리 천방지축이라 해도 여동생 아닌가.
천하의 마도인들이 모여 있는 철혈마련에서 이 시간까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사공곽으로선 답답하기만 했다.
“당신이 사공미미와 함께 가지 않았소?”
혁무천이 문인여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문인여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제가 여기서 나갔을 때는 이미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기 방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한 시진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는지도 모르지.”
혁무천이 건성으로 말하자, 사공곽이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자신은 속이 타들어 가는데, 말을 그 따위로 하다니.
여동생이 좋아하는 놈이어서 함부로 말해도 봐주었거늘, 어디서 건방지게……!
그러나 지금은 다툴 때가 아니었다.
“내 여동생은 이렇게 늦은 밤에 잘 돌아다니지 않아. 어릴 적 밤에 집을 몰래 나갔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거든.”
“어쨌든 여기를 떠난 후로는 다시 오지 않았어. 그렇게 걱정되면 모른다는 사람 붙잡고서 시간 보내지 말고 한 곳이라도 더 뒤져 봐.”
사공곽은 매몰찬 혁무천의 말을 듣고도 한 번 더 참았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여동생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으으으음, 알겠네. 혹시라도 그 아이를 보면 바로 연락 주게.”
사공곽은 문인여진과 함께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들어간 혁무천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객당에서 영빈각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영빈각으로 가던 중 사라졌다.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사공미미에 대해서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 찾겠지.”
그런데 목량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대형, 사공 소저를 찾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그 여자에 대해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물론 저도 압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않고 있으면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혁무천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내가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거냐?”
“그녀가 이곳에 왔다간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봤습니다. 게다가 사공곽까지 왔지요. 만약 사공 소저가 정말로 누군가에 의해 실종되었다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대형을 의심할 겁니다.”
“그들의 의심 따위는 신경 쓸 것 없어. 정말 나를 범인으로 몬다면 바로 이곳을 떠날 거다.”
“대형.”
“앞을 막는 자는 치우면 돼. 내가 떠나고자 한다면, 천하의 누구도 내 앞을 막을 수 없다, 목량.”
참으로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말투였다.
하지만 목량이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자칫하면 대형이 찾으려는 분에게도 피해가 갈지 모릅니다.”
혁무천의 이마에 세 줄기 골이 세로로 파였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상황이 목량의 말대로 진행된다면, 사도맹과 철혈마련은 물론, 그들과 관련된 천하의 마도세력들이 모두 자신을 잡으려 할 것이다.
그럼 은설을 찾는 일이 어려워진다.
은설에게도 피해가 갈지 모르고.
이미 한상귀가 은설을 찾고 있지 않은가.
“후우우우, 그 여자, 끝까지 귀찮게 하는군.”
“사공미미를 찾으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합니다. 만에 하나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상황이 복잡하게 흐를 수 있습니다.”
혁무천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나도 그건 모르지 않아. 그런데 당장 그녀를 어떻게 찾는단 말이냐?”
목량이 머뭇거리는 투로 넌지시 말했다.
“저…… 속는 셈치고 저를 한 번 믿어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