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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56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56화

56화

 

 

‘독사 같은 놈, 운이 좋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자는 사진효였다.

천화광은 남들이 모르는 그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사진효는 같은 마도인임에도 환멸을 느낄 만큼 악독한 짓을 즐겼다.

하지만 아직 밝힐 생각은 없었다.

‘개똥도 쓸 곳이 있다던데, 네놈도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있겠지.’

 

***

 

비무대회 나흘째.

혁무천은 본선 이차전을 싱겁게 통과했다.

상대인 귀천교의 호명추가 전날 입은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다며 비무를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호명추와 담사종이 무천을 건드렸다가 된통 당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 터였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

“창피당하기 싫어서 부상 핑계를 댄 거 아냐?”

“무서워서 꼬리를 만 거라니까.”

“덕분에 무천이란 친구만 편하게 올라갔군.”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거렸다.

혁무천이야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이름을 알리는 게 목적인 그는 오히려 호명추가 나오지 않은 것에 불만이 많았다.

‘확실히 밟아주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게.

그래야 은설이 살아 있다면 자신을 찾기 쉬워질 테니까.

 

엽기천은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아쉽게 패배했다.

두어 군데 제법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두 번에 걸친 어려운 비무를 치르며 혁무천이 가르쳐준 검의 변화를 조금 더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엽기천!”

“엽기천 최고다!”

“잘 싸웠다, 엽기천!”

와아아아!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하며 엽기천의 이름을 외쳤다.

대부분 중소문파 출신 무사들이었다.

중소문파의 무사인 엽기천이 대문파의 후계자와 대등하게 싸운 것에서 대리만족을 느낀 듯했다.

더구나 그 중 한번은 승리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비무대를 내려오던 엽기천은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군웅들을 향해서 벌게진 얼굴로 포권을 취했다.

꿈만 같았다.

마치 구름을 밟고 비무대를 내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허공에 거품처럼 떠오르는 기분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진정해라, 엽기천.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천화광과 사공곽은 물론이고 금가휘, 구불청, 사진효도 모두 이차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본선 이차전을 통과한 서른두 명의 참가자들 면면은 누구나 이름만 듣고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았던 신진고수도 칠팔 명이나 되었다.

그 중 무천에 대해서는 유독 많은 말들이 오갔다.

특히 여무사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식사 시간을 놓친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럴수록 우문소소는 조바심이 생겼다.

그런데 그날 저녁…….

 

***

 

객당 앞을 오가던 사람들은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특히 남자들은 초롱초롱한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다.

사공미미와 문인여진이 객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화톳불에 비친 그녀들의 모습은 무사들이 넋을 빼놓고 쳐다볼 만큼 아름다웠다.

특히 하늘거리는 노란색 궁장을 걸치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사뿐사뿐 걷는 사공미미의 모습은 달빛을 타고 내려온 선녀 같았다.

오죽 아름다웠으면 여무사들조차 부러움에 찬 표정으로 탄성을 흘렸다.

“어머, 어머, 어쩜 저렇게 예쁘지?”

“사도맹의 꽃이 강동일화보다 더 화려하다더니 정말이네.”

“아, 너무 부럽다. 나도 사도맹주의 딸로 태어났으면…….”

“근데 여긴 어쩐 일이지?”

물론 모두가 감탄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듯 몇 명은 두 여인을 흘겨보며 비꼬았다.

그 중에서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여무사가 사공미미의 방문 목적을 정확히 눈치 챘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저 여자가 왜 왔겠어? 욕심나는 남자가 있으니까 왔겠지.”

“아하, 그 사람?”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사공미미가 그 말을 들은 듯 그녀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무천 공자의 방이 어디인 줄 아시나요?”

사공미미의 목적을 정확히 찍었던 여무사가 화들짝 놀라서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 저쪽 방입니다, 사공 아가씨.”

사공미미가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설마 조금 전에 저를 비아냥거린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너무 아름다우셔서 감탄했던 거예요.”

억지로 미소를 짓는 주근깨 얼굴의 여무사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사공미미는 온갖 사악한 자들이 운집한 사도맹 맹주의 딸이다.

강호의 소문을 떠올리면, 웃고 있는 그녀의 입 안에서 비수가 튀어나온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 없었다.

밤에 불러들인 남자를 아무도 몰래 죽여서 흔적을 없앤다는 소문조차 있지 않던가.

“다행이네요. 나야 신경 쓰지 않는데, 여동생을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 오빠는 그런 말을 들으면 못 참거든요. 안 됐지만 아마 나 몰래 몇 명은 오빠에게 혼이 났을 거예요.”

사공미미가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 사람들은 다 죽었어.

마치 그렇게 말하듯이.

“동생, 그만하고 무천 공자나 찾아봐.”

“알았어요, 언니.”

사공미미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싱긋 웃으며 말하고는 다시 여무사를 향해 한마디 던졌다.

“농담이었어요.”

 

혁무천은 방문 밖에 서 있는 사공미미를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그녀의 뒤쪽에는 객당의 무사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무슨 일로 왔지?”

“그야 보고 싶어서 왔죠.”

사공미미는 싸늘한 혁무천의 말투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들어가도 돼요?”

“안…….”

혁무천이 거부하기 전에 사공미미가 먼저 방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혁무천이 아무리 냉정해도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를 밀쳐내지는 못했다.

“정말 제멋대로군.”

대신 짜증내듯 말했지만, 그 정도로는 사공미미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오빠는 그게 제 매력이래요.”

“난 너하고 농담할 기분 아니니까, 그만 가봐.”

혁무천은 더 이상 사공미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문인여진이 말문을 열었다

“미미 동생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아직 세상물정을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요.”

혁무천도 아여령의 후예일지 모르는 문인여진은 차마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나는 여자를 사귀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그러니 그만 데리고 가시오.”

“마룡선발대회에 참가하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상하네요. 설마 우승하면 강동일화와 혼인해야 한다는 걸 모르시는 건 아닐 텐데요.”

“나는 우승할 생각이 없소.”

“그럼 왜 대회에 참가하신 거죠?”

혁무천은 대답을 잠시 고민했지만, 이 기회에 사공미미와 확실한 선을 그어놓는 게 좋을 듯했다.

“사람을 찾기 위해서요. 내 여동생을.”

사공미미가 기억을 떠올리고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 좋아한다는 여자분요?”

“맞아.”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넌 신경 쓸 거 없어. 내가 알아서 찾을 거니까.”

“혼자 찾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면서…….”

“사공미미.”

“예?”

“난 그 아이의 이름이 네 입에서 오르내리는 걸 원치 않아. 그러니 그만하고 돌아가.”

차가운 혁무천의 말에 사공미미의 환하던 얼굴이 구겨졌다.

기다란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혁무천이 야속하기만 했다.

“왜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면서요? 제가 그 여자 찾아준다는 게 그렇게 싫어요?”

“어차피 너는 찾을 수도 없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조차 모르는 그 아이를 네가 어떻게 찾아? 강제로 쫓아내기 전에 빨리 나가.”

“쳇, 두고 봐요. 내가 찾을 수 있나 없나.”

입술을 삐쭉인 사공미미가 홱 몸을 돌려서 방을 나갔다.

문인여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니! 뭐해? 안 올 거야? 안 오면 나 먼저 간다!”

사공미미가 밖에서 소리쳤다.

문인여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우, 너무 곱게만 자라서 그러니 공자가 이해하세요.”

혁무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인여진을 바라보았다.

묘한 여자였다.

말은 사공미미를 위해서 하는 것 같은데, 눈빛이 너무나 차가웠다.

게다가 눈 깊은 곳에는 경멸의 응어리가 뭉쳐 있었다.

왠지 모를 찝찝한 느낌.

혁무천은 아여령과 그녀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보려 했던 생각을 잠시 접어두었다.

“이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소. 처음부터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으니까.”

“언제 공자께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기회를 주시겠어요?”

“사공미미 때문이라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물론…… 그녀 때문이 아니에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촉촉한 목소리.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소선음공의 위력에 반쯤 넋이 빠진 것이다.

“알겠으니 당신도 그만 가보시오.”

“고마워요.”

문인여진은 조용히 미소를 지은 후 방을 나섰다.

그제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침을 꿀꺽 삼켰다.

혁무천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방을 나서는 문인여진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제 보니 소소선음공만 익힌 게 아니군. 뭔지 몰라도 아주 지독한 마공을 익혔어.’

한쪽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영추문도 그녀에게서 뭔가를 느낀 듯했다.

“조심하쇼. 느낌이 좋지 않은 여자니까.”

동대안이 은근슬쩍 그를 건드렸다.

“질투하나? 하긴 누구보다야 훨씬 여자답게 생기긴 했지. 목소리도 선머슴 같지 않고.”

영추문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피식, 입꼬리 한쪽을 슬쩍 비튼 그가 받은 만큼 그대로 돌려주었다.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으셨나 보네.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을까? 하긴 눈이 쥐똥만 한데 뭐가 보이겠어. 내가 이해해야지.”

동대안이 안 그래도 작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내가 말이야, 여자 때리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있는 거거든? 하지만 계속 그러면…….”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말이지, 동 형은 그 눈으로 내가 보이긴 보여?”

“이게 진짜……!”

“왜? 한번 해보자고? 나야 좋지!”

“오냐, 오늘 어디 한 번…….”

그때 혁무천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 대신……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워서, 들어올 때는 이긴 사람만 들어와. 그래야 시끄러워지지 않을 것 같으니까.”

동대안이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누가 싸운다고 했나? 내가 저 계집 같지도 않은 어린애하고 왜 싸워?”

영추문도 지지 않았다.

“걱정 마셔, 나도 눈이 쥐똥만 한 사람하고는 싸울 생각 없으니까.”

결국 두 사람은 눈이 터지기 직전까지 눈싸움만 했다.

엽기천 등은 괜한 불똥이 튈까봐 두 사람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보다 못한 혁무천이 말했다.

“영추문, 그만 네 방으로 가지 그래?”

“나도 일행이야, 이거 왜 이러셔?”

영추문의 그 말에 동대안이 비웃듯 말했다.

“하아!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자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함께 못 잘 거 뭐 있어? 어이, 대형. 나도 여기서 잘까? 침상 하나가 비어 있는데.”

영추문의 반격에 동대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설마 그녀가 함께 자겠다고 할 줄이야.

‘뭔 여자애가 저래? 겁도 없이.’

 

***

 

술시에서 해시로 넘어가는 시각(밤 9시쯤).

“비밀수련장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련주.”

우문강천은 우문홍의 보고를 받고 수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반쯤 좁힌 눈이 깊이를 알 수 없게 침잠되었다.

“어디더냐?”

“복우산 심심곡입니다.”

“그곳의 전력 수준은?”

“총 이백 명쯤 된다 합니다. 대부분 경비와 호위를 위한 무사들이고, 간부급 고수는 이삼십 명 정도라 합니다.”

“그들이 얻은 것도 그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최소한 필사본이라도 있을 겁니다. 수련에 필요할 테니까요.”

우문강천은 우문홍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진본이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정은맹도 동굴벽에 적힌 것을 필사해왔으니까.

중요한 것은 모든 내용이 다 적혀 있느냐 하는 것인데, 확인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척아를 언제쯤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으냐?”

“내일 새벽에 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에는 축시 말쯤이 가장 좋을 듯했다.

깊이 잠들었을 때라면 보는 시선도 덜할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무대회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괜찮을까?”

“사람들의 이목이 비무대회에 쏠려 있을 때 움직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군.”

우문강천은 우문홍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팔대마세와 마도십문 등 마도 세력의 모든 시선이 비무대회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속이기에는 더 없는 기회인 것이다.

탁탁.

태사의의 손잡이를 두어 번 내려친 그가 말했다.

“문유, 척아를 데려와라.”

우측에 석상처럼 고요히 서 있던 사십 대 중년인이 허리를 숙였다.

“예, 주군.”

그가 바로 철혈마련주의 사대호위 중 수좌인 이문유였다.

그의 정확한 실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저 그의 실력이 철혈마련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거라는 소문만 돌 뿐.

한편에서는 그가 우문강천의 숨겨진 제자라는 소문도 있었다.

 

일 각 후.

우문척이 철혈마전에 들어왔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우문홍이 상황을 설명했다.

반각, 우문홍의 설명을 다 들은 그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삐딱하게 틀었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란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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