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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5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54화

54화

 

 

“파황십삼권을 누구에게 배웠지?”

혁무천의 질문에 영추문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그 이름을……?”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닌 것 같던데.”

“…….”

“말해 봐. 나머지를 얻고 싶으면.”

머리카락 사이로 영추문의 눈빛이 세차게 떨렸다. 기세도 확연히 누그러졌다.

“정말…… 가르쳐 줄 수 있어?”

“대답이 마음에 들면.”

“사부가 죽기 전에 가르쳐줬어. 그런데 내가 너무 어려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 그때 열 살이었으니까.”

겉모습과 달리 순진한 말투였다.

침상에서 비스듬히 앉아 있던 동대안이 몸을 반듯이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목량과 강탁, 엽기천도 눈빛이 달라졌고, 장대산은 뭐가 그리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혁무천이 다시 물었다.

“혼자 익혔나?”

“내가 산 곳은 산적소굴이었어. 누구도 나에게 무공다운 무공을 가르쳐줄 수 없었지. 게다가 열일곱 살 때 토벌군에게 당해서 모두 죽었어.”

그때부터 영추문은 산속 깊은 곳에 숨어서 사부가 가르쳐준 무공을 익혔다.

사부는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법이라고 했다.

그것만 제대로 익히면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 했다.

“혼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나온 거야.”

“얼굴 좀 보자. 머리카락 좀 걷어봐!”

동대안이 버럭 소리쳤다.

영추문이 머뭇거리다가 머리카락을 걷었다.

땟물인지 본래 안색이 그런지 조금 까무잡잡하긴 해도 남자답지 않게 얼굴선이 고왔다.

게다가 큰 눈에 긴 속눈썹, 오똑한 코에 적당히 두툼한 입술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놈, 이쁘네.”

동대안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강탁과 장대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량도 동대안의 말에 동의하는 듯 한숨을 쉬었다.

엽기천은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고.

혁무천도 잘생겼지만 그에게는 그래도 남자다운 굵은 선이 있었다. 수염도 제법 짙었고.

반면 영추문은 여인처럼 선이 가늘었다. 진짜 여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 진짜 남자 맞냐?”

눈을 치켜뜬 영추문이 질문을 던진 동대안을 노려보았다.

동대안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눈에서 독기가 번들거렸다.

“알고 싶으면 한번 붙어봐, 쥐똥 눈 양반.”

“아아아, 난 싫다.”

동대안은 ‘쥐똥 눈’이라는 말을 듣고도 침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설마 드러누운 사람을 어떻게 하랴, 하는 마음인 듯했다.

눈에 대한 모욕이야 워낙 많이 들어서 화도 안 났고.

“무 형도 내가 남자처럼 안 보여?”

영추문이 혁무천에게 하소연 하듯 물었다.

혁무천은 솔직히 대답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다. 솔직히…… 너무 예쁘게 생겼거든.”

“쳇.”

영추문이 혓소리를 내며 입술을 삐죽였다.

정말 여자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안 속네.”

거칠었던 목소리가 변했다.

낭랑하다 못해 맑고 가는 목소리로.

누워있던 동대안이 벌떡 일어났다.

“헛!”

“뭐, 뭐야?”

장대산의 커다란 황소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고, 강탁과 목량은 입을 쩍 벌렸다.

엽기천은 그때도 목상처럼 꼼짝도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동대안이 눈을 껌벅이며 더듬거렸다.

“지, 진짜 여자? 가슴도 없는 거 같은데…….”

“흥!”

영추문이 그를 째려보며 차갑게 코웃음 쳤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솔직하게 대답한 것은 영추문이 정말 여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짜 여자라니.

“무 형은 알고 있었지?”

영추문이 혁무천을 째려보며 물었다.

피식, 실소를 흘린 혁무천이 말했다.

“조금은.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

“그럴 줄 알았어. 내 가슴을 만져봤었으니까.”

“헉!”

동대안의 작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정말?”

혁무천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만지진 않았다. 비무하다 스친 거지.”

“그거나, 그거나.”

혁무천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자꾸 변명하는 것도 왠지 이상했다.

“어떻게 할 거냐, 가르쳐주면 배울 거냐?”

“정말 파황십삼권을 알아?”

“지기의 흐름은 모르지만, 투로는 아마 너보다 더 잘 알 거다.”

어떻게 영추문에게까지 전해졌는지 모르지만, 파황십삼권은 광천곡의 무공이었다.

그런데 동대안은 모르는 듯했다. 하긴 광천곡의 고수들이 오래 전에 흩어졌으니 모르는 것도 이해 못할 것 없었다.

“근데 여자에게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해?”

“버릇이니 이해해.”

“쳇.”

영추문은 다시 머리를 풀어서 얼굴을 가렸다.

“좋아, 그럼 배워보지 뭐.”

목소리도 처음으로 돌아갔다.

동대안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다시 침상에 누웠다.

“머리카락은 그냥 놔둬도 되는데.”

 

***

 

밤이 깊어가면서 기온이 서서히 떨어졌다.

사진효는 영빈각 외곽에 있는 누각 근처에서 선선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그가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불러낸 거죠?”

사공미미가 인상을 쓰며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해시가 다 된 늦은 시간에 사진효가 사람을 시켜 쪽지를 보냈다.

할 말이 있으니 영빈각 외곽에 있는 누각으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나가기 싫었다. 하지만 사진효가 무천과 함께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기에 혹시나 무천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해서 나온 터였다.

“하하하, 사공 소저에게 드릴 게 있어서 만나자고 했소이다.”

사진효는 웃으며 사공미미에게 다가갔다.

“뭘 저에게 준다는 거죠?”

“마련으로 오던 길에 아름다운 목걸이가 있어서 샀는데, 사공 소저를 보니 잘 어울릴 것 같지 뭐요.”

사진효가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사공미미도 그제야 관심을 보였다.

어느 여인이 보석 목걸이를 싫어할까.

더구나 그녀에게 주려고 샀다면 싸구려 목걸이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사진효가 주머니를 열고 목걸이를 꺼냈다.

금으로 된 줄에 매달린 붉은 보석이 화톳불 불빛을 받아서 화려하게 반짝였다.

“어머……!”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소.”

“뭐 그런 걸…….”

사공미미의 눈빛이 보석만큼이나 반짝였다.

사람이 싫다 해서 보석까지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달아드리겠소.”

사진효가 목걸이의 줄을 잡고 사공미미에게 다가갔다.

사공미미가 그의 친절을 거부했다.

“그냥 줘보세요. 제가 할게요.”

멈칫한 사진효가 그녀를 바라보더니 목걸이가 든 손을 내밀었다.

서공미미가 손을 내밀어 목걸이를 받았다.

순간, 사진효가 내민 손을 더 뻗어서 목걸이를 집어든 사공미미의 손목을 잡고 세차게 끌어당겼다.

깜짝 놀란 사공미미가 버텼지만 사진효의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어맛!”

그녀가 화들짝 놀란 사이 사진효는 그녀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준비한 말을 꺼냈다.

“사공 소저, 이 사진효는 전부터 그대를…….”

짝!

사공미미의 자유로운 손이 사진효의 뺨을 갈겼다.

“어디서 이런 음흉한 짓을……!”

사진효의 가슴을 밀친 그녀가 뒤로 물러서려 하자, 사진효가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

사공미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손목의 내관혈이 눌려서 몸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사진효가 그녀를 다시 당기며 나직이 말했다.

“소저는 왜 내 진정을 몰라주는 거요.”

“이거 놔요!”

“내가 무천이란 놈보다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 거요.”

“흥! 그것도 몰라요? 아마 무 공자였다면 당신처럼 막무가내로 이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래봐야 그놈은 신분도 모르는 비천한 놈일 뿐이오.”

“누가 아나요? 알고 보니 왕자님일지.”

“다시 생각해 보시오. 그놈보다는 그래도 내가 더 나을 거요.”

“이거 놓아요. 계속 이러면 사람을 부르겠어요.”

사진효가 차가운 표정의 사공미미를 향해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이를 드러냈다.

“끝까지 나를 거부하면 당신도 좋지 못할 텐데?”

“흥! 지금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예요?”

그때 영빈각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미미야, 그쪽에 있느냐?”

사공곽의 목소리였다.

사공미미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사진효를 노려보았다.

“더 곤란해지기 전에 풀어줘요.”

그런데 몸을 젖힌 채 올려다보며 말하다 보니 불룩 솟은 가슴이 유난히 더 크게 느껴졌다.

사진효는 그녀의 가슴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제길, 좀 더 먼 곳에서 만날 걸 그랬어.’

음탕하다고 알려진 사공미미가 보석을 받고도 자신을 거부할 거라 생각 못한 게 실수였다.

빌어먹을!

그는 사공미미의 손목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어둠 저쪽에서 사공곽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저를 너무 좋아해서 한 행동이니 이해해주시오.”

“흥! 이 목걸이는 당신이 나에게 한 대가로 가져가겠어요.”

이 와중에도 욕심을 내다니.

‘죽을 년!’

사진효는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고 포권을 취했다.

“물론이오. 그것은 처음부터 소저를 위해 산 것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그 사이 사공곽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사 형하고 함께 있었군.”

“예, 오빠. 사 공자가 선물을 주셨지 뭐예요.”

“그래?”

“고마워요, 사 공자.”

사공미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공곽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사공미미가 그렇게 말하니 의문을 털어냈다.

“동생에게 선물을 주다니. 고맙소, 사 형.”

“사공 소저께서 좋아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럼 사공 형도 오셨고, 오늘은 늦었으니 다음에 뵙겠습니다. 내일 본선에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사 형도 내일 꼭 승리하기를 바라겠소.”

“고맙습니다. 그럼 내일 뵙지요.”

사진효는 포권을 취하고는 돌아섰다.

이를 악다문 그의 눈에서 독기가 흘러나왔다.

‘사공미미, 오늘은 그냥 가마. 다음에 만나면…… 네년은 오늘 일을 처절하게 후회하게 될 거다.’

사공곽은 사진효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사공미미를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으냐? 조금 전에 목소리가 조금 크게 들리는 것 같던데.”

“괜찮아요. 너무 늦게 불러낸 것 때문에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을 뿐이에요.”

“사진효는 소문이 좋지 않은 자다. 심지어 이상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조심해라.”

“알았어요, 오빠.”

사공미미는 조금 전의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하면 아마 저 고지식한 오빠는 화가 나서 목걸이를 그에게 당장 돌려주라고 할 것이다.

분노는 분노고, 목걸이는 목걸이.

그녀는 돌아서면서 비극의 씨앗을 품속에 넣었다.

“그만 들어가요, 오빠.”

 

***

 

비무대회 사차전, 본선이 시작되는 날이 밝았다.

비무를 시작하려면 반시진이나 남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비무대 주위로 몰려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혁무천 일행은 대연무장의 비무대가 아니라 객당의 뒷마당 구석진 곳에 있었다.

“엽 형의 검은 빠른 게 장점이지. 문제는 빠른 것만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고수에게는 읽히기가 쉽다는 거야.”

혁무천의 말을 엽기천이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혁무천의 비무가 다섯 번째, 엽기천의 비무는 일곱 번째로 예정되어 있었다.

혁무천이 그 잠깐의 시간을 활용해서 엽기천의 무공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고수가 엽 형의 검을 예측하고 대응하면 달리 피할 방법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엽기천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검을 익힌 지 이십 년. 그가 회심의 절기로 익힌 섬전귀검만 해도 오 년 동안 절치부심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터였다.

하루아침에 특성을 바꾼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차피 많은 것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어. 당장은 상대의 예측을 역이용하는 수밖에.”

혁무천은 검을 빼더니 검법을 전개했다.

“어?”

엽기천의 눈이 한껏 커졌다.

혁무천이 펼치는 검법이 자신의 검법과 비슷했다. 심지어 빠르기까지.

그런데 어느 순간, 혁무천의 검이 기묘하게 틀어지며 흔들렸다.

검신이 찰나 간 쪼개진 듯 두 개로 나누어져서 뻗어갔다.

간단한 변화.

하지만 그걸 본 엽기천은 자신의 심장이 뚫리는 듯했다.

혁무천이 검첨으로 엽기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초에 한 번. 예측을 무너뜨리는 변화를 주면 상대는 당황하게 되지.”

입을 꾹 다문 엽기천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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