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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53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53화

53화

 

 

정색을 한 원도민은 혁무천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백마궁에서 귀하 일행을 쫓은 이유가 정파의 무공이 숨겨진 곳을 찾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우리도 짐작할 수 있소.”

철혈마련의 정보망으로 그 정도 사실을 파악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한 사람, 백마궁주가 악착같이 잡으려 한 거인에 대한 비밀을 알 수가 없단 말이오.”

“그보다는, 내가 전설 속으로 사라진 정파의 무공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더 궁금하겠지.”

원도민이 빙그레 웃었다.

“사실 그것도 궁금하고 말이오.”

“내가 말해주지 않겠다면?”

“말하기 싫다면야 우리가 어쩌겠소. 다만 귀하가 조금 귀찮게 될 거요.”

“글쎄,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 아마 나보다는 철혈마련이 귀찮게 될 거야.”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 혁무천을 보고 원도민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혁무천이 마저 한마디 덧붙였다.

“나를 적으로 삼아봐야 철혈마련도 좋을 게 없거든.”

그때였다.

짝짝짝짝.

박수소리와 함께 우문척이 십삼고 입구에 나타났다.

“정말 대단한 배짱이야. 본 련의 심장부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혁무천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가 나타날 줄 알았다는 듯.

사실 덧붙인 마지막 말도 그자에게 한 것이었다.

알아듣지 못한 것 같긴 하지만.

“그대에 대해서 며칠 동안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들었지. 듣던 대로 건방진 친구군.”

우문척이 미소 띤 표정으로 말하며 혁무천을 향해 다가갔다.

털썩.

생각지 못한 그의 등장에 원도민이 놀라서 급히 포권을 취했다.

“마호당의 원도민이 대공자를 뵈오!”

“수고가 많소. 본 련에 원 당주 같은 분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다니,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소.”

“별 말씀을…….”

“내 잠시 저 사람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물러가 있으시오. 나중에 사람을 보낼 테니 더 깊은 이야기는 그때 하는 게 좋겠소.”

“예, 대공자.”

원도민이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 사이 혁무천의 전면 일곱 자 앞까지 다가간 우문척이 말했다.

“나는 우문척이라 하네. 본래 그렇게 오만한 성격인가?”

“상대에 따라서.”

“어떤 상대?”

“자신의 주제도 모르는 자를 공경해줄 만큼 내 마음이 넓지 않거든.”

우문척의 표정이 괴이하게 이지러졌다.

“이런, 이거 제대로 한 방 맞았군.”

“그대가 그렇다는 건 아니야. 철혈마련의 소련주 정도 되면 오만할 자격이 충분하니까.”

신분을 알고도 변함없는 혁무천의 말에 우문척의 눈빛이 달라졌다.

‘재미있는 친구군.’

입가에는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나?”

“고마워할 필요까진 없어. 아무래도 날 찾아온 것 같은데, 본론을 말해보시지.”

“동생이 자네를 만났다고 하더군. 그래서 오빠 된 도리로 자네를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데, 마저 말해봐.”

“이거 눈치 하나는 정말 점쟁이가 따로 없군.”

어깨를 으쓱한 우문척의 표정이 서서히 차갑게 굳어졌다.

“좋아, 말하지. 나는 자네가 왜 본 련에 들어왔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

“조금도 어렵지 않은 요구군.”

혁무천의 그 말에 우문척의 눈이 살짝 치켜떠졌다.

자신이 그렇게 쉬운 요구를 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가벼운 대답이었다.

“먼저 그대 동생의 일. 나는 우문소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 그러니 신경 꺼도 좋아.”

“…….”

“두 번째,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내 동생을 찾기 위해서야. 그러니 억측을 해서 일이 복잡하게 꼬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얼마나 간단한 대답인가.

그리고 모두 사실이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어이가 없었지만.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

“믿든 안 믿든 알아서 해.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우문척은 머릿속이 뒤죽박죽 된 기분이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 말이 사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 동생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그러다 보니 불쑥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자신이 말하고도 아차,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기는 질문이었다.

다그쳐도 모자랄 판에, 마음에 안 드냐고?

“우문소소는 예쁘지. 하지만 나와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여자는 아니야.”

문득 어떤 생각이 든 우문척이 혁무천을 빤히 보며 물었다.

“혹시 찾는다는 동생이…… 여동생?”

끄덕끄덕.

“친동생인가?”

“아니.”

“그럼……?”

“내 가슴을 훔쳐간 아이지.”

그제야 우문척은 두 가지 대답에 대해서 모두 이해했다. 혁무천이 우문소소를 거부하는 이유까지.

누군가를 마음 깊이 담은 남자는 다른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 여자들이야 그 말을 들으면 코웃음 치며 믿지 않겠지만.

남자는 다 짐승이야! 예쁜 여자만 보면 눈에 윤기가 나고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게 남자라고!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래도 우문척은 혁무천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 역시 그런 적이 있으니까. 삼 년 전, 자신의 손으로 죽여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었지만.

지금 그녀는 공식적으로 실종 상태였다.

“하나 제안을 하지, 무천.”

“말해 봐.”

“내 사람이 돼라. 그럼 그대 동생을 찾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주마.”

화아아악.

우문척의 전신에서 무형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눈 깜짝할 사이에 혁무천을 뒤덮었다,

저항할 시간조차 없이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혁무천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의 머리카락이 바람도 없는데 휘날렸다.

그때 그의 눈 깊숙한 곳에서 푸른 섬광이 번뜩였다.

순간, 그를 뒤덮었던 무형의 기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차라리 붕(鵬)을 잡아서 애완동물로 만들어. 그게 더 쉬울 테니까.”

우문척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신이 내뿜은 기운은 일반적인 무공의 기운과 궤를 달리했다. 강호의 절정고수도 그 기운에 휩싸이면 한순간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런데 왜 무천이란 자에게는 통하지 않는 거지?

어쨌든 그에 대해선 나중에 알아봐도 될 일.

우문척은 화를 내는 대신 실소를 지었다.

“훗, 역시 안 먹히는군.”

그러고는 다른 제안을 던졌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나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나 역시 도움을 주지. 물론 계속 도와달라는 건 아니다. 한 번에 한 번. 서로 주고받는 거지. 어때?”

“그건 좀 낫군.”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알아듣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전제하의 약속이라면 받아들이지.”

“그건 걱정할 거 없어. 할 수 없는 일을 시킬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니까.”

“대신 그대가 먼저 내 부탁을 들어줘야겠어. 그대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흠, 일단 들어본 후 결정하지. 말해봐라.”

“철혈마원에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생각지도 못한 조건에 우문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철혈마원에 있는 사람? 누구를 만나겠다는 거냐?”

“그건 나중에 말하지.”

장대산에게 물어봐야 하니까.

“철혈마원이야 소소를 얻으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지.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당연히…….”

우문척이 넌지시 우문소소를 끼워 넣었다.

그러나 혁무천은 우문척의 농담 아닌 농담을 더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싫은가 보군. 그럼 지금까지의 이야기도 없던 일로 하지.”

우문척이 웃음을 터트리며 재빨리 말을 돌렸다.

“하하하하, 성격이 급하군. 좋아, 누군지 말해주면 내가 만나게 해주지. 생각 있으면 언제든 철심원으로 와라.”

 

혁무천이 떠난 철혈집정고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침묵에 짓눌렸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우문척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음에 안 들면 대가리를 잘라서 풍경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어.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혈영?”

그의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자가 음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자입니다, 대공. 차라리 일찍 제거하시는 게…….”

“가끔은 끊어질 듯 신경을 당기는 긴장을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런 재미조차 없으면 너무 심심하거든.”

“하오면…….”

“어디 지켜보자. 시간이 지나다 보면 덮어 쓰고 있는 비밀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겠지.”

말을 마친 우문척은 바람 한 점 없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해. 하늘이 나를 선택한 이상은. 후후후후.’

작년 가을쯤의 일이었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천지가 뒤흔들렸다.

당시 그는 철마비동에서 운공수련 중이었는데, 그 충격으로 기운이 뒤틀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뒤틀린 기운이 제멋대로 온몸을 헤집으면서 극렬한 고통이 엄습했다.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진들 그보다 더할까 싶을 만큼 처절한 고통이!

절망한 그는 운공을 포기하고 빨리 죽기만 바랐다.

오죽하면 난생 처음 신께 빨리 죽여 달라고 빌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모공을 통해 스며들었다.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에도 가문의 어른이 그의 위험을 알고 나타나서 진기를 주입시키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기운은 가문의 철혈마혼공과 성질이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거대했다. 인간이 지닌 기운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잃은 그가 깨어났을 때, 그의 몸속에는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기운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또한 거품처럼 꺼져서 사라진 줄 알았던 철혈마혼공의 공력 역시 처음 그대로 존재했다.

철마비동을 나온 후에야 그는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유성이 철혈마련 후원 끝자락에 있는 철마비동 근처에 떨어졌다고.

그로 인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천지가 진동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자신이 하늘의 기운을 얻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오늘, 자신의 기운이 통하지 않는 자를 만났다.

혹시 무천이란 놈도 그 기운을 얻은 것 아닐까?

그렇다면 자신 외에도 하늘의 기운을 받은 자들이 더 있다는 말이 된다.

천하에 그런 자들이 몇이나 될까?

‘몇이든 상관없어.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는 걸 방해하는 자는 그게 누구든 없앨 거니까.’

 

***

 

혁무천은 객당까지 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우문척.

철혈마련의 소련주.

사람들은 그가 연약해서 철혈마련의 주인이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는 둘째인 우문양이 더 철혈마련의 련주로 어울린다고 했다.

자신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덩치도 크고 강건한 성격에, 형제들 중 우문강천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우문양이라고 들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이후로 생각을 바꾸었다.

‘그런데 우문척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뭔지 모르겠군.’

순간적으로 스러져서 파악할 시간조차 없었다. 분명한 것은 예사 기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의문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때 분명 나도 모르는 사이 뭔가가 움직였다. 내 몸속에서.’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우문척의 기운이 사라진 것은 그 반응이 있은 직후였다.

그 반응이 우문척의 괴이한 기운을 밀어낸 듯했다.

어쨌든 자신도 모르는 기운이 자신의 몸속에 있다니.

묘한 느낌이었다.

‘훗, 백 년 만에 깨어나니 별 이상한 것이 다 몸속에 들어와 있군.’

그는 상상도 못했다, 자신이 깨어나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기운이 어떤 것인지는 더더욱 몰랐고.

 

객당으로 가자 영추문이 와 있었다.

아직까지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듯 꾹 다문 입술에 불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듯 동대안이 소곤거리듯 말했다.

“지가 왜 졌는지도 모르는 놈을 왜 오라고 한 거야?”

“물어볼 게 있어서 오라고 한 거요.”

혁무천은 담담히 말하고 영추문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후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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