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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50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8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50화

50화

 

 

태양이 동산에서 솟구치는 사시 초.

드디어 삼차 예선이 시작되었다.

한 번만 더 이기면 본선에 오르는 터라 모두들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시 말, 혁무천도 삼차 예선을 위해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가 있는 비무대는 구경꾼들이 많지 않았다.

제법 이름 있는 마도의 청년고수들이 삼차전에 올라와서 군중들이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간 것이다.

“홍, 무천! 청, 영추문! 앞으로!”

심판관이 호명하자 혁무천은 비무대 중앙으로 나아갔다.

그의 상대는 거친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가려진 자였다.

큰 키, 빼빼 마른 몸, 추레한 옷차림.

머리카락이 젖혀졌을 때 드러난 얼굴은 무뚝뚝한 남자의 대명사처럼 표정이 없었다.

장기는 권ㆍ장ㆍ각을 사용한 체술.

무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름은 영추문.

사문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혼자 무공을 익혔다고 한다.

처음에는 모두 그를 비웃었다.

이제는 누구도 그를 비웃지 않는다.

두 차례 예선을 통과하는데 단 다섯 초식만 사용한 자다.

상대는 모두 뼈가 부러지거나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

“좋더군.”

뜬금없는 혁무천의 말에 영추문의 눈빛이 머리카락 사이에서 번뜩였다.

무뚝뚝한 그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주 짧게.

“뭐가?”

“그 손, 그리고 움직임.”

“나중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군.”

영추문이 나직이 말하며 두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반쯤 말아 쥔 손의 손등에 그물처럼 갈라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얼마나 수련을 하면 주먹이 저렇게 될까 싶을 정도.

“나도 적수공권으로 하지.”

“후회할 텐데?”

“후회를 해도 내가 하니 걱정할 것 없어.”

그때 심판관이 깃발을 흔들었다.

“시작!”

“어때, 길게 갈 필요는 없겠지?”

혁무천이 말하며 좌수를 배꼽 높이로 들고, 우수를 가슴 앞에 세웠다.

“그거 좋지.”

영추문이 답을 내뱉고 바닥을 찼다.

삼 장 거리가 찰나에 좁혀졌다.

혁무천은 달려드는 영추문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두 손을 엇갈려 교차시켰다.

석 자 간격을 두고 마주선 두 사람의 손이 사라지고, 흐릿한 손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두 사람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기든 지든, 끝장을 보겠다는 듯.

남들 눈에는 우매하게 보일 정도로 극단의 정면대결이었다.

우르르릉.

나직한 울림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비무대의 바닥도 잘게 떨어댔다.

구구구구궁!

울림이 커지면서 두 사람을 중심으로 먼지가 피어오르더니 점점 반경을 넓혀갔다.

이러다 비무대가 부서지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

“어? 뭐야?”

구경꾼들이 놀라서 시선을 집중했다.

그 순간,

쿠궁!

굉음이 북소리처럼 울리더니, 두 사람이 일 장 간격을 두고 물러섰다.

혁무천은 두 손을 자연스럽게 내린 상태.

영추문은 움켜쥔 주먹을 가슴 높이로 든 채 혁무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심판관은 바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미간을 좁힌 그의 표정이 묘했다.

뭔가 결판이 난 것 같긴 했다. 그런데 판단을 내리기가 애매했다.

하필이면 그 시간에 옆쪽의 다른 비무대에서 청년고수들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어서, 잠깐 한눈을 파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더 할 건가?”

혁무천이 물었다.

영추문의 두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짧은 시간의 대결이었지만 수십 번의 공방이 벌어졌다.

초식이 무의미한 본능에 의한 공방.

전율이 온몸을 치달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생경한 느낌.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먹먹한 고통이 동반된 전율!

하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자신의 뼈가 부서지더라도.

“좋을…….”

그런데 입을 열자 몸이 비틀거렸다.

마음과 상관없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심판관이 후다닥 깃발을 들었다.

“무천 승!”

혁무천이 영추문을 보며 말했다.

“나중에 객당으로 찾아와.”

이를 악다문 영추문은 힘을 주고 버티고 서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봤나?”

비무대에서 내려오는 혁무천을 보며 사공곽이 물었다.

그의 옆에는 금가휘와 구불청이 서 있었다.

당연히 사공미미도 있었고.

“정말 무식한 대결이군요.”

금가휘가 조금은 감정이 섞인 투로 말하며 조소를 지었다.

어젯밤 일로 인해 하루 종일 짜증이 났다.

‘그냥 붙어볼 걸 그랬나?’

차라리 그랬으면 이런 찝찝함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어제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상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제기랄!

구불청도 한마디 했다.

“그만큼 흥미로운 대결 아닌가?”

둘은 성격만큼이나 보는 눈도 달랐다.

사공미미야 혁무천의 모든 것이 멋졌고.

“정말 남자다운 대결이에요. 저는 보면서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구불청은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하하하하, 미매가 남자의 멋을 아는군.”

그때 한쪽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굉장하군!”

사공곽 일행이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진효가 화려한 초식을 펼치며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허공 가득 수십, 수백의 검영이 봄날의 꽃잎처럼 흩날렸다.

그러나 절정고수의 눈까지 현혹시키지는 못했다.

상대는 이제 일류 수준에 겨우 올라선 자. 사진효는 결정적인 승부처에서도 손을 늦추고 멋진 광경을 연출하기에 바빴다.

“저게 뭐하는 짓인지 원…….”

구불청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썼다.

사공곽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실력은 제법이잖은가?”

“저러다 임자 제대로 만나면 혼나지.”

“그런데 의외군. 사진효의 무공이 저렇게 뛰어났나?”

단순히 화려한 무공이 아니었다. 절정 경지의 검기가 만들어낸 검영이었다.

검에 대한 깨달음이 높든가, 아니면 공력이 높든가. 최소한 둘 중 하나는 갖추어야만 가능한 검무.

사공곽이 아는 사진효는 독하긴 해도 무공은 아직 그 정도가 아니었다.

“숨긴 것이 많은 친구야.”

사공미미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는 사진효가 마음에 안 들었다.

“난 그래서 저 사람이 싫어요. 음침한 눈빛으로 내 몸을 훑어보는 것도 기분 나쁘고.”

“정말 그런 눈으로 널 훑어봤단 말이냐?”

“그렇다니까요?”

“눈알을 빼버려야겠군.”

“빼면 나 줘요. 확 밟아서 터트리게.”

구불청은 두 남매의 살벌한 대화에 커다란 눈알만 굴렸다.

 

사진효는 승리를 거둔 후 사공미미 쪽을 바라보았다.

무천이란 놈의 비무를 보던 그녀가 조금 전부터 자신의 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좀 더 멋진 마무리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럭저럭 자신이 원하던 대로 된 듯했다.

‘흐흐흐흐, 어떠냐, 사공미미. 그딴 놈보다는 내가 더 멋지지 않느냐?’

그는 지금 자신의 눈알을 대상으로 대화가 오가는지도 모르고 속으로 음침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한 가지 결심을 굳혔다.

‘밤에 보자, 사공미미.’

 

***

 

엽기천은 삼십여 초식의 대결을 펼친 후에야 힘겹게 삼차 예선을 통과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비무대를 내려왔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보였던 혁무천과 동대안, 장대산, 목량이 그곳에 없었다.

강탁의 비무를 보기 위해 몰려간 것이다.

엽기천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함께 한 것뿐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말한 대로, 상ㆍ부ㆍ상ㆍ조.

각자 원하는 이익을 얻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승리한 사람 축하 좀 해주면 안 되나?’

어쨌든 자신도 그들의 일행이잖은가 말이다.

콧등을 씰룩인 그는 우측을 둘러보았다.

혁무천 일행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 머리 위로 솟구친 장대산의 커다란 머리가 보였다.

그곳에서 강탁의 비무가 벌어지고 있었다.

 

강탁의 비무 상대는 깨끗한 청색 비단무복을 입은 청년이었다.

이미 십여 초식이 진행된 상태.

강탁의 옷은 서너 군데가 더 찢어졌고, 두어 군데서는 피마저 보였다.

반면 청색 비단무복을 입은 자는 아직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지겠는데?”

이마를 찌푸린 동대안이 작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말했다. 눈이 어찌나 작은지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잘한 거요.”

혁무천도 강탁의 배패에 한 손을 보탰다.

강탁의 상대는 마도문파의 청년고수였다. 비무대회에 나온 마도문파 청년 중 능히 이십 위 안에 들어가는 고수.

강탁으로선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절정경지에 올라선 고수와 맞붙다니.

“도와줄 수 없을까?”

동대안이 넌지시 말했다.

직접적인 도움은 줄 수 없었다. 그러나 간접적인 도움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조금만 도와줘도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보였다.

“안 됩니다.”

목량이 먼저 반대했다.

“이기든 지든, 사형은 사형의 힘으로 버텨야 합니다.”

“누가 뭐래? 그냥 아쉬워서 그런 거지.”

동대안은 멋쩍은 듯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저만치서 엽기천이 뿔난 표정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저 친구는 왜 또 저런 표정이야? 입이 댓자는 튀어나왔는데?”

“글쎄요.”

“이긴 줄 알았는데, 막판에 뒤집어져서 깨졌나?”

 

결국 강탁은 온몸에 다섯 군데의 상처를 입고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아직 더 할 수 있다니까요!”

그렇게 우겨댔지만 심판관은 자신의 결정을 되돌리지 않았다.

강탁은 씩씩거리며 비무대를 내려왔다. 그러다 목량을 보고 어깨가 축 처졌다.

“미안하다, 사제. 내가 모자라서 삼차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괜찮아요, 사형. 사형이 약한 게 아니라 상대가 강한 거였어요.”

강탁의 상대는 혼검문 문주의 둘째 아들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그를 이길 가능성은 일 할도 되지 않았다.

“내가 사부님의 무공을 제대로만 익혔어도 저런 뺀질거리는 자 정도는 이겼을 텐데…….”

“솔직히 사형의 나이에 사형 정도의 무공을 익힌 사람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어요? 비무대회도 이차 예선까지 통과했잖아요.”

강탁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머리만 박박 긁었다.

“상처부터 치료해요. 피가 많이 나요.”

“어, 알았어.”

그때 혁무천이 말했다.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있었다. 그 부분만 잘 다듬으면 다음에 저자와 붙어도 쉽게 지지는 않을 거다.”

시무룩하던 강탁의 고개가 번쩍 쳐들렸다.

위로 쳐들린 콧구멍이 오늘따라 더욱 크게 보였다.

“정말이우?”

“믿기 싫으면 믿지 마.”

털썩.

강탁이 느닷없이 무릎을 꿇었다.

어젯밤 이후 그는 혁무천을 ‘얼굴이 계집처럼 생긴 놈팽이’에서 ‘얼굴도 잘 생기고 성격도 화끈한 괜찮은 고수’로 판단을 바꾼 터였다.

백마궁의 소궁주를 그런 식으로 쫓아낼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가르쳐주십시오, 대형!”

“난 나 하나도 추스르기 힘든 사람이야.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배우겠습니다!”

“우선은 동 형에게 배워.”

한쪽에서 멀뚱히 바라보던 동대안의 눈이 커졌다.

“나? 내가 왜?”

“좀 전에 도와주었으면 했잖소. 그러니 한 수 가르쳐줘요.”

“그거야…….”

동대안이 머뭇거렸다.

그런데 강탁도 그가 마음에 안 들었다.

“저, 꼭 동 형에게 배워야 합니까? 별로 안 셀 거 같은데…….”

그 말에 동대안도 마음을 바꾸었다.

“자네가 가르치라면 가르치지 못할 것도 없지 뭐.”

‘흥, 콧구멍만 큰 놈이 뭐가 어째?’

가르친다는 핑계로 혼 좀 내주면 손해는 아닐 듯했다.

심심하지도 않을 것 같고.

“너 정도 무사 다섯이 덤벼도 동 형의 옷자락에 흠도 못 낸다. 그러니 동 형에게 몇 가지 배워두면 언젠가는 그것이 네 목숨을 몇 번은 구해줄 거다.”

혁무천이 몇 마디 더 한 후에야 강탁도 순순히 따랐다.

“알겠습니다, 대형이 하라면 하죠.”

속으로야 ‘저 눈이나 아니나 쥐똥만 한 양반이 정말 그렇게 강할까?’하며 의심했지만.

고생문이 열린 것은 생각도 못하고.

 

***

 

“무천이 삼차 예선을 통과했단 말이지?”

“예, 공녀.”

초승달처럼 그려진 아미를 찡그리며 잠시 첫잔을 응시하던 우문소소가 눈을 들었다.

“그를 만나봐야겠어. 한번 시간을 잡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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