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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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49화
49화
세상천지를 둘러봐도 자신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 중 오빠를 제외하면 호의를 갖고 자신을 찾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백마궁, 철혈마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정파세력이라는 정은맹조차도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누가 왔는데 나를 만나려는 거지?’
“빨리 가요, 아가씨.”
홍아가 재촉했다.
아마도 그 잘생겼다는 공자님을 보고 싶은가 보다.
어쨌든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는 일.
이를 지그시 악다문 은설은 신니가 있는 승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신니의 방으로 들어가자, 홍아의 말대로 손님 다섯 명이 신니와 함께 앉아 있었다.
“어서오너라.”
“설아가 신니를 뵈어요.”
“수련 중인 걸 알지만, 여기 손님들이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하여 불렀다. 대답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니, 네가 말하고 싶은 것만 대답하면 된다.”
긴장한 은설은 다섯 손님을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사오십 대로 보이는 중년인 둘, 삼십 대 중반의 장한 둘, 그리고 홍아가 말한 잘생긴 공자까지.
‘홍아의 말대로 잘생기긴 했네. 오빠에 비하면 어림도 없지만.’
문득 혁무천을 떠올리자, 긴장이 스르르 풀어졌다.
“저에게 무엇을 물어보겠다는 것인지요?”
질문을 할 때쯤에는 맑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어떤 긴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중간에 앉아 있던, 머리카락이 반백인 중년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바다에서 헤엄쳐 나왔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예, 맞아요. 겨우 바다에서 나와 정신을 잃었는데 사저께서 구해주셨어요.”
“배에서 떨어졌다면서?”
“예, 발을 헛디뎌서 떨어졌어요.”
“그런데 왜 집에 찾아가지 않고 여기에서 머무는 거냐?”
돌아갈 집이 없다. 엄마에 이어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아무도 없는 집.
그나마도 지금쯤은 남들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
“여기가 좋아서요. 신니 할머니께 무공도 배울 수 있고요.”
은설이 반쯤은 진심을 담아서 구렁이 담 넘듯 대답하자, 중년인이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갔다.
“혹시…… 작년 늦가을, 양 노인이 몰고 나간 배에 타지 않았느냐?”
은설은 중년인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중년인이 좀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너에게도 좋을 거다. 말해봐라, 그때 그 배에 타지 않았느냐?”
은설은 입을 꾹 다물고 중년인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신니가 말했다.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조용히 앉아 있던 다른 중년인, 수염이 덥수룩한 자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신니, 천하의 안위와 관련된 일입니다. 양해해주시지요.”
“노니는 이미 설아와 약속을 했어요. 그러니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답니다.”
“신니…….”
중년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재차 부탁하려는데, 은설이 말했다.
“먼저 알고 싶은 게 있어요.”
머리가 반백인 중년인이 눈빛을 빛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해봐라.”
“신니 할머니께서 아무나 모시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저는 앞에 계신 분들이 누군지 몰라요. 모르는 분들과는 더 이상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당신들의 정체를 알아야만 대답할 수 있다는 뜻.
머리카락이 반백인 중년인이 그에 대해 답했다.
“우리의 정체를 알게 되면, 너도 네가 아는 사실을 모두 말해야 한다.”
“싫다면요?”
당돌한 은설의 대꾸에 중년인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너무 불공평해요. 왜 저만 일방적으로 말해야 하나요?”
“험, 그만큼 우리의 신분을 밝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알려주지 마세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저도 여러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어요.”
“…….”
은설의 말에 당황한 듯 중년인의 표정이 잠깐 사이 팔색조처럼 변했다.
신니는 조용히 웃기만 했고.
그때 청년이 입을 열었다.
“소저,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오해는 하지 마시오.”
“오해하지 않아요. 그냥 공평하기만 바라는 거죠. 천하의 안위를 위한 일이라 하셨는데, 정체도 모르는 분들의 말을 제가 어떻게 믿나요?”
“어른들께 서운한 점이 있었다면, 이 신도평이 대신해서 사과하리다.”
청년이 일어서서 포권을 취하며 은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아마 은설도 혁무천을 먼저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멋진 모습도 은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왜 공자가 사과를 하시나요?”
“그야…….”
“설마 제가 공자의 잘생긴 얼굴에 혹해서 순순히 말해드릴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그런 것은…… 아니고…….”
청년, 신도평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호호호호.”
신니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머리가 반백인 중년인이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험험, 신니께서 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답할 사람은 노니가 아니라 설아랍니다. 부탁은 설아에게 하셔야지요.”
불호를 외며 말을 잇는 신니의 표정이 조금 전과 달리 엄숙해졌다.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습니다, 시주. 부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강압적으로 몰아붙였으니 설아가 반발할 만도 하지요.”
머리가 반백인 중년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아무리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라 하나 신니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일이 워낙 중하다 보니…….”
“그럴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대해야 설아가 입을 열 거 아닙니까.”
“험. 알겠습니다.”
머리가 반백인 중년인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고 은설을 바라보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우리의 신분을 알려주마. 대신 때가 될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우리에 대해 밝히면 안 된다.”
“저도 그렇게 입이 싼 여자는 아니에요. 보셨잖아요, 굉장한 분들이 다그치는 데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요.”
다시 한 번 말싸움에서 패한 중년인은 눈에 힘을 주고 은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은설이 다시 말했다.
“눈에 괜히 힘주지 마세요. 그래봐야 아저씨의 눈빛은 하나도 안 무서워요.”
“후우우.”
한숨을 내쉰 반백의 중년인이 포기했다는 듯 말했다.
“좋다, 말해주마. 우린…… 천기회 사람들이다.”
“천기회요?”
은설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조광유라 한다. 여기 상 형과 함께 천기회의 장로를 맡고 있지. 그리고 저쪽의 청년은 본 회 회주님의 명을 집행하는 삼대령주 중 영검령주다.”
은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중년인의 말을 들었다.
정파 사람인 듯해서 혹시나 정은맹 사람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아니란다.
“정은맹은 들어봤는데, 천기회는 처음 들어요.”
조광유는 은설의 말을 듣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도가 득세한 세상이어서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게 쉽지 않을 뿐, 정파에도 이름 높은 고수들이 상당히 많았다.
삼성, 오절, 칠웅은 사대천마나 칠사, 팔마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그 외에도 쟁쟁한 고수가 백여 명은 되었다.
기산검협이라 불리는 자신 역시 그러한 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름을 듣고도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는 걸 보니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듯했다.
뭐, 강호의 경험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
조광유는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천기회에 대해서는 아직 강호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운 거니라.”
“천기회도 마도와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인가요?”
“네 말이 맞다. 우린 마도를 무찌르고 무림의 정기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정은맹도 강호의 정의를 위해서 마도와 싸우려고 만들어진 단체라 했다.
그런 자들이 섬에 자신과 오빠만 남겨놓고 떠났지 않은가.
은설은 반백의 중년인, 조광유의 말을 듣고도 그들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저에게 뭘 알고 싶으신 거죠?”
“작년 가을에 벌어진 일을 알고 싶은 거다. 천하의 안위를 위해서…… 부탁하마. 작년에 혹시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았느냐?”
은설도 약속을 했으니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사실 말해준다 해도 어차피 이들이 얻을 것은 많지 않았다.
“맞아요. 양 할아버지가 모는 배를 타고 나갔어요.”
“누구랑 나갔지?”
“황보수라는 분하고요.”
승방 안에 있던 사람 중 몇 사람이 그 이름을 아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황보수?”
“정은맹의 무슨 기주라고 했어요.”
조광유가 다급히 물었다.
“네가 어떻게 그와 함께 배를 탔던 것이냐?”
“아버지가 죽음을 무릅쓰고 비밀을 밝혀냈거든요.”
“비밀이라면……?”
“정파에서 사라진 전설의 비전무공요.”
“…….”
모든 사람이 입을 꾹 다문 채 은설을 쳐다보았다.
묻고 싶은 것은 많은데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신니조차도 흥미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은설이 자진해서 간략하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아버지가 정은맹의 명을 받고 정파의 비전무공을 찾아다닌 일.
그러다 비전무공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 육지로 나왔다가 백마궁에 잡혀서 고문을 받았다는 것.
그 후 자신이 정은맹과 함께 비밀의 섬에 가기 위해서 양 노인이 모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것 등등.
천기회 사람들은 숨소리도 죽이고 은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말을 멈추기라도 하면 잡아먹을 것처럼 눈빛이 번뜩였다.
은설은 어차피 말해주기로 작정한 터라 무천과 관련된 몇 가지만 제외하고는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 철혈마련 사람들이 느닷없이 섬에 나타났어요. 전 그들에게 잡혀서 섬을 나왔다가 배에서 떨어졌죠. 사실 사력을 다해서 헤엄을 친 덕분에 주산도까지 온 것은 정말 행운이었어요.”
말이 끝나자, 상우관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그 섬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몰라요.”
“뭐? 몰라?”
상우관이 눈을 부릅떴다.
조광유와 신도평도 당장 탁자를 넘어갈 것처럼 앞에 바짝 붙었다.
은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섬에 가는 방법은 오직 양 할아버지만 알아요. 그런데 철혈마련 사람들이 양 할아버지를 죽였어요.”
조광유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다를 잘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곳에 가는 방법을 양 노인만 안단 말이냐?”
“저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다시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있거든요.”
은설이야말로 반드시 섬에 가고 싶었다.
오빠를 그곳에 홀로 남겨두고 혼자 나왔지 않은가 말이다.
‘섬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인데…….’
알고 보니 오빠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고수였다.
하지만 그 섬은 초절정고수들조차 빠져나가지 못했던 곳 아닌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조광유 등은 은설과 다른 이유로 아쉬움이 가득했다.
“으음, 좋다. 그럼 그 문제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다른 걸 물어보마.”
침음을 흘리며 말문을 연 조광유가 은설을 바라보며 물었다.
“황보수가 그곳에서 정말 정파의 무공을 얻었느냐?”
“필사해서 가져갔어요.”
“필사?”
“천지벽이라는 동굴 절벽에 적혀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래, 그랬지. 그럼 몇 가지나……?”
“아마 이십 가지는 될 거예요.”
“그럼…… 아직도 그곳에 무공이 남아 있느냐?”
은설은 고개를 저었다.
“황보 대협 일행이 모두 지웠어요.”
“아…….”
“으음…….”
안타까운 신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때 상우관이 다그치듯 물었다.
“너도 그 무공을 봤을 것 같다만. 얼마나 알고 있느냐?”
“황보 대협은 천지벽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어요. 물론 필사한 것도 보여주지 않았고요. 정파의 비전무공을 유출할 수 없다면서요.”
“정말이냐?”
상우관이 재차 다그치자, 은설의 목소리도 뾰족해졌다.
“생각해보세요. 대협 같으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사문의 비전무공을 보여줬겠어요?”
“후우우우.”
다시 한숨이 합창하듯 쏟아졌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마 자신들이었다 해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황보수가 그곳에 너와 너의 오빠라는 사람만 남겨 놓았단 말이지?”
“그래요.”
“너의 오빠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정말 순한 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