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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47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47화

47화

 

 

“명을 내려주시면 그를…….”

“훗, 네가 그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보느냐?”

겉으로 드러난 장검보다 무서운 게 품속에 숨겨진 소도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 나름이다.

“맡겨주시면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유궁, 그는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허튼 짓하지 말고 조용히 지켜만 봐.”

유궁은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예, 소성주.”

유궁은 그 대답을 끝으로 방에서 사라졌다.

천화광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가 차지한다.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아.’

 

천화광이 창문 밖을 보며 결정을 내린 그 시각.

우문소소는 아름다운 얼굴에 노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사공미미가 그를 따라다닌다고?”

“예, 공녀.”

“그는?”

“귀찮아합니다.”

“그래?”

우문소소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하긴 그딴 계집에게 홀릴 남자라면 내가 신경 쓸 필요도 없겠지.”

자경산은 ‘정말입니까?’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에 나올 그녀의 대답을 알기에 입을 다물고 열지 않았다.

공녀는 며칠 전의 냉철한 그녀가 아니었다.

아마 무천이란 자가 사공미미의 애교에 넘어간다면 많은 사람이 피를 보게 될 것이다.

갑작스런 집착.

오랜 세월 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그녀의 가슴에 느닷없이 꽂힌 화살은 불길처럼 뜨겁고, 핏빛처럼 붉었다.

자신이 손을 댈 수조차 없을 정도로.

그래서 더 안타깝고 화가 났다.

도대체 그딴 자가 뭔데 저리도 집착을 보인단 말인가.

‘공녀, 그는 공녀와 어울리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언제까지고 공녀의 그림자이고 싶었다. 낮이든 밤이든 그녀를 지켜주는 수호자가 되고 싶었다.

그가 궁중의 환관처럼 거세를 당하면서도 공녀의 그림자가 되기를 희망한 이유는 오직 그 때문이었다.

그 일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 자신의 적이었다.

그게 누구든!

 

***

 

대연무장에 마련된 이십 개의 비무대에서 치열한 예선전이 벌어졌다.

참가자 모두가 예선전을 치르는 것은 아니었다.

팔대마세와 마도십문 등 마도 대세력의 청년고수 오십여 명은 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으로 직통했다.

특혜라면 특혜였다.

하지만 일반무사 누구도 그들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들이 없기 때문에 예선전을 통과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무명무사들에게는 성공의 열쇠를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어떻게든 일차전을 통과하려는 그들의 눈물겨운 투쟁에 사람들도 감동해서 악을 쓰며 열광했다.

 

일차 예선이 끝난 것은 유시쯤이었다.

약 이백오십여 명의 이차전 진출자가 가려졌다.

혁무천과 엽기천, 강탁도 손쉽게 일차전을 승리했다.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동대안과 목량은 구경을 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 유시가 다 지나가고 석양이 질 즈음, 장대산이 철혈마련에 들어왔다.

비무대회로 한껏 달아올라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문을 들락거렸다.

정문위사들조차 무사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을 포기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장대산의 거대한 덩치는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해서 키는 다섯 치나 낮추었지만, 한 아름이 넘는 덩치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정문위사는 장대산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디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저기서.”

게다가 입도 벌리지 않았는데 흘러나오는 굵직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주눅이 든 정문위사는 장대산의 짤막한 말투에 기분이 상할 정신도 없었다.

“구경하시려고 오셨소?”

끄덕 끄덕.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인 장대산이 정문위사를 노려보았다.

“대형도 찾아야 해.”

“대형이 뉘신데……?”

“무천. 비무대회에 참가했어.”

“아, 그, 그래요?”

“들어가야겠는데. 안 돼?”

“드, 들어가쇼.”

정문위사는 후다닥 앞을 비켜주었다.

장대산은 씩 웃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위사는 장대산이 멀어진 후에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후우우우, 정말 겁나게 큰 놈이네.”

그때 뒤에서 날선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라더냐?”

정문위사는 깜짝 놀라서 재빨리 뒤돌아섰다.

말을 건넨 자가 다섯 자 거리에 서 있었다.

세모꼴 얼굴에 칼날처럼 뻗은 검미, 눈도 눈썹만큼이나 날카롭게 보이는 삼십 대 초반의 장한이었다.

그자를 본 정문위사는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정문위사 허중이…….”

“네 이름을 물어본 것이 아니다. 저 거인에 대해서 말해봐라.”

“무천이란 자를 찾아왔다 합니다.”

“무천?”

스물아홉에 대 철혈마련 마호당의 주인이 된 원도민은 이마를 찌푸렸다.

요 며칠 그 이름을 자주 들었다.

주로 팔대마세와 마도십문의 공자들 입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도대체 그자가 누군데 마도 대 세력의 공자들이 술안주로 삼는단 말인가.

“무천이란 자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객당에 있을 걸로 짐작됩니다.”

“그래?”

원도민은 객당 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덩치의 거한이 객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장대산은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자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인상이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로운 자였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자.

괜한 일로 엮이면 대형이 하려는 일에 안 좋은 영향이 미칠 수 있었다.

먼저 건들지만 않으면 모른 척하는 게 나았다.

다행히 그자는 객당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을 붙잡지 않았다.

 

객당에 도착한 장대산이 혁무천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객당 끝 쪽에 있는 방의 문이 열리더니 동대안이 나온 것이다.

“동 형님!”

동대안이 장대산을 보고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봐야 그 눈이 그 눈이었지만.

“어? 정말 들어왔네?”

“대형은?”

“이 방에 있어. 들어와.”

 

일찌감치 객당으로 돌아와 있던 혁무천이 밝은 표정으로 장대산을 맞이했다.

“어서 와라, 대산.”

장대산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꾸벅였다.

목량과 강탁, 엽기천은 장대산의 엄청난 체구를 보고 입이 절로 벌어졌다.

특히 강탁은 장대산의 덩치에 기가 질려서 투덜거리지도 못했다.

‘저게 사람이야, 곰이야?’

곰도 저렇게 크지는 않을 듯했다.

‘주먹이 내 대가리만 하군.’

“인사들 하지. 여기는 대산.”

목량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반갑소, 나는 목량이라 하오.”

“나는 대산.”

목량은 입도 열지 않은 장대산에게서 목소리가 들리자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신기한 듯 바라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서 천군으로 사셔야 할 분이 지상으로 내려오셨군요.”

“……?”

장대산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손톱만 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이후 강탁이 쭈뼛거리며 인사를 마저 나누자, 동대안이 장대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덩치는 곰도 울고 가게 만들 놈이 순진한 척하니까 더 이상하잖아.”

“흐으…….”

“들어올 때 별 일 없었어?”

“없었어. 근데 누가 나를 수상하게 생각했나 봐. 이곳으로 오는데 한참 쳐다봤어.”

“그래?”

장대산의 그 말에 혁무천의 눈매가 날카롭게 각이 섰다.

관심을 끌어서 좋을 것 없었다.

한편으로는 장대산의 거구를 보고 관심을 갖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어떻게 생긴 자인지 알아?”

“얼굴이 이렇게 세모로 생겼어. 나이는 동 형님보다 조금 적을 것 같고.”

장대산이 신경 쓸 정도면 고수라는 말이었다.

얼굴 생김새까지 들었으니 누군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동 형, 건너편 방, 빈자리 있지?”

“어. 두 명이 예선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떠났어.”

“그럼 대산이 그 방에서 지내면 되겠군.”

 

***

 

다음 날.

혁무천은 점심이 지난 미시 말 무렵에 이차전을 치렀다. 서너 번의 손짓발짓으로 끝난 싱거운 대결이었다.

엽기천도 비교적 수월한 이차전을 치렀다.

그러나 강탁은 이차전을 겨우 통과했다.

상대가 예상보다 강해서 어깨에 상처마저 입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삼차전에 나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장대산과 동대안은 목량과 함께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도 되었다.

“저 자식 눈 좀 봐. 저런 눈으로도 앞이 보이나?”

“우와! 저건 사람이야, 곰이야?”

이제 하도 듣다 보니 동대안도 그런 말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이차전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는데도 시간은 오히려 더 걸렸다. 그만큼 신중하게 대결을 벌인 탓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가고 밤이 되었을 때였다.

몇 사람이 객당으로 찾아왔다. 그 중에는 금가휘도 있었다.

그들은 곧장 혁무천을 불러냈다.

“무천, 안에 있는 걸 아네. 잠깐 나와 보겠나?”

혁무천은 금가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방을 나섰다.

우려했던 대로 백마궁에서 장대산을 알아본 듯했다.

어차피 피할 마음이 없었던 그는 장대산까지 불러냈다.

“대산. 나와 봐라.”

방에서 나온 장대산은 객당의 마당에 서 있는 자들을 보고 슬그머니 혁무천 뒤로 가서 섰다.

마치 팔뚝 굵기의 나무 뒤에 곰이 숨은 것 같았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혁무천이 먼저 물었다.

금가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장대산을 데리러 왔네.”

“대산을? 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대산을 데려오라는 아버님의 명령이 있었네.”

“그러니까, 왜 데려오라는 건데?”

“그야 알아볼 것이 있기 때문이지.”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여기서 물어봐. 데려갈 것 없이.”

“미안하지만 남 앞에서 물어볼 만한 것이 아니네.”

“고문을 했다고 들었지. 대산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더군. 그런데 데려가겠다고? 지난번에 고문을 허접하게 한 것도 아닐 텐데, 이번에는 팔다리라도 자를 생각인가?”

“그건…….”

금가휘도 그 말에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화를 낼 사람은 대산이 아닌가 싶은데.”

“…….”

“이쯤에서 그만두면 대산이도 그 일에 대해서 백마궁에 따지지 않을 거야. 나 역시 대산의 뜻에 따를 거고. 서로를 위해서도 그게 낫지 않을까?”

이어진 혁무천의 말에 금가휘가 이마를 찌푸렸다.

은근한 협박이었다.

계속 몰아붙인다면 자신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협박.

그래서 바로 맞받아치지 못했다.

무천이란 자에게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특정 세력에 속해있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적으로 삼기에는 껄끄러운 자였다.

적이 되면 피곤해질 것 같은 자.

금가휘가 고민에 빠져 있자, 옆에 있던 중년인이 대신 나섰다.

“소궁주, 이 일은 나에게 맡기시게.”

금가휘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일천마검(一天魔劍) 유곽.

쉰 살이 되지 않은 나이에 장로가 된 자.

그는 최근 백마궁의 장로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절정고수였다.

말상의 긴 얼굴에 칼날 같은 검미, 굳게 다문 얇은 입술과 차가운 눈빛.

남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그의 인상에선 독선적인 성정마저 엿보였다.

“소궁주께 들었지.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고 하더군. 어디 정말 본 궁을 무시할 정도의 실력인지 한번 보자.”

조롱기가 느껴지는 목소리.

그가 혁무천을 향해 걸음을 내딛으며 말했다.

한 걸음에 거리가 일 장 이상 줄어들었다.

그가 일으킨 기운이 벽을 형성하며 혁무천에게 밀려갔다.

혁무천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옷자락이 밀려드는 기운에 의해서 펄럭거렸다.

그 순간!

쉬아악!

유곽의 허리에서 솟구친 한 줄기 섬광이 허공에 구멍을 내며 벼락처럼 혁무천을 향해 뻗어갔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꿰뚫릴 것 같은 광경.

사람들은 숨도 쉬지 못했다.

“헛!”

“저저……!”

두어 사람이 기겁해서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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