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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4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9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44화

44화

 

 

확실치는 않다.

기껏해야 문장 하나만 같을 뿐.

하지만 장대산은 혈천여록 때문에 고문을 받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장대산이 찾으려는 물건은 혈천여록일 가능성이 컸다.

‘어이가 없군.’

장대산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표정을 보니 모르는 것 같다.

하긴 몰랐으니 백마궁에서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은 그런 물건을 본 적도 없다고 했겠지.

그가 마저 물었다.

“그럼 나머지 둘은 어디에 있지?”

다른 것도 아닌 혈천여록과 관련된 일일지 모른다.

자신의 손에서 태어난 기록, 자신의 손으로 없애는 게 낫지 않겠는가 말이다.

비밀이라 할 수 있는 대답인데도 장대산은 망설이지 않았다.

“만마의 무덤. 그리고 마천의 발원지.”

듣고 있던 혁무천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장대산이 말한 장소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마 길에서 뛰노는 어린아이를 붙잡고 물어봐도 바로 이름이 튀어나올 것이다.

철혈마련, 만마성, 마천문.

팔대마세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강력한 삼대세력.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네 할아버지는 백마궁 사람인데, 어떻게 그것을 그 세 곳에 숨길 수 있었지?”

“할아버지는 젊을 때 친구가 많았다고 했어. 그 중에는 여기 철혈마련이나 만마성, 마천문 사람도 있어.”

그렇다면 그들을 이용해서 숨겼을 수도 있다.

그들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장염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대산, 그것이 철혈마련 어디에 있는지 알아?”

장대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한 장소는 몰라. 그냥 ‘철혈의 진정한 힘이 뭉쳐있는 곳’이라고만 했어.”

순간 혁무천의 눈빛이 번뜩였다.

‘한상귀라면 그곳이 어딘지 알지도…….’

그가 한상귀를 떠올리고 있는데, 장대산이 넌지시 물었다.

“근데, 대형. 나, 계속 여기 있어야 해?”

“내일 오후에 철혈마련으로 들어와라. 객당으로 와서 나를 찾아. 아니면 안대동을 찾든가.”

“안대동?”

“이름을 뒤집어봐.”

황소처럼 눈을 멀뚱하게 뜨고 있던 장대산이 손톱만 한 이를 드러내 웃었다.

하지만 곧 울상이 되어서 말했다.

“백마궁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텐데, 괜찮을까?”

“계속 숨어서 살 것이 아니라면 이 기회에 정면돌파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

 

혁무천은 장대산을 마을에 남겨놓고 철혈마련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일 각 후.

술시가 막 지나갔을 때, 삼십 대로 보이는 무사가 혁무천의 방을 방문했다.

“무천이란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하던데.”

엽기천이 의아한 표정으로 혁무천 쪽을 바라보았다.

침상에 누워 있던 혁무천이 일어났다.

“내가 무천이오.”

“따라오게, 한상귀 장로님께서 찾으시네.”

혁무천은 별 말없이 그를 따라 방을 나섰다.

‘잘 됐군, 안 그래도 내일 만나보려고 했는데.’

 

한상귀가 있는 곳은 장로원이 아니었다.

삼십 대 무사는 혁무천을 객당 외곽에 있는 기다린 건물 끝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는 한상귀가 보였다.

그의 좌우 뒤쪽에는 무사 둘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흔들리는 촛불 때문인지 앉아 있는 한상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듯했다.

“이리 와서 앉게.”

한상귀가 손을 들어서 탁자 맞은편을 가리켰다.

혁무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겨서 의자에 앉았다.

“비무에 참가했다고 들었네.”

끄덕끄덕.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혁무천을 보고, 한상귀의 뒤쪽에 서 있는 호위무사들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러나 한상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 있나?”

“나중에 보면 알 거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군.”

한상귀는 혁무천의 실력을 알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팔대마세, 마도십문의 청년고수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참여한 대회다.

그들 중 자신을 힘들게 할 만한 고수가 몇이나 될까.

서너 명 정도?

이제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 괴물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장로의 말대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요. 생각하는 계시는 것과는 방향이 조금 다를 것이오만.”

“나는 즐기기만 하면 되겠군.”

“제대로 즐기려면 해야 할 일부터 해놓는 게 좋을 거요.”

“걱정 말게. 열심히 알아보고 있으니까. 곧 원하는 소식이 들려올 거네.”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린 혁무천이 한상귀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부른 것은 아닌 것 같소만?”

“물론이지.”

“말해보시오.”

“자네와의 약속을 이행하려면 나 역시 모험을 해야만 하네. 그래서 말인데…….”

<건곤붕산도 외에 하나를 더 주게. 그럼 나도 더욱 적극적으로 돕겠네. 그 여자 아이를 찾기 위해서도 추적에 일가견이 있는 자들로 최고의 수색대를 꾸려 영파로 보내주지.>

한상귀는 뒷말을 전음으로 했다.

무공과 관련된 사실만큼은 호위무사에게 밝혀지는 게 싫은 듯했다.

<욕심이 많으시군. 공연한 욕심이 명을 앞당긴다는 걸 잘 아실 텐데.>

<자네와 손을 잡은 순간 모든 걸 건 것이나 마찬가지네. 어쩌면 마련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챙길 수 있는 건 챙겨야 하지 않겠나?>

혁무천은 한상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는 한상귀다. 하지만 그의 눈 깊은 곳은 무거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수색대는 언제 보낼 거요?>

<내일.>

<좋소, 그럼 하나 더 드리지. 대신 나도 조건이 있소.>

<말해보게.>

<철혈집정고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시오.>

한상귀의 눈이 흔들렸다.

철혈집정고(鐵血集情庫).

철혈마련의 정보창고를 말한다.

그곳에는 지난 백 년간 철혈마련이 모아놓은 정보가 있다.

<그곳에는 왜……?>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소.>

<으으음, 그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네. 집정원의 대원 외에는 최소한 본 련에서 백인대의 간부급은 되어야만 출입이 허용되네.>

그것도 정보를 열람할 이유가 명확해야만 한다.

<그래서 장로에게 말하는 거요. 비밀스런 고급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니 생각해보면 방법이 있을 거요.>

<뭘 알고 싶은지 말해보게. 내가 아는 거라면 알려줄 수도 있네.>

<백 십여 년 전, 마천제가 왜 사라졌는지 아시오?>

<…….>

<그럼, 마천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

<그 보시오. 장로는 모르잖소?>

<그런 걸 왜 알아보려고 하는가?>

<뭔가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오.>

<흥, 마신에 대해서는 집정고에 들어가도 알아낼 수 없을 거네.>

<어쨌든 장로는 날 그 안에 들여보내주기만 하면 되오.>

한상귀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코를 씰룩거렸다.

하지만 욕심이 앞선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방법을 만들어보지. 그런데 집정고에 들어가려면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하네.>

<사유는 ‘강호의 흐름에 대한 특별조사’ 정도로 하면 어떨까 하오만.>

<미리 말하지만, 들어갈 수 있다 해도 자네가 열람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걸세.>

<장로는 그저 나를 정식으로 들여보내주기만 하면 되오.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겠소.>

<끄응, 알았네.>

혁무천은 전음으로 한 대화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아! 하나 더 물어봅시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에서 두 번의 질문에 대답을 못한 한상귀는 흠칫해서 혁무천을 쳐다보았다.

“뭘……?”

“철혈마련의 진정한 힘이 뭉쳐있는 곳을 꼽으라면 어디를 꼽을 수 있소?”

한상귀는 그 질문에 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한 것만 해도 반가웠다.

“굳이 한 곳을 꼽으라면 철혈마원이지.”

철혈마원은 련주인 우문광의 가족과 형제들이 기거하는 후원의 공식적인 이름이다.

그곳에는 우문가의 가족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호위하는 최정예의 호위대가 있었다.

“그렇군요.”

혁무천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몸을 돌렸다.

‘철혈마원의 누군가가 대산의 할아버지와 가까운 사이라면, 그곳에 숨겨놓는 게 가능할지도…….’

 

***

 

한상귀와 헤어진 혁무천은 어둠을 가로질러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수많은 생각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상귀가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자신의 행동이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다.

혈천여록을 찾는 일도 보다 수월해질 것이고.

‘무엇보다 은설의 행방을 찾는 일도 빨라지겠지.’

그것만으로도 대가는 충분했다.

문제는 한상귀가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는 무공에 대한 욕심만큼 목숨에 대한 욕심도 많은 자였다.

“이봐.”

객당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누군가가 그를 부르며 다가왔다.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경비무사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자들.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걸음을 멈춘 혁무천이 그들을 향해 말을 건넸다.

“나를 부른 거요?”

“맞아, 너를 불렀다.”

둘 중 좌측에 있는 자가 답했다.

오만함으로 뭉친 말투.

혁무천도 그에 맞게 대해주었다.

“나를 아나?”

이번에는 우측의 청년이 말을 받았다.

“이름 무천. 맞나?”

뾰족한 턱에 눈초리가 위로 올라가서 독하게 보이는 인상. 지닌 내공이 절정에 이르렀을 만큼 강하게 느껴지는 자다.

“맞아, 내가 무천이다.”

“들은 대로 건방지군.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따위 말투냐?”

혁무천은 잠깐 사이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고 냉랭히 말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법. 그대들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아나?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흥! 나는 귀천교의 호명추라 한다. 그리고 이쪽은 남천맹 맹주님의 둘째 아들이신 담사종 형이다. 이제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않겠지?”

귀천교와 남천맹.

팔대마세와 마도십문에 속해 있는 대문파다.

말투로 봐서는 일반무사가 아닌, 귀천교와 남천맹 주인들의 자식들인 듯했다.

그래봐야 혁무천의 눈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래서? 나는 그대들과 잡담 나눌 시간 없으니 본론을 이야기하시지.”

우측의 청년, 호명추가 치켜뜬 눈에 힘을 주고 으르렁거렸다.

“좋아, 원한다면 본론을 말해주지. 이 시간 이후로, 사공 소저나 문인 소저를 만나지 마라.”

뭐?

혁무천은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조소를 흘렸다.

사공미미와 문인여진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소문이 객당까지 들려왔다.

심지어 그녀들과 밤을 함께 보낸 청년만 해도 십여 명이나 된다는 이야기마저 돌았다.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난 또…… 걱정 마. 난 그 여자들에게 관심 없으니까.”

“정말이냐?”

“같은 말 두 번하고 싶은 생각 없어. 더 할 말 없으면 이만 가보겠다.”

“잠깐!”

좌측 청년, 담사종이 한 소리 외치고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서 혁무천의 앞을 막아섰다.

“이번에는 뭐지?”

“흥! 네놈의 건방진 주둥이에 훈계를 내려주겠다.”

냉랭히 코웃음 치며 말을 마친 담사종이 혁무천을 향해 쌍수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쏴아아아아!

휘두르는 쌍수에서 매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어지간한 굵기의 통나무는 스치기만 해도 부서질 듯했다.

호명추는 한쪽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입꼬리가 살짝 비틀려 있는 모습.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태도.

‘듣자하니 제법 강하다던데, 어느 정도인지 봐야겠군.’

이미 혁무천의 무위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 그다. 얕보면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도 남천문주의 아들인 담사종이 무명지배에게 패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 사이 담사종의 쌍수가 현란하게 어둠을 찢어발겼다.

당장이라도 혁무천의 검은 옷자락이 갈가리 찢겨질 듯했다.

파파파팡!

떠덩!

혁무천은 단순한 반격으로 상대의 공격을 방어만 했다.

경비무사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비무대회를 진행하다 보면 출전자들끼리 자주 싸웠다. 어쩔 수 없었다. 원수지간이 어디 한둘인가 말이다.

말로는 싸우지 말라고 했지만, 싸워도 제지하지 않았다.

누가 죽든 말든, 철혈무련에 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되었다.

문제는, 상대가 마도십문의 하나인 남천문 주인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부상이라도 입히면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커질 수 있었다.

‘귀찮게 하는군.’

그때 구경만 하던 호명추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소리 없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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