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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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43화
43화
귀에 익은 목소리다.
동대안과 다투었던 자의 사제라는 자.
얼굴이 곱상하던 그 자의 목소리.
“들어오게.”
혁무천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사형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저는 목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분은 제 사형으로, 강씨 성에 탁이라는 외자 이름을 쓰십니다.”
얼굴이 곱상한 자, 목량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나는 무천. 무슨 일이지?”
“무 형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 염치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혁무천은 목량을 빤히 쳐다보았다.
왠지 기이한 느낌이 드는 자였다.
애늙은이처럼 나이답지 않게 구는 행동도 그렇고, 사제가 사형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 속에 기이한 광채가 숨겨져 있었다.
“같은 객당에 있으니 가까이 지내는 거야 문제될 것 없지. 그런데…… 정말 그게 나를 찾아온 이유의 전부인가?”
목량의 얼굴이 설핏 상기되었다.
대충 둘러댈까 했다.
진짜 목적은 나중에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벌거벗고 빙판 위에 서 있는 기분.
상대는 어떻게 둘러대도 거짓이 통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목량은 이상할 정도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 뭔가?”
단도직입적으로 쳐오는 혁무천의 말투에 목량은 숨 쉴 틈도 없었다.
그래도 차분하게 말했다.
“무 형의 진실한 일행이 되고 싶습니다.”
“진실한 일행이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겠지?”
“받아주신다면, 목숨을 걸고 신의를 지키는 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나를 아나?”
“잘 모릅니다. 다만…… 범인(凡人)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오늘 처음 봤을 텐데,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그 말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강탁이 불쑥 끼어들었다.
“내 사제는 일반 사람과 다르오. 내 사제가 그렇게 봤다면 그런 거요.”
기다렸다는 듯 동대안도 한마디 했다.
“그럼 저 친구가 초감각이라도 지녔단 말이야?”
“맞아. 사부가 그랬어. 내 사제는 초감각을 지녔다고. 그러니 내가 사형이긴 해도 무조건 사제의 말에 따르라고.”
강탁의 퉁퉁거리는 말을 듣고 나서야, 혁무천은 목량을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 깊숙이 숨겨져 있던 게 그거였나?’
세상에는 가끔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감각을 지닌 사람이 태어난다.
어떤 때는 수 년 만에, 어떤 때는 수십 년 만에 태어날 때도 있다.
누구는 그에 대해 저주받았다고 하기도 했고, 누구는 신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다만 앞에 있는 목량이란 자와는 지닌 능력이 다를 뿐.
조부께서 적진에 뛰어들어 자신을 구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
몇 달 전의 의문이 하나 풀렸다.
‘그렇다면 혹시 대산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결코 신의 축복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축복보다 저주에 가까울 지도…….’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에게 없는 특이한 능력을 타고난 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러워하면서도 시기하고, 저주 받은 괴물 취급을 하기도 한다.
세상의 특이 능력자들은 대부분 그런 저주의 굴레를 쓰고 어린아이 때 제거되곤 했다.
혁무천은 씁쓸함을 삼키고 목량을 향해 말했다.
“정말 원한다면 받아주지. 대신 그 이상의 기대는 하지 마라.”
강탁은 불만이 많은 듯 인상을 잔뜩 썼다. 젖혀진 코에서 콧김이 씩씩거리며 새어나오는 듯했다.
뭐가 아쉬워서 저런 자에게 사정을 해?
반면 목량은 붉어진 얼굴로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형. 이제부터 대형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제 보니 잔머리도 잘 쓰는군. 말 한마디로 관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다니.”
고개를 살짝 쳐든 목량이 미소를 지었다.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칭찬은 칭찬이지. 대신 앞으로 잔머리를 굴리려거든,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대형.”
공손한 목량과 달리 강탁은 불만이 더욱 커졌다.
“쳇, 그럼 나는 뭐라고 불러야 하지?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그 말에 혁무천이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스물여덟.”
“그럼 나보다 적군.”
강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씨바, 저 얼굴에 나보다 나이를 더 처먹었단 말이야?’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아마 그가 서른여덟 살이라 해도 혁무천은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엽기천은 이각쯤 더 지났을 때 돌아왔다.
그는 동대안과 목량 사형제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상하게 여겼던, 눈이 작은 자도 함께 있는 것이다.
혁무천은 일단 인사부터 시켰다.
“인사하지. 이쪽은 동대안, 동 형. 그리고 이쪽은 목량과 강탁.”
세 사람이 각기 다른 눈빛으로 엽기천을 보며 포권을 취했다.
‘어제 봤던 그놈이군. 칼질 좀 해봤겠어.’
‘속에 화산을 품고 있는 사람이군.’
‘얼굴 빼고는 저놈보다 나은 것 같은데?’
엽기천도 마주 인사를 건넸다.
“엽기천이오.”
그는 잠깐 살펴본 후에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셋 중 누구도 자신보다 하수가 아니라는 걸.
심지어 눈이 작은 자조차도.
‘어디서 이런 자들이 튀어나왔지?’
혁무천이 그의 경악한 마음을 모른 척하고 질문을 던졌다.
“참가 심사에 몇 명이나 통과됐나?”
마음을 가라앉힌 엽기천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삼백여 명쯤 통과했네. 마감 때까지 하면 오백 명쯤 통과하지 않을까 싶네.”
엄청난 숫자였다.
오백여 명이 예선전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본선에는, 싸우지 않고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마도 대세력의 청년고수들까지 합해서 백여 명이 올라간다.
며칠 동안 함성과 고함이 철혈마련을 뒤흔들고 천하에 울려 퍼질 것이다.
마룡선발대회가 천하무림의 축제나 다름없다더니 허언이 아니었다.
“자넨 언제 할 건가?”
“내일.”
“참여하기로 결심을 굳혔나 보군.”
“은설을 찾으려면 유명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같더군.”
***
아침 차를 즐기던 우문소소는 눈빛을 반짝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경산의 말 때문이었다.
“무천이 비무대회 참가신청을 마쳤습니다.”
눈을 든 그녀가 호기심 담긴 눈으로 자경산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예선은 통과했겠지?”
“예, 공녀.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합니다.”
“아슬아슬하게?”
“예.”
“호호호호호!”
우문소소가 대소를 터트렸다.
자경산은 갑작스런 그녀의 웃음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공녀, 왜……?”
웃음을 멈춘 우문소소가 자경산을 빤히 보며 물었다.
“경산, 그의 실력이 정말 그거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
눈이 마주치자, 자경산이 급히 눈을 내리깔며 답했다.
“아닙니다. 실력을 감췄겠지요.”
“그럼 어느 정도 실력일 거라고 봐?”
“오십 위권 안에는 충분히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오십 위권? 훗, 나하고 내기할까?”
“…….”
“나는 십위 권에 걸겠어. 아니 팔대마룡 안에 들어갈 수도 있을 거야.”
우문소소의 말에 자경산이 눈을 살짝 들었다.
그도 무천이란 자가 강하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왠지 인정하기 싫었을 뿐.
“팔대마세나 마도십문의 공자들 외에도 난다 긴다 하는 청년고수들이 수십 명이나 됩니다. 설령 그가 예상보다 강하다 해도 십위 권 안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내기하자는 거야. 어때?”
“어떤 내기를……?”
“만약 경산이 이기면, 경산이 갖고 싶어 하는 그 물건을 주겠어.”
자경산의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정말…… 이십니까?”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갑자기 날카로워진 우문소소의 반응에 자경산은 재빨리 말을 수정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공녀님의 말에 의심을 품겠습니까. 너무 고마워서 실수를 했습니다.”
그제야 우문소소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어났다.
“고마워하는 마음은 나중에 표현해도 돼. 내기에서 이긴 다음에. 지면…… 경산이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해. 어떤 부탁이든.”
자경산은 왠지 모를 섬뜩함에 가슴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기호지세(騎虎之勢), 이제는 거부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공녀.”
***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인 시각.
민가의 방 안에서 열심히 책을 읽던 장대산은 바람이 뒤에서 불어오자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누군가가 뒤에 있었다.
아무리 책에 빠져 있었다 하나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다니.
동대안은 아니었다.
눈도 입도 작은 사람이 말은 많았다.
아마 그였다면 문을 열기 전부터 고주알미주알 입이 먼저 열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청객이라는 뜻.
신경을 곤두세운 장대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천천히 돌아섰다.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주먹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
여차하면 한방 당하더라도 반격을 가해야 했다.
“누구……?”
반쯤 돌아서며 묻던 그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이 황소 눈처럼 커졌다.
그의 일 장 앞에 서 있던 혁무천이 담담한 어조로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털썩.
대산이 격동에 찬 표정을 지은 채 넙죽 엎드렸다.
“주인!”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혁무천은 표정만 보고도 대산의 진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주인이란 말, 마음에 안 들어. 차라리 형이라고 불러라.”
“……형?”
“싫으면 말고.”
“아, 아냐! 그럼 대형이라고 부를게!”
장대산의 넙적한 얼굴에 꽃이 만발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그는 엄지손톱만 한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도 주인보다는 대형이 나았다.
혁무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낡은 의자에 앉았다.
“계속 그렇게 있을 거냐? 일어나 앉아.”
후다닥 일어선 장대산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 사이 혁무천의 시선이 탁자 위의 책으로 향했다.
의외로 반쯤 남은 책은 도덕경이었다.
“이걸 읽고 있었던 거냐?”
장대산이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수줍게 웃었다.
“어릴 때 할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그걸 읽어줬어.”
“네 할아버지가?”
“어. 내 속에 있는 천광살(天狂殺)을 억누르는 데는 도덕경이 최고래. 근데 마침 집주인의 방에 있길래 빌렸어.”
‘천광살’이라는 말에 혁무천이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대산이 지닌 특별한 능력은 단순한 괴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하늘의 광기와 살기가 그의 몸속에 잠들어 있었다.
장염이 그 사실을 알고 도덕경으로 그의 천광살을 억누르려고 했나보다.
장대산의 해맑은 표정을 보면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했다.
“할아버지가 남긴 걸 찾으러 왔다고?”
“할아버지가 그랬어. 하늘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세 곳에 나누어서 숨겨 놓았으니까, 스무 살이 되면 찾으라고. ‘철혈의 힘이 뭉쳐 있는 곳’이 그 중 하나야.”
혁무천은 장대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방금…… ‘하늘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나?”
“어. 대형도 알아?”
혁무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출렁거렸다.
‘설마……?’
그는 혈천여록의 첫 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하늘이 되면 원수들을 응징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여 나는 먼저 하늘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나노라!]
세월은 백 년이 넘게 흘렀지만, 그에게는 불과 몇 년여 전의 일이었다.
전율이 온몸을 치달렸다.
설마 장대산이 찾는다는 게 혈천여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