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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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77화
77화
반면 남궁무룡은 철혈무련 무사들이 후방으로 가지 못하도록 전력을 다해 막았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오!”
하지만 전력의 격차는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은맹의 방어망이 약해졌다.
결국 철혈마령대와 장로 중 몇 명이 방어망을 뚫고 안쪽으로 진입했다.
남궁무룡도 그때쯤에는 다른 명령을 내려야 했다.
“전력을 다해서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우문척은 정은맹의 수뇌부가 심심곡을 탈출하는 걸 알면서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 몇몇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세력과 공조해서 추살령을 발동해 제거하면 되니까.
지금은 무엇보다 수련생과 그들이 갖고 있을 정파의 비전무공을 찾아야만 했다.
“샅샅이 뒤져라! 놈들을 찾아!”
그 시각, 황보수와 청검기 무사들은 오십여 명의 수련생을 이끌고 계곡 안쪽에 있는 백 장 절벽의 비밀 통로를 통해서 심심곡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콰르르르릉, 콰광!
어느 순간, 엄청난 굉음이 계곡을 뒤흔들었다.
절벽 사이에 난 좁다란 통로의 양쪽 벽에서 거대한 바위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굉음과 함께 피어난 먼지구름이 가라앉을 때쯤 분노에 찬 우문척의 외침이 다시 한 번 계곡을 뒤흔들었다.
“이런 여우 같은 정파 놈들! 절벽을 돌아가라!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죽여라!”
***
등주를 출발한 혁무천 일행은 복우산이 보이는 남응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복우산은 그 크기가 남북으로 이백 리, 동서로 삼백 리나 되었다.
크고 작은 봉우리가 수백 개나 되는데다가 첩첩한 산세 사이로 수백 개의 계곡이 뻗어 있었다.
그곳을 모두 뒤지려면 며칠은 걸릴 터, 혁무천은 직접 찾으려 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택했다.
호랑이굴을 찾는 일은 사냥꾼이 제격인 법.
복우산을 잘 아는 자를 찾으면 그만큼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는 일단 대로에 있는 큰 객잔으로 들어갔다.
곧 점소이가 손님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달려왔다.
먼저 요리를 두어 가지 시킨 혁무천이 점소이에게 물었다.
“남응에서 복우산의 지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을 알려준다면 너에게 이걸 주마.”
어느새 그의 손바닥에는 반 냥짜리 은두가 놓여 있었다.
점소이가 눈을 반짝였다.
은자 반 냥을 얻을 수 있다면 작년에 사귄 여자친구의 은밀한 비밀도 말해줄 수 있었다. 하물며 사람 이름을 알려주는 것쯤이야.
“헤헤헤, 저쪽 건너편에 있는 진가 피혁점의 주인을 찾아가 보십시오, 공자. 복우산의 사냥꾼 치고 진가 피혁점과 거래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죠.”
혁무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혁점은 사냥꾼이 가져온 가죽을 거래하는 곳이다. 그곳의 주인이라면 사냥꾼들로부터 복우산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듣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복우산의 사냥꾼 중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혁무천 일행은 진가 피혁점으로 갔다.
혁무천은 장대산을 앞세웠다. 때로는 말보다 겉모습이 더 힘을 발휘할 때가 있었다.
피혁점 주인은 곰보다 더 큰 장대산의 위세에 짓눌려서 흥정할 정신도 없었다.
복화술처럼 입도 벌리지 않고 말하는 장대산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보, 복우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는단 말이지요?”
“어. 맞아.”
자식 같은 장대산이 반말을 해도 따지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라면…….”
때마침 사냥꾼 차림의 텁석부리 사십 대 중년인 하나가 피혁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냥꾼을 본 피혁점 주인은 십 년 만에 만난 친구를 본 사람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쭉 뻗었다.
“아마 저 친구가 복우산을 잘 알 거요.”
갑자기 손가락질을 당한 중년인은 멈칫했다.
그러다 혁무천 일행을 뒤늦게 살펴보고 표정이 비바람에 탈색된 바위처럼 굳어졌다.
고개를 돌린 혁무천이 그에게 다가갔다.
어깨를 움츠린 중년인은 경계하는 자세로 천천히 물러섰다.
“경계하실 것 없소. 부탁할 것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이 미천한 사냥꾼에게 뭘 부탁하겠다는 거요?”
“우린 복우산에 들어가려 하오. 여기 주인이 말하길, 귀하가 복우산을 잘 아신다고 하던데.”
“내가 아니더라도 사냥꾼이라면 복우산을 잘 아는 사람은 많소.”
“우리를 안내해준다면 대가는 충분히 드릴 거요.”
“정 그런 사람을 원한다면 소개시켜드릴 수도 있소.”
“나는 귀하가 해주었으면 하오.”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기왕이면, 무공이 뛰어난 사람이 나아서 말이오.”
“…….”
중년인은 입을 꾹 다물고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나를 아시오?”
“복우산을 잘 아는 사냥꾼. 그게 내가 아는 전부요. 그 이상 알아야 할 것이라도 있소?”
중년인은 곤혹함과 망설임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혁무천 일행을 둘러보았다.
정말 특이한 자들이었다.
처음 보는 거인, 눈알이 콩알만 한 장한,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거의 다 가려진 자, 그리고 같은 남자가 봐도 탄성이 나올 만큼 잘생긴 청년.
문제는 겉모습보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였다.
자신보다 한참 젊은 자들인데, 어느 누구 하나 얕볼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어디에 속한 놈들인지 몰라도 대단하군.’
무작정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중년인은 움츠린 어깨를 폈다.
처졌던 눈초리가 올라가고, 눈빛도 형형하게 빛났다.
그리고 말투도 달라졌다.
“고집이 센 친구군.”
그때 사냥꾼 복장을 한 세 사람이 피혁점 입구로 들어왔다.
중앙의 통로를 통해서 들어온 자 하나, 좌측과 우측의 통로로 들어온 자 둘.
그들은 곧장 혁무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동대안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무천, 어떻게 할까?”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으면 놔두시오.”
순간, 안으로 들어선 자들 중 둘이 박도를 빼들고, 하나는 품속에서 비수를 꺼냈다.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대산.”
혁무천이 이름을 부르자마자 장대산이 중앙의 통로로 다가오는 자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더 오지 마.”
입을 꾹 닫고 있는 장대산에게서 목소리가 들리자, 중앙의 통로를 통해 다가오던 자가 흠칫했다.
“역시 마도 놈들답게 괴상한 술수를 쓰는구나!”
나직하게 외친 그가 장대산을 향해 박도를 휘둘렀다.
쉬아악!
박도의 칼날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대기를 갈랐다.
장대산은 눈썹 한 올 끄떡하지 않고 손을 들어서는 덥석, 박도의 칼날을 맨손으로 잡았다.
박도를 휘두른 장한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진 순간, 장대산이 장한의 목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피할 틈조차 없이 커다란 솥뚜껑 같은 손이 상대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손을 떼라!”
“저 곰 같은 놈이!”
좌우의 장한 둘이 대경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동료의 목이 잡혀 있으니 함부로 공격하지도 못했다.
장대산이야 그들을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대형, 죽일까?”
“죽이지는 마라.”
아주 단순한 질문과 답변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두 손가락으로 개미를 잡고 누를까 말까 하는 말처럼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단순한 그 두어 마디에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었다.
“저 둘은 나와 추문이 맡을 거니까, 너는 잡고 있는 사람이나 신경 써. 손에 너무 힘주지 말고. 잘못하면 목뼈가 으스러질 수 있으니까.”
“운도 되게 없군. 차라리 나에게 걸리지. 그럼 저렇게 쪽팔리는 상황은 없을 거 아냐? 죽으면 또 몰라도, 쯔쯔쯔.”
동대안과 영추문은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은 채 좌우의 두 장한에게 다가갔다.
혁무천이 그들에게 말했다.
“공격하지 않으면 놔두시오. 괜히 죽여 봐야 시끄러운 일만 생기니까.”
중년인과 다른 두 장한은 태연한 그의 말투에 더 소름이 끼쳤다.
겨우 정신을 추스른 중년인이 혁무천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단순히 복우산의 길 안내를 원하는 것은 아닌 거 같네만.”
“길 안내만 해주면 되오.”
생각지 못한 대답인 듯 중년인은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알 수가 없군. 도대체 어딜 찾아가려고…….”
“우린 복우산 안에 있는 정은맹의 거점을 찾고 있소. 무사들의 수련장 말이오. 귀하라면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입이 살짝 벌어진 중년인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나는 그런 곳을 모르…….”
“이미 당했을지도 모르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지도 모르고.”
“무슨……?”
“철혈마련의 무사들이 그곳을 공격하기 위해서 몰려갔거든.”
“그게…… 정말인가?”
“물론이오. 어쩌면 만마성에서도 갔을지 모르고.”
“마, 만마성까지?”
끄덕끄덕.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혁무천이 다시 물었다.
“어떡할 거요, 안내 해주시겠소?”
중년인, 우화겸은 갈등이 일었다.
그는 정은맹 호경당 부당주로 복우산의 남쪽 순찰을 책임지고 있었다.
하기에 혁무천의 말이 사실이라면 계속 모른 척 할 수만은 없었다.
저자의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입술을 깨문 그는 결정을 내렸다.
“먼저 저 친구를 놓아주시게.”
혁무천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지체 없이 말했다.
“대산, 놓아줘.”
“어.”
장대산이 목을 놓고 물러서자, 장한이 일그러진 얼굴로 마른기침을 해댔다.
우화겸은 혁무천이 순순히 조건을 들어주자,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의 감을 믿는 수밖에.
“좋아, 내가 안내해주지.”
***
“한 발 늦었군.”
천화광은 시신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심심곡의 내부를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현장만 봐도 얼마나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시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던 중년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소성주.”
“싸움이 벌어진 지 얼마나 된 것 같소?”
“두 시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중년인은 염마당의 당주, 단월마도 위후승이었다.
천화광에 앞서 약 일각 정도 먼저 심심곡으로 진입한 그는 그 짧은 시간에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천화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싸움에서 밀린 정은맹은 도주하는 중일 것이고, 철혈마련이 그 뒤를 쫓고 있을 거요.”
정은맹이 승리했다면 시신만 남겨놓고 떠나지 않았을 테니까.
다만 철혈마련도 완벽하게 승리하지는 못한 듯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뜻.
그렇다면 아직은 기회가 있었다.
“우문척의 현재 위치는?”
“지금 정은맹 무리의 뒤를 쫓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만혼당이 꼬리를 밟고 있으니 곧 밝혀질 겁니다.”
만마성에서는 모두 사 개 당 이백 명과 네 명의 절정고수가 이번 일에 나섰다.
천화광은 그 중 염마당과 함께 움직였다.
“정은맹 무리의 도주 경로는?”
“서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거리는?”
“시간상 약 오십 리에서 칠십 리 정도 떨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쪽의 산세를 바라보던 천화광이 냉랭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진이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으려면 서둘러야겠군. 위 당주가 앞장서시오.”
“예, 소성주. 출발하라! 만혼당이 남겨 놓은 꼬리를 찾아!”
한편, 멀리 떨어진 능선에서 심심곡 안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혁무천 일행과 우화겸 일행이었다.
그들은 심심곡에 진입한 자들이 만마성의 무사들인 걸 알고 몸을 숨긴 상태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천화광이 직접 나섰군. 복우산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어.”
동대안이 말하고는 어깨를 후드득 털었다.
혁무천은 만마성 무사들이 안쪽으로 사라지자, 우화겸을 돌아다보았다.
“정은맹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 거라 생각하시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갔을 거요.”
“안내해주실 수 있소?”
우화겸은 정은맹의 비밀거점이 피로 물든 걸 보고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따라 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