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76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76화
76화
“나도 어디로 갈지 몰라.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또 볼 수 있겠지.”
“내 본명은… 신도소영이에요. 나중에 만나면 이번에 입은 은혜, 꼭 갚을 겁니다.”
“신경 쓸 거 없어. 거래를 한 것뿐이니까.”
몇 마디 말을 나누는 사이 거리가 사 장 정도로 멀어졌다.
그때 운가장의 정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나왔다.
그들은 정문 앞에 선 이척과 기윤하, 신도소영을 보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세 사람 중 가운데 서 있던 중년인이 포권을 취했다.
“오셨습니까, 이 대협.”
이척도 할 수 없이 혁무천에게서 시선을 떼고 돌아섰다.
그는 인사를 건네는 사십 대 중후반의 중년인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양가창의 대가로, 하남제일창이라고 불리는 양원응이었다.
“양 아우, 오랜만이네.”
“어서 들어오십시오. 안 그래도 도착하실 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척은 양원응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려 있는 걸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마도의 세력 몇 곳이 비밀리에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상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 그들이 왜……?”
“아무래도…… 저희가 얻은 정보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그 말을 들은 이척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멀어지는 혁무천 일행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 친구들도 그 일과 관련이 있는 건……?’
혁무천은 뒤에서 들리는 말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
‘그들이 움직였군.’
철혈마련과 만마성, 사도맹, 백마궁 등 팔대마세와 마도십문 중 최소 네 곳이 움직였다.
‘그런데 천기회에서도 그 일에 끼어들려는 건가?’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상황이 더 복잡하게 돌아갈 듯했다. 그래봐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자신은 그저 한상귀만 만나보면 될 뿐, 무공비급과 관련된 사안에는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그때 문득 든 생각.
‘아! 혹시 그들도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겠군.’
삼뇌자를 살해한 제삼의 세력이.
만약 그들이 나타난다면 자신도 생각을 달리해야 할지 모른다.
‘은설을 찾으면, 혈천여록의 나머지 부분부터 회수해야 할 것 같군.’
만마의 무덤, 마천의 발원지.
장염이 손자인 장대산에게 말해주었다는 곳.
아직 정확한 장소는 알지 못하지만, 알고자 마음먹으면 못 알아낼 것도 없다.
‘혈천여록의 나머지 부분을 찾아서 없애면, 구름 저편에 숨어서 신비놀이를 하는 놈들도 헛물만 켠 셈이 될 거다.’
***
태양이 떠오른 지 한 시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으아악!”
“놈들을 막아!”
“철혈마련 놈들이다! 어서 안에 알려라!”
복우산 깊은 계곡에서 비명과 악다구니가 터져 나왔다.
침입자들의 공격은 빠르고 강력했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공격이어서 치고 들어가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우문척은 바위능선 위에서 뒷짐을 진 채 공격상황을 내려다보았다.
현재까지는 계획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정은맹은 자신들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고, 공격이 시작된 지금까지도 아직 안쪽에서는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너무 싱겁군.’
옆에 서 있던 육순의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추멸단이 경비를 처리하는 동안 철혈마령대는 곧장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네. 이제 우리도 움직여야 할 것 같네만.”
“그래야지요. 장로들은 놈들의 수뇌부를 맡아주십시오.”
“알겠네. 모두 가세!”
정은맹 수뇌부에서 철혈마련의 공격을 보고받았을 때는 이미 계곡 입구의 일차 방어망이 무너진 후였다.
“도대체 놈들이 여길 어떻게 알고……!”
“수련 중인 기재들부터 피신시켜야 합니다.”
정파 기재들의 안전을 책임진 황보수가 간부들을 둘러보며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파에서 고른 기재는 두 곳으로 나누어져서 수련 중이었다.
그 중 절반인 오십여 명이 복우산에 있었다. 그들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황보수의 의견은 곧바로 반발에 부딪쳤다.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잔 말인가? 현재의 우리 전력이라면 쉽게 밀리지는 않을 거네. 한번 붙어보세.”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적이 쳐들어왔다고 해서 무작정 도주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그들 역시 오래 전에 잃어버린 무공을 익히던 터라 전에 비해 더욱 강해진 터였다.
하지만 황보수는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투지부터 앞세우는 말에 짜증이 났다.
“지금 우리가 철혈마련 하나 상대하자고 기재들을 키우는 겁니까? 뒷일을 생각해야지요.”
“누가 그걸 모르는가? 아무리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꽁지 빠지게 도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맞네! 우리도 이제 과거의 우리가 아니네! 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자고!”
수뇌부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나섰다.
“우리가 많이 강해졌다 해도 아직은 팔대마세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네. 황보 기주 말대로 일단 기재들부터 피신시키세. 그 아이들이 무사해야 미래도 생각할 수 있네.”
하얀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진 노인. 기산검협이라 불리는 유현악이었다.
수뇌부 누구도 그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는 정은맹 맹주인 사마진웅조차 깍듯이 대할 정도로 명망이 높은 노고수였다.
결정은 정은맹 부맹주로 복우산 비밀수련장의 책임자인 남궁무룡이 내렸다.
“음, 유 대협의 말씀에 따르지요. 황보 기주, 우리가 이곳에서 적을 막을 동안 자네가 그 아이들을 지휘해서 이곳을 빠져나가게.”
황보수가 결연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예, 부맹주.”
“비급을 철저히 챙기게나. 필사본 하나라도 적에게 넘어가서는 안 되네. 다 외운 사람은 지닌 비급을 없애는 것도 좋겠지.”
“명심하겠습니다.”
기재들의 수련장은 심심곡의 가장 안쪽에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삼면을 둘러싼 지형. 그 중앙은 일천 평 정도 크기에 평평한 분지였다.
게다가 절벽 아래에 제법 큰 동굴이 세 개나 있어서 거처로 쓰기에 적당했다.
수련 중인 제자들 중에는 이십 대 나이에 이미 절정에 이른 고수도 있었고, 대부분이 일류 수준에 도달한 상태였다.
수련장에 도착한 황보수는 수련생들을 불러 모았다.
“정의단원들은 모두 나와라! 각자 지닌 비급의 복사본도 갖고 나오도록!”
이미 심심곡 입구에서 울린 비명과 악다구니가 복우산 일대를 뒤흔들고 있던 터였다.
수련생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대부분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 중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준수한 청년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황보 대협!”
“마도의 무리가 침입했다. 우리는 비밀통로를 통해 이곳을 빠져나간다.”
황보수의 말에 몇몇 수련생이 반발했다.
“황보 대협, 적이 쳐들어왔으면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도의 무리를 척결하기 위해 수련하고 있는데 그냥 물러선다는 건 협의의 도에 맞지 않습니다!”
“위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너희들이 무사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잔말 말고 빨리 비급을 모두 챙겨서 모여라! 비급을 모두 외운 사람은 철저히 없애도록!”
수련생들이 불만을 삭이며 비급을 챙기고 있던 그 시각, 철혈마령대가 수뇌부들의 거처를 공격했다.
정은맹 무사들도 전력을 다해서 그들과 맞섰다.
정은맹 간부들의 숫자는 이십여 명. 경비무사와 호위까지 합한다 해도 백 명이 채 안 되었다.
반면에 적은 삼백 명이 넘었다.
하지만 정은맹 측은 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가 많아서 쉽게 밀리지 않았다.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자의 숫자는 추멸단과 철혈마령대 쪽이 더 많았다.
추멸단과 철혈마령대가 제아무리 최정예 무사대라 해도 절정고수를 일대 일로 상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격전이 점점 치열하게 전개될 때, 우문척이 장로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들이 합세하자, 팽팽한 형국이 순식간에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특히 우문척의 무위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정은맹의 부맹주이자, 정파의 오절 중 한 사람인 창천신검 남궁무룡이었다.
이제 이십 대 후반인 그가 남궁무룡을 단신으로 상대하면서도 밀리지 않는 것이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거리를 벌린 남궁무룡과 우문척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남궁무룡은 진심으로 경악했다.
“철혈마련에 잠룡이 숨어 있었구나.”
아직 서른 살도 안 될 것 같은 자가 내공이나 초식, 그 어느 것에서도 자신에게 밀리지 않았다.
자괴감이 들 지경.
그런데 놀란 것은 우문척도 마찬가지였다.
‘정파의 무공이 이 정도였나?’
상대가 정은맹의 수뇌 중 하나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전력을 다 쏟아냈는데도 우세를 점하지 못하다니.
사대천마라 해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거늘.
‘내가 너무 오만했나 보군.’
하지만 그는 아직 남궁무룡이 오절 중 하나인 검절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가만?’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래, 젊은 기재들뿐만 아니라 간부들도 비전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군.’
깨달음은 한순간이다.
더구나 오십 대 나이면 수십 년 동안 무공을 익혀왔다는 뜻 아닌가.
몇 달이면 기존의 실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난 몇 달 동안 그들의 활동이 뜸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우문척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은맹을 최대한 빨리 쓸어버려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저들은 강해질 것이고, 마도에 위협이 될 테니까.
결국 우문척은 숨겨놓았던 힘을 개방하기로 작정했다.
화르르르르.
그의 전신에서 기이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남궁무룡은 대치하고 있던 우문척에게서 정체 모를 기운이 피어나자 흠칫했다.
조금 전과 또 다른 형태의 기운이었다.
한 사람이 두 가지 기운을 지니고 있다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두 가지 기운을 다스리려면 한 가지 기운을 다스리는 것보다 집중이 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남궁무룡은 즉시 공세를 펼쳤다.
콰아아아아!
수십 개의 검영이 허공 가득 피어나서 우문척에게로 밀려갔다.
하지만 우문척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검을 뻗었다.
남궁무룡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몸의 움직임도 미세하나마 느려졌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공을 펼치기가 힘들었다.
‘이, 이게 무슨…… 설마 저자의 기운 때문에……?’
만일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대로 하여금 무공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기운이 있다니.
남궁무룡은 우문척의 반격과 충돌한 순간,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섰다.
콰과과광!
제대로 된 공격을 이어가지 못하다 보니 내부로 전해진 충격이 제법 컸다.
그나마 상대의 기운이 품고 있는 괴이함을 일찍 파악했기에 그 정도로 그칠 수 있었다.
‘으으음.’
신음을 속으로 삼킨 그는 다급히 공력을 끌어올려서 흔들린 진기를 안정시켰다.
우문척도 이마를 찌푸렸다.
‘능구렁이 같은 늙은이.’
약간의 이익을 보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승부를 뒤집기에 부족했다.
그렇다고 저자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놓고 목숨을 걸 이유도 없었다.
그가 잠깐 멈칫한 사이, 남궁무룡이 큰 소리로 외쳤다.
“방어를 하면서 뒤로 물러나시오!”
정은맹의 간부들도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였다.
이미 절반 가까운 인원이 적의 공격에 당해서 쓰러진 상황.
적을 하나라도 더 처치하고 죽을 것이냐, 아니면 몇 사람이라도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것이냐.
그들로서는 갈등이 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던 차에 떨어진 명령은 후자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들은 때마침 남궁무룡의 명이 떨어지자, 방어에 치중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철혈마령대와 장로들은 더욱 강하게 그들을 압박했다.
우문척이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이런! 이제 보니 수련생을 빼돌리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었구나!”
상황을 간파한 그가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
“안쪽으로 진입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