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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7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5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74화

74화

 

 

마족탕.

들은 적이 있었다, 무척 오래 되었지만. 무려 사십 년도 넘었으니까.

‘누가 마족탕을 찾지?’

그 안주 이름에 대해 말해준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마족탕은 무려 백 년 전에 없어진 안주의 이름이었다.

다만, 요리가 아니었다. 서로의 신분을 증명하는 암호일 뿐.

그의 할아버지는 마족탕을 말할 때마다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우리 풍마문이 세상을 뒤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었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런데 오늘, 마족탕을 아는 사람이 찾아왔다.

어떻게 하지?

마호걸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까짓 거, 부딪쳐보면 알겠지.’

여차하면 깨끗하게 처리해서 흔적을 없애버리지 뭐.

“가서 그 사람들은 사호실로 모셔라.”

점소이가 흠칫하며 마호걸을 쳐다보고 주방을 나갔다.

풍마루에는 방이 세 개밖에 없었다.

사호실은 몇 사람만이 아는 또 다른 장소였다.

 

혁무천 일행은 점소이를 따라서 풍마루 안쪽으로 들어갔다.

회벽으로 된 좁은 회랑이 구불구불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허름한 건물에 그토록 긴 회랑이 있다는 게 의아할 정도였다.

혹시 진법에 빠진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

한참을 걸어간 점소이는 회랑 맨 끝에 있는 방으로 혁무천 일행을 안내했다.

기이한 방이었다.

그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장식도 거의 없이 원목으로 된 탁자와 의자 두 개만 있었다.

한쪽 벽에는 말이 내달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붓질 하나하나에서 굉장한 힘이 느껴졌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점소이는 그 말만 하고 밖으로 나갔다.

곧 쿵, 하는 나직한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동대안이 밖을 보기 위해 문을 열려는데, 어떻게 된 건지 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 이거 갇힌 건가?”

영추문이 장대산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대산, 한번 부숴볼래?”

유난히 영추문에게 약한 장대산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곧바로 걸음을 뗐다.

그때 한쪽의 벽이 열렸다. 그리고 숙수가 그 안에서 나왔다.

“그 문은 폐쇄되었소.”

별 일 아니라는 듯 태연히 말한 그가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혁무천을 빤히 바라본 그가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오.”

혁무천은 담담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숙수가 맞은편에 앉아서 혁무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족탕은 어떻게 아신 거요?”

“아는 분에게 들었소.”

“이상하군, 그 안주는 아주 오래 전에 없어졌는데.”

“그럼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하오?”

“마두찜을 찾지요.”

말발탕에 말대가리찜.

정말 이름 짓는 솜씨하고는…….

“내가 아는 그 분은 이곳에 가서 마족탕을 달라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려. 우리 풍마루가 무슨 만물상도 아니고, 원하는 것을 어떻게 드린단 말이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정보요.”

“글쎄…….”

숙수가 모르는 척하려고 하자 혁무천이 말을 끊었다.

“풍마는 귀령이 원하는 것 세 가지를 들어주기로 약속했다고 들었소만.”

의아해하던 숙수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귀……령?”

“잊었다면 없었던 일로 하겠소.”

“그, 그게…… 정말…….”

그토록 침착하던 숙수가 말을 더듬었다.

‘귀령’은 그만큼 충격적인 단어였다. 자신이 아는 그 ‘귀령’인지는 모르겠지만.

혁무천이 그의 의문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아마 당신이 생각한 그 귀령이 맞을 거요.”

“으으으음…….”

“아주 오래 전의 약속이니 잊었다면 할 수 없지요.”

숙수는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한번 한 약속은 천 년이 지나도 지키오.”

“다행이오.”

“뭐가……?”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하면 이곳을 없애야만 하는데, 그런 수고를 덜었으니 다행 아니오?”

“조금 전에는 없던 일로 하겠다고…….”

“없던 일로 하는 것과 없애는 것은 다른 문제지요.”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혁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자, 숙수가 목구멍에 걸린 말을 겨우 내뱉었다.

“귀령의 후예요?”

“후예라고 하기는 뭐하고,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요.”

“후우우, 어쨌든 선조께서 귀령과 한 약속이니 지키겠소. 어디 말해보시오. 뭘 알고 싶은 거요?”

“정은맹의 총단 위치, 그리고 철혈마련의 대공자 우문척의 행방을 알고 싶소.”

“……!”

벼락이라도 맞은 듯 숙수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더니 파르르 떨렸다.

혁무천은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했다.

“우문척은 지금 이동 중일 테니 행적 정도만 알면 되오.”

마호걸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나보다.

모른다는 대답은 들을 마음도 없다는 투.

“내가 그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거요?”

“그대는 모를지라도, 풍마문은 알고 있을 거요.”

무심한 어조로 대답한 혁무천이 고개를 돌려서 숙수가 나온 벽을 바라보았다.

“안 그렇소?”

동대안과 영추문도 그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숙수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도대체 이자는…….’

그때였다.

벽이 다시 열렸다.

열린 벽 안에는 숙수와 거의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서 있었다.

숙수보다 얼굴의 주름과 하얀 머리카락이 조금 더 많긴 했지만, 그 외에는 쌍둥이처럼 닮은 노인이었다.

칠순 쯤?

노인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오자, 숙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비켜섰다.

“이 늙은이가 풍마문의 주인이라오. 죽기 전에 귀령의 후예를 만날 줄은 몰랐소.”

혁무천은 노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귀령의 후예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여기서 ‘내가 바로 대마천의 주인이자, 귀령자의 주인이었던 마천제다.’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귀령자에게 배운 것도 있으니 아니라고 할 수만도 없었다.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해서 아직 대답을 못 들었소만.”

노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풍마문은 그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소.”

“그럼 말해보시오.”

“말해드리는 건 어렵지 않소. 다만 약속은 지키되, 공짜로 해드려야 할 의무는 없으니 일정부분 대가를 받고자 하오.”

혁무천은 대가 때문에 말다툼 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를 드리면 되오?”

“우리가 원하는 대가는 돈이 아니오.”

“그럼?”

“나중에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시오. 대답 하나에 부탁 하나면 되오.”

“요즘은 부탁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군.”

“무슨……?”

“신경 쓸 것 없소. 뭘 할 때마다 부탁을 한 사람이 몇 있어서 하는 말이니까.”

우문척도 그랬고, 이척도 그랬다.

“그럼 그렇게 하시겠소?”

“전에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조건을 걸었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는 전제하에 들어주겠다, 라고.”

노인은 말꼬리를 달지 않고 흔쾌히 대답했다.

“우리 풍마문도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혁무천도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았다.

“좋소, 그럼 내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그러리다.”

노인도 더 끌지 않고 자신이 아는 만큼 대답했다.

“정은맹의 총단은…….”

 

혁무천 일행은 마호걸의 안내를 받아서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온 곳은 풍마루 입구와 분위기부터 완전히 다른 골목길이었다. 그곳에서는 풍마루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혁무천은 만족한 마음이었다.

완벽한 답변은 아니었지만, 원하는 만큼의 정보는 얻은 터였다.

‘복우산에 있단 말이지?’

풍마루주의 말에 의하면, 정은맹의 총단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맹주가 있는 곳이 곧 총단으로 일 년에 두세 번씩 바뀐다고 했다.

그런데 현재는 정은맹주가 복우산 끝자락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우문척은 현재 복우산 쪽으로 달려가는 중이오.”

 

동행은 장로 대여섯 명과 철혈마령대 삼백무사. 그리고 추멸단원 오십 명이 전부였다.

그들이 정은맹 본진을 노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을 노리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복우산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파의 비전무공을 차지하기 위해서.

거기다 혁무천이 만족한 또 하나의 이유는 풍마문, 그 자체였다.

그들의 정보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때 천하제일의 정보망으로 대마천을 곤란하게 했던 개방에게 뒤지지 않을 듯했다.

‘귀령자 영감은 풍마문이 하오문일 거라 했는데, 사실인 것 같군.’

그래서 혁무천은 그들에게 마지막 세 번째 주문을 했다.

은설의 행방을 알아봐달라는 것.

직접 달려간 엽기천 일행, 천기회, 그리고 풍마문까지. 이제 은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나선 곳이 셋으로 늘었다.

한상귀까지 합하면 넷이고.

혁무천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

 

한편, 혁무천 일행을 밖으로 인도하고 안으로 들어간 마호걸은 부친을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인지 의자에 앉아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걱정 되십니까?”

정은맹의 총단에 대한 비밀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우문척에 대한 정보였다.

자칫하면 이백 년을 버텨온 풍마문의 근거지가 한순간에 날아갈지도 모를 만큼 위험했다.

하지만 노인, 마풍삼은 그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 검…… 검병의 문양, 어디서 들어본 문양 같은데…….’

청년이 들고 있던 검의 검병에 기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용 같기도 하고, 눈을 치켜뜬 아수라 같기도 한 문양.

마풍삼은 그런 문양에 대해서 언젠가 들어본 듯했다.

너무 오래 되어서인지 몰라도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후우우우, 내가 나이 먹고 너무 민감한 것 아닌지 모르겠군.’

마풍삼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호걸이 그제야 다시 말했다.

“저, 아버님. 애들을 붙여서 그들을 지켜볼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라고 해라. 불구경하다가 다칠 수 있으니까.”

“예.”

“그리고 풍마령을 내려서 풍마십이영을 모두 모아라.”

마호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아무래도 그들이 필요할 때가 된 것 같다.”

“…….”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마풍삼의 주름진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바람이 불 것 같다, 아주 거센 바람이. 그것도…… 피 비린내 진득한 바람이 말이다.”

 

***

 

객잔으로 돌아간 혁무천은 씁쓸한 마음을 다스리며 침상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었다.

자정이 지나 축시가 다 되어갈 무렵…….

침상 위에서 운공조식을 하고 있던 혁무천이 슬며시 눈을 떴다.

스스스스스.

수억 마리 개미가 기어오는 듯 섬뜩한 미세음이 객잔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적어도 백 명 이상. 그것도 반 이상이 일류 수준의 고수들이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절정경지의 기운도 다섯 이상.

그 정도의 전력을 동원할 수 있는 곳은 이 일대에서 귀천교 뿐.

‘끈질기군.’

하긴 귀천교의 호교장로가 죽었지 않은가.

그냥 지나가면 타 세력의 비웃음을 살 터, 귀천교로선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묵과할 수 없을 것이다.

“무천, 자나? 아무래도 심상치 않네.”

밖에서 동대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도 밖의 상황을 눈치 챈 듯했다.

혁무천은 바로 지시를 내렸다.

“자고 있는 사람 있으면 깨워요.”

“알았네.”

 

혁무천이 방을 나섰을 때는 모두가 나와 있었다.

사방에서 밀려들던 기운은 이미 객잔 바로 밖에까지 다가와 있는 상태였다.

상황을 깨달은 이척과 기윤하는 초조한 표정인데 반해 신도영은 의외로 담담했다.

“일단 뒤로 가지요.”

혁무천이 앞장서서 객잔의 뒷마당 쪽으로 이동했다.

곧 객잔 앞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웬 놈들이냐!”

“어떤 새끼들이 우리 흑마파 구역에 들어오는 거야!”

들어올 때 상당수의 흑도무사들이 객잔에 있는 걸 봤었는데, 아무래도 그들인 듯했다.

하지만 곧 고함이 비명으로 바뀌었다.

“크억!”

“귀, 귀천교…… 으악!”

“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이다. 살려주시오!”

그때, 수십 명이 한꺼번에 뒷담의 담장을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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