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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73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73화

73화

 

 

“말해 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주겠네.”

천기회 입장에서는 두 번이나 빚을 진 셈.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이척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듣기로 천기회 사람들이 강남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하던데, 맞소?”

“그런 편이지.”

“그럼 혹시…… 주산도에도 영향력이 있소?”

“주산도?”

“동해의 주산도 말이오.”

“영향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네. 나도 한번 가본 적 있고…….”

이척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청년, 신도영이 입을 열었다.

“주산도에는 신니께서 계십니다. 그래서 안부인사 차 가끔 사람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산도는 왜 물으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낭랑했는데 남자치고는 가늘었다.

게다가 기다린 속눈썹과 갸름한 얼굴선. 결정적으로 목젖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보니 여자였군.’

혁무천은 청년이 남장여자라는 걸 간파하고도 모른 척했다.

“내 동생이 주산도에 있었다고 들었소. 그래서 혹시나 천기회 사람들이 그곳을 잘 안다면, 동생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 그곳을 나와 어디로 갔는지 찾아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본 거요.”

뿐만 아니라 마도의 무리로부터 지켜줄 수도 있을 듯해서 말한 것이었다.

“으음, 당장은 쉽지 않지만, 연락을 취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네. 그런데 찾으면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하는가?”

“남경 염천로의 호리자 구요라는 사람에게 말해두시오.”

엽기천 일행이 먼저 알아내면 좋지만, 천기회가 먼저 알아내더라도 그만큼 일찍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혁무천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 먼저 알아내도 좋았다.

“알았네, 그렇게 말해두지. 그런데…… 나도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이척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혁무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막연했던 한 시진 전과 사정이 달라졌다.

천기회가 나서준다면 자신이나 엽기천 일행이 찾는 것보다는 빠를 가능성이 크다.

우문척과의 신경전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서는 셈이 된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거나,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니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

“일단 말해보시오. 듣고 난 다음에 결정하겠소.”

“우린 등주로 가는 길인데, 생각지도 못한 귀천교와의 충돌로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되어버렸네. 그곳까지만 동행해주게나.”

등주는 서쪽에 있다.

자신들이 가는 방향과 같았다. 나중에는 어느 쪽으로 틀어질지 모르지만.

게다가 이척이 말했다.

“사실 자네에게 주겠다고 한 천 냥도 그곳에 가야 줄 수 있네.”

혁무천이 이마를 찌푸렸다.

천 냥을 못 받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안 줄 경우 나중에 천기회를 찾아가서 받아내면 되니까.

그래도 어쨌든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돈도 없으면서 주겠다고 했단 말이군.”

“미안하게 됐네.”

이척이 무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신도영이 나섰다.

품속에 손을 넣어 뭔가를 꺼낸 그가 말했다.

“돈 대신 이걸 드리겠어요.”

이척이 깜짝 놀라서 그를 말렸다.

“소…… 공자, 그건 안 되네. 등주에 가면 섭섭하지 않게 이자까지 해줄 수 있으니 그건 넣으시게.”

“약속을 한 이상 지킬 수 있으면 지키는 게 좋아요. 그리고 도움을 청하려면 더더욱 거래관계가 깨끗해야 하고요.”

틀린 말이 아니니 이척도 강하게 말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도영이 내민 것은 절대 남에게 넘겨주면 안 되는 물건이었다.

“무 형, 이걸 큰 약방에 가져가면 천 냥 이상 받고 팔 수 있을 거요. 임자를 만나면 이천 냥도 받을 수 있죠. 이걸로 그 빚과 등주까지의 동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혁무천은 신도영의 손바닥 위를 바라보았다.

가로세로 두 치, 높이 한 치 정도의 작은 갈색상자가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일단 신도영의 손에서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 와중에 혁무천의 손가락이 신도영의 하얀 손 위를 살짝 스쳤다.

신도영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혁무천은 갈색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지름이 한 치가 조금 안 되는 둥근 환이 들어 있었다.

그곳에서 화한 약향이 퍼졌다.

영추문이 코를 킁킁거렸다.

“단약인가 본데? 냄새 좋네.”

“태금신단이에요. 천목산의 태금선사께서 십 년 동안 연단해서 오직 열 알을 얻었다는 신단이죠. 만병에 효과가 있고, 무인들의 내공 증진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해요.”

혁무천은 아무리 좋은 단약이라 해도 은자 천 냥이나 나갈까 싶었다.

하지만 신도영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 그럼 이걸로 대신하지.”

이척이 다급히 말했다.

“무 공자, 등주에 가면 이자까지 충분히 주겠네. 그러니 그때까지는 보관한다 생각하시고 사용은 하지 마시게.”

귀하긴 귀한 단약인 모양이다.

혁무천은 그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상자를 품속에 넣었다. 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은설을 찾으면 복용시켜야겠군.’

 

“음식 사왔네.”

반 시진쯤 지났을 때 동대안과 장대산이 돌아왔다.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장대산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본래 없던 커다란 보따리가 장대산의 등에 메어져 있었다.

영추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대산의 등에 있는 건 뭐요?”

“음식하고, 노숙을 위한 간단한 물품들이네. 앞으로 노숙할 때가 가끔 있을 거 같아서 샀지.”

동대안이 대답하는 동안 장대산이 보따리를 내려놓고 풀었다.

그러려니 했던 사람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커다란 보따리의 반이 음식인 듯했다.

저걸 누가 다 먹을까 싶을 정도.

의외라면 동대안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는 것이다.

“음식은 내가 산 거 아니야, 대산이 샀지.”

장대산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장대산이 두 번 집어 먹는 양이 일반 사람의 한 끼는 될 듯했다.

결국 이십인 분의 음식이 한 끼에 없어졌다. 내일 아침에 먹고 나면 남는 것도 없을 듯했다.

“끄응, 도대체 이 먹보가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동대안이 신음까지 흘리며 한소리 했다.

장대산도 할 말은 있었다.

“매일 이렇게 먹으면 돼지 되게?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이렇게 먹어. 특히 힘을 많이 쓰기 전에는 많이 먹어두어야 해.”

‘지금도 돼진데 뭐.’

동대안은 장대산을 흘겨보고는, 갈대를 평평하게 눕혀놓은 곳에 누웠다. 그러고는 부양에서 사온 두꺼운 천으로 몸을 덮었다.

그 후 반각쯤 지났을 때,

눈을 번쩍 뜬 그가 벌떡 일어났다.

말은 혁무천이 먼저 했다.

“아무래도 밤길을 걸어야 할 것 같군.”

이척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적인가?”

“그런 거 같소. 십 리쯤 떨어진 곳까지 왔소.”

시, 십리?

그 먼 거리의 기척을 알아챘다고?

“…….”

 

***

 

이창에 도착할 때까지는 별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귀천교의 추적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추적을 포기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장로가 죽었지 않은가.

귀천교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날 저녁.

이창에 도착한 혁무천과 이척 일행은 객잔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 요리도 객방으로 시켰다.

이창은 귀천교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많은 사람 앞에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것 없었다.

“무 형은 어느 곳에 속해 있습니까?”

식사를 거의 다 마쳤을 때, 신도영이 넌지시 물었다.

이척과 기윤하도 슬쩍 눈을 들고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 곳에도 속해있지 않아.”

“그럼 혼자…… 아니, 몇몇 일행 분들하고만 지내시는 겁니까?”

“현재까지는.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

무뚝뚝한 무천의 대답에도 신도영은 별 불만이 없는 듯 미소마저 띤 표정이었다.

“제…… 형도 제법 잘 생겼다고 자부하는데, 무 형에게는 비교할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남자가 잘 생겨서 뭐해, 귀찮기만 하지. 시답잖은 소리 말고 식사나 해.”

혁무천이 쏘아붙이듯 말하는데도 신도영은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질문을 해댔다.

“등주에 도착하고 난 후에는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뭘 하든 신경 쓸 것 없어.”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천기회에 들라고?”

“그렇습니다.”

“정의를, 협의를 위해서?”

“강호에서 살아가는 남자라면 한번쯤 협의의 마음을 품어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너나 해. 아니지, 너는 하기 어렵겠군.”

“예?”

“강호에서 살아가는 남자가 할 일이라며?”

“…….”

신도영은 무슨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이더니, 곧 말뜻을 깨닫고 안색이 발그레해졌다.

넌 남자가 아니잖아. 그런 뜻.

“아셨……습니까?”

“그럼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나?”

여전히 툭툭 던져진 반말투에 신도영은 입술을 슬쩍 삐죽였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그 모습에 동대안이 눈을 깜박였다.

“난…… 말로 하는 협의는 믿지 않아.”

나직이 말한 혁무천은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으로는 협의를 말하면서 행동은 정반대로 하는 자들이 너무 많거든.”

정의, 협의. 그런 말을 외치는 자들에게 부모님과 형제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입으로 정의니, 협의니 떠드는 것은 한 푼의 가치도 없었다.

정은맹만 해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의롭지 못한 일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자들 아닌가 말이다.

‘나는 내가 믿는 것만 믿는다.’

신도영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혁무천의 눈을 보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저갱처럼 깊은 눈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뭐 저런 눈이 다 있어?’

 

***

 

방에서 나온 혁무천은 일행과 함께 객잔을 나섰다.

이창은 비록 성이 아니긴 하나 상당히 큰 마을이었다.

그럴 만한 것도, 이창은 관의 주요 역(驛)이었다.

사방팔방으로 모든 소식이 전해지는 곳.

인근에는 커다란 목장이 몇 개나 있어서, 말을 취급하는 상단들 치고 이창에 지부가 없는 곳이 없었다.

혁무천이 이창에서 정보를 얻으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중원 각지의 소식을 알기에는 이창만 한 곳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시시콜콜, 자신에게 강호를 가르치려 했던 귀령자가 한 말도 있었다.

혁무천은 번화한 거리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거리 끝에는 상당히 큰 마방이 있었다.

족히 백여 마리를 한꺼번에 줄 세울 수 있는 마방의 한쪽에는 이층으로 된 큰 건물이 서 있었다.

혁무천은 그 건물을 돌아서 뒤쪽의 골목길로 들어갔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낡은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주루가 보였다.

혁무천은 깃발에 적힌 글자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풍마루(風馬樓)]

‘아직도 있군.’

 

“하남성 이창에 가면 대웅마방 뒤편에 풍마루라는 주루가 있소이다. 혹시라도 중원의 사정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그곳에 가보시오. 이 늙은이의 옛 친구가 주인인데…….”

 

귀령자가 그렇게 말했다.

아마 지금은 귀령자의 친구가 없을 것이다. 백칠십 살이 되도록 살아 있다면 또 몰라도.

주렴을 걷고 주루 안으로 들어가자, 십여 명이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술집답지 않게 조용했다.

혁무천 일행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곧 스무 살쯤 되는 점소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처음 오신 분들 같은데, 우리 풍마루는 술이 마호주밖에 없습니다요.”

점소이 치고는 딱딱한 말투였다.

혁무천도 무뚝뚝하게 답했다.

“나도 알아. 한 병 가져오고, 안주는 마족탕(馬足湯)으로 줘.”

점소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족탕? 그런 건 없는데요?”

바뀌었나?

혁무천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혹시 몰라서 다시 말했다.

“주인에게 되는지 물어봐.”

점소이가 연신 갸우뚱거리며 주방으로 갔다.

 

“마족탕?”

“예, 그렇게 말했습니다요. 없다고 했더니 물어보라고…….”

풍마루의 주인이자 숙수인 마호걸은 이마를 찌푸렸다.

처음에는 그도 ‘그딴 게 어디 있어? 없다고 해!’하고 점소이를 다그치려 했다.

그런데 뇌리 저편에서 한 가닥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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