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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72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2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72화

72화

 

 

혁무천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척에게 고정되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척이 다급히 말했다.

“은자 천 냥을 주겠네.”

적지 않은 돈이었다. 아니 적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엄청난 거금이었다.

“나쁘진 않군. 은자 천 냥에 부탁을 하나 들어준다면 생각해보겠소.”

이척으로서는 계산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말해보게.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지.”

그때였다. 갈의 무사들 중 맨 좌측에 서 있던 삼십 대 장한이 노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애송이! 세상 살기가 싫은가 보구나! 죽고 싶다면 먼저 죽여주마!”

단숨에 오륙 장을 좁히며 짓쳐든 그가 혁무천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쉬아아앙!

그의 도세를 따라 대기가 쩍쩍 갈라졌다.

근처의 갈대도 산산이 잘라져서 허공에 흩날렸다.

순간, 혁무천이 그자의 도세 속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엇? 하며 경악성을 내뱉음과 동시!

흐릿해진 혁무천이 도세를 그대로 통과하며 손을 들었다.

손 그림자가 네다섯 개로 늘어나는가 싶더니,

쾅!

일성 굉음과 함께 공격했던 삼십 대 무사가 훌훌 날아가서 나뒹굴었다.

일류고수 하나를 가볍게 처리한 혁무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잊지 마시오, 그 약속.”

그러고는 갈의 무사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동대안과 장대산, 영추문이 약속이라도 한 듯 뒤따라갔다.

사십 대 갈의 중년인이 눈을 치켜뜨고 코웃음 쳤다.

“흥! 네놈들이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감히 본 교를 적대시 하다니.”

교(敎).

안휘에서 ‘교’라는 이름을 쓰는 단체는 많지 않다. 초절정 경지의 고수가 속해 있는 교라면 더더욱 적어서 오직 하나밖에 없다.

팔대마세 중 하나인 귀천교.

“어린놈아,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어서 저놈들을 잡는 일을 도와주면 용서해주마.”

혁무천은 중년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동 형, 처리할 때 확실하게 처리하시오. 살아 있는 자가 있으면 귀찮아질지 모르니까.”

“당연하지. 나도 귀천교 놈들이 꼬리에 달라붙는 건 싫네.”

“이 죽일 놈들이……!”

노화가 일렁이는 눈으로 혁무천 일행을 노려보던 중년인이 냉랭히 소리쳤다.

“죽여라!”

갈의 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박차고 공격에 나섰다.

동대안이 콩알 같은 눈으로 그들을 빤히 보며 씩 웃었다.

툭.

검병을 쳐올리는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이 경쾌했다.

핑!

화살이 시위를 떠날 때나 날 법한 소음이 들리고, 한 줄기 벼락이 일직선으로 허공을 꿰뚫었다.

그의 꼬챙이 검은 공포였다.

얼마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고통을 느꼈다 싶었을 때는 이미 목이나 심장에 구멍을 낸 후였다.

영추문도 상대를 향해 마주 몸을 날렸다.

상대가 든 무기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주먹이 찰나에 수십 개로 늘어나서 허공을 가득 메웠다.

갈의 무사가 흠칫해서 눈을 크게 떴을 때는 이미 영추문의 주먹과 발이 수십 번이나 오간 후였다.

물러날 틈도 없었다.

퍽! 퍼벅! 뻐걱! 우둑!

바짝 달라붙은 영추문은 부위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두들겼다.

그 바람에 상대는 뼈가 열두 군데나 부러졌다.

팔만 다섯 군데가 부러졌고, 다리도 네 군데가 부러졌다. 나머지 세 군데는 양쪽 어깨뼈와 목뼈였다.

결국 그자는 관절이 아무렇게나 꺾인 인형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꺼꾸러졌다.

반면 장대산의 공격은 굵고 힘이 있었다.

머리통만큼 커다란 주먹은 바윗덩이나 다름없었다. 손바닥은 무쇠 솥뚜껑 같았다.

그에게 맞은 자는 가슴뼈가 함몰되고 머리가 반쯤 우그러졌다.

한 대, 또는 두 대.

그것으로 끝이었다.

장대산도 상대의 무기에 두어 번 맞았지만, 그저 옷이 찢어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격전이 벌어지고 스물을 셀 시간이 지났을 때에는 혁무천과 중년인만이 대치하고 있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갈의 중년인은 조금 전과 달리 경악에 물든 표정이었다.

목소리도 갈라져서 가늘게 떨렸다.

혁무천은 상대의 말을 짧게 받아쳤다.

“알 것 없어. 어차피 저승에 가면 다 잊을 테니까.”

“훗, 이 장위오가 길가의 똥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다니, 강호의 친구들이 알면 배꼽을 잡고 웃겠구나.”

혈마귀검 장위오.

귀천교의 십이 호교장로 중 하나.

그는 겉보기보다 나이가 열 살은 많았다. 그리고 무공은 혁무천의 손에 죽은 왕효에게 뒤지지 않은 마도의 고수였다.

“당신이 누구든 달라질 것은 없어. 나도 갈 길이 바빠서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은 없거든.”

혁무천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며 검을 잡았다.

꼬리를 달지 않으려면 확실하게 처리해야만 했다.

최대한 빨리.

어쩌면 또 하나의 생명줄이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 문제는 나중에 걱정해도 되었다.

“이 건방진 놈이……!”

장위오가 더 참지 못하고 검을 내질렀다.

이 장이나 떨어진 거리에서 공격하는데도 검기가 살을 에는 듯했다.

그러다 결국, 그의 검첨에서 검푸른 색의 칙칙한 강기가 형상을 이루며 쭉 뻗어 나왔다.

깨달음이 없으면 절정고수도 펼칠 수 없다는 검강.

하지만 상대가 혁무천이라는 게 그에게는 불행이었다.

혁무천은 다가오는 상대의 공격을 보며 검을 뽑았다.

천망검이 검신을 반쯤 드러냈을 때, 한 줄기 시퍼런 번개가 폭발하듯 뻗어나갔다.

대천룡구검세 제 일식, 천룡일기세 중 두 번의 변화로 이루어진 발검.

장위오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서 혁무천의 검격을 막았다.

쾅!

검끼리 부딪쳤다고 보기 힘들 정도의 굉음이 터져 나오고,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장위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혁무천이 물러서는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두 번째 공격을 펼쳤다.

마룡단천세. 대천룡구검세 중 세 번째 초식.

검기가 용틀임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허공이 갈라졌다.

장위오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방어 검막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첫 번째 충격이 가시지 않은 터라 촘촘해야 할 검막에 틈이 생겼다.

혁무천의 검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며 가공할 검기를 쏟아냈다.

막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폭사하듯 뻗어나간 검기가 장위오를 꿰뚫고 지나갔다.

움찔한 장위오의 눈이 커졌다.

일그러진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 어떻게…… 그런 검이…….”

말을 더듬던 그가 주춤거리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

한 걸음 물러설 때마다 몸이 흔들렸다.

그러고는 세 걸음 째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대체… 너는… 누구……?”

혁무천이 검을 거두며 말했다.

“저승에 가면 아마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거다. 이미 한번 염라대왕을 물 먹인 적이 있거든.”

딸칵.

그가 검을 검집에 꽂았을 때, 장위오의 몸이 서서히 꼬꾸라졌다.

뒤늦게 가슴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이척은 자신이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 오한이 일었다.

‘맙소사! 혈마귀검이 저리 허망하게 당하다니……!’

직접 보았음에도 믿기가 힘들었다.

범상치 않은 자라는 건 알았지만, 설마 혈마귀검을 단 몇 초식만에 쓰러뜨릴 줄이야!

경악할 광경을 보여준 그자가 우뚝 서 있었다.

눈을 반개한 채 서 있는 그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진 듯 보였다.

충격을 받은 모습.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도 내상을 입은 듯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오늘 일은 강호를 진동시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난 장위오는 귀천교의 장로가 아닌가 말이다.

그래도 그는 나았다.

부상을 당한 기윤하는 손발이 떨리는 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무천, 귀천교 놈들이 오기 전에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네.”

동대안이 다가가며 말한 이후에야 혁무천이 반개한 눈을 떴다.

천천히 숨을 길게 들이쉬며 들끓은 내력을 안정시킨 그는 검을 거두고 몸을 돌리며, 자연스럽게 목을 쓸어 만졌다.

‘다행히 없어지지는 않은 것 같군.’

생명선이 손 끝에 걸렸다.

맨 위쪽에 있는 선이 느껴졌다.

본래의 위치에 그대로 있었다.

아래쪽보다는 약한 듯했지만, 없어지지 않은 것이 어딘가.

무명도에서의 수련이 헛되지 않은 듯해서 기분이 한결 나아진 그는 이척을 바라보았다.

“남은 이야기는 자리를 옮긴 후 합시다.”

 

혁무천은 계획을 바꾸어서 부양 성내로 들어가지 않았다.

일대에 귀천교 무리가 있다면 보나마나 부양부터 들쑤실 테니까.

마침 부양 일대는 회하로 들어가는 물줄기가 그물처럼 뻗어 있어서 크고 작은 호수가 많았다.

격전이 벌어진 곳에서 이십 리쯤 가자 제법 운치가 있는 작은 호수가 나왔다.

관도에서 멀지 않은 거리.

게다가 우거진 갈대로 인해 안쪽이 보이지 않아서 하룻밤 노숙하기에 적당했다.

혁무천과 이척 일행은 호숫가에 자리를 잡고 모닥불을 피웠다.

호숫가에 말라죽은 나무뿌리가 많아서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혁무천은 동대안과 장대산을 부양으로 보내서 음식을 사오게 했다. 어쨌든 식사는 해야 하니까.

이척은 일단 기윤하의 부상부터 치료했다. 치료라고 해봐야 상처에 금창약 가루를 뿌리고 천으로 감싼 게 전부였지만.

대충 기윤하의 상처를 치료한 그가 혁무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는 이척이라고 하네. 먼저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군.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나?”

“무천이라 하오.”

“나는 기윤하라 하오. 도와줘서 고맙소.”

기윤하마저 인사를 건네자, 청년도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전 신도……영이라 합니다.”

역간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혁무천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귀천교와는 왜 싸운 거요?”

혁무천이 묻자, 이척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상을 지나던 중에 사소한 시비가 벌어졌네. 그 와중에 대여섯 놈을 때려눕혔지. 그걸로 끝난 일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정파인이라는 걸 알고 근처에 있던 장위오를 데려왔지 뭔가.”

정말 사소한 시비였다.

거들먹거리는 꼴이 역겨워서 째려본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놈들이 심심한데 잘됐다는 듯 시비를 걸었다.

참고 지나가려고 했다.

아마 자신들이 호위하고 있는 신도영을 건들지만 않았어도 그냥 지나갔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아이처럼 신도영을 건드렸다.

 

“곱상하게 생긴 놈인데? 교 당주께 데려다주면 좋아하겠군.”

“맞아. 그 양반, 예쁘게 생긴 놈이라면 남자건 여자건 다 좋아하지. 낄낄낄낄.”

 

그러고는 무작정 신도영을 끌고 가려 했다.

결국 기윤하가 발끈해서 노성을 내질렀다.

당연히 욕을 진하게 섞어서.

그 바람에 싸움이 벌어졌다.

기윤하는 폭발한 감정을 상대에게 모두 풀어냈다. 아마 서너 명은 살아난다 해도 몇 달 동안 제 생활을 할 수 없을 듯했다.

그리고 다음 날, 장위오가 귀천교 무리를 이끌고 추적해왔다.

“……알고 보니 귀천교 분타 놈들이었지 뭔가.”

간단하게 설명을 마친 이척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말을 돌렸다.

“이제 부탁하고자 하는 걸 말해보게.”

솔직히 그는 혁무천의 정체부터 묻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를 짓눌렀다.

만마공자 천화광과 함께 있었던 자 아닌가.

게다가 혈마귀검을 단숨에 죽일 정도의 고수다.

마도의 인물이라면 언제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할지 몰랐다.

아니, 자신들이야 어차피 강호의 협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 죽어도 아쉬울 것 없었다.

문제는 옆에 있는 청년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지켜야 했다. 이번 행로의 목적 중 하나가 바로 그 청년을 목적지까지 데려가는 것이었다.

“천기회와 어떤 관계요?”

비수처럼 찌르고 들어간 질문에 이척은 목이 턱 막혔다. 딸꾹질이 날 것처럼 목이 간질거렸다.

기윤하도 움찔하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혁무천이 말을 이었다.

“놀랄 것 없소. 정은맹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천기회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뿐이니까.”

그래도 이척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본 회의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얼마 전에 천기회 사람을 만났소. 그래서 알게 된 거요.”

“본 회 사람을 만났다고?”

“종사승이란 사람이 천기회 사람이라면.”

이척의 눈이 커졌다.

“자네가 만난 사람이 종 아우였단 말인가?”

“그렇소.”

“그럼 혹시…… 종 아우가 은산일객 연 노사를 호위하고 오던 중 혈사방에게 공격당했을 때 도와주었다는 사람이…… 자네?”

“은자 반냥을 받으러 갔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소.”

이척은 어이가 없었다.

그 이야기도 들었다. 당시에는 믿지 않았지만.

그게 어디 말이 되나? 은자 반냥 때문에 혈사방과 싸우다니.

근데 그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그, 그랬군.”

“어쨌든 귀하들이 천기회 사람들이라면 한 가지 알아봐줄 것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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