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71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71화
71화
혁무천의 입에서 우문척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엽기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공자 이름을 팔으라고?”
“어차피 확인할 수도 없으니 괜찮아. 아마 확인한다 해도 내가 시켰다는 걸 알면 그냥 놔둘 거다.”
엽기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가능하면 거기까지 안 가도록 하지. 그런데 항주에서 별 소득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계속 거기서 자네를 기다려야 하나?”
잠깐 생각하던 혁무천이 오래 전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열흘 안에 찾지 못하면 남경으로 와. 우화대 근처에 천륭객잔이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
귀령자가 말해주었다. 그곳의 잉어요리가 기막히게 맛있다며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었다.
결국 가보지도 못하고 중상을 입은 채 빙천동에 갇혀서 죽었지만.
그런데 그때 장대산이 말했다.
“저…… 대형, 남경에 할아버지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강호에서 뭘 찾고 싶으면 그 사람을 찾아가 보라고 했어.”
“그래? 누군데?”
“호리자(狐狸者) 구요라는 사람이야.”
혁무천으로선 반가운 이야기였다.
장염이 그리 말했다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터, 만약 은설의 행방을 찾지 못할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을 테니까.
“남경 어디에 사는지 알아?”
“서문의 염천로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어.”
***
우문소소는 자경산의 말을 듣고 눈을 치켜떴다.
“뭐? 무천이 비무에 안 나왔다고?”
“예, 공녀. 그 바람에 사진효가 비무도 치르지 않고 팔대마룡에 뽑혔습니다.”
우문소소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음흉한 사진효 따위는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연평에 사람을 보내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예, 공녀.”
그때 방문이 열리며 우문양이 들어왔다.
“그럴 필요 없다. 그를 찾기 위해 비천마단이 움직였다.”
우문소소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오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다. 숙부가 그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숙부가 왜 무천을 쫓아요?”
“아버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를 제거하라는…….”
“예?”
깜짝 놀란 우문소소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정말이에요?”
“소소, 너도 잘 알잖느냐, 당신이 얻을 수 없다면 제거하는 게 아버님의 철칙이라는 걸.”
“그건 안 돼요! 절대로!”
“이미 어제 그를 공격했다.”
“뭐라구요?”
“비록 실패했지만.”
찢어질 듯 눈을 치켜뜬 우문소소가 조소를 지었다.
“그거 잘 됐네요.”
“너는 본 련의 충성스런 무사가 당했다는데도 그자 편을 드는 거냐?”
“그러게 가만있는 사람을 왜 건드려요?”
“뭐, 그건 나도 마음에 안 든다만, 그가 본 련에 해를 끼친다면 어쩔 수 없지.”
“그 사람에게 패한 것에 대한 복수심 때문은 아니고요?”
“소소, 너…….”
“오빠는 거짓말을 잘 못해서 금방 표 나니까, 솔직히 말해 봐요.”
우문양은 냉소를 지으며 차갑게 말했다.
“거짓말 할 것도 없다. 비록 그를 이기지 못했지만 패하지도 않았다.”
입술 끝을 비튼 우문소소는 우문양을 더 이상 몰아붙이지 않았다.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는 사람이 작은 오빠였다. 한 명이라도 더 우군이 필요한 마당에 작은 오빠를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아버님을 만나야겠어요.”
“그자는 포기해라.”
“싫어요.”
“아버님께서 숙부께 철혈귀령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너도 알 거다.”
우문소소의 눈이 커졌다.
철혈귀령이 나섰다는 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일이 있다는 뜻이다.
“꼭 그들까지 동원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아버님과 숙부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시는 일을 그자가 훼방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일이 더 복잡해지기 전에 잡으시려는 거겠지. 나도 그 일 때문에 곧 련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입술을 질겅거리던 우문소소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좋아요, 그럼 오빠가 가서 말씀해주세요. 잡더라도 죽이지는 말고 살려서 데려오라고요.”
“일단 홍 숙부께 말은 전해보겠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살려서 데려올 수 없을 거다. 그 점은 너도 이해해라.”
우문소소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우문양이 방에서 나가자, 우문소소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경산, 연평으로 가서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알아봐.”
“예, 공녀.”
“그리고…… 무천의 동생이라는 여자를 찾아서 데려와.”
“…….”
자경산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우문소소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찾을 때까지는 돌아올 생각 마. 대신 찾아서 데려오면…… 네가 원하는 것을 알려주겠어.”
자경산은 미간을 한번 씰룩한 후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공녀.”
***
엽기천과 목량, 강탁을 항주로 보낸 혁무천은 곧장 서쪽으로 향했다.
마음은 항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쩌면 한상귀를 만나보는 것이 은설을 찾는데 더 빠를 수도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은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은 손을 쓰지 않았을 거다. 닷새 안에 한상귀를 찾아내서 만나고 항주로 간다.’
만약 일행 중 걸음이 늦어지는 자가 있으면 먼저 남경으로 돌려보내는 수밖에.
그렇게 백 리쯤 달리고 잠깐 쉴 때 동대안이 물었다.
“무천, 우문척이 어디로 갔을 거라 생각하나?”
정파의 비전 무공을 얻기 위해 야밤에 밤도둑처럼 철혈마련을 떠났다.
그가 정은맹을 공격하기 위해 떠났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천화광이 떠벌렸으니까.
문제는 정은맹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었다.
정은맹의 정확한 위치는 혁무천도 알지 못했다.
황보수를 처음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오간 거리를 계산해 보면, 정은맹은 그곳에서 사흘 정도의 거리였다.
그리고 표행을 따라 무창에서 정은맹 무리를 만났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무창 북쪽 닷새 정도의 거리였다.
대별산맥 서쪽에서 복우산에 이르는 하남성 서부지역 어딘가에 총단이 있다는 뜻이다.
그가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범위가 너무 넓었다.
다행인 것은, 우문척을 찾는 건 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쯤 만마성도 그를 찾기 위해 정보망을 총 가동했을 것이다.
사공곽과 금가휘도 어떤 식으로든 움직였을 것이고.
“일단 이창으로 가서 정보를 수집해볼 생각이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찾아간다는 거야?”
“수백 명이 움직였소. 어떤 것이든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꼬리를 잡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거요.”
시기가 문제일 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대안도 바로 수긍했다.
“하긴, 그 많은 사람이 움직였으니 똥만 싸도 냄새가 십 리는 진동하겠군.”
하여간 말을 해도 꼭…….
그런데 휴식을 마치고 다시 백 리쯤 달렸을 때였다.
동대안이 얼굴을 찡그리며 걸음을 멈췄다.
“그자들이 저 숲에서 쉬어갔나 본데? 똥냄새가 지독하군.”
솔직히 혁무천은 반신반의했다.
동대안이 가리키는 곳은 거리가 오 리나 되었다.
후각이 뛰어나다는 건 알지만, 무슨 개코도 아니고…….
정말이었다.
숲속에는 군데군데 얕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흙과 섞인 변이 그 안에 있었다.
싸놓고 흙은 덮어 감추었는데, 동물들이 뒤적인 듯 사방이 지저분했다.
영추문은 아예 숲 속으로 들어가지도 가지 않았다.
더러운 걸 싫어하는 걸 보면 그도 여자는 여자인 모양이었다.
“삼백은 넘고, 오백은 안 되겠군.”
동대안이 인원수를 유추해 냈다.
변을 본 구덩이가 그렇게까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삼 할 정도 봤을 거라 추측해서 그리 계산한 것일 뿐.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군. 가세.”
동대안이 서쪽을 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의 이동 흔적이 서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어쨌든 동대안도 나름대로 쓸모가 많았다.
***
그날 석양이 질 무렵.
혁무천 일행은 부양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걸음을 멈추었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석양 아래, 어디선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쪽 언덕 너머 쪽인 것 같은데?”
영추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동대안의 생각은 달랐다.
“그쪽에서 들리는 건 메아리 소리야. 진짜 소리가 나는 곳은 저쪽이야.”
그는 우측에 있는 나지막한 동산을 가리켰다.
영추문이 이마를 찌푸리자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내기할까?”
영추문은 동대안과 내기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싫어.”
이미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내기를 두 번 했다. 그리고 모두 져서 은자 두 냥을 빼앗겼다.
콩알만 한 눈이 어찌나 좋은지 이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도 알아보았다.
아마도 눈이 작은 만큼 시력이 집중된 것 같았다.
하긴 눈이 작으면 시력이라도 좋아야지…….
게다가 후각과 청력도 좋고, 눈치도 빨랐다.
실제로는 영추문이 길치에 눈치도 없었던 것이지만, 본인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동대안의 말대로 싸움이 벌어진 곳은 나지막한 동산 너머였다.
동산 위에 올라선 혁무천은 갈대숲 속에 서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이십여 명. 그런데 그 중에 연평으로 가던 중 강가의 객잔에서 봤던 정파의 무사들이 있었다.
그들과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는 자들은 갈색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었는데 숫자가 두 배는 될 듯했다.
“어? 저번에 봤던 자들인데?”
눈 좋은 동대안도 당연히 그들을 알아보았다.
혁무천 일행이 바라보는 동안 피가 튀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막상막하.
정파의 무사들도 강했지만, 갈의를 입은 자들 중에도 절정고수가 있었다.
그것도 둘이나.
개중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자는 초절정 경지에 이른 듯 보였다.
그자는 이척을 상대했는데, 강소성의 내로라한 고수 전풍도 이척마저 그에게 약간 밀렸다.
그래도 어쨌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는 밀리지 않다 보니 숫자가 비슷하게 줄어들었다.
문제는 갈의를 입은 무사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결국 싸우는 사람이 열 명으로 줄어들었을 때는 갈의 무사들이 훨씬 많았다.
정파무사가 셋, 갈의 무사가 일곱.
“어떻게 할 건가?”
싸움을 구경하던 동대안이 물었다.
혁무천은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의 싸움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정파무사들이 더 버티지 못하고 도주했다.
하필이면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이척 일행은 갈대 숲속에 서 있는 혁무천 일행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하지만 곧 이척이 혁무천 일행을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덩치가 커다란 장대산은 몰라볼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는 이를 악물고 계속 달렸다.
“형님, 앞에 적이 또 있습니다! 방향을……!”
기윤하도 뒤늦게 혁무천 일행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척은 그의 말을 듣고도 방향을 틀지 않았다.
‘그때 전음으로 경고를 보냈었어. 그렇다면…….’
어차피 막다른 길이었다.
기윤하의 부상이 심해서 도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천운이 따라서 이곳을 벗어난다 해도 추적이 계속 될 터. 목적도 이루지 못한 채 개죽음을 당할 가능상이 컸다.
그렇다면 모험을 해보는 수밖에!
혁무천 일행과 가까워지자 이척이 다급히 소리쳤다.
“도와주게!”
혁무천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거리가 순식간에 오 장까지 좁혀졌다.
갈의를 입은 자들이 오 장의 거리를 두고 그들을 쫓아오고 있었다.
혁무천이 말했다.
“우리가 왜 당신들을 도와야 하오?”
“충분한 대가를 주겠네.”
“어떤 대가?”
이척과 기윤하, 그리고 이십 대로 보이는 청년무사가 걸음을 멈추었다.
기윤하와 청년은 혁무천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남의 어려움을 이용해서 대가를 요구하다니.
그 사이 갈의 무사들이 정파 무사들을 반월형으로 에워쌌다.
그 중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가 조소를 흘렸다.
“후후후후, 누구든 그들을 도와주면 목이 달아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도와 그놈을 잡으면 상을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