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69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69화
69화
많은 사람이 죽은 곳인 데다가 어둑해진 하늘 때문인지 음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평상시에는 철혈마련의 무사 두어 명이 지킨다고 하더군.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없네. 아마 지금쯤 주루에서 술 한잔 기울이고 있을 거야. 내가 수고한다고 돈을 조금 줬거든.”
거기다 맛 좋은 술을 파는 주루까지 소개해줬다.
이번에는 목량이 말했다.
“삼뇌자는 마을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한 달에 두어 번밖에 안 되었는데, 그나마도 몇 달 동안은 두문불출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기간 동안에는 혈천여록의 해독에 몰두했을 것이다.
혁무천이 보고를 받고 짧게 지시를 내렸다.
“장원 안으로는 나와 동 형, 목 아우가 들어갈 거다. 다른 사람들은 누가 오는지 살펴봐.”
동대안의 콩알 눈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목량은 초감각의 능력자였다
혁무천은 그 둘을 데리고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은 장원은 섬뜩한 느낌이 들만큼 을씨년스러웠다.
장원 안에서 죽은 사람은 모두 일곱. 그들의 피로 장원의 바닥이 질척거렸다고 했다.
그래선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횃불을 들고 있던 목량이 먼저 안채의 방문을 열었다.
컴컴한 방 안에서 놀던 쥐새끼가 인기척을 느끼고 정신없이 도망쳤다.
방 안으로 들어간 혁무천은 어둠 속을 걸으며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삼뇌자가 기거하던 방이었다.
그는 그 방에서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하고, 잠도 잤다.
그리고 그 방에서 목숨도 잃었다.
무엇이 되었든 흔적이 남아 있지 않겠는가.
물론 철혈마련 무사들이 방을 샅샅이 뒤져봤을 것이다.
조금만 수상해도 모두 수거해 갔겠지.
하지만 자신과 그들은 찾으려 하는 것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혁무천에게 방 안의 어둠 정도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목량이 들고 있는 횃불까지 더해져서 대낮처럼 밝게 느껴졌다.
하물며 시력만큼은 혁무천보다 뛰어난 동대안은 작은 벌레들이 기어가는 것까지 다 보였다.
혁무천이 방 안을 세세히 둘러보는 동안 그는 탁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천, 이거 말이야…….”
“뭐라도 있소?”
“내가 예전에 사부에게 들었던 어떤 무공의 흔적과 비슷한데…….”
혁무천은 동대안이 바라보고 있던 곳을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집중하지 않으면 잘 안 보일 정도로 옅은 흔적이 탁자 다리 옆에 나 있었다.
회오리 문양처럼 보이는 흔적이.
워낙 옅어서 아마 동대안이 말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크기는 한 자 정도.
결코 자연적인 흔적은 아니었다.
그 문양을 본 혁무천은 미간을 좁혔다.
그도 언젠가 그런 흔적을 본 적이 있었다. 최소한 서너 번 이상은 봤을 것이다.
‘설마…… 혼천신마의 회천마지(回天魔指)?’
혼천신마 이능척.
대마천 천붕십이마 중 서열 칠 위.
그러나 실력만큼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
그가 펼치는 회천마지에 적중당하면 내부가 비틀려서 으스러진다.
그리고 몸을 관통한 기운이 회오리 문양을 남긴다.
비록 바닥에 나 있는 흔적보다는 작아서 손바닥만 하지만.
“그 무공을 알고 있소?”
동대안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 사부께서는 사문을 배반한 구적(九敵) 중 하나가 이런 무공을 사용했다고…….”
“구적?”
“뭐…… 사문의 일이어서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는데, 아무튼 사부께 들었던 것과 비슷한 흔적이네.”
자신이 빙천동에 들어간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 해답이 있었다.
아마 자신이 정체를 밝힌다면 동대안도 아마 모든 걸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이 알게 되면 비밀은 비밀이 아니게 된다.
동대안에게 말한 순간, 은설이 살아 있다면 언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될지 모른다.
혁무천이 진짜로 겁나는 것은 그것이었다.
은설이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것.
처음 만났을 때 은설이 말했다.
“아주 옛날 옛날에 마천제란 미친놈이 만인혈사를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강호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자의 손에 죽은 정파의 무사가 만 명이나 되었대요. 무림 역사 이래 그런 악랄한 살귀는 아마 없었을 거예요.”
은설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면 배신감을 느낄지 모른다.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르고.
천하?
그딴 것에는 조금도 욕심이 없었다.
천년, 만년 살 것도 아닌데 천하가 무슨 소용이랴.
자신이 원하는 것은 은설이었다.
은설과 알콩달콩 즐겁게 사는 것.
그걸 위해서라면 과거의 원한 정도는 잊을 수 있었다.
이미 백 년도 넘어서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어차피 강호의 무사가 된 이상 칼날 위에서 살아가는 인생. 저승에 있는 귀령자도 자신을 이해해주겠지.
그때 목량이 말했다.
“대형, 저것 좀 보십시오.”
혁무천이 고개를 돌려서 목량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벽에 산수화가 그려진 족자가 걸려 있었다.
피가 튀었는지 검붉은 자국이 흩뿌려져서 지저분하게 보이는 족자.
그나마도 한쪽은 찢어져 있었다.
아마 그래서 철혈마련의 조사대도 그대로 놔둔 것 같았다.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그림도 그저 그렇고.”
동대안이 족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혁무천이 봐도 특별하게 보이진 않았다.
“그림 말고 글자를 읽어보세요.”
목량이 다시 말했다.
왠지 몰라도 긴장한 표정이었다.
“삼뇌자가 직접 그리고 쓴 것입니다.”
그제야 혁무천과 동대안이 족자에 적힌 글을 읽어보았다.
[깊고 깊은 산속에 또 다른 거산이 있으나,
구름에 가려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도다.
짙고 짙은 구름이 걷히고 산이 드러나니,
세상은 혼돈으로 치닫고 피바람이 강호를 휩쓸 것이로다.]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드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저 글이 뭐 어쨌다는 거지? 피바람이야 이미 수십 년 동안 불었는데,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아?”
동대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래도 목량은 굳은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단순한 피바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그때 혁무천이 말했다.
“목량, 어디 네가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말해봐라.”
“예, 대형.”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한 목량이 족자를 보며 말했다.
“족자에 적힌 날짜를 보면, 저 글은 약 일 년 전쯤 쓴 글입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혈풍이 불지도 모릅니다.”
동대안이 콧소리를 내며 반박했다.
“훗, 강호가 삼뇌자의 글대로 흘러가기라도 한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머리 빠지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신경 꺼.”
그러나 목량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삼뇌자는 지금까지 다섯 번 정도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언한지 삼 년 안에……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났지요.”
“…….”
“그 중에는 삼뇌자의 가족이 혈겁을 당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가족의 참화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세상을 등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사부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동대안이 입을 닫고 눈만 깜박였다.
혁무천도 눈을 가늘게 좁히고 족자를 다시 주시했다.
다른 사람과 달리 그는 목량의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목량이 말을 이었다.
“저 글을 쓴 지 일 년이 지났으니, 늦어도 이 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겁니다. 저는 그저…… 많은 피가 흐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너는 혹시 그 일과 삼뇌자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
혁무천의 말에 목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형.”
“그럼 삼뇌자를 죽인 범인을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군.”
혈천여록이 해석되었다면, 그걸 가져간 자가 마공을 이용해서 그 안의 무공을 익힌다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다른 증거가 있는지 철저히 살펴봐.”
“알았네.”
“예, 대형.”
그들은 장원 전체를 이 잡듯이 철저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증거라 할 만한 것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반시진쯤 지났을 때,
휘이이익.
밖에서 휘파람소리가 들렸다.
연평으로 나갔던 철혈마련 무사들이 돌아오는 듯했다.
장원에서 나온 혁무천 일행은 미련을 두지 않고 연평으로 향했다.
‘뭐 하는 놈들이지?’
멀리서 장원을 바라보고 있던 여곡상은 이마를 찌푸렸다.
휘파람소리 후 장원에서 횃불이 꺼지더니 몇 명이 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연평 쪽으로 사라졌다.
‘천’에서 내린 명령으로 장원을 감시한 지 석 달째.
그동안 철혈마련의 조사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경비무사 두어 명이 붙어있을 뿐.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저런 한가한 장원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린 ‘천’이 어리석어 보였다.
그런데 철수 열흘을 남겨 놓고 장원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단순히 관심만 가진 것이 아니라 직접 방문하기까지 했다. 그것도 저녁에.
정상적인 방문은 아닌 듯했다.
그래서 더 수상했다.
‘삼뇌자와 관련된 놈들인가?’
조사해보면 알겠지.
그가 나직이 명을 내렸다.
“어떤 놈들인지 알아봐라.”
다섯 자 정도 뒤에 있던 자가 소리 없이 고개만 숙였다.
그러고는 혁무천 일행이 사라진 곳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연평으로 가던 혁무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을 노려보았다.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었어.’
먼 거리여서 모른 척했다.
철혈마련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라면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럼 누굴까?
문득 든 생각.
혁무천의 두 눈에서 섬광 같은 빛이 번뜩였다.
‘어쩌면…… 삼뇌자의 죽음과 연관 있는 자들일지도…….’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장원을 감시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아직도 삼뇌자의 장원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철혈마련의 움직임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겠지.
‘일단 목량의 말에 신빙성이 더해졌다고 봐야겠군.’
하지만 목량이나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천하야 어떻게 되든 자신은 큰 관심이 없다는 걸.
‘누군지 알아봐야겠어.’
***
자정이 코앞인 시각.
연평이 오 리쯤 남았을 때였다.
잡목과 갈대가 섞여 있는 야산 사이의 관도를 빠르게 걷던 혁무천 일행은 걸음을 늦추었다.
캄캄한 어둠 속, 바람결 따라 춤을 추는 갈대 속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검은색 옷에 복면까지 쓴 복장.
숫자는 모두 이십여 명쯤?
모두 무기를 소지한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길을 가로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잠깐 사이 거리가 십 장 이내로 줄어들었다.
“뭐 하는 자들이냐?”
엽기천이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혁무천 일행은 오 장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 직후 뒤쪽에서도 십여 명이 나타났다.
그들 중 하나에게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두 죽여라.”
전면을 막고 서 있던 복면인들이 일제히 혁무천 일행을 공격했다.
혁무천 일행은 갑작스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뭐 하는 놈들인데 자신들을 죽이려 한단 말인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로 착각한 것 아닐까?
어쨌든 막고 볼 일이었다.
엽기천이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정체를 밝혀라!”
동대안도 꼬챙이 같은 검을 뽑았다.
“강도질을 해도 눈치껏 해야 오래 사는 법인데…….”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은 검광 도광이 난무하며 혁무천 일행을 덮쳤다.
빠르고, 은밀했으며, 내지르는 검에 강력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모두 일류고수 이상의 수준.
“손속에 사정 둘 필요 없어.”
혁무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철혈마련의 구역, 최대한 살생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목에 검을 들이대는 자들까지 봐줄 이유는 없었다.
“죽고 싶다면 이 어르신이 죽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