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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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64화
64화
아무래도 먼저 들어온 자들에게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서 들은 듯했다.
“어느 문파에 있는 자들이냐?”
사십 대로 보이는 중년인이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천화광이 오만하게 턱을 쳐들고 되물었다.
“그렇게 묻는 당신들이야말로 정체가 어떻게 되지? 정파의 잡배들인가?”
중년인이 발끈해서 다그쳤다.
“이런 건방진……! 어린 친구가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건방? 하하하하! 오랜만에 듣는 말이군.”
“누군지 모르지만, 네 사부를 대신해서 혼을 내주마.”
스릉!
중년인이 등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았다.
다른 무사들도 긴장한 채 무기에 손을 얹었다.
“흥! 나를 혼내겠다고? 글쎄, 당신들 실력으로 될까?”
천화광이 냉랭히 코웃음 치며 걸음을 옮겼다.
저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으니 혁무천도 자신의 행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혁무천은 그를 막지 않았다. 대신 담담한 투로 말했다.
“저 사람들과 싸우고 싶으면 혼자 싸워.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갈 거니까.”
“뭐?”
“궁금증이 다 풀렸으면 따라오지 않아도 돼.”
“말해준 것도 없으면서 뭐가 다 풀렸단 말이냐?”
“듣고 싶으면 조용히 따라오든가. 어린애처럼 소란 피우지 말고.”
천화광은 눈을 치켜뜨고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그의 전신에서 광폭한 기운이 폭사했다. 옆에 있던 원목탁자의 가장자리가 으스러지며 뿌연 먼지가 피어났다.
하지만 혁무천은 못 본 척 몸을 돌렸다.
“동 형, 갑시다.”
천화광의 시선이 혁무천의 등에 화살처럼 꽂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과 말투.
도대체 저놈의 뱃속에는 간 대신 뭐가 들어있는 걸까?
입술을 잘근 씹은 천화광은 결국 기운을 갈무리했다.
반면 정파의 무사들은 경악과 긴장으로 인해 몸이 반쯤 굳었다.
천화광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그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그저 얼굴이 잘생긴 마도의 청년 무사 정도로 봤거늘, 절정고수도 흉내 내기 힘든 가공할 기세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혁무천은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무사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자에게 전음을 보냈다.
<다 죽고 싶지 않으면 허튼 짓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하시오. 당신들이 상대하려 했던 자가 바로 만마공자 천화광이오.>
오십 대 초반의 중년인은 이를 악물고 경악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냥 간다면…… 우리도 싸울 생각이 없다.”
사십 대 중년인이 이마를 찌푸리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사형…….”
오십 대 중년인이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 재빨리 그의 입을 막았다.
“그냥 보내줘라. 지금은 여기서 싸울 때가 아니다.”
사십 대 무사가 콧등을 씰룩이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다른 무사들도 입구로 가는 길을 터주었다.
천화광이 그 사이로 걷다 말고 사십 대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다음에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놈이……!”
중년인이 욱해서 앞으로 한발 내딛었다.
오십 대 중년인이 다급히 소리쳤다.
“물러서라, 윤하!”
윤하라 불린 중년인은 눈을 부라리며 씩씩거렸지만, 더 이상의 행동은 자제했다.
천화광은 냉소를 지은 채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공격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보라는 듯.
잠시 후, 혁무천 일행과 천화광이 모두 사라지자, 기윤하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사형, 왜 막으신 겁니까?”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어.”
“뭘 말입니까?”
“조금 전의 그자.”
“그자라면, 마기를 뿜어낸 자 말입니까?”
“그래, 그가 바로…… 만마공자 천화광이다.”
“예?”
기윤하는 눈을 치켜떴다.
그 젊은 놈이 만마공자 천화광이라고?
움켜쥔 그의 주먹에 땀이 고였다.
붙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이 패했을까?
판단 자체가 불필요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절반만 사실이라 해도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정말 그가 만마공자입니까?”
“십중팔구는 분명하다. 왜 철혈마련이 아닌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를 악다문 기윤하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그럼 이 기회에 그자를 제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십 대 중년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기윤하를 돌아다보았다.
“너는 천화광의 무위가 어느 정도일 거라 생각하느냐?”
“그가 강하다는 걸 모르진 않습니다만, 아직 서른도 안 된 애송이 아닙니까?”
오십 대 중년인, 이척은 사제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은맹의 도운검 유지창이 그와 싸워서 팔 초식 만에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다. 솔직히 나는 내 실력이 유지창보다 월등히 앞설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더 놀라운 건…… 그런 천화광을 닦달하는 자가 있다는 거다.”
천화광은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도 그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도대체 그가 누군데 만마공자를 말 몇 마디로 좌우한단 말인가!
“아……!”
기윤하도 그제야 혁무천의 존재를 떠올리고 표정이 창백해졌다.
워낙 말을 태연하게 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오싹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아무래도 식사는 다음 마을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가자.”
객잔을 나선 천화광은 저만치 앞서가는 혁무천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한두 번이야 귀엽게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건방진 행동이 계속 되는데도 놔두면 버릇이 되는 법.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부리려면 처음부터 단단히 버릇을 고쳐놔야 해.’
혁무천이란 놈이 아무리 만만치 않다 해도 강아지는 그저 강아지일 뿐.
‘흥! 네가 아무리 날뛰어봐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속으로 코웃음 친 그는 입술 끝을 비틀며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
도선을 타고 강을 건넌 혁무천은 여전히 느린 속도로 남하했다.
연평이 십 리쯤 남았을 때 천화광이 더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
“이제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뭘 말이냐?”
“뭐라니? 네가 정파의 비전무공을 봤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지?”
“이……!”
“아, 동 형이 말한 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군.”
“……!”
“그런데 동 형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고 했던 것 같은데.”
천화광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지만 강하게 반발하지 못했다.
혁무천의 말대로, 그 말을 한 사람은 혁무천이 아니라 동대안이었다.
그런데 혁무천이 말했다.
“나는 그 무공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정말이냐?”
“믿지 못하겠으면 그냥 가. 귀찮게 하지 말고.”
“좋아, 일단 네 말을 믿지. 그럼 어디 말해봐라, 그 무공이 지금 어디에 있지?”
질문을 던진 천화광은 혁무천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여차하면 제압해서 끌고 갈 생각이었다.
만마성이 자랑하는 아흔아홉 가지 고문이라면 놈의 갓난아이 때의 기억까지 모조리 긁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혁무천이 말했다.
“내가 알려주면 너는 뭘 줄 거냐?”
천화광은 혁무천이 대가를 바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설마 공짜로 대답을 듣겠다는 건 아니겠지?”
“뭘…… 바라는 거냐?”
“나중에 내가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그 질문에 너의 모든 것을 걸고 솔직하게 대답하겠다는 약속을 해라.”
천화광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어쩌면 굉장히 위험한 약속일 수도 있었다.
그깟 약속이야 지키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할 수도 있지만, 천화광은 결코 약속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그는 천하제일인이 되고자 했다.
그저 무공만 강한 천하제일마가 아니라, 만인에게 우러름 받는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었다.
마도를 추구한다 해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려서는 결코 세상 무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지 않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단순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해다오.’라고 한 것보다는 나았다.
게다가 혁무천이 자신을 찾아온다면, 오늘 헤어지는 아쉬움도 그때 가서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거기다가 혁무천이 한마디 덧붙였다.
“네가 모르는 질문을 하지는 않을 거다. 사실 지금 물어봐도 되는 것이긴 한데, 그 전에 내가 좀 더 알아볼 것이 있어서 나중으로 미룬 거다.”
그제야 천화광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좋아, 내가 아는 거라면 말해주지. 너도 이제 정파의 무공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봐라.”
“아마 너도 짐작하고 있을 거다. 네가 아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 뿐.”
혁무천의 말에 천화광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려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서 슬쩍 건너짚어 보았다.
“혹시…… 정은맹이냐?”
“잘 아는군.”
“정말 그들이 정파의 비전무공을 얻었단 말이지?”
혁무천은 고개를 끄덕여서 순순히 인정했다. 어차피 곧 밝혀질 일이기도 했고, 계속된 질문 때문에 귀찮아지는 것은 더 싫었다.
정은맹과 만마성이 싸우든 말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역시 그랬어.’
천화광은 외조부의 말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사실이라면 엄청난 사건이었다.
우문학의 말대로 정은맹이 정파의 비전무공을 얻었다.
우문척이 새벽에 은밀히 사라진 것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정은맹을 치기 위한 움직임일 가능성이 컸다.
무천이란 놈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그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물어본다 해서 순순히 알려줄 놈도 아니고.
‘일단 우문척의 행방부터 찾는 게 급선무군.’
그렇다면 여기서 얼쩡거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 유궁을 만나서 만마성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좋아, 네 말을 믿지. 언제든 나를 찾아와라. 약속은 꼭 지킬 테니까.”
천화광은 뜨거워진 눈으로 혁무천을 지그시 쳐다본 후 대지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가 빠르게 멀어지자, 동대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 자식, 눈빛이 수상한데?”
목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수상하단 말입니까?”
“그 뭐랄까, 왠지 느끼하게 느껴져. 왜 있잖아, 음탕한 작부가 맘에 드는 남자를 쳐다보면서 혀로 입술을 핥을 때의 그런…….”
“헛소리 그만하고 갑시다.”
한소리 툭 내던진 혁무천이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는 동대안의 그 말보다 다른 것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조금 전, 천화광이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그에게서 일반적인 공력과는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만마성의 소주인인만큼 상승의 마공을 익혔겠지만, 그 기운은 결코 마공이 아니었다.
그는 그와 비슷한 기운을 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혹시 천화광도……?’
미끄러지듯 걸음을 옮기는 그의 눈에서 푸른 섬광이 기이하게 휘돌다가 사라졌다.
***
강호의 소식은 보타암에도 전해졌다.
뒷마당에서 검을 수련하고 있던 은설은 경은 사저의 이야기를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정말이에요?”
“그래, 그 바람에 해도문의 세력의 크게 위축되었다고 들었다.”
은설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경은 사저는 보타암의 제자로 그를 바닷가 숲속에서 구해온 이였다. 그런데 이번에 육지로 나갔다가 뜻밖의 소식을 가져왔다.
누군가가 해도문에 찾아가서 양 노인과 소녀에 대한 행방을 물었다고 한다.
한 사람. 매우 젊은 청년인데 남장 여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 생겼다고 했다.
은설은 그가 무천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오빠가 섬에서 나왔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알까?
어쩌면 모를지도 몰랐다.
해도문에 갔다면 자신이 바다에 빠진 것을 알아냈을 수도 있었다. 설마 자신이 고의로 빠졌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어떡하지?’
그때 경은이 말했다.
“그런데 철혈마련의 마룡선발대회에 무천이란 사람이 출전했다고 하더구나. 네 오빠라는 사람과 이름이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