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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62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62화

62화

 

 

한편, 철심원을 떠난 혁무천은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만약 그자가 그 문구의 순서를 알아냈다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불완전한 아수라의 무공은 인성마저 변화시킬 수 있었다. 진정한 악마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은설 찾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구나.’

그녀를 만나고 나면 바로 혈천여록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장대산이 알고 있는 두 개의 책자도 찾아야 하지만, 잃어버린 책자도 찾아야 했다.

그로 인해 세상에 혈풍이 분다면, 죄 없는 자들이 죽어간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져야 할 것이다.

‘그나마 지옥화가 아니면 위력이 반감되는 건 다행인데…….’

하지만 세상일을 어찌 알겠는가.

다른 마공이 지옥화를 대신할 수 있을지.

 

***

 

우문소소는 손바닥 위의 목걸이를 보며 싸늘한 조소를 지었다.

‘그 계집은 그런 꼴을 당해도 싸.’

아쉬운 점이라면, 겁탈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사도맹의 보복이 두려워서 마지막까지는 건드리지 않은 듯했다.

멍청하게!

그냥 짓밟아버릴 것이지!

“련주께서 사공곽 남매를 찾아가 사과했다고 합니다.”

흠칫한 우문소소가 하마터면 목걸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뭐? 아버님께서 그들에게 사과했다고?”

“예, 공녀.”

“뭐 하러 그들에게 사과를 해?”

“련 내에서 벌어진 일이니 사도맹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쳇!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도맹이 뭐가 두렵다고.”

자경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문소소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그는 우문소소가 서서히 두려워지고 있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여자였다.

자신이 과연 저 여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무천이 사공미미를 찾는데 도움을 줬다면서?”

“예, 공녀.”

“흥! 마음에 없다더니, 그것도 아니었나 보군.”

“그건 진심인 것 같았습니다.”

자경산이 무심코 그 말을 하자, 우문소소가 고개를 돌려서 그를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경산, 판단은 내가 내리는 거야. 너는 따르기만 하면 돼.”

“죄송합니다, 공녀.”

“내일 무천의 비무대회를 구경하러 갈 거야. 준비해 둬.”

“사람들의 눈은 피하시는 게…….”

“보라고 가는 거야. 그래야 질투심이 끓어올라서 무천을 더 강하게 몰아붙이지.”

“하면…….”

“호호호호, 그 남자도 고생 좀 해봐야 돼. 그래야 내가 필요하다는 걸 알 거 아냐?”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교소를 터트린 우문소소가 손바닥에 있는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멋진 남자는 그 자체로 보석이야. 이까짓 것보다 백배, 천배는 더 귀한 보석. 나는 그 남자를 나만의 보석으로 만들 거야.”

자경산은 문득 우문소소에게서 광기가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왕거미가 주체 못할 욕심 때문에 한계를 넘어선 듯했다.

저 여자가 진정 자신이 좋아해서 목숨을 걸고자 했던 그녀란 말인가?

자괴감마저 밀려들었다.

‘이것도 업보라면…….’

 

***

 

한상귀는 난데없이 찾아온 불청객으로 인해 잠을 자다 일어나야 했다.

상대는 대공자 우문척의 밀명을 받고 온 자였다. 불만을 표하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더구나 그자의 말은 한상귀를 바짝 긴장시켰다.

“대공자께서 도움을 청할 일이 있으시다며 지금 즉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대공자가 나에게 무슨 도움을 청한단 말인가?”

“련주님의 명을 이행하는 일입니다.”

한상귀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인시 초.

철혈마원 내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일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던 경비무사들조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했다.

그 사이, 삼백 무사가 은밀하게 철혈무원 뒤에 있는 후문을 통과했다.

후문은 우문척과 다섯 노인이 맨 마지막으로 통과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본래대로 닫혔다.

다섯 노인 중에는 곤혹스런 표정의 한상귀도 있었다.

‘이런! 무천에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는데…….’

워낙 늦은 시간에 들어온 정보였다. 련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고.

그래서 내일 알려주려 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천화광이 철혈무원의 이상을 감지한 것은 그로부터 일각쯤 지났을 때였다.

비밀리에 심어 놓은 간자로부터 긴급한 연락이 온 것이다.

 

[우문척이 철혈마령대와 장로 다섯을 대동하고 은밀하게 련을 떠났음.]

 

짧은 서신은 수많은 의문을 동반했다,

‘우문척이 련을 떠났다고?’

자시쯤 무천이 철심원에 가서 우문척을 만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두 시진 만에 련을 떠나다니.

‘왜 비무대회가 한창인 지금 떠난 거지?’

어디를 가려고.

더구나 수장이 우문척이다.

그에 비하면 철혈마령대와 장로 다섯의 동행은 중요하지 않았다.

 

거처를 나온 천화광은 철혈무원으로 향했다.

철혈무원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무사들은 그를 알아보고 앞을 막지 않았다.

비록 외척이긴 하나, 천화광도 철혈의 피가 절반 섞여 있는 것이다.

천화광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연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곧장 외조부인 우문학을 찾아갔다.

새벽이 깊어가는 인시인데도 우문학은 순순히 그의 접견을 허락해주었다.

“외조부님,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라니?”

“우문척이 철혈마령대와 함께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이마를 찌푸린 우문학이 곧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어쩐지 어수선하다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군.”

“예?”

“아마도 나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나 보구나.”

천화광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단순히 우문학을 작전에서 제외시켰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우문학을 제외시켰다는 것은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즉, 그들의 움직임을 만마성에 알리고 싶지 않다는 뜻.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십니까?”

“출동하는 것조차 숨겼는데 그걸 말해주겠느냐?”

“그럼 외조부님의 생각으로는 우문척이 무슨 일 때문에 철혈마령대를 데리고 나갔을 거라 보십니까?”

우문학을 잘 아는 천화광은 이미 그가 어떤 가정을 생각하고 있을 거라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문학이 잠시 생각하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구나, 네가 아무리 내 외손자라 해도 그건 말해줄 수 없다.”

“외조부님…….”

“허허허, 내 어찌 철혈의 형제들에게 해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 이 할애비의 마음을 네가 이해해라.”

그 말만으로도 우문학이 확실한 뭔가를 짐작해냈다고 생각한 천화광은 슬쩍 우문학의 감정을 건드려보았다.

“외조부님께서는 어머니와 외손자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으십니까? 만약 우문척이 본 성에 해를 끼친다면 아버님께서는 어머니를 용서치 않을 겁니다.”

우문학의 하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허어, 이놈이……. 걱정 마라, 만마성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게다. 척아가 비록 특이한 성격이지만 그 정도로 무모하진 않느니라.”

“비무대회 와중에 철혈마령대를 총동원했습니다. 이게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아시는 것이 있으면 손자에게 언질이라도 주십시오.”

“…….”

우문학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천화광이 한 번 더 충격을 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련이 외조부님께 뭘 해주었습니까? 그동안 희생만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허어. 광아야, 그건…….”

“어머니를 만마성에 보낼 때는 언제고, 어머니가 만마성의 사람이 되었다는 이유로 총군사직에서도 강제로 밀어내지 않았습니까?”

우문학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천화광의 말대로 그는 희생만 강요당했다. 셋째라는 이유로.

그래도 철혈의 형제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는데, 오늘은 비밀작전에 대한 보고는커녕 그런 작전이 있다는 이야기조차 듣지 못했다.

‘이제 나는 쓸모없는 뒷방 늙은이다, 이건가?’

그 생각을 하니, 안 그래도 그동안 쌓여 있던 화가 바닥에서 끓어올랐다.

“그만 하도록 해라.”

“죄송합니다, 외조부님. 제가 너무 말을 심하게 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이 할애비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철혈의 형제를 배신할 수 없다. 그러니 간단하게 내가 생각한 것만 말해주마.”

“감사합니다, 외조부님.”

“아마도…… 얼마 전에 동해의 섬에서 발견되었다는 정파의 비전무공과 관련된 일인 것 같다.”

천화광의 두 눈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설마…… 그 정파의 비전무공이라는 게, 칠십 년 전에 사라졌다는……?”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정은맹에서 그 무공을 얻었다는 소문이 있다.”

단순히 소문이 아닐 것이다. 소문 때문에 우문척과 철혈마령대가 움직일 리 없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니라.”

 

***

 

거처로 돌아온 천화광은 유궁에게 긴급한 명령을 내렸다.

“성에 연락을 취해라. 우문척이 철혈마령대와 장로 다섯을 데리고 철혈마련을 빠져나갔다. 어디로 갔는지 최대한 빨리 찾으라고 해.”

“예, 소성주.”

유궁을 내보낸 천화광은 허공을 노려보았다.

‘철혈마련이 그걸 얻게 되면 힘의 균형이 깨질지 모른다. 그건 안 되지!’

그때 문득 무천에 대한 보고가 떠올랐다.

그는 철혈집정고에서 우문척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두 시진 전에 또 만났다.

‘혹시 그와 관련된 일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면 뭐든 알아보아야 했다.

 

자신의 방을 나선 천화광은 혁무천을 만나기 위해 객당으로 갔다.

그런데 무천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마당에서 오가던 경비무사를 붙잡고 무천의 방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 방에 있던 사람들, 다 어디 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밤늦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오가서…….”

 

천화광이 경비무사에게 다그치듯 질문을 던지던 그 시각, 혁무천 일행은 한 사람, 한 사람 철혈마련을 빠져나갔다.

혁무천과 동대안은 바람을 타고 유유히 빠져나갔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정문과 동문을 통해 나갔다.

“보면 모르쇼? 쪽팔려서 사람들이 깨기 전에 떠나려는 거요.”

“마누라가, 빨리 돌아오지 안 오면 옆집 놈팽이하고 살림을 차린다지 뭐요.”

“남자새끼들이 너무 치근덕거려서 떠나려고요.”

그때만큼은 영추문도 여자 목소리로 말했다.

장대산은 눈에 힘을 주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물어보는 자가 없어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새벽바람을 맞으며 철혈마련을 나선 일행은 십 리쯤 떨어진 곳의 커다란 고목 아래에서 다시 만났다.

혁무천은 일행 중에 엽기천이 있는 걸 보고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엽 형은 왜 나온 거요?”

“생각해 봐. 다들 떠난 곳에 나 혼자 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동대안이 바로 이어서 답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겠지. 어쩌면 잡아서 고문할지도 모르고.”

“동 형 말이 맞아. 고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요하게 다그칠 거네.”

“철혈마련에서 성공하기에는 그른 거지 뭐.”

동대안이 엽기천의 아픈 구석을 콕콕 찔렀다.

엽기천은 동대안을 째려본 후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비록 성공하기 위해서 철혈마련에 왔지만…… 혼자 무슨 재미로 남아 있겠나. 그래서 아예 무 형하고 함께 가기로 했네.”

“철혈마련에 있는 것보다 무천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익일 거라 생각한 거겠지.”

“맞아! 다 맞아! 제길! 동 형 말이 다 맞다고!”

엽기천이 동대안을 노려보며 빽 소리쳤다.

동대안이 깜짝 놀라서 눈을 껌벅였다.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누가 오면 어떻게 하려고.”

엽기천은 성공이고 뭐고 일단 동대안부터 어떻게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강탁을 가르치면서 가볍게 시전한 동대안의 무공을 본 터라 속으로만 화를 삭였다.

‘제길! 저 꼬챙이 없을 때 어떻게 해봐야지.’

그때 혁무천이 말했다.

“알았소. 그럼 함께 갑시다.”

강호에 대한 자잘한 일은 누구보다 엽기천이 능숙했다.

함께 가서 나쁠 것도 없었다.

“대형,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은설이라는 아가씨에 대한 소식을 지속적으로 접하려면 너무 멀리 가도 안 좋을 텐데요.”

목량이 물었다. 다른 일행들도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연평으로 갈 생각이다. 그곳이면 하루 안에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

그런데 일행이 길을 떠나려고 막 몸을 돌렸을 때였다. 저 뒤쪽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날듯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잠깐! 거기 서라, 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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