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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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60화
60화
우문강천도 제법 끈질겼다. 하지만 혁무천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저도 련주의 시원한 성품이 마음에 듭니다만, 그 사람을 만나면 둘이서 세상 구경이나 다닐 생각입니다.”
생각지 못한 대답인 듯 우문강천의 눈이 커졌다.
“세상을 여행하겠다?”
“예, 저 북해도 가보고, 서장도 가보고, 땅이 이어져 있는 곳은 어디든 가볼 생각이지요.”
“허어…… 부럽군.”
진심이었다. 그러나 우문강천은 다른 욕심이 그보다 더 커서 이행할 수가 없었다.
“세상 구경 다 하면 나에게 올 수 있겠나?”
“고집이 세시군요.”
설마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던 듯, 우문강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조용히 서 있던 이문유는 눈에 힘을 주었고.
우문강천은 가늘어진 눈으로 혁무천을 보며 입술 끝을 살짝 비틀었다.
천하를 질타한 철혈의 마제에게 저런 식으로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기분이 묘하게 들뜬 그가 목소리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 보냈다.
“훗, 좀 그런 편이지. 나는 한 번 욕심 낸 것을 놓친 적이 없다네. 내가 갖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은근한 위협.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다, 그런 말.
하지만 그 정도에 흔들릴 혁무천이 아니었다.
“욕심을 줄이는 것도 만수무강에 도움이 되지요. 솔직히 얻을 만큼 얻으셨지 않습니까?”
“내 욕심이 오히려 화를 미칠 수도 있다는 건가?”
“세상일이라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누가 알까. 자신이 백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서 숨을 쉬고 있다는 걸.
그런 그에게 우문강천의 욕심은 한낱 먼지구름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반면 우문강천은 자신을 비꼬는 듯한 상대의 말에도 화가 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했다.
상대는 이제 겨우 이십 대이거늘,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노고수를 상대하는 기분이 들다니.
그 기분이 싫지는 않은데,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대화를 멈추는 게 좋겠군. 하나만 알아주게나, 왠지 자네하고는 적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걸 말이야.”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사공 소저 때문에 오신 것 같은데, 가보시지요. 깨어났으니까요.”
“알았네. 그럼 다음에 보세.”
혁무천은 그에 대한 답으로 포권을 취하고는,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우문강천 일행과 혁무천 일행 사이에서 묘한 긴장이 흘렀다.
무형의 기운이 무의식중에 구름처럼 피어났다.
단 몇 걸음에 불과했지만, 스쳐가는 동안 세상이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이문유의 손에도 땀이 쥐어졌고, 동대안 역시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누군가가 무기를 향해 손을 움직이거나 고개만 돌려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별 탈 없이 서로가 스쳐서 멀어져갔다.
혁무천이 완전히 뒤쪽으로 지나간 후, 우문강천의 부드럽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입이 열린 것은 그로부터 십 장 정도 더 걸어간 후였다. 이제 혁무천 일행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문유, 어떻게 봤느냐?”
이문유가 숨을 깊게 들이쉰 후에야 곤혹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네가 그런 말하는 것도 처음이 아닌가 싶구나. 좌우간 묘한 놈이야.”
“명을 내리시면 혼란의 여지를 지우겠습니다.”
제거하겠다는 뜻.
우문강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잘 모르겠다고 했지?”
“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놈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예?”
“상대의 능력도 모르면서 공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우문강천이 한참 대화를 하고도 파악하지 못했다면, 무천이란 자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다.
해연히 놀란 이문유의 눈이 커졌다.
“그 정도입니까?”
“얻을 수 있다면 얻는 게 최선이겠지. 일단은 거기까지만 생각하자.”
“예, 주군.”
우문강천은 입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영빈각이 지척이었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는 또 하나의 결심이 굳어지고 있었다.
‘얻지 못할 놈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해야 해.’
***
객당으로 돌아간 혁무천은 굳은 표정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동대안이 질렸다는 듯 말했다.
“제길, 우문강천이 그렇게 무서운 자인 줄 처음 알았네.”
“강호 최강의 고수로 사대천마를 꼽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목량이 창백한 안색으로 나직이 답했다.
그는 혁무천의 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아마 그에게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면 내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엽기천은 철혈마제 우문강천의 이름이 나오자 경악했다.
“그분을 만났소?”
“그래,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저 잘난 무천 공자님께서 맞짱을 깠거든.”
“예?”
“한바탕 말싸움 아닌 말싸움을 벌였단 말이다.”
“왜……?”
“왜는? 그 양반이 무천 공자를 욕심낸 거지.”
“아……!”
그제야 엽기천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싸웠다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그는 철혈마련의 중간간부를 노리고 있었다. 무천이 련주와 말싸움을 벌였다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 표정이 굳어 있던 혁무천이 말했다.
“아무래도 새벽에 이곳을 나가야 할 것 같다.”
“오늘? 잠도 안 자고?”
동대안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동 형은 가기 싫으면 여기 있어도 되오.”
“누가 가기 싫다고 했나?”
투덜거린 동대안이 침상으로 가서 벌렁 드러누웠다.
새벽에 출발한다면 한 시진이라도 눈을 더 붙이는 게 이익이었다.
하지만 목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련주가 생각을 바꿔서 대형을 제거하려 할 거라 생각하시나 보군요.”
혁무천은 다시 한 번 그의 판단력에 감탄했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하지만 그 절반의 가능성 때문에 모험하고 싶진 않아.”
그 말에 엽기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명색이 철혈마련의 주인인데, 그런 명령을 내릴까? 자칫하면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텐데.”
“그래서 마음을 달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장대산도 혁무천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형의 말이 맞아. 할아버지도 우문강천은 남이 욕하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 그러니까 친형인 우문강호를 제거하고 철혈마련의 련주가 된 거야.”
새로운 사실에 모두가 장대산을 바라보았다.
침상에 누워 있던 동대안도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야, 대산?”
“증거는 없지만, 철혈마련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고 했어.”
“그럼 알고도 우문강천이 련주가 되도록 놔두었단 말이야?”
“어. 철혈마련은 약육강식, 강자 우선이거든.”
***
자시가 되었는데도 철혈마련 곳곳이 깨어 있었다.
사공미미 사건 때문인지 기이한 긴장감이 철혈마련 전체를 안개처럼 휘어 감고 흘렀다,
천화광도 잠을 자지 않고 유궁의 보고를 들었다.
“소성주,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사공미미 사건은 나도 들었다. 도대체 어떤 멍청한 놈이 그런 짓을 벌인 거지?”
천화광은 와락 짜증이 났다.
사공미미를 이용해서 우문소소와 무천 사이를 조정해보려 했다. 그런데 사공미미가 납치되면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저, 꼭 그것만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럼?”
“철혈마원 내부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천화광의 눈빛이 다시 빛을 발했다.
“마원 내부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있다고?”
“예, 움직임뿐만 아니라 날선 긴장감이 곳곳에서 느껴지고 있습니다. 마치 대대적인 출동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흐으으음, 그래?”
확실히 수상한 일이었다.
비무대회가 한창인 지금 왜 철혈마원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단 말인가.
가볍게 지나치기에는 왠지 찜찜했다.
‘설마 사공미미를 납치한 범인을 잡기 위한 것은 아닐 테고…….’
사공미미의 신분을 생각하면 철혈마련이 전격적으로 범인색출에 나선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문제는 철혈의 근원인 마원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공미미 납치사건이 아무리 충격적이라 해도 마원이 대대적으로 움직일 정도는 아닌 것이다.
사공미미가 죽었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유궁이 또 하나의 보고를 올렸다.
“저…… 그리고…… 무천과 마제가 만났습니다.”
순간, 천화광의 두 눈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둘이 만났다고? 언제?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급하게 흘러나왔다.
“무천이 사공곽의 거처에서 나와 객당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때마침 그곳으로 가던 마제와 길 중간에서 만났습니다.”
그냥 인사나 하고 지나쳤다면 유궁이 심각하게 말을 꺼낼 이유가 없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지?”
“거리가 워낙 멀어서 대화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었습니다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몰라도 중간에 마제가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천화광은 무천이 철혈마제에게서 호탕한 웃음을 이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어떻게 됐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후 무천은 객당으로 가고, 마제는 사공곽을 만났습니다.”
“그래?”
그럼 단순히 대화만 하고 헤어진 건가?
천화광은 보고를 들을수록 답답함만 가중되었다. 유궁에게서 보고 받는 것만으로는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부족했다.
“유궁, 너는 사공곽을 살펴봐라. 무원의 상황은 내가 외조부님께 알아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
둥! 둥! 둥!
멀리 고루에서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마지막 열두 번째 북이 울리고 고요해졌을 때, 운공조식을 하고 있던 혁무천이 천천히 눈을 떴다.
떠나기 전에 알아봐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이미 장대산에게서는 대답을 들어둔 터였다.
우문학. 우문가의 원로인 그가 장대산의 조부인 패혼신마 장염의 친구였다고 했다.
그를 만나보기로 작정한 혁무천은 소리를 내지 않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어디 가려고?”
잠을 안 자고 있었는지 동대안이 물었다.
한 시진이라도 더 자겠다고 일찍 침상에 누웠는데, 막상 잠을 자려니 잠이 안 오는 모양이었다.
“떠나기 전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나도 가면…….”
“여기서 기다리쇼.”
“쳇.”
동대안이 못마땅한 듯 애들처럼 입을 삐죽였다.
혁무천도 이번만큼은 그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았다. 어차피 좋은 눈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니까.
“갔다 오면 바로 떠날지 모르오. 시간 있을 때 운기나 해두쇼.”
냉정하게 동행을 거부한 그는 바로 방을 나섰다.
방문이 닫히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강시처럼 상체를 일으켰다. 엽기천과 목량, 강탁, 장대산, 영추문까지 모두.
방을 나선 혁무천은 한 줄기 바람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당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무사들조차 그가 사라진 것을 보지 못했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며 단숨에 백여 장을 전진한 혁무천은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건물의 지붕 위에 내려섰다.
우문척의 거처인 철심원이었다.
그는 먼저 건물 안의 인기척부터 살펴보았다.
불이 켜진 방 안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흐릿한 기운 네 줄기가 건물 사방에 잠복해 있었다.
그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 우문척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자에게서 우문척이 지녔던 것과 같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의외라면, 잠복해 있는 자들 외에 경비를 서고 있는 무사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건가?
혁무천은 일단 환무신법을 펼치며 지붕에서 내려왔다. 마치 한 줄기 안개가 바람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그가 방문을 열 때까지 소리도 없고 흔적도 없었다.
방문이 마치 자동으로 열리는 것만 같았다.
잠복해 있던 자들이 반응을 보였을 때는 혁무천이 이미 방 안으로 들어선 후였다.
스스스스.
사방에서 밀려든 기운이 혁무천을 중심으로 휘도는가 싶더니, 너울거리는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입한 자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분노한 듯 그들의 전신에서 살을 저미는 살기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