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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9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2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94화

94화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무사 열다섯 명의 호위를 받으며 쌍두마차 한 대가 초원 위를 달린다.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남녀 둘.

은설은 앞에 앉아있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이는 이십 대 중후반쯤 될 듯했다.

잘생긴 얼굴이었다.

오빠에 비하면 어림 반 푼 어치도 없지만.

“왜 저를 납치한 거죠?”

막혔던 아혈이 풀린 상태였다.

한동안 풀어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찍 풀어주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누굴 만나려는데 저를 납치해요? 혹시 사람을 잘못 안 거 아니에요?”

“무천.”

“……오빠요?

“맞아.”

“오빠를 알아요?”

자경산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은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오빠는 강호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그도 나를 안다.”

“그래요?”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이름이 뭐예요?”

“자경산.”

“자 공자, 저를 풀어줘요. 그럼 제가 오빠에게 잘 말해줄게요. 오빠는 제 말이라면 꿈뻑 죽거든요.”

“무천이 오면 풀어주지.”

“안 오면요?”

“그럼…… 풀어줄 수 없어.”

“혹시 오빠에게 빚 받을 거라도 있어요?”

생각지 못한 말에 자경산은 눈을 두어 번 깜박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없어. 그런데…… 원래 말이 많나?”

“저도 말 많은 여자 싫어요. 하지만 이렇게 저처럼 꼼짝도 못하고 있어 봐요. 그럼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서 쉬지도 않고 말할 걸요?”

“그런가?”

“듣기 싫으면 풀어주시든지.”

“그건 안 돼. 차라리 혈도를 다시 제압하고 말지.”

헛!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조용히 할게요.”

은설은 청년, 자경산이 혈도를 제압하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자경산은 그런 은설에게서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어딘지 천진난만해 보이면서도 할 말은 꼬박꼬박 했다.

게다가 아름다운 얼굴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아마 화장만 하면 강동일화 우문소소 못지않을 듯했다.

“무천이 친오빠는 아닌 걸로 아는데.”

“…….”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가?”

“…….”

“언제부터 알게 된 사이지?”

“…….”

“내가 대답하기 너무 어려운 질문을 했나?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그제야 은설이 말했다.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말하면 혈도를 다시 제압한다면서요.”

이번에는 자경산이 말을 못했다.

설마 그런다고 아무 말도 안 하다니.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얼굴 예쁜 여자들이 머리는 좀 떨어진다고 하던데.

우문소소를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런데 저 표정은 또 뭐지?

자경산은 은설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심장이 여자를 보고 세찬 반응을 보인 것은 우문소소 이후 처음이었다.

“근데…… 오빠가 저에 대해서 뭐라고 했어요? 혹시 오빠에게도 서로 좋아하는 사이냐고 물어봤어요? 왜 그렇게 쳐다봐요?”

“…….”

“제가 예뻐서 쳐다보는 거죠?”

“……훗.”

자경산은 실소가 절로 나왔다.

어떻게 저런 말을 당연하다는 듯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여자의 가슴에 구미호의 꼬리처럼 다양한 성격이 숨어 있다지만 이런 여자는 처음이었다.

“오빠도 가끔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는 했어요. 그래서 왜 쳐다보냐고 하면 그랬죠. 예ㆍ뻐ㆍ서.”

마지막 말은, 혁무천의 표정과 굵은 목소리를 흉내 냈다.

“하, 하, 하.”

자경산은 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은설이 그런 자경산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경산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언제 이렇게 웃었던가 싶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웃을 일이 없었다.

십 년 넘도록.

“지금 자 공자의 표정이 얼마나 어색한지 아세요?”

“그렇게 어색했나?”

“막 웃고 싶은데, 누가 강제로 입을 붙잡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뭐랄까, 꼭 처음으로 소리 내서 웃어보는 사람 같아요.”

“정말…… 그랬나?”

“예, 보다가 슬퍼서 눈물이 나올 뻔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은설의 눈에는 정말로 물기가 고여 있었다.

“…….”

자경산은 가슴에 묵직한 뭔가가 뭉친 것만 같았다.

콧등을 씰룩인 그는 몸을 틀어서 마차의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바람을 좀 쐬어야겠군.”

마차가 달리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은설은 그런 자경산을 빤히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쳇, 사람은 순진한 거 같은데, 왜 마도에 있어.’

 

***

 

“놈들이 마차를 이용해서 도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도평이 땅을 가르며 뻗어 있는 마차자국과 말발굽을 보며 말했다.

조광유도 세밀히 살피고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자국이 선명한 걸로 봐서 지나간 지 오래 되지는 않은 것 같네.”

“가죠.”

신도평은 망설이지 않고 마차 자국을 따라 몸을 날렸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초조함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마차까지 준비한 놈들이다. 철저한 계획 하에서 움직였다는 뜻.

추적을 조금만 늦추어도 놈들은 자신들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신도평과 조광유가 경공을 펼치며 삼십 리쯤 달려갔을 때였다.

저만치 앞에 관도를 막고 늘어서 있는 자들이 보였다.

모두 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신도평과 조광유가 다가가자 무기를 뽑아들었다.

신도평과 조광유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거리가 오 장으로 줄어들었을 때는 이미 검을 빼들고 있었다.

길을 막아섰던 자들도 뒤로 처진 세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이 두 사람을 향해 마주쳐갔다.

상대가 누군지 알 필요도 없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 나눌 시간도 없이 곧장 격전이 벌어졌다.

신도평은 평소와 달리 광폭한 호랑이 같았다.

검세는 폭풍이 몰아치는 듯했고, 기세는 해일이 밀려가는 듯했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는 일 장 반경을 휘감았다.

“크억!”

“컥!”

무사 두 명이 신도평의 검세에 휘말려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조광유 역시 고수로서의 위용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의 검에는 만근의 힘이 실려 있었다.

정면으로 그를 상대한 무사들은 그의 무기를 통해 전해지는 거대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잠깐 사이 대여섯 명이 쓰러지거나 항거불능 상태가 되었다.

그때 뒤로 처져 있던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조광유를 공격하고, 사십 대 중후반의 나이로 보이는 중년인만 신도평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와하하하! 젊은 놈이 제법이구나!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보자!”

신도평을 향해 마주쳐가던 중년인이 광소를 터트리며 칼을 휘둘렀다.

도신의 길이만 석 자가 넘고 도면의 넓이도 다섯 치는 될 듯했다.

그의 커다란 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광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그러나 신도평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순식간에 십여 초의 공방이 지나갔다.

중년인, 폭풍마도 남교명도 더 이상 웃지 못했다.

신도평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강했다.

자경산이 ‘전력을 다해서 막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물러나시오.’라고 했을 때만 해도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더구나 그가 가장 신뢰하는 최측근 두 사람은 조광유를 상대하면서 위기에 몰려 있었다.

“빌어먹을!”

짜증이 난 그는 한마디 쌍소리를 내뱉고는 훌쩍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물러나라! 보내줘!”

신도평과 조광유도 굳이 그들을 죽이겠다고 계속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앞이 뚫리자 즉시 신형을 날렸다.

남교명은 두 사람이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열네 명 중 여덟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정말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문소소의 명이라는 자경산의 연락을 받고 심심풀이 삼아 나왔다가 너무 큰 피해를 입고 만 것이다.

“상처부터 지혈해라.”

그나마 몸이 성한 자들이 부상자들을 도와주었다.

남교명도 운기를 해서 진기를 안정시켰다.

이각쯤 지나자 기본적인 치료를 마친 무사들이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자가 보였다.

한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놈이야?”

남교명은 다가오는 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은 무복, 이십 대의 청년, 어디서 본 자 같았다.

그 사이 그자가 십여 장까지 다가왔다.

일어서 있던 수하들 중 두어 명이 그의 앞을 막으려 했다.

그때 다가오는 자의 정체가 생각난 남교명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다급히 소리쳤다.

“물러서!”

무천이란 자였다.

마룡선발대회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자. 백마궁의 장로조차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자.

수하들이 막을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다행히 수하들이 그의 외침에 뒤로 물러섰다.

무천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남교명은 다가온 무천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이거 무천 공자 아니신가? 자네가 여긴 어쩐 일로…….”

그러나 무천은 그를 본 척도 하지 않고 휭 하니 지나쳐갔다.

“저 새끼가……!”

자존심이 상한 남교명은 눈을 치켜뜨고 혁무천의 등을 노려보았다.

상대가 비록 마룡선발대회에서 인정을 받은 고수라 하나 자신보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서 시건방진 놈이……!

조금 전의 격전으로 내상만 입지 않았어도 쫓아가서 혼을 내주었을 것이다.

그때 십여 장이나 멀어졌던 혁무천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뒤돌아 왔다.

남교명은 재빨리 표정을 바꿨다.

“하나만 묻지.”

혁무천의 차가운 목소리에 남교명은 가슴이 뜨끔했다.

설마 자신이 한 말을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곧 어깨를 폈다. 자신도 내로라하는 절정고수였다. 무천이란 자에게 꿀릴 이유가 없었다.

“뭘 말인가?”

“은설을 납치한 자가 누군지 당신은 알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영……?”

“철혈마련에서 당신을 봤지. 당신이 나를 아는 것도 그곳에서 나를 봤기 때문일 것이고.”

“그거야…… 그렇네만.”

“그렇다면 은설을 납치해간 자가 철혈마련 사람이라는 말인데, 아닌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눈치 하나는 귀신같은 놈이다.

그래도 일단 버텨봤다.

하지만 무천은 신경전을 오래 벌일 생각이 없었다.

“모른다면 생각나게 해주지.”

무심한 투로 말을 내뱉은 그가 남교명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 그림자가 허공을 메우며 남교명을 향해 밀려갔다.

남교명은 눈을 홉뜨고 다급히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칼을 제대로 휘두르기도 전,

떠덩!

칼이 튕겨나가고, 손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대경한 남교명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혁무천이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가며 다시 우수를 뻗었다.

허공을 격하고 바위도 부술 장력이 남교명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를 악다문 남교명은 전력을 다해서 칼을 휘둘렀다.

떠더덩!

다시 굉음이 터지고, 칼의 궤적이 틀어졌다.

그리고 틀어진 칼의 궤적 사이로 장력이 밀려들었다.

퍽!

“크읍!”

남교명은 신음을 삼키며 주르륵 밀려났다.

그나마 도기의 벽에 막혀서 장력의 위력이 약화되어 땅바닥에 나뒹구는 창피만은 면할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나?”

“나는…….”

“우문척이 이곳에 있었다면 두 말 하지 않고 알려줬을 거야. 그는 내가 동생을 찾기 위해서라면 철혈마련과 머리 터지게 싸울 사람이라는 걸 알거든.”

남교명의 커진 눈이 잘게 떨렸다.

“자네가 대공자를 어떻게……?”

“당신이 계속 입을 다문다면 그와 내가 한 약속도 깨질 거다. 그 책임은 당신이 져야겠지.”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갑게 말을 내뱉은 혁무천이 남교명을 향해 발을 떼었다.

남교명도 더 버티지 못했다.

우문척까지 관련되어 있다면 자신의 손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자, 잠깐! 방금 생각났네!”

혁무천은 걸음을 멈추고 그의 눈을 응시했다.

남교명은 눈알이 얼어붙기 전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자경산! 그가 그 여자를 데려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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