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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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91화
91화
혁무천이 양주에 내렸을 때는 서서히 석양이 지고 있었다.
사진효 때문에 늦어진 시간이 너무나 아쉬웠다.
드넓은 양주에서 은설 일행을 찾는다는 것은 장강의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일단 양주에서 벌어졌다는 싸움에 대해 알아보았다.
길거리의 거지, 객잔의 점소이, 노점상 등을 상대로 은자 다섯 냥을 써가며 질문을 한 끝에 실마리를 찾아냈다.
싸움이 벌어진 것은 사흘 전. 정파의 고수인 도유철이 죽은 것도 분명했다.
그리고 일단의 무리가 어제 양주에 들어왔다는 것도 알아냈다.
인원은 십여 명. 은설이 끼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무사도 있었다고 했다.
천기회 사람들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들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혁무천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양주는 두 개의 세력이 낮과 밤을 지배하고 있었다.
천하이대상단 중 하나인 천화상단의 하부 조직이자, 양주 최강의 세력으로 평가받는 염양문.
돈이 넘쳐나는 양주 환락가의 제왕 소천회.
그 중 소천회의 총단은 양주 외곽에 있는 소천장이었다.
혁무천은 소천장을 찾아갔다.
쾅!
닫혀 있는 문은 그냥 부쉈다.
“웬 놈이냐!”
“저거 뭐하는 새끼야?”
갑작스런 굉음에 놀란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몰려나왔다.
혁무천은 장원 안쪽을 향해 걸어가며 달려드는 족족 때려눕혔다.
그가 장원 안의 커다란 건물 앞에 섰을 때는 오십여 명이 쓰러져서 신음을 흘렸다.
그제야 그에게 거는 말투가 달라졌다.
삼십 대 중반쯤 되는 장한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귀하는 누군데 이 야밤에 본 회를 찾아오신 거요?”
“알아볼 것이 있어서 왔다.”
“뭐요?”
“일단 이곳의 주인부터 만나야겠는데. 어디 있지?”
“회주께선 안에 계시오. 먼저 그대가 누군지부터 밝히시오.”
“나에 대해서는 알아봐야 좋을 것 없어. 회주에게 안내해.”
혁무천은 강압적으로 요구하며 다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나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아. 이제부터 나를 막는 자는 팔다리 중 하나 이상 부러질 거다. 재수 없는 사람은 황천으로 염왕을 만나러 갈 거고.”
그때 무기를 든 자들이 안쪽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 건방진 놈을 죽여라!”
혁무천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걸어가며 달려드는 자들을 처리했다.
무기를 든 자들은 대부분 팔이 부러졌다.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비명과 악다구니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내상을 입은 자들의 숫자가 백 명을 넘어갔을 때,
“모두 물러서라!”
정면의 커다란 건물 문이 덜컹 열리더니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소천회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황급히 물러섰다.
건물 안에서 나온 자는 넷이었다.
땅딸막한 오십 대 중노인과 삼사십 대로 보이는 무사 둘, 그리고 상인차람의 사십 대 중년인 하나.
혁무천은 건물에서 나온 자를 쳐다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귀공은 뉘시오?”
땅딸막한 오십 대 중노인이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한 가지 알아볼 것이 있어서 왔소.”
“대체 무엇을 알기 위해 이리도 심하게 손을 쓴 거요?”
“그 이야기는 이곳에서 하기가 좀 그렇군. 나야 상관없지만, 자칫하면 그대들에게도 피해가 갈지 모르니까.”
“이런 건방진……!”
중노인의 옆에 서 있던 사십 대 초반의 무사가 버럭 소리쳤다.
혁무천이 천천히 손을 들어서 그를 향해 뻗었다.
오 장이나 되는 거리, 중년무사도 중노인도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숨 한번 쉬기도 전에 안색이 해쓱하게 변했다.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이 바윗덩이에 짓눌린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중년무사가 다급히 전 공력을 끌어올리고 쌍장을 들어 앞을 막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쾅!
굉음과 함께 중년무사의 몸뚱이가 뒤로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조금 전에 말했지만, 나는 지금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오.”
소천회 회주 위형산은 오늘 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신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끔 팔대마세의 장로급 고수들을 만나본 그였다. 그들도 저자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저 사신이 검을 뽑기라도 한다면 소천장은 지옥으로 변할지 모른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오.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봅시다.”
혁무천은 당연하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서 건물로 다가갔다.
그는 위형산과 호위무사 바로 옆을 스쳐가면서도 티끌만큼의 긴장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혁무천이 지나가는 동안 위형산과 호위무사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방문자는 단순한 사신이 아니라, 염왕이었다.
“사람을 찾고 있소.”
혁무천은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말문을 열었다.
위형산도 가타부타 토를 달지 않았다.
앞에 있는 자는 얼굴만 매혹적일 뿐,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수백 명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다. 쓸데없는 말은 명만 앞당길 뿐이다.
“누구를 찾는데……?”
“백월검객 도유철이 죽은 일은 아실 거요.”
“으음, 알고 있소이다.”
“그 일과 관련해서 어제 남녀 십여 명이 진강에서 배를 타고 양주에 들어왔소. 그들은…….”
혁무천은 구요를 통해서 들은 천기회 인물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주었으면 하오.”
위형산은 내심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만 해도 그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들의 위치만 알아내면 되는 거요?”
“그렇소. 최대한 빨리.”
“즉시 알아보도록 하겠소.”
위형산은 촌각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런 일은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최상이었다.
“영규, 네가 직접 소천팔상을 지휘해서 그들을 찾아내라.”
“예, 회주.”
바로 옆에 서 있던 중년상인이 포권을 취하며 답하고는 밖으로 뛰듯이 나갔다.
위형산이 다시 혁무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들을 찾을 때까지 후원에서 기다리시구려.”
“그럴 것까지는 없소. 바로 앞에 객잔이 있던데, 그곳에서 기다리겠소.”
혁무천은 무심한 어조로 말하고 몸을 돌렸다.
“오늘 나로 인한 이곳의 피해에 대해서는 따로 대가를 지불할 거요.”
“굳이 그러실 필요는…….”
“오면서 들으니 소천회가 염양문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봤다고 하던데.”
위형산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그들은 본래 천화상단의 하부조직인데, 이번에 만경방과 손을 잡았소. 그 바람에 장강을 타고 바다로 오가는 길이 막혀서 우리와 거래하던 염상들이 염양문으로 많이 돌아섰소.”
소천회는 환락가뿐만 아니라 밀염을 취급했다.
그동안에는 막대한 이문이 남는 밀염을 염양문과 양분해서 팔았는데, 이제는 밀염 시장을 모조리 빼앗길 판이었다.
혁무천은 만경방 이야기가 나오자 문득 바다에서 만났던 부광춘이 떠올랐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때 위형산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뿐만 아니라 만경방이 일류고수들을 염양문에 지원해줘서 이제는 양주의 사업장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오.”
고개를 끄덕거린 혁무천은 대전을 나섰다.
“찾으면 객잔으로 연락하시오.”
“알겠소이다.”
혁무천이 소천장을 나선 지 이각쯤 지났을 때, 염양문이 난데없는 한밤의 불청객으로 인해 발칵 뒤집혔다.
혁무천이 염양문을 찾아간 것이다.
혁무천은 그곳에 들어가서도 문주를 찾았다.
당연히 코웃음과 ‘건방진 어린새끼’라는 욕이 날아들었다.
그가 소천회에서처럼 문주를 찾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염양문 무사들이 가소롭다는 듯 앞을 막아섰다.
혁무천은 앞을 막는 자들을 모조리 때려눕혔다.
개중에는 염양문의 무사도 있었고, 만경방에서 초빙한 고수도 있었다.
쓰러진 자만 해도 팔십여 명. 개중 십여 명은 염라대왕에게 보내버렸다.
혁무천은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염양문은 천화상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밀염을 주업으로 해서 큰 곳이었다.
독하기로는 환락가를 장악한 소천회보다 독했고, 악랄하기로는 마도사파 그 어느 곳보다 더 악랄했다.
반면 만경방은 장강십팔채와 함께 장강의 권력을 양분하는 수적 패거리였다.
죽은 자들이 제법 되었지만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당한 염양문은 문을 걸어 잠그고 혹시 모를 경쟁 상대의 공격에 대비했다.
염양문을 뒤흔들어 놓고 객잔으로 돌아온 혁무천은 소천회의 연락을 기다렸다.
한 시진쯤 지난 해시 무렵, 위형산이 직접 혁무천을 찾아왔다.
단순히 소식만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염양문이 된통 당한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는 염양문을 찾아간 불청객의 정체가 혁무천이라는 걸 눈치 채고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끝까지 대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만 하면 등골이 오싹했다.
“찾는 분들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소이다, 공자.”
“어디 있소?”
“가장 최근에 발견된 곳은 양화진이라 하오.”
“여기서 얼마나 가야 하오?”
“서쪽으로 삼십 리 정도 가면 나오는 마을이외다. 그곳에 가시면 본 회의 아이들이 공자를 기다리고 있을 거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이다.
혁무천은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맙소.”
“아니외다. 고맙기는 우리가 고맙지요.”
위형산이 넌지시 말하고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당분간은 염양문으로 인한 걱정을 덜었으니 손해는커녕 커다란 이익을 본 셈이었다.
“그리 생각하신다니 빚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겠소.”
“그리하리다. 언제든 양주에 오면 찾아오시구려. 최선을 다해 모시겠소이다.”
위형산은 강호인이기 이전에 뛰어난 상술을 지닌 상인이었다. 그는 혁무천이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꿰뚫어보았다.
***
경공을 펼쳐서 양화진에 도착한 혁무천을 소천회의 무사로 보이는 자가 기다렸다가 맞이했다.
“혹시 양주에서 오신 무 공자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소천회 무사는 숨을 들이켜서 가슴을 진정시켰다.
백여 명을 어린애 손목 비틀 듯이 가볍게 처리한 고수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오늘이 제삿날이 될지 몰랐다.
“찾으시는 분들은 저쪽, 서쪽 끝에 있는 유가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혁무천은 막상 은설을 만나게 된다는 생각이 들자 묘한 마음이 들었다.
그 어떤 고수를 만나도 끄떡없던 심장이 주책없이 뛰었다.
“그 장원에 대해서 아시오?”
“학사로만 알려진 유연천이란 자의 장원입니다.”
“그들이 그 장원에 있는 이유는?”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도유철의 죽음과 관련해서 누군가를 만나려고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흐음…….”
“지금 가보시겠다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니오. 그대는 정확한 위치만 알려주시오.”
“예, 그럼…….”
자시 초.
어둠 속의 장원은 풀벌레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혁무천은 정문 앞에 도착해서 손을 들고 한참이나 서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손을 뻗어 정문을 두드렸다.
탕탕.
문을 두드리고 한참이 지나자 안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오셨수?”
늙수그레한 목소리.
자시가 넘은 시간에 찾아온 손님이 반갑지 않은 듯 퉁명스런 반응이었다.
“사람을 찾으러 왔소이다.”
“사람을?”
“이곳이 유가장 아니오?”
“유가장은 맞소만.”
“이곳에…… 내 동생이 와있다고 해서 왔소만.”
혁무천의 말이 자신도 모르게 미미하게 들떴다.
“동생? 뉘신데……?”
안에서 빗장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경첩이 짜증을 내듯 끽끽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육순이 넘을 듯한 나이의 노인이 고개를 내밀며 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무천. 그리고 내 동생은… 은설이라 하오.”
그때 안쪽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모시게.”
노인이 옆으로 비켜났다.
“들어오슈.”
무천은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저편, 정원 건너 쪽에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등진 채 몇 사람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