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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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90화
90화
그날 밤, 화톳불이 타오르는 금천방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곽동완의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금천방의 권력을 놓고 장로인 곽추민과 곽도전이 충돌한 것이다.
시작은 곽추민이 했다.
곽동완의 사촌 동생인 그는 금천방의 권력이 젊은 조카에게 넘어가는 것이 못마땅했다.
더구나 그는 곽도전이 곽동완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양자보다는 사촌인 자신이 더 후계자로 적합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곽도전을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은 곽추민의 말에 반발했다.
양자든 친자든 곽도전은 전대 방주가 인정한 유일한 후계자였다.
능력 또한 젊은 청년고수 중 발군으로 이미 전대 방주의 경지에 근접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한 곽도전을 무시하고 곽추민을 방주로 받들 수는 없었다.
더구나 곽추민은 지나친 욕심 때문에 그동안 문제를 일으킨 적도 많았다.
만약 금천방의 권력이 곽추민에게 넘어간다면 금천방은 미래를 꿈꿀 수 없으리라.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이 금천방을 짓누르고 있을 때, 천륭객잔의 밀실에서는 곽도전과 상관중이 만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그동안 품고 있던 모든 의문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제 아버지이십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왜 찾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때 집안의 사람들은 하인까지 모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거든.”
“후우우우.”
곽도전은 한숨을 내쉬며 소매로 쓱, 눈물을 닦아냈다. 눈이 붉어져 있었다.
상관중이 손을 뻗어서 곽도전의 손목을 잡았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미안하구나.”
그의 눈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한편, 혁무천은 일층에서 술병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가족들…….
그의 가족도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만일혈사를 일으켜 복수를 했다.
곽도전과 상관중처럼 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세월마저 백 년이 훌쩍 넘게 흘러버렸다.
빌어먹을.
혁무천은 단숨에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목구멍이 싸하니 뜨거워졌다.
문득 사천에서 만났던 자가 떠올랐다.
‘장평이라 했던가?’
그때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비장했었는데, 아직 살아 있을까?
살아서 만나면 술 한잔 사겠다고 했는데,
자신이 사는 술을 얻어먹기 위해서라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쪼르르륵.
술잔을 채운 혁무천은 다시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그때 동대안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갑자기 웬 궁상?”
“술 마시기 좋은 날 같아서 한잔 하고 있는 중이오.”
“비가 오려고 하는데, 뭐가 좋은 날이야?”
“비 오는 날이 술 마시기 더 좋지 않소.”
“하긴…… 나도 한잔 주게나.”
동대안이 털썩, 자리에 앉더니 술잔을 하나 당겨서 앞에 가져다 놓았다.
혁무천은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동 형은 지금 강호가 어떻다고 보시오.”
“강호? 그거야 한치 앞도 보기 힘든 요지경 속이지 뭐.”
“정파와 마도가 전쟁을 벌일 것 같소?”
“솔직히…… 붙을 거라고 봐. 아니, 붙을 수밖에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힘이 너무 강해졌거든. 정파도 어느 정도 힘을 되찾았고. 가득 차면 넘치는 것이 세상 이치지.”
동대안은 무슨 철학가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술잔을 들어서 홀짝 들이켰다.
“만약 그들이 싸운다면 어느 쪽 편을 들 생각이오?”
“내가 왜 그들을 위해 싸워야 하지? 나는 구경만 할 거야.”
“그래도 반드시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한다면?”
“음…… 그러면…….”
말을 길게 끌던 동대안이 작은 눈으로 혁무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천, 자네 편을 들 거네.”
“내 편?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요?”
“그래야만 내가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거든. 자네와 적이 되면 보나마나 평생 뒤를 돌아보며 살아야 할지 몰라. 난 그렇게 살기는 싫어.”
실소를 지은 혁무천도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동대안이 술을 가득 따르자,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정파와 마도, 양쪽 모두 못마땅했다.
“난…… 설아의 편을 들 거요.”
동대안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은설을 찾기 위해 벌이는 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은설이 원한다면 천하마도와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였다.
무천이 정말 마도와 전쟁을 벌이면 자신은 어떡하지?
‘여차하면 도망가지 뭐.’
곽도전과 상관중은 한 시진 정도 회포를 푼 후에야 나중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더 있고 싶었지만, 곽도전이 너무 오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곽추민이 의심할지 몰랐다.
곽도전이 고마움을 표하고 떠난 후, 혁무천은 상관중과 따로 만났다.
상관중의 표정은 전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고맙네.”
“구 노인을 대신해서 나선 것이니 고마워하려면 구 노인에게 하십시오.”
상관중은 이마를 두어 번 찡그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말해보게.”
“함께 있던 그 사람, 누굽니까?”
혁무천의 질문에 상관중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미안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네.”
“강호에 알려진 어느 세력과도 연관이 없는 곳이겠지요.”
상관중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금천방을 칠 정도의 세력이 알려지지도 않은 곳이라는 게 이상해서요.”
혁무천은 할 말만 하고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상관중이 머뭇거리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이거 하나만 알게. 곧 강호에 폭풍이 불어댈 거네. 자네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때 가서 정해도 늦지 않을 거야.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겠네.”
혁무천은 삼뇌자가 예언처럼 남긴 글과 목량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그 일이 일어나려는 건가?’
***
다음 날 아침, 혁무천 일행이 식사를 마쳤을 때쯤 구요가 구진을 보냈다.
혁무천은 곧장 구요에게 달려갔다.
은설에 대한 소식이 온 것이다.
“천기회 사람들이 사흘 전에 소주를 출발했소. 여인이 둘이고, 남자가 열네다섯 명쯤 된다고 하오.”
“남경 쪽으로 옵니까?”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구요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게 좀 묘하게 되었소.”
“예?”
“분명히 남경으로 올 거라 생각했는데, 단양에서 북쪽으로 꺾어졌다는구려.”
“북쪽으로 꺾어졌다 하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아십니까?”
“진강을 통해서 양주로 간 것 같다고 했소.”
신양으로 가던 사람들이 왜 양주에 간단 말인가?
“그들이 왜 양주에 갔는지 아십니까?”
“노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소만, 며칠 전 양주에서 제법 큰 싸움이 벌어졌다고 했는데, 그 일 때문에 간 것이 아닌가 싶소. 당시 싸우다 죽은 사람 중에 정파의 고수인 백월검객 도유철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가 천기회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오.”
그들이 양주로 갔다면 이후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남경으로 올 수도 있고, 곧장 신양으로 갈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일에 휘말릴 수도 있고.
문제는 후자일 경우다. 자칫하면 은설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가서 찾아봐야겠소. 동 형은 대산과 추문을 데리고 이곳에서 엽 형 일행을 기다리시오.”
동대안은 데려갈까 했다. 그러나 우직한 장대산과 세상 물정 모르는 영추문만 남겨놓으려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눈치 빠른 동대안이라면 급박한 일이 생겨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으리라.
동대안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누굴 찾는다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느니 구경거리 많은 남경에서 느긋이 기다리는 게 나았다.
“알았네. 걱정 말고 다녀오게.”
구요의 집을 나온 혁무천은 곧장 남경을 벗어났다.
진강으로 가서 양주로 건너갈 생각이었다.
진강까지의 거리는 이백 리 정도. 별 일만 없다면 해가 지기 전에 양주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진강에 도착해서 선착장으로 가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그를 반겼다.
“어이구, 이게 누구신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자, 사진효였다.
그의 옆에는 마곡청이 서 있었는데, 잡아먹을 것처럼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자네가 사라진 덕분에 힘 안 들이고 팔대마룡에 들었다네. 하하하.”
“나는 급히 갈 곳이 있으니 다음에 이야기하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냥 헤어지면 섭섭하지. 차라도 한잔 하세.”
“바빠서 오늘은 안 돼. 그럼…….”
혁무천이 사진효의 청을 거절하고 걸음을 옮기려 하자, 마곡청이 독사 같은 눈빛을 번뜩이며 막아섰다.
그는 오래 전부터 혁무천이 마음에 안 들었다.
“삼 공자가 청하는데 감히 거절하다니. 네놈이 본 맹을 너무 우습게 보는구나.”
“비켜, 늙은이.”
“뭐, 뭐라?”
“죽고 싶지 않으면 비키라고 했다.”
“이 개자식이……!”
발끈한 마곡청이 우수를 들었다. 공력이 실린 우수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죽여 버리겠다!”
분노를 참지 못한 그가 소리치며 혁무천을 향해 우수를 내리쳤다.
차가운 눈으로 마곡청을 보던 혁무천도 우수를 들어서 마주쳐갔다.
쾅!
두 사람의 장력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마곡청이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장력을 쳐낸 우수가 묘하게 틀어져 있었다. 뼈가 어긋난 듯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혁무천은 한번 공격으로 멈추지 않았다. 일장 격돌 후 멈칫했던 그는 물러서는 마곡청을 따라가며 좌수를 마저 뻗었다.
단지 손을 뻗었을 뿐인데 손 그림자가 대여섯 개로 늘어났다.
마곡청의 일그러진 얼굴이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그는 물러서면서 좌수를 휘둘렀다.
다급하다 보니 공력도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혁무천은 마곡청의 좌수를 쳐내고 가슴을 향해 다시 우수를 뻗었다.
장심에서 무채색의 기운이 회오리쳤다.
마곡청의 커진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멈춰라, 무천!”
사진효가 소리치며 공격에 나섰다.
혁무천은 우수를 마저 흔들고 몸을 돌렸다.
쾅!
마곡청의 몸뚱이가 일 장을 튕겨나가서 나뒹굴었다.
그 사이 혁무천은 쌍장을 교차시켜서 사진효의 공격을 차단했다.
두 사람의 장력이 벼락처럼 충돌했다.
떠더덩!
사진효는 혁무천과 맞선 후에야 마곡청이 왜 그리 쉽게 무너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손이 얼얼했다. 팔꿈치까지 찡하니 울렸다.
그나마 마곡청이 당하는 걸 보고 공력을 구성이나 끌어올렸기에 그 정도에서 그쳤다.
뒤로 물러서서 거리를 벌린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만하지, 나는 자네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네.”
혁무천은 이 기회에 사진효를 죽여버릴까 생각했지만, 싸우지 않겠다고 물러서는 놈을 공격하기도 어정쩡했다.
‘교활한 놈.’
게다가 그는 사진효의 목숨 따위보다 시간이 흐르는 게 더 아까웠다.
“그럼 비켜주시지.”
“그래, 가라고, 가.”
어깨를 으쓱 추켜 올린 사진효는 옆으로 비켜섰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혁무천은 사진효를 쳐다보지도 않고 선착장으로 갔다.
사진효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죽일 놈의 새끼. 지금은 물러선다만, 다음에 만날 때는 무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다.’
장강을 건너가는 도선은 반 시진마다 있었다.
즉 배를 놓치면 최소한 반 시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사진효 일행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그만 간발의 차이로 배를 놓치고 말았다.
혁무천은 되돌아가서 사진효와 마곡청을 패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찾아가서 죽인다고 떠난 배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배를 찾아보는 게 나았다.
다행히 반 시진이 되기 전에 양주로 건너가는 배를 하나 찾아냈다.
도선을 타는 것보다는 선비가 비쌌지만, 그 정도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