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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89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89화

89화

 

 

“여동생이 천기회 사람들과 주산도에서 나왔단 말이지요?”

구요가 혁무천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혁무천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해봐야 의심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소주나 항주 쪽으로 가볼 것인지 고민 중입니다.”

“흠, 그렇다면 남경으로 올지도 모르겠군. 소주나 항주로 가다가 길이 엇갈릴 수도 있으니 차라리 이곳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소.”

“천기회의 지부가 남경에도 있습니까?”

“지부는 아닌데, 그들과 밀접한 관계인 자가 남경에 있소. 이 늙은이가 애들을 시켜서 알아보리다.”

“고맙습니다.”

“대신 공자도 나 좀 도와주시오. 어차피 동료를 만나기로 한 날이 사나흘 후라고 했으니, 그때까지만 도와주시면 되오.”

“금천방과 관련된 일입니까?”

“그렇소. 사실…… 죽은 상관중의 숙부가 내 친구였소. 아무래도 덩치만 큰 멍청이를 혼자 놔두면 안 될 것 같소.”

“알겠습니다.”

담담히 대답한 혁무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몇 마디 덧붙였다.

“하루에 은자 다섯 냥입니다.”

“…….”

“내 일을 도와준다고 해서 싸게 해준 거요.”

은설이 그랬다. 땀 흘려서 일하면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그런 돈이 가치 있다고.

뭐, 정확한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

 

혁무천은 거처를 엽기천 일행과 만나기로 한 천륭객잔으로 잡았다.

첫 번째 날에는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엽기천과 목량 일행에 대한 소식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오시 초, 구요의 집에서 봤던 소년, 구진이 객잔으로 달려왔다.

전날의 오만하던 태도와 달리 쭈뼛거렸다.

“할아버지가 오시래요.”

동대안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물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

전날 한 행동이 있는지라 구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었다.

“헤헤, 잘은 모르고요, 어제 왔던 곽 공자와 관련된 일인가 봐요.”

은설의 일이길 바랐는데, 금천방 쪽의 일인가?

 

혁무천 일행은 객잔을 나서서 염천로로 갔다.

구요가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공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상관중을 찾아냈소. 그는 아직 곽도전이 자신의 아들인 줄도 모르고 금천방을 본격적으로 공격하려는 것 같소.”

“모르고 있다고요?”

“공식적으로는 그의 가족이 모두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 모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소.”

“흐음.”

“공자가 그를 만나주었으면 하오.”

“내가 상관중을? 누구보다 그들 관계를 잘 아는 노인장이 직접 만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혁무천의 그 말에 구요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상관중은 나를 좋아하지 않소. 아니,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무척 싫어하오.”

“이유가 있겠군요.”

“오래 전, 내가 그에게 어떤 사실 하나를 알려준 적이 있소. 그 일로 인해서 그는 그가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소.”

세상에는 가끔 모르는 것이 나을 경우가 있다.

삼십여 년 전만 해도 구요는 자신이 보는 점의 정확성을 자신해서 무엇이든 거침없이 말했다.

상관중에게 사실을 알려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확인을 위해 알려준 것이다.

차라리 그 사실을 몰랐다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후 상관중은 그를 멀리했다.

“아마 그는 내 말을 믿지 않을지도 모르오. 그럼 곽도전조차 부정할지 모르니, 차라리 나는 안 만나는 게 낫소이다.”

“알겠습니다. 내가 만나보죠.”

곽도전도 불쌍한 인생이었다. 외면하기에는 그의 처지가 너무나 안 되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 구요가 또 다른 사실을 하나 말해주었다.

“상관중이 혼자는 아닌 것 같소. 아마도 그를 따르는 자들이 있거나, 아니면 그를 배후에서 움직이는 세력이 있을지도 모르오.”

“상관중이 누군가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소. 그게 사실이라면 일이 좀 더 복잡하게 흐를지도 모르오.”

“흐음, 알았습니다. 그 점 염두에 두고 만나보지요. 그런데 어디에 있습니까?”

“영산의 남응사에 있소. 구진이 안내해 줄 거요.”

“혹시 내 여동생이나 일행들에 대한 소식은 없었습니까?”

“아직은 없소. 애들이 남경 일대를 주시하고 있으니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알려주겠소.”

“알겠습니다.”

혁무천이 일어났다.

“대산과 추문은 객잔에서 쉬며 기다려라.”

장대산은 혁무천의 말이라면 장강이 황하보다 북쪽에 있다 해도 믿었다.

“어.”

영추문은 잘 됐다는 표정이었다. 귀찮아지는 것은 질색이었다.

동대안이 구진을 재촉했다.

“뭐해? 안내해.”

“제가요?”

“네 할아버지가 그랬잖아. 네가 안내해줄 거라고.”

구진의 입이 한 자는 튀어나왔다.

하지만 혁무천이 내민 은자를 보고 금방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공짜로 일을 시킬 수는 없지.”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뒤돌아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확실히 쫄병하고 대장은 다르다니까.”

“저 자식이……!”

 

***

 

영산은 남경성 남문에서 십여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바로 그 영산의 왼쪽 아랫자락 송림 속에 사찰이 있었다.

“저기가 남응사예요.”

구진이 손을 들어서 사찰을 가리켰다.

“수고했다. 그만 가봐라.”

“예, 공자.”

 

남응사는 남경 인근의 사찰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혁무천과 동대안이 안으로 들어가자 승려 하나가 지나가다 보고 다가왔다.

“나무아미타불,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혁무천이 사찰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지 스님을 만나러 왔소.”

“주지 스님께서는 지금 손님을 만나고 계십니다. 잠시 후에 다시 오시지요.”

“바로 그 손님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소.”

삼십 대로 보이는 승려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동대안이 은근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남응사에는 절대 해가 되지 않을 거요.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만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우리도 모른다오.”

삼십 대 승려는 고민을 하더니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어차피 사찰의 규모가 작아서 갈 곳도 마땅치 않았다.

두 사람은 승려가 올 때까지 한쪽 나무 아래에서 기다렸다.

 

반각쯤 지났을 때 승려가 삼십 대 중반의 무사 하나와 함께 돌아왔다.

무사는 굳은 표정으로 혁무천과 동대안을 살펴보았다.

한 사람은 아름다운 여인 뺨치게 잘 생겼고, 한 사람은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묘한 얼굴이었다.

둘 다 무기를 소지했는데, 무공의 수준을 알 수가 없었다.

“우리를 무슨 일로 만나고자 하는 거요?”

“우리가 만나려는 사람은 상관 성을 쓰는 사람이오. 그분을 만나야 말할 수 있소.”

혁무천의 말에 무사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분을 아시오?”

“구요라는 분에게 들었소. 아마 그 말을 하면 만나겠다고 할 거요.”

솔직히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하지만 만나지 않겠다고 해도 뭔가 반응은 있겠지.

무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슬쩍 고갯짓을 했다.

“따라오시오. 일단 말씀은 드려보겠소.”

 

방장실로 들어간 무사는 일각쯤 지난 후에야 나왔다. 다행히 상관중은 혁무천을 만나보겠다고 했다.

“한 분만 들어오시오.”

동대안이 밖에 남고 혁무천이 안으로 들어갔다.

방장실에는 네 사람이 있었다.

주지로 보이는 육순의 노승, 오십 대로 보이는 중년승, 육순쯤의 노인, 그리고 사십 대 중후반의 중년 무사.

상관중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육순 노인을 보니 곽도전의 얼굴이 투영되었다.

더구나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상관중이다.”

“무천이오.”

순간, 상관중에게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기운이 혁무천에게 밀려갔다.

그러나 혁무천은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상관중의 기운을 받아냈다.

“젊은 친구가 제법이군.”

“불필요한 시험은 하지 않았으면 하오. 괜히 분위기만 어색해지니까 말이오.”

상관중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지간한 절정고수라 해도 받아내기가 쉽지 않은 기세였다. 그런데 이제 이십 대로 보이는 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내다니.

게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모습은 오히려 그를 놀라게 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걸 구요 노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군.”

“중요한 건, 구 노인이 알았다면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겠지요.”

상관중의 이마에 내 천(川)자가 그어졌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가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났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으니까.

“그건 자네 말이 옳네. 그런데 무슨 일로 왔는가?”

“금천방의 일 때문에 왔습니다.”

그 말에 상관중의 얼굴에서 한기가 풀풀 날렸다.

“구 노인이 금천방의 일에 관여한 건가?”

“정확히는 곽도전 때문에 왔지요.”

“곽도전? 곽동완의 아들 말인가?”

역시나 상관중은 곽도전의 정체를 모르고 있나보다.

“그렇습니다.”

“그자의 일을 왜 나에게 말하는 거지?”

“금천방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그를 도와줄 생각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허, 허허허. 내가 왜 곽동완의 아들 놈을 도와준단 말이냐?”

상관중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노승과 중년승, 사십 대 무사의 얼굴에도 실소가 떠올랐다. 별 미친놈 다 봤다는 듯.

혁무천은 그들이 비웃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몰랐습니까?”

“뭘 말이냐?”

“곽동완이 곽도전을 세 살 때 양자로 들인 거 말입니다.”

“무슨……?”

그때 문득 스치는 어떤 생각에 상관중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혁무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가슴에 송곳을 박았다.

“귀하가 도와줬으면 하는 사람은, 곽동완의 아들이 아니라… 귀하의 아들인 상관도입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귀하는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게 싫은가 보군요.”

“그게 아니라…….”

이미 상관중은 처음의 냉정을 잃은 후였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에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실소를 짓고 있던 승려들과 중년무사도 경악한 표정이었고.

“곽도전을 도와주어야 할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금천방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이 그 사실을 빌미로 곽도전을 제거하려고 할 텐데, 도와주지 않으면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자네 말…… 사실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내 눈이 증겁니다. 곽도전과 귀하는 정말 많이 닮았습니다. 특히 귓불이 길게 늘어진 귀가.”

상관중의 상체가 흔들렸다.

귀가 닮은 것은 상관가의 내력이었다.

상관가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귓불이 길었다.

“사실이라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사십 대 중년무사가 이마를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상관 형, 상부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오.”

“만나서 이야기만 나누어볼 생각이네.”

“자칫 사적인 일을 앞세우다 보면 원대한 계획이 어긋날 수 있소.”

상관중이 고개를 돌려서 중년무사를 쳐다보았다.

“그대들의 도움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그렇다 해서 나의 모든 것을 좌우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우린 그저 동일한 목적을 위해서 좋은 관계가 지속되길 바랄 뿐이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네. 가서 말씀드리게. 이 상관중의 마음은 변함없다고.”

중년 무사는 마음에 안 드는 듯했지만 더 이상 상관중을 몰아붙이지 않았다.

“으음, 알겠소. 어쨌든 이번 일이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소.”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인 상관중이 시선을 혁무천에게로 돌렸다.

“그 아이를 만났으면 하네.”

혁무천도 중년무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관중의 배후에 있다는 세력과 연관된 자인 듯했다.

그런데 초절정고수인 상관중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정파의 무공은 아니야. 뭔가 수상한 자들이군.’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가 아니었다.

“오늘 저녁에 자리를 만들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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