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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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88화
88화
단 걸음에 삼 장이 줄어들고 방문 앞에 섰다.
그때 방 안에서 구요의 노성이 들렸다.
“야, 이 자식아!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네 아비는 금천방주가 아니라 따로 있단 말이다!”
“……뭐?”
“아, 진짜……. 콜록콜록, 애새끼가 왜 그리 성격이 급해?”
“다, 다시 말해…… 보쇼. 방금 뭐라고 했수?”
“금천방주 곽동완이 널 키우긴 했지만, 친 아비는 아니란 말이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냐?”
“…….”
“아, 젠장! 이게 뭐야? 멍청한 놈 때문에 돈 들어가게 생겼네.”
문을 연 혁무천이 보기에도 수리를 하려면 돈 깨나 들어갈 듯했다.
하지만 장한은 목상이라도 된 듯 멍한 표정으로 노인만 바라보았다.
오 척 단구에 뼈만 남은 몸매, 염소수염, 유난히 큰 코가 이상하게 보이는 칠순의 노인.
그가 바로 염천로의 터주대감, 호리자 구요였다.
방 안을 둘러보며 투덜대던 구요는 방문이 열리고 혁무천이 들어서자,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넌 뭐야? 오늘은 장사 끝났으니까, 꺼져!”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는 그렇고…… 한 가지만 물어보지요.”
“가라니까?”
짜증을 내며 홱 고개를 돌린 구요가 혁무천을 째려보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잔뜩 짜증이 나 있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그리고 곧 입도 벌어지고, 눈도 커졌다.
“뭐, 뭐야, 너…… 아니 당신…….”
참으로 괴이한 반응이었다.
금천방주의 아들조차 우습게 알고 욕을 퍼붓는 그가 반 존대를 한다. 아마 그를 아는 사람이 들었다면 잘못 들은 줄 알고 자신의 귀를 수세미로 쑤셔댔을 것이다.
혁무천도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일단 질문부터 했다.
“장염 노인을 아시오? 뭘 알고 싶으면 염천로에 가서 구요 노인을 만나라고 했다던데.”
“장염? 헛! 그 늙은이를 아시오?”
“그 노인을 직접 아는 건 아니고, 장염 노인의 손자를 알고 있소.”
“장염 늙은이의 손자?”
“그렇소. 함께 왔는데, 지금 마당에서 돌부처처럼 앉아 있소.”
그때 장한, 곽도전이 끼어들었다.
“잠깐! 일단 내 이야기부터 끝내고!”
혁무천도 그렇게 급하지는 않았다.
뒷짐을 진 그는 입을 닫고 곽도전이 이야기하게끔 놔두었다.
“영감,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금천방주 곽동완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내 아버지다, 그 말이오?”
“그래. 내가 알기로는 세 살 때쯤 네놈을 양자로 삼았을 거다.”
“세 살…….”
곽도전이 멍하니 기억을 더듬었다.
안 그래도 예전부터 뭔가 이상한 기억이 있었다.
그냥 꿈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 그럼…… 내 진짜 아버지는 누구요?”
구요는 인상을 쓰더니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우우.”
그러고는 확, 곽도전을 째려보며 말했다.
“정말 알고 싶냐?”
끄덕끄덕.
입을 꾹 닫은 채 고개를 끄덕인 곽도전이 안 알려주면 당장 칼이라도 뺄 것처럼 구요를 노려보았다.
“후회 안 할 거지?”
“안 해. 안 한다고. 후회 안 할 거니까, 알려나 주쇼.”
“미리 말하는데, 절대 금천방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된다.”
“안 하면 되잖아, 영감탱이야!”
“이 자식이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체구도 작고 빼빼 마른 구요가 덩치 큰 곽도전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곽도전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듯.
혁무천은 그 이유를 알기에 구경만 했다.
구요의 성격이 괴팍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구요는 은둔한 기인이사처럼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는 고수였다.
체구는 작지만, 팔대마세의 장로들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았다.
그러니 구요에게 곽도전은 그저 덩치만 큰 애송이일 뿐.
곽도전도 뭔가를 느꼈는지 성질을 죽였다.
“알았수, 알았어. 소리 안 지를 테니까, 빨리 말해보쇼.”
구요가 그제야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네 아비는…… 상관중이다. 삼십 년 전에 몰락한 상관가의 가주.”
곽도전의 눈이 커졌다.
“상관중? 설마… 아버지의 친우였다던… 그 상관가의 가주?”
“맞아.”
“어떻게…… 말도 안 돼.”
“믿기 싫으면 믿지 마. 나도 강요할 생각 없으니까.”
“정말… 정말 상관가의 상관중이… 그 분이 내 친아버지란 말이오?”
“그렇다니까.”
“그런데 왜 아버지가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거지? 왜?”
넋이 반쯤 빠진 곽도전의 말에 구요가 이마를 찌푸리더니 결국 새로운 사실을 말해주었다.
“상관가는… 금천방에 의해 멸문 당했다.”
“……뭐요?”
“보물을 얻은 게 죄였지.”
“…….”
“금천방이 언제부터 마도십문의 하나로 세력을 키웠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거다.”
금천방은 이십오륙 년 전부터 급작스럽게 세를 키웠다.
초절정고수가 된 금천방주 곽동완이 남경 일대의 고수들과 비무를 벌인 후 패배한 그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구요의 말인 즉, 곽동완이 고수가 된 배경에 상관가의 보물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난… 난…… 믿기지가 않소.”
“네놈이 믿든 안 믿든,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런데 왜 나를 살려서 자식으로 삼았단 말이오?”
“그거야 곽동완은 아들이 없으니까. 자식을 더 낳을 수도 없고.”
“…….”
곽도전은 외아들이었다. 위로 두 딸이 있을 뿐.
그때 혁무천이 나직이 말했다.
“그 일이 금천방주 곽동완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구요가 혁무천을 힐끔거렸다.
반면 곽도전은 홱, 고개를 돌려서 불길이 이는 눈으로 혁무천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복수.”
“…….”
굳이 여러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복수’라는 한 마디 단어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곽도전도 멍청한 자가 아니었기에 그 뜻을 바로 알아챘다.
“상관가의 사람이 아버지……를 죽여서 복수했단 말이오?”
“어쩌면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서 복수를 한 것일지도 모르지.”
“뭐?”
“조금 전, 구요 노인이 말해주었지 않나? 그대의 부친은 죽지 않았다고.”
“설마……?”
구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끄응, 백 냥짜리 장사를 망쳐버리는군.”
혁무천이 구요를 보며 말했다.
“백 냥짜리 장사는 포기하고, 만 냥짜리 장사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 만 냥짜리?”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곽 형도 앞으로 필요한 것이 많을 테니까.”
“흐으음.”
구요는 혁무천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나 곽도전은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뜻이오?”
“그대가 상관가의 사람이라면, 앞으로 금천방과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않겠소? 그 일을 하는데 구요 노인의 정보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복수를 위해서 금천방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란 말이오? 구요 노인의 도움을 받아서?”
“비슷하긴 한데…… 꼭 무너뜨릴 필요는 없지 않겠소?”
“그럼……?”
“어차피 그대가 금천방의 장남 아니오?”
“그건 그런데…….”
“통째로 삼켜서 당신 입맛에 맞게 바꾸어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은데. 나중에는 상관가로 바꾸어도 되겠지.”
“……!”
“방법에 대해서는 구요 노인에게 물어보면 될 거고. 물론 그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줘야겠지만.”
말 몇 마디로 상황을 정리한 혁무천이 구요를 바라보았다.
구요가 주름진 콧등을 씰룩이더니 곽도전에게 말했다.
“결정은 네가 해라. 하겠다면 나도 싸게 정보를 건네주마.”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곽도전은 안색이 두어 번 변하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먼저 사실 확인을 해볼 거요. 만약 사실이라면…… 그때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합시다.”
“그래, 그게 순서겠지. 은자 열 냥이다.”
“……?”
“정보비 다섯 냥, 여기 부서진 거 복구비용 다섯 냥. 무지 싸게 해준 거야.”
곽도전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품속에서 은자를 꺼내 건넸다.
“사실이 아니면 열 배로 물어내야 할 거요.”
“백 배도 상관없어. 어차피 사실이니까.”
곽도전은 다시 한 번 구요를 노려본 후 몸을 돌렸다.
그러다 혁무천과 눈이 마주치자 포권을 취했다.
“술은 나중에 사겠수.”
곽도전이 떠난 자리에는 부서진 방과 혁무천, 구요만 남았다.
“여기서 계속 이야기할 거요?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길 거요?”
“따라오시오.”
구요는 혁무천을 데리고 안채 깊숙한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장대산도 함께 갔다.
그곳은 뒤쪽에 따로 출구가 나 있었는데, 남에게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비밀거처였다.
***
구요는 거대한 장대산을 보고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다.
“진짜 겁나게 크네, 그놈. 네가 죽은 장염 늙은이의 손자란 말이지?”
“어.”
장대산의 변함없는 반말에 구요의 표정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그런데 사실 반말보다는 장대산의 복화술 같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장염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이군. 그 늙은이의 복성공을 익힌 걸 보면.”
“말을 못하니까 가르쳐줬어.”
“그 반말하는 버릇도 가르쳐주든?”
“말을 최대한 짧게 하라고 그랬어. 그리고 존댓말을 하면 말 끝이 이상해져.”
복성술을 펼치면 공력이 소모된다. 게다가 발음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말을 짧게 하라고 했다.
장대산이 무조건 반말을 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구요는 쓴웃음 지으며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장염의 손자는 그렇다 치고…… 그댄 누구요?”
어렵게 질문을 던진 구요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무천이라 합니다.”
“무천? 혹시 철혈마련에서 벌어진 마룡선발대회의 그 무천?”
끄덕끄덕.
“그럼 무천 이전에는 누구였소?”
정말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챈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눈치 챘다면 저렇게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전에도 무천이었고, 지금도 무천입니다.”
입을 닫은 구요는 혁무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잔뜩 이마를 찌푸린 채 자신의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뭔가를 계산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알 수 없군, 알 수 없어…….”
“뭘 알 수 없다는 겁니까?”
“당신이란 사람. 지금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혁무천이 놀라서 바로 말을 하지 못했다.
처음이었다.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그런 쪽으로 의문을 갖는 사람은.
“그럼…… 내가 언제 있었어야 한단 말입니까?”
“아주 오래 전, 최소한 백 년 전에 모든 것이 끊긴 운세요. 그런데 왜……?”
혁무천은 경악을 삼키고 구요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정말 귀신이 붙은 사람이란 말인가?
아니라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뭔가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
그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나는 그냥 나일 뿐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후우우우우, 이 늙은이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모든 상황이 그리 말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구려.”
“쓸데없는 고민을 하시는군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 될 터인데.”
“하긴…….”
구요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들어 혁무천을 직시했다.
“그럼 이제는 앞에 보이는 것만 믿으리다.”
혁무천도 그게 편했다. 누군가가 파고들면 자신만 피곤할 뿐.
“어디 말씀해 보시오. 누굴 찾으려고 이곳에 오신 거요, 공자?”
“여동생을 찾기 위해 왔지요.”
“여동생?”
“이름은 은설. 나이는 열아홉. 이미 동료 몇 사람이 찾아 나섰습니다. 며칠 후 그들과 남경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사실 그때까지 찾지 못하면 노인장에게 부탁할 생각이었지요.”
“여동생이 어디를 갔는데, 많은 사람이 찾아 나선 거요?”
“그게…….”
혁무천은 구요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구요의 안색이 몇 번이나 변했다.
특히 정파무림의 비전무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그래서 마룡선발대회에도 나갔던 거요. 그런데 그 와중에…….”
마침내 주산도와 천기회의 이름이 나오자, 구요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