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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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87화
87화
신도평과 천기회 사람들은 무천이 연산일객 연희명을 구해준 일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은설도 무천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찾는 오빠가 마룡선발대회에 나갔다. 그곳에서 제법 유명해졌다.
은설이 말한 것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녀가 봤을 때, 무천은 정파의 무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마룡선발대회에 나간 것이겠지.
‘흥흥, 아니면 강동일화의 미모에 눈이 멀어서 나갔는지도 몰라.’
천기회 사람 중 많은 이들도 그런 무천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물며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더 싫어할지도 몰랐다.
‘쳇, 진짜로 센데.’
그런데 오빠는 어디로 간 걸까?
왜 비무대회를 포기하고 철혈마련을 떠난 걸까?
오빠가 정말 마도의 인물이면 어떡하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오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때 신도평이 그녀를 빤히 보며 말했다.
“오후에 떠나기로 했소. 남경에 도착하면 무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소.”
“고마워요.”
무천을 찾아보려는 것은 은설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은설과 함께 섬에 들어갔던 자.
그것만으로도 찾아볼 가치가 있었다.
혹시 아는가? 그가 정파의 비전무공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
***
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날.
장강을 건넌 배에서 선객들이 줄 지어 내렸다.
개중에는 무사도 십여 명 있었다.
그 중 넷은 혁무천 일행이었다. 그들이 마침내 남경에 도착한 것이다.
이미 배에서 염천로의 위치를 알아놓은 터였다.
서문 밖의 수로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 마을의 거미줄처럼 얽힌 길의 중심부를 염천로라고 불렀다.
선착장에서 십 리 정도만 가면 되었다.
혁무천은 일단 우화대 근처에 있는 천륭객잔을 먼저 찾아갔다.
상당히 큰 객잔이었다. 삼층으로 된 건물이 중앙에 있고, 객방으로 사용하는 이층 건물이 좌우에 날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혁무천 일행은 음식을 시켜 놓고 객잔의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간간이 무인들이 보였다.
그런데 표정이 왠지 굳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대안이 엽차를 가져온 점소이에게 물어보았다.
“이봐, 남경에 무슨 일 있었나? 왜 저렇게 무사들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굳어있지?”
“모르셨어요?”
“모르니까 묻지.”
점소이가 슬쩍 주위를 둘러본 후 나직이 말했다.
“엊그제 금천방 방주님께서 살해당했어요.”
금천방이라면 비록 말석이긴 하나 마도십문 중 하나다.
그곳의 주인이 죽었다면 남경의 무림인들에게 비상이 걸렸을 터. 표정이 굳어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누가 금천방주를 살해한 거지?”
“그건 저도 모르죠. 지금 그 일 때문에 남경 일대가 벌집 쑤신 것처럼 시끄러워요. 은혈맹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천방을 공격할지도 모르거든요. 그러니 무사님도 엄한 일에 휘말려서 칼 맞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일 보시고 가세요.”
점소이가 점잖게 주의를 주고는 주문을 받은 후 떠나갔다.
“어떤 놈들이 마도십문의 주인을 죽인 거지?”
동대안이 중얼거렸다.
혁무천은 눈을 좁히고 엽차로 입안을 축였다.
남경은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도다.
금천방은 바로 그 남경의 강호세계를 제패한 세력이고.
금천방주쯤 되는 자가 죽었는데 범인도 모른다는 건 단순하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바람이 예상보다 일찍 불기 시작한 것 같군.”
“목적이 있어서 죽였다는 거야?”
“가능성은 반반이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남경을 장악한 금천방의 방주가 죽었으니, 호시탐탐 남경을 노리던 자들이 일어날 거요.”
“그럼 한바탕 혼돈의 피바람이 남경을 휩쓸…… 설마, 그래서?”
“두고 보면 알겠지요.”
오래 갈 것도 없었다.
혁무천 일행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십여 명이 객잔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번뜩이는 눈으로 객잔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혁무천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들 중 사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자가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동대안이 입 안에 가득 음식을 넣은 채 손가락으로 북쪽을 가리켰다.
“쩌그서……”
중년인이 이마를 찌푸렸다.
“저기, 어디 말이냐?”
그 사이 입 안의 음식을 삼킨 동대안이 다시 대답했다.
“남양. 장강을 건너온 지 이제 한 시진 됐수.”
“사문이 어떻게 되느냐?”
“그걸 꼭 말해야 하오? 말하면 안 되는데.”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거냐?”
“댁이 누군 줄 알고 장난을 한단 말이오?”
“나는 금천방 청호당의 노두경이다. 강호의 친구들은 남천일살이라고 부른다.”
“아, 노 형이었군.”
“사문을 밝혀라.”
“밝힐 수 없다니까 그러시네.”
“흥! 사문을 밝힐 수 없다면 우리를 따라 방으로 가자.”
“바빠서 안 되는데.”
동대안은 사실을 말했지만, 노두경의 귀에는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
“뭐야? 네놈들이 어디서 지금…….”
할 수 없이 혁무천이 나섰다.
장대산과 영추문에게 맡겨 봐야 일만 커질 듯했다.
“우린 하남에서 왔소. 한 시진 전에 장강을 건너 왔으니 금천방의 일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할 수 있소.”
“그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내린다. 일어나라.”
이번에는 혁무천이 중년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바쁘다 하지 않았소?”
“흥! 바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어나서 따라오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다.”
“후회? 누가 후회할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대항하겠다는 거냐?”
중년인이 눈을 치켜뜨고 말하자, 금천방 무사들이 혁무천 일행을 에워쌌다.
“우린 귀 방의 방주 살해와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소.”
금천방 무사 중 하나가 검을 들이댔다.
“그거야 조사해보면 알 일.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따라와라!”
그때 혁무천이 젓가락으로 검을 잡아서 꺾었다.
땅!
젓가락질에 검신이 부러졌다.
검을 내밀었던 자가 얼굴이 하얗게 일그러져서 뒤로 물러섰다.
노두경도 경악한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괜한 일로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으니 범인을 잡고 싶으면 다른 곳을 조사해보시오.”
“공자는 뉘시오?”
노두경의 말투가 단숨에 달라졌다.
젓가락으로 검신을 꺾는다는 건 절정고수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능력. 잘못 건드리면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
“볼 일이 있어서 남경에 들른 사람이오.”
노두경은 마음을 정하고 포권을 취했다.
“성함을 알려주시면 나중에 오늘 일을 사죄하리다.”
“무천이오.”
“알려줘서 고맙소. 그럼 마저 식사를 하시구려.”
노두경은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은 물러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객잔을 나가자, 혁무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서둘러서 엽기천 일행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
서문을 나선 혁무천은 곧장 염천로로 들어갔다.
호리자 구요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염천로로 들어가서 노점을 하는 장한에게 물어보자 바로 대답이 왔다.
“그 귀신 붙은 영감은 왜 찾수?”
“알아볼 것이 있어서 찾는 거요.”
“차라리 나에게 물어보쇼. 싸게 알려 드릴 테니까.”
“당신에게 알고 싶은 것은 구요 노인의 거처요. 알려드리면 이걸 드리지.”
혁무천이 철전 다섯 문을 내밀자, 장한이 냉큼 집어갔다. 그러고는 고갯짓으로 골목 안쪽을 가리켰다.
“저기 검은 깃발 보이쇼? 그 집이 구요 노인 집이오.”
기껏해야 이십여 장밖에 안 되는 거리였다.
철전 다섯 문이 아니라 한 문만 줬어도 아마 알려줬을 것이다.
장한은 희희낙락하며 구요에 대한 정보를 하나 더 알려주었다. 그래도 근처의 집을 알려주면서 철전을 다섯 문이나 받은 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구요의 집은 한마디로 점집이었다. 장한이 귀신 붙은 노인이라고 한 것도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일대에서 제법 유명했다.
점을 잘 맞춰서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유명한 것은 성질이 고약하고 제멋대로인 행동 때문이었다.
게다가 점을 보는 가격이 무지 비쌌다.
봉 하나 잘 잡아서 일 년을 먹고 살자는 게 그의 장사 철학이라나?
그래서 염천로 사람들은 절대로 그에게 점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구요의 점집으로 들어가자 의외로 손님이 둘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비싸서 손님이 없을 줄 알았거늘.
그 중 한 사람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걸 보니 부유한 상인 같았고, 한 사람은 등에 칼을 찬 무인이었다.
혁무천이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하인으로 보이는 소년이 말했다.
“점을 보러 오신 분만 남으시고, 나머지 분은 밖에서 기다리십시오.”
어쩐지 마당에 서너 사람이 서있다 했더니 선객들의 일행인가보다.
그런데 이제 열대여섯 살 정도 되는 소년은 장대산의 거대한 체구나 영추문의 싸늘한 눈빛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동대안의 눈을 바라볼 때는 묘한 미소까지 지었다. 조소가 분명했다.
동대안이 눈을 부라리며 짐짓 위협을 해봤지만, 소년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며 콕콕 찍을 뿐이었다.
별의별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간덩이가 불어터질 만큼 부은 듯했다.
결국 동대안은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갔다.
“후우우, 새파란 애시끼를 팰 수도 없고…….”
그 사이 상인처럼 보이는 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혁무천은 의자에 앉아서 또 한 사람의 손님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서른두세 살쯤?
제법 큰 체구에 얼굴이 준수하고 눈빛이 깊은 자였다.
우문척이나 천화광, 공손두만은 못해도 사공곽이나 구불청과는 별 차이가 없을 듯했다.
혁무천은 문득 강호의 고수가 이런 곳에 무슨 점을 보러 왔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자가 먼저 물었다.
“어디서 오셨소?”
“어디서 오든 그게 뭐 중요하겠소. 무슨 일로 왔느냐가 중요하지.”
“하긴…… 나는 내 아버지를 죽인 놈을 찾으려고 왔소,”
혁무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절정 경지의 고수, 아버지를 죽인 자.
문득 오면서 들었던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금천방주를 죽인 자 말이오?”
“그렇소.”
결국 장한이 바로 금천방주의 아들이라는 말이었다.
“점을 본다 해서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점은 개뿔…… 나는 이집 주인이 사람을 잘 찾는다 해서 찾아온 거요.”
혁무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때문이라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덜컹.
문이 열리더니 부유한 상인이 밖으로 나왔다.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였다. 중얼거리는 말에서도 그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씨…… 사기꾼 같은 영감 같으니라구. 어디서…….”
상인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금천방주의 아들이라는 자가 일어났다. 그가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혁무천을 보며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언제 기회가 되면 술 한잔 사겠소.”
제법 붙임성이 있는 자였다. 조금은 실없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쾅! 우당탕탕!
갑자기 방 안에서 굉음이 들렸다.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뒤이어 고함이 들려왔다.
“뭐야? 이 영감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우리 아버지가 살아 있어? 잘 맞춘다고 해서 왔더니, 순 엉터리 아냐?”
조금 전에 들어간 자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뒤이어서 노인이 바락바락 소리쳤다.
“살아 있는 사람을 그럼 죽었다고 한단 말이냐? 이 싸가지 없는 놈아! 너는 살아 있는 부모를 죽은 걸로 하길 바라냐?”
“남경 땅에서 금천방 방주가 살해당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아무래도 이 영감탱이가 실성했구만!”
“에라이, 바보 자식아! 누가 그걸 모른다고 했냐?”
“알면서 그런 말을 해? 내가 오늘 영감탱이의 숨통을 끊어놓고 말겠어!”
그건 안 된다.
구요에게 들을 말이 있다.
“잠깐! 멈춰!”
혁무천이 다급히 소리치고 방문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