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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86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4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86화

86화

 

 

콰르릉!

둘 사이에서 뇌성이 터져 나왔다.

방 안의 다탁이 산산이 부서져서 벽에 처박히고, 바닥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울렸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선 천화광의 비단옷자락 한 곳이 더 찢어졌다.

주르륵, 예닐곱 자나 밀려난 동대안은 급히 중심을 잡고 천화광을 노려보았다. 안색이 창백했다. 입가에 핏기마저 보이는 걸 보니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천화광이 싸늘한 눈빛으로 동대안을 노려보며 검을 뽑았다.

“내가 너무 가볍게 봤군. 확실히 깐죽댈 만해. 그럼 어디 이번에도 버틸 수 있나 볼까?”

깐죽?

‘이 시바새끼가…….’

동대안은 화가 났지만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적수공권이던 놈이 드디어 검을 뽑았다.

칠절망혼검마저 실패한 이상 천화광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순순히 굽힐 수는 없는 일. 그는 섬혼을 움켜쥐고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렸다.

다행히 마당에서 싸우고 있는 장대산과 영추문이 천화광의 호위무사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둘 중 하나는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듯했다.

그때 천화광이 뽑아든 검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나로 하여금 검을 뽑게 만들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될 거야.”

동대안은 그 말에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천화광의 검첨에서 피어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검강?’

문제는 단순히 강기를 일으키는 경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검첨에서 쭉 피어난 강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강기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는 극상승의 경지라는 뜻.

‘지미…….’

꿀꺽, 침을 삼킨 동대안도 이를 악물고 전 공력을 섬혼에 주입했다.

츠츠츠츠.

섬혼 역시 칙칙한 기운으로 뒤덮였다. 강기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자신의 강기가 더 약하게 느껴졌다.

몇 초식이나 버틸 수 있을까?

삼 초식? 오 초식?

‘씨바, 설령 죽을 때 죽더라도 네놈 몸에 구멍 하나쯤은 내고 죽을 거다!’

그런데 아직은 죽을 때가 안 되었나보다.

“멈춰라, 천화광!”

냉랭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혁무천이 방문 앞 회랑에 내려섰다.

동대안을 공격하려던 천화광이 움찔하더니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검에 피어났던 강기도 거짓말처럼 스러졌다.

“뭐하는 짓이냐?”

“너를 만나러 왔지.”

혁무천은 그에 대한 대꾸를 하기 전에 마당 쪽을 바라보았다.

“대산, 추문. 그만하고 물러서라.”

장대산과 영추문이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유궁과 다른 호위무사도 질린 표정으로 재빨리 거리를 더 벌렸다.

유궁은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 있었고, 다른 호위는 왼쪽 다리를 절룩거렸다. 한눈에 봐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제야 혁무천이 천화광을 바라보며 물었다.

“남양에서의 일 때문에 왔나?”

천화광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일은 본 성의 무사들이 성급하게 손을 썼으니 뭐라고 할 생각 없다. 내가 온 것은 자네와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야.”

“그럼 조용히 기다릴 것이지, 왜 싸운 거냐?”

“방에서 기다리자고 했더니, 함께 있기 싫다고 하더군. 내가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잖아?”

혁무천이 동대안을 바라보았다.

동대안이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방도 많은데, 왜 하필 내 방에서 기다리겠다는 거야? 기분 이상해지게.”

어렴풋이 동대안의 마음을 짐작한 혁무천은 어이가 없었다.

잠시 함께 기다렸으면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천화광과 한 방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여서 목숨을 걸고 싸운단 말인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은 혁무천이 천화광에게 다시 물었다.

“나와 무슨 할 이야기가 있다는 거지?”

천화광이 방 안을 둘러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장소를 옮겨서 이야기하지. 여긴 앉을 자리도 없군.”

두 사람의 싸움으로 방문과 탁자가 부서지는 바람에 방 안이 난장판이 되었다.

침상은 멀쩡했는데, 그렇다고 침상에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도 없지 않은가.

“술 한잔 어떤가?”

천화광이 먼저 의견을 말했다.

혁무천은 그의 등장이 반갑지 않았지만 매몰차게 대하기도 어정쩡했다.

아직은 만마성과 적이 되어서 귀찮음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술값은 네가 내. 이 방의 수리비도.”

 

객잔의 일층은 아직 영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혁무천 일행과 천화광 일행이 커다란 탁자를 가운데 두고서 양쪽에 자리를 잡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점소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머뭇거리며 왔다가 간단한 주문만 받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말해 봐.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지?”

먼저 혁무천이 물었다.

“전에도 했던 말인데, 우리 만마성에 들어와라. 그럼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

“싫다고 했을 텐데? 한번 대답한 일을 자꾸 꺼내면 할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알지.”

“정말 고집이 세군.”

“알면 됐어.”

“그럼…… 철혈마련에 들어갈 생각이냐?”

천화광이 슬쩍 떠보았다.

혁무천은 돌려서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철혈마련에서 나를 죽이려 했다는 건 아는지 모르겠군.”

“철혈마련이?”

“아마 련주가 내린 명령일 거다. 목적이야 너와 같을 거고.”

“흐으음.”

“나는 팔대마세나 마도십문, 어느 쪽에도 들어갈 마음이 없다. 약속하라면 약속하지.”

천화광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자신이 얻지 못하면 다른 세력 역시 얻을 수 없어야 했다.

특히 철혈마련과 마천문은 더더욱.

그런데 무천의 말이 절반만 사실이어도 일단 목표의 절반은 이룬 셈이었다.

“혹시 생각하고 있는 거라도……?”

“다른 세력을 만들 생각도 없다. 그러니 그런 일로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럼 이건 어떠냐.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옆에서 엽차를 마시던 동대안이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영추문도 힐끔거렸다.

-미쳤지, 너의 남다른 취향을 알고 있는 무천이 그걸 허락할 것 같아?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혁무천이 말했다.

“그건 생각해볼 수 있겠군.”

“응?”

“헛.”

동대안이 엽차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영추문은 일자로 달라붙은 입이 반쯤 벌어졌다.

심지어 장대산의 눈도 황소 눈보다 커져서 껌벅거렸다.

혁무천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라. 네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하면 언제든 없던 이야기로 되돌릴 거다.”

선입견이 없다면 느끼기 힘들 정도로 천화광의 얼굴이 미미하게 상기되었다.

“좋아,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해.”

“나도 부탁할 것이 하나 있다.”

“말해봐라, 뭐든.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지.”

천화광이 지금까지와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살짝 미소도 지은 채.

동대안은 왠지 모르게 옆구리가 간지러워졌다. 손발도 오글거렸다.

영추문은 젓가락으로 오리 목뼈를 쿡쿡 찔렀다.

그러든 말든, 혁무천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만마총 구경을 하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군.”

장대산이 말하길, 만마의 무덤에 혈천여록의 한 조각이 있다고 했다.

천화광의 친구 요구를 반쯤 받아들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만마총을?”

만마의 무덤인 만마총은 만마성의 역대 성주가 잠들어 있는 무덤군을 말했다.

무덤은 모두 아홉 기로, 하나하나가 커다란 건물만 했다.

그런데 그곳은 외부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몰래 들어가서 알아보는 수밖에.

“아니, 안 될 것은 없는데…… 왜 그곳을 구경하겠다는 거지? 만마성 일대에는 그곳보다 더 멋진 곳도 많은데.”

“알아볼 것이 있어서.”

“그래? 알았다, 그럼 내가 허락을 받아주지. 그런데 언제 갈 거냐? 기왕이면 내일 바로 가는 게…….”

“나중에.”

천화광의 얼굴에 아쉬움이 떠올랐다.

“나중에 언제……?”

“아마…… 한 달쯤 후에 가지 않을까 싶군.”

한 달, 그 정도라면 긴 시간도 아니었다.

“좋아, 그때 와라. 그럼 만마총을 구경시켜 주지.”

끄덕끄덕.

그때 천화광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철혈마련의 마룡선발대회에 대해서 들어봤나?”

“아니.”

그러고 보니 이삼 일 전에 끝났을 것 같다.

“공손두가 우승했다고 하더군.”

“그럼 철혈마련과 마천문이 혼인으로 맺어지겠군.”

“그게 조금 묘하게 되었어. 공손두가 우승을 하긴 했는데, 우문소소와의 혼약은 보류되었어.”

의외였다.

공손두는 자신에게 우문소소를 포기하라고 했다.

그런데 혼약을 보류했다고?

“어쩌면 우문소소가 거부했는지도 모르겠군.”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무천 때문인 것 같아.”

“나 때문에?”

“소소는 소유욕이 굉장히 강해서, 어릴 때부터 갖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었지.”

“…….”

“게다가 그 어떤 남자도 소소의 청을 거부하지 못했어.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거부당했으니 어떻게든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을 거다.”

“상관없어.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하하하. 강동일화를 길거리 야생화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군.”

천화광은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지금까지 우문소소를 그런 식으로 대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찍은 남자가 꼴 보기 싫은 우문소소를 그리 표현하니 묘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마침 점소이가 요리를 가져왔다.

천화광이 혁무천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듣기로는… 자경산이란 자를 밖으로 내보낸 것 같더군. 아마 무천을 찾으려는 거겠지.”

자경산이라면 이미 여러 번 만나보았다.

뭔가 아픔이 느껴지던 자.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확실하게 말해두었다. 자신을 귀찮게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찾으려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우문소소라면 무슨 짓을 못할까마는…….

그때 문득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자신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면?

 

***

 

주산도에서 나온 천기회 사람들은 칠 일 후 소주에 도착했다.

본래 닷새면 충분했는데, 항주에서 이틀을 더 머무는 바람에 이동이 늦어졌다.

소주의 천기회 비밀지부에 머문 지 이틀째 되던 날.

은설은 철혈마련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서천마룡 공손두가 마룡선발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오.”

신도평의 말에 은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요?”

“그렇소.”

“그럴 리가 없는데…….”

시무룩해진 은설을 보고 신도평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럼 누가 우승을 했을 거라 생각했소?”

“그거야…… 오빠죠.”

“무천이란 사람 말이오?”

“그래요.”

“흠, 그 사람은 팔대마룡에도 들지 못했소. 그 전에 비무를 포기하고 철혈마련을 떠났다고 하던데.”

“예? 그게 정말이에요?”

“은 소저는 제 말을 믿지 못하는가 보군요.”

“그게 아니라…….”

철혈마련에 있으면 찾기가 쉬울 거라 생각했다.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사람을 보내서 연락을 취하면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철혈마련을 떠났다면 어디 가서 찾지?

신도평은 시시각각 변하는 은설의 표정을 보는 게 즐거웠다.

너무 자주 변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오빠라는 분의 무공이 그렇게 강하오?”

“물론이죠. 아마 강호에서 오빠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은설의 눈빛이 다시 반짝거렸다.

“하하, 강호에는 강자가 무수히 많소. 오죽하면 기인이사가 장강의 모래알보다 더 많다고 하겠소.”

“아무리 기인이사가 많아도 나는 오빠만큼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신도평의 입꼬리 한쪽이 슬쩍 올라갔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제 오빠가 천하제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의 눈에는 은설도 그런 여자 아이들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마 앞으로 고수들을 많이 보게 되면 생각이 바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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