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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8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84화

84화

 

 

상대는 만마성의 왕효나 귀천교의 장위오보다 강하다.

어쩌면 생명선의 일부를 잃는 것도 각오해야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일.

그는 무명도의 천지벽에서 얻은 조화팔검의 검초로 역구상의 공세를 차단했다.

조화팔검은 천지벽에 남은 구결 중 두 가지를 혼합해서 만든 검법이었다. 모두 팔초식으로 되어 있으며, 모자란 부분은 혁무천이 본인의 심득을 첨부했다.

지옥팔검이나 대천룡구검세에 비하면 파괴력은 떨어졌지만, 공력의 소모가 적었다.

과도한 공력을 쏟아내면 생명력이 깎이는 지금의 그에게는 안성맞춤인 검법이었다.

떠더더덩!

눈 한번 깜짝할 순간에 대여섯 번의 격돌이 이루어졌다.

쩌저저정!

격렬한 충돌음.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검기, 도기의 폭풍이 두 사람을 에워싼 채 휘몰아쳤다.

그 와중에 역구상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초식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공력으로 상대를 누르려 했다. 그런데 소용이 없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공력에서도 자신에게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눈빛은 소름끼칠 정도로 차갑고 고요했다.

그때, 상대의 검세가 급변하는가 싶더니, 한줄기 뇌전이 휘몰아치는 도기를 그대로 가르며 날아들었다.

역구상은 전력을 다해 도세를 비틀어서 날아드는 뇌전을 후려쳤다.

쾅!

단발의 굉음과 함께 역구상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급히 중심을 잡은 그는 눈을 부릅떴다.

움켜쥐고 있는 구음도의 끝이 잘게 떨렸다.

혁무천은 그를 공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역구상을 쳐다보았다.

역구상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역구상이 발악할 경우 자신 역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생명선이 줄어들 테니까.

더구나 역구상을 죽일 경우, 만마성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쫓아올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귀천교가 자신을 찾고 있을 터.

만마성과 귀천교가 기를 쓰고 쫓아오면 곤란해질 수 있다.

만약 그로 인해 은설이 다치기라도 하면,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일은 이쯤에서 정리하지요. 아마 천화광도 나와 적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거요.”

“소성주를 아느냐?”

“얼마 전에 만났소. 사실 만마성이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어쩌면 그때 내가 해준 말 때문일 거요.”

“그게 무슨……?”

“우문척이 왜 정은맹을 찾는지 말해주었을 뿐이지만.”

“…….”

“그래도 끝장을 보겠다면 어쩔 수 없지요. 나도 귀찮은 것은 싫으니까.”

순간, 혁무천에게서 심령을 짓누르는 기운이 폭사되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그 어떤 형태도 없었다. 그럼에도 역구상은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헉! 뭐 이런……!’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에 그는 항거할 마음조차 먹지 못했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 느낌

“대답이 없으신 걸 보니 끝장을 보겠다는 뜻인가 보군. 그럼 어디 한번 해 보지요.”

차갑게 말을 뱉은 혁무천이 늘어뜨린 검을 들어 올렸다.

‘자, 잠깐 멈춰, 이 새끼야!’

역구상은 다급해졌다. 대답하고 싶어도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사력을 다한 그는 몇 마디 말을 겨우 내뱉었다.

“그, 그…… 그만……하자.”

멈칫한 혁무천이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제야 숨통이 트인 역구상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소성주와 아는 사이라는 걸 말했으면… 싸울 필요도 없었을 텐데…….”

“내가 원래 남의 이름을 빌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오.”

‘빌어먹을 놈! 그래, 니 똥 굵다!’

“어쨌든 그만하자니 나도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겠소. 죽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마시오.”

역구상은 입맛이 썼다.

저놈들 손에 죽거나 부상 입은 자만 열대여섯 명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만마성에서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할 놈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입으로 그만하자고 했으니 이제 와서 토를 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으음, 그렇게 하지.”

혁무천은 그제야 검을 거두고 동대안 쪽을 바라보았다.

그와 역구상이 격전을 벌리는 사이 다른 곳의 싸움은 멈춰 있었다.

“그만 가지, 동 형.”

그때 역구상이 급히 물었다.

“이름이 뭐냐?”

“무천.”

짧게 이름을 말해준 혁무천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돌아선 그의 입꼬리에 묘한 냉소가 걸렸다.

‘우문척의 부탁은 이번 일로 퉁 쳐도 되겠군.’

한편으로는 천화광이 자신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

 

남양성 내 용풍객잔에 있던 천화광은 역구상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무천을 만났단 말입니까?”

역구상은 예상을 뛰어넘는 천화광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놈이 대단하다는 건 알았지만 천화광이 이 정도 반응을 보일 줄이야.

“그렇다네. 그들에게 우리 아이들 십여 명이 당했네.”

그의 말에 만마성의 간부 두엇이 놀라서 불만을 토해냈다.

“아니, 그런데도 그냥 보내줬단 말입니까?”

“그런 놈들은 잡아서 죽여야지, 왜 보내줍니까? 설령 소성주와 아는 사이라 해도 일단은 잡아와야지요.”

역구상은 자신을 다그치는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혈마전 쪽 간부들이었다.

‘그럼 어디 네놈들이 잡아봐라.’

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반박해봐야 창피만 당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가 반박할 필요도 없었다.

천화광이 말했다.

“아닙니다, 잘 하셨습니다, 장로님.”

두 간부가 이번에는 천화광의 말에 토를 달았다.

“무슨 말입니까, 소성주?”

“적을 그냥 보내줬는데 잘하다니요?”

그들을 바라보는 천화광의 얼굴에서 냉기가 흘렀다.

그 역시 대장로의 세력규합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 일에 발을 담근 자들도 마찬가지로 싫었고.

“역 장로님께서 보내주고 싶어 보내줬겠습니까?”

“젊은 놈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어험.”

“철혈마제가 인정한 자입니다. 아마 그를 억지로 잡으려 했다면 피해가 더 커졌을 겁니다.”

“허어…… 철혈마제가 인정했다고? 설마…….”

혈마전의 부전주인 풍두경이 못 믿겠다는 듯 토를 달았다.

역구상이 그를 노려보며 입술을 씹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거짓말하기는 더 싫었다.

“소성주의 말…… 인정하네. 나는 그를 이길 수 없었네. 그래서 막고 싶어도 막을 수가 없었던 거지.”

풍두경이 놀란 듯 입이 반쯤 벌어졌다.

이번에는 그도 토를 달지 못했다. 여기서 토를 달면 역구상과 원수가 되겠다는 말이나 같았다.

천화광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이길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패했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구음마도 역구상이 패하다니.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강한 것 같다.

‘그렇다면 반드시 우리가 얻어야 해.’

설령 최악의 경우라 해도 철혈마련에 넘겨주어서는 안 되었다.

“이곳 일은 역 장로님께서 지휘해주십시오. 저는 무천을 쫓아가봐야겠습니다.”

 

***

 

이창으로 가면 귀천교와 마주칠지 모를 일. 혁무천은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

대별산맥의 북쪽 관도를 이용해서 신양 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장강을 건너 남경으로 갈 생각이어서 차라리 그쪽 길이 빠를 수도 있었다.

더구나 이척이 말한 와호산장이 신양에 있다고 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미리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남양을 떠나온 지 이틀째 되던 날.

그날따라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었다.

오후부터 구름이 짙게 끼는 걸 보니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듯했다.

혁무천 일행은 까마득히 보이는 동백산을 오른쪽에 끼고 빠르게 걸었다.

덕분에 비가 오기 전, 어둠이 깔릴 무렵이 되었을 때쯤 신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단 객잔에 방을 잡은 혁무천은 점소이에게 물어서 와호산장의 위치를 알아냈다.

와호산장은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 중소문파였다.

강호의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아서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혁무천은 밤이 깊어질 무렵 객잔을 나와서 와호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직은 비가 오지 않았다.

 

와호산장은 신양성 남문에서 삼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삼백 명인 무사의 수를 생각하면 무림문파로서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죽림이 둘러싸고 있는 장원은 대지만 해도 십만 평이 넘었다.

인원이 이삼백 명인 걸 생각하면 지나치게 넓은 부지였다.

혁무천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숲을 통과해서 산장의 담장 위에 올라섰다.

드넓은 부지에 건물은 대여섯 채밖에 안 되었다.

밤이 늦어서인지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어느 순간, 담장 위에서 혁무천의 모습이 사라졌다.

 

와호산장의 장주 이현은 아직 서른 살이 안 된 청년이었다.

준수한 외모, 단정한 자세.

언뜻 겉모습만 봐서는 영락없는 학사였다.

그런 외모답게 밤이 깊도록 다탁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그는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한 사람이 앞에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자였다.

흠칫한 그는 갑자기 나타난 혁무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뉘시오?”

의외로 크게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목소리도 담담했다.

혁무천은 태연히 걸음을 옮겨서 이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현은 그가 앉을 때까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혁무천이 앉자 말했다.

“차 한잔 하시겠소?”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군.”

이현이 직접 잔을 혁무천 앞에 놓고 차를 따라주었다. 정말 뜬금없는 말과 행동이었다.

오죽하면 혁무천이 묘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나 보군.”

이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 온 목적이 있으면 말해줄 텐데, 급할 거 뭐 있소.”

혁무천은 이현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뱃속이 온통 간덩이로 들어찬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저리도 태연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학사 같은 겉모습과 달리 그의 몸 안에는 태산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이 들어차 있었다.

장주의 거처에 호위무사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를 보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혁무천은 곧바로 핵심을 찌르고 들어갔다.

“천기회와 잘 아는 거 같던데.”

이번에는 이현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아셨소?”

“다른 사람에게 들었지.”

“음, 그건 비밀인데…….”

자신이 순순히 수긍해놓고 비밀 운운하니, 무심한 표정의 혁무천조차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는 친구군.”

“그게 정말이오? 사람들은 나보고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심지어 부인조차 매일 구박이고…….”

혁무천은 그때쯤에서야 이현의 단점을 하나 찾아냈다.

‘말이 조금 많은 것 같군.’

“……근데 무슨 일로 오셨소? 외상값 받으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엉뚱한 소리도 곧잘 했다.

“강남의 천기회 사람들이 이곳으로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지.”

찻잔을 내려놓은 이현이 허리를 세웠다. 그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달리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소. 그 일은 본 회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몰라야 하거늘.”

혁무천은 그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와호산장의 장주도 천기회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을 알려줬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 혹시 몰라서 이야기하는데, 엉뚱한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군.”

“우리에겐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어서 말이오.”

“내가 구해준 천기회 사람도 제법 되지. 그들의 목숨 값 정도면 비밀 하나쯤 들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보는데.”

이현이 혁무천을 보며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리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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