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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83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8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83화

83화

 

 

“나에게 할 말이라도 있소?”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건방지구나!”

중년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이척이 다급히 말렸다.

“어허! 대현, 이거 왜 이러는 건가? 우리를 도와준 사람한테.”

“이 대협, 아무리 우리를 도와줬다 해도…….”

“무 공자가 아니었으면 우린 저들의 포위망에 갇혀서 죽었을지도 모르네. 설마 그걸 모르진 않겠지?”

사실이 그랬다. 하지만 중년인, 정대현은 그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저자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말에 동대안이 피식 웃었다.

“그럼 다시 달려가서 그들과 싸워보든가. 우린 갈 테니까.”

“뭐라? 어디서 눈도 쥐똥만 한 작자가…….”

동대안이 정대현을 쏘아보았다.

“딱 보니까 올해 넘기기 힘들겠군.”

“이 작자가 진짜……!”

이척이 난감한 표정으로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들 하게. 무 공자…….”

“싫다는데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만 가보지요. 전에 부탁한 일이나 알아봐주시기 바랍니다.”

혁무천은 할 말만 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다 멈칫하더니 정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의는 말만으로 되찾을 수 있는 게 아니오.”

“뭐야? 이…….”

버럭 성을 내려던 정대현은 혁무천과 눈이 마주치자 숨이 턱 막혔다.

검을 잡고 있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마치 올가미가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 느낌.

“당신 하나 죽는 것은 관심 없소. 당신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수십, 수백 명이 죽어가는 건 원치 않기 때문에 한 말일 뿐. 간세를 잡든 말든 알아서 하시오.”

고저 없이 무심하게 몇 마디 내뱉은 혁무천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뗐다.

그때 깜박 잊었다는 듯 이척이 전음으로 말했다.

<자네 동생이 주산도에 간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신양의 와호산장이나 무당산으로 갈지도 모르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미안하군.>

혁무천은 멈칫했지만, 그대로 걸음을 내딛어서 멀어졌다.

 

***

 

“멈춰라!”

남양성을 나선 혁무천이 성문에서 삼십여 장쯤 멀어졌을 때 싸늘한 외침이 들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골목길 쪽에서 십여 명이 나오는 게 보였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곧이어 왼쪽에서도 비슷한 숫자의 무사들이 나왔다.

모두 만마성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무기에 손을 얹은 채 옆으로 늘어서서 길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오른쪽에서 나온 자들 중 하나가 장대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대주, 저 곰 같은 놈이 있는 걸 보면, 아까 정파 놈들을 도와줬던 자들이 분명합니다!”

장대산은 평생 한번 볼까말까 한 거인이다. 누구라도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으리라.

갈색 무복을 입은 삼십 대 중반의 무사가 호위 둘을 거느리고 혁무천 일행 쪽으로 다가왔다.

“들었지? 발뺌해봐야 소용없다.”

혁무천은 발뺌할 생각이 없었다.

발뺌한다 해서 순순히 보내줄 자들도 아니었다.

“맞아. 우리가 도와주었지. 아는 사람이 있었거든.”

혁무천이 순순히 인정하자, 만마성 무사들이 살기를 드러내며 혁무천 일행을 포위했다.

“순순히 무릎을 꿇으면 목숨은 살려주마.”

“무릎을 꿇으라?”

“제대로 알아들었군. 무릎 꿇고 용서를 빌면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거다.”

“훗.”

“웃어?”

“정말 오랜만에 듣는 말이군. 아주 오래 전에도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지.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잔말 말고 결정해라! 용서를 빌든지, 아니면 비참하게 죽든지!”

장한이 짜증내듯 소리치자, 포위망을 구축한 자들 중 몇이 한마디씩 했다.

“대주, 그냥 죽여버립시다.”

“살려서 데려가 봐야 귀찮을 뿐입니다. 머리만 떼어갑시다.”

“우와! 저 자식은 머리가 꽤 무겁겠는데?”

네 사람이 삼십여 명에게 포위된 형국.

하지만 혁무천 일행은 긴장하기는커녕 태연하다 못해 하품까지 했다.

“으아아함.”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하품을 한 동대안은 사람들이 자신을 빤히 쏘아보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말이야.”

그 말에 만마성 무사 몇 명이 수군댔다.

“생긴 것도 이상한 놈이, 아직 잠에서 깨지 못했나 보군.”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손바닥으로 입을 탁탁 치던 동대안의 콩알 눈이 살짝 옆으로 찢어져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죽여도 되나?”

“좋을 대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장한이 눈을 치켜떴다.

“이놈들이……!”

그때 씩 웃은 동대안의 몸이 쭉 늘어나는 듯했다.

동시에 꼬챙이 같은 섬혼이 검집을 벗어나 앞으로 뻗어나갔다.

“컥!”

만마성 무사 중 하나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비틀거렸다.

동대안에게 ‘생긴 것도 이상한 놈’이라고 했던 자였다.

주춤주춤 두어 걸음 물러서는 그의 목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쳐라!”

뒤늦게 갈색 무복을 입은 장한이 소리쳤다.

만마성 무사들도 노성을 내지르며 공격에 나섰다.

“죽여!”

“저 새끼는 내가 죽인다!”

동대안이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슈슈슈슉!

섬혼을 앞세운 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만마성 무사들 사이를 누볐다.

번개처럼 빠른 검격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켁!”

“끄억!”

순식간에 두세 사람이 단말마와 함께 몸에 구멍이 나서 쓰러졌다.

그 사이 만마성 무사 칠팔 명은 장대산과 영추문을 공격했다.

쾅! 퍼벅!

장대산을 공격하던 자들이 굉음에 맞춰서 날아가고, 영추문을 공격했던 자들은 뼈가 부러지거나, 최소한 십여 대를 맞고 널브러졌다.

혁무천은 만마성의 대주라는 장한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시작은 그쪽에서 먼저 했으니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장한은 석고처럼 굳어진 얼굴로 이를 앙다물었다. 움켜쥔 주먹 안에 땀이 고였다.

잠깐 사이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죽거나 쓰러졌다. 자신들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말.

더구나 저들에게는 만마성이라는 이름도 소용이 없었다.

정파를 도운 자들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지도 않고 달려든 게 실수였다.

“네 놈들은…… 누구냐?”

“알 것 없어.”

“감히 본 성의 무사를 죽이고 무사할 것 같으냐?”

그때 옷자락 휘날리는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이 날아들었다.

오십 대 중반의 중노인과 사십 대 중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인 셋.

그들 중 사십 대 중년인 셋은 곧장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물러서라! 우리가 상대하겠다!”

그들 셋은 무기를 빼들고 동대안과 장대산, 영추문을 공격했다.

반면 오십 대 중노인, 구음마도 역구상은 혁무천의 앞에 있는 장한 곁에 내려섰다.

“양고, 이게 무슨 일이냐!”

장한의 얼굴이 그제야 펴졌다.

“양고가 장로님을 뵙습니다. 저자들은 성 내에서 정파를 도운 자들입니다. 저희가 잡으려 했으나 거세게 반항해서 그만…….”

“뭐야?”

역구상이 중년인들과 싸우고 있는 혁무천 일행을 둘러보았다.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던 그의 눈에 서서히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

‘어디서 이런 놈들이……?’

그는 고수답게 혁무천 일행의 강함을 알아보았다.

귀혈당의 일개 대원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눈알이 콩알만 한 놈은 절정경지에 오른 귀운도 안상을 그 짧은 시간에 궁지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꼬챙이처럼 생긴 검이 어찌나 빠른지 허공 가득 잔상만 보였다.

게다가 검격에 강력한 진기가 실려 있어서 가느다란 검으로 귀운도의 칼을 가볍게 튕겨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덩치가 거대한 거인은 물론,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놈도 절정고수 못지않은 실력이었다.

‘도대체 저놈들이 누군데…….’

그러다 문득 눈알 작은 놈이 놈들의 대표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시선이 혁무천에게로 향했다.

그는 당장 손을 써서 앞에 있는 놈의 목을 쳐버리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께름칙했다.

“네놈이 저들의 수장이냐?”

“수장이라 하기는 뭐하고, 그냥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오.”

“감히 만마성의 무사들을 죽이다니. 어디에 적을 둔 놈이냐?”

구음마도의 성격이 괄괄하다는 것은 겉모습만 본 자들의 그릇된 판단이었다.

그는 겉보기와 달리 매사에 냉철한 판단으로 일을 처리했다.

대신 결정이 내려지면 천하의 그 누구보다 흉포하게 손을 썼다.

만마성주 천양묵이 그를 중용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귀하 같으면 죽이려고 검을 들이대는 자들에게 목을 내밀고 가만있겠소?”

“흥! 그거야 네놈들이 먼저 정파를 돕지 않았느냐?”

“우리가 아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 사람만 구하고 물러난 것이오. 우리가 만약 끝까지 정파와 함께 싸웠다면 당신들도 쉽지 않았을 거요.”

무심하게 느껴지는 어조가 너무 담담해서 역구상은 화를 내기도 어정쩡했다.

“네놈들 몇 명이 더해졌다 한들 달라진 것은 없었을 거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한쪽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으음.”

역구상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 난 곳을 바라보았다.

일그러진 얼굴로 물러서는 귀운도 막호의 어깨에서 피가 샘솟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혁무천도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달라진 게 있었을 것 같소만.”

그 말이 비꼬는 것처럼 들렸는지 역구상의 눈썹이 역팔자로 꺾어졌다.

“건방진 놈! 보자보자 하니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냉랭히 소리를 내지른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칼을 뽑았다.

스릉!

칼을 뽑자 그의 모습이 뽑기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칼을 사선으로 늘어뜨린 그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하듯 솟구쳤다.

강호에 알려진 구음마도 역구상의 모습 그대로였다.

혁무천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보며 뒷짐 진 손을 풀었다.

역구상의 맹수 같은 모습도 그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역구상보다 훨씬 사납고 강한 자들을 수십 명이나 무릎 꿇린 사람이 그였다.

대표적인 자들이 오대마종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역구상은 두어 단계 아래였다.

쉬아앙!

역구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혁무천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혁무천도 검을 왼손 엄지로 툭 쳐 올리며 검병을 잡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은 한 점 흔들림도 없었다.

두 사람은 피하지도, 멈칫거리지도 않고 서로를 향해 다가섰다.

찰나의 순간!

떠더덩!

서너 번의 충돌음이 귀청을 찢을 듯이 울렸다.

두 사람 사이의 대기가 터져 나가고, 발밑에서 먼지가 풀썩 피어났다.

쿵쿵쿵.

먼저 공격했던 역구상이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서 눈을 치켜떴다.

한껏 크게 떠진 그의 눈매가 보일 듯 말 듯 떨렸다.

“이, 이런…….”

혁무천도 한 걸음 물러난 후, 전과 다름없는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왕효보다 더 강하군.’

일개 장로의 무공이 대문파의 장문인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새삼 만마성이 왜 팔대마세 중 첫 번째로 꼽히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역구상은 으르렁거리듯 말하며 구음도를 움켜쥐었다.

손등에서 핏줄이 불거졌다.

화르르르.

도신에 맺힌 거센 기운이 이를 드러낸 늑대처럼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넘실거렸다.

“정말 끝장을 볼 작정이오?”

혁무천이 역구상을 향해 말했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오히려 역구상을 자극했다.

무시당한 느낌이랄까.

울컥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일갈을 내질렀다.

“이제 시작이니라!”

그러고는 미끄러지듯 나아가며 칼을 뻗었다.

그가 구음마도라 불리는 이유는 칼이 구음도이기도 했지만, 익힌 무공이 바로 구음칠도였기 때문이다.

구음칠도는 마도 역사상 가장 강한 다섯 가지 도법 중 하나로 꼽혔다.

일 갑자 이상의 공력이 주입되어 시전 되면, 도신에서 폭사한 도기가 아홉 줄기로 뻗어가며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 파괴했다.

다만 위력이 큰 만큼 자칫 시전자조차 진원을 다칠 수 있기에 함부로 펼치지 않았다.

그러나 분노가 치민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콰아아아아!

혁무천은 밀려드는 도기의 파도를 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승부를 바란다면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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