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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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82화
82화
혁무천은 황보수에게서 시선을 떼고 몸을 틀었다.
우연히 종환과 눈이 마주쳤다.
종환이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포권을 취했다.
“오, 오랜만이오, 무 공자.”
혁무천도 가볍게 포권을 취한 후 그 자리를 떠났다.
동대안과 장대산, 영추문도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황보수는 그들이 멀어진 후에야 겨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우우우.”
등이 땀으로 젖은 듯 산바람에 서늘하게 느껴졌다. 저승에 한 발 내딛었다가 살아나온 기분이었다.
그때 무사 하나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주, 그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만, 너무 숙인 것 아닙니까? 본 맹의 자존심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군요.”
화산파의 제자인 연소권이었다.
그는 황보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천하무림의 정기를 되살리기 위해 결성된 정은맹의 기주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자에게 굽실거리다니.
청검기주가 수모를 당하는 것은 청검기 무사들이 수모를 당한 거나 같았다.
황보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연소권은 화산파에서 붙여 놓은 자였다.
이번에 무천을 만나러 오면서 떼어놓으려 했는데 악착같이 따라왔다.
아마 자신과 무천의 만남을 위에 보고하겠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목숨까지 포기했던 그였다. 청검기주의 자리야 언제든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번 일은 내가 책임질 거네. 맹에 피해가 된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겠지.”
그는 담담히 말하고 몸을 돌렸다.
한시 빨리 은설을 찾아야 했다. 풋내기하고 논쟁을 벌일 시간이 없었다.
***
다음 날 오후, 남양에 도착한 혁무천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객잔에 들렀다.
이층으로 올라가 창가의 자리에 앉은 그들은 간단하게 요리를 주문했다.
그런데 요리를 기다리던 혁무천이 창밖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저 멀리 대로 입구 쪽이었다.
상당히 많은 자들이 대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언뜻 봐도 사오십 명은 될 듯했다.
일반인은 근처에 가지도 못할 정도로 삼엄한 기세.
마치 칙칙한 폭풍이 밀려오는 듯했다.
“만마성 놈들인데?”
동대안이 그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진군하듯 대로를 꽉 채운 자들 가슴에 ‘만마(萬魔)’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천하에서 가슴에 그 두 글자를 수놓을 수 있는 자들은 만마성 무사들뿐.
관군들도 그들의 정체를 알고는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천화광을 지원하기 위해 나온 자들인가 본데?”
다시 한 번 동대안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혁무천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숫자는 많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절정고수가 몇 명 섞여 있었다.
개중 수장으로 보이는 듯 호위를 거느리고 있는 자는 초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였고.
숫자가 적긴 해도, 어지간한 중소문파에 비해서 뒤떨어지지 않는 전력이었다.
마을로 들어선 그들은 대로를 따라 전진했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혁무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아무래도 한바탕 소란은 피할 수 없겠군.’
잠깐 사이 이백 장이었던 거리가 오십 장으로 줄어들었다.
그때였다.
대로의 양편 건물 지붕 너머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만마성 무사들을 향해 두 손을 뿌렸다.
쏴아아아아아!
암기가 대로를 향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건물 지붕에서 암기를 쏘아낸 자들이 대로를 향해 날아들었다.
허공에서 무기를 빼든 그들은 곧장 만마성 무사들을 공격했다.
“어? 그자도 있네?”
동대안이 누굴 발견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혁무천도 그가 말한 자들을 보고 있었다.
이척이 만마성 무사들을 공격하는 자들 속에 섞여 있었다.
‘등주의 운가장과 관련된 자들이군.’
그들이 천기회 사람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천기회는 주로 강남에서 활동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분명한 것은 정파의 무사들이라는 것이었다.
숫자는 대략 백여 명.
그들은 암기로 일단 기선을 제압하고 흐트러진 만마성 무사들을 공격했다.
만마성 무사 중 십여 명이 암기에 당해서 부상을 입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제대로 무공을 펼칠 수 있는 자들은 삼십여 명뿐이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정파무사들의 공격에 맞섰다.
그들은 천화광의 연락을 받고 지원을 하기 위해 달려온 총단의 정예들이었다.
개중에는 장로인 구음마도 역구상도 있었다.
혁무천이 초절정고수로 분류했던 자.
그는 폭이 넓은 도를 사용했는데, 살기 짙은 그의 구음도법은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흉포한 도법이었다.
“쥐새끼 같은 정파 놈들! 네놈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노성을 내지른 그는 폭이 넓은 도를 휘두르며 정파무사들을 몰아붙였다.
양원응이 다른 중년무사 하나와 힘을 합쳐 그를 상대하며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다.
그 사이 만마성 무사들이 하나 둘 쓰러지며 승기가 정파무사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만마성 무사들은 가운데 뭉쳐서 공격에 대항했다.
그때만 해도 정파무사들은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만마성 무사들이 구석으로 몰린 쥐 신세가 되어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을 때였다.
골목 곳곳에서, 담장과 건물 너머에서 백 명이 넘는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복장만 봐서는 어느 곳에 속한 자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와하하하하! 쥐새끼 굴에 숨어 있던 놈들이 드디어 기어 나왔구나!”
천둥 같은 대소와 함께 격전지로 뛰어든 그들은 정파무사들의 후위를 공격했다.
정파무사들 중 오십 대 중반의 중노인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이런! 함정이었구나!”
회색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지고 유난히 큰 손을 지니고 있는 자.
그는 정파의 절정고수인 태천수 남환이었다.
전체 상황을 진두지휘하던 그는 변복한 마도고수들이 나타나자 상황을 곧바로 눈치 챘다.
만마성 놈들은 미끼를 던져 놓고 무사들을 변복시킨 채 곳곳에 숨겨놓았던 것이다.
정파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안팎으로 공격을 당하는 상황.
시간이 갈수록 정파무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남환은 이를 으드득 갈고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이곳을 벗어나라!”
“어?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고개를 내밀고 밖을 보던 동대안이 말했다.
혁무천도 변화하는 상황에 이마를 찌푸렸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나간다 해서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런데 포위망을 벗어난 정파무사들 중 일부가 객잔 쪽으로 달려왔다.
그들 중에 이척도 있었다.
약간 뒤로 처진 그는 만마성 무사들의 추격을 견제하며 정파무사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작정하고 함정을 판 만마성 무사들의 추적이 집요해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척이 창밖으로 고개를 삐죽 내민 동대안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고개만 내밀지 않았어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엇?”
검을 휘둘러서 만마성 무사들을 뒤로 물러서게 만든 그가 객잔 이층을 향해 소리쳤다.
“무 공자! 도와주게나!”
동대안이 고개를 돌려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봤는가 본데? 어떻게 할 건가?”
영추문이 핀잔을 주었다.
“우리를 본 게 아니라, 동 형을 본 거지. 그러게 왜 고개를 내밀어?”
혁무천은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만마성과 정파의 싸움이었다. 자신은 정파인도 아니고, 끼어들어서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척에게 부탁해 놓은 것도 있으니 구경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최소한 이척은 구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창문을 통해 몸을 날렸다.
이척의 말을 듣자마자 혁무천이 나설 거라 생각하고 있던 동대안과 영추문, 장대산도 뒤따라서 나갔다.
혁무천은 내려서면서 쌍장을 휘둘렀다.
파파팡!
장력이 회오리치듯 뻗어나가며 세 사람을 날려버렸다.
만마성 무사들에게는 난데없는 날벼락이었지만, 정파 무사들에게는 숨 쉴 수 있는 틈을 제공했다.
그 사이 동대안과 영추문이 내려와서 만마성 무사들을 몰아붙였다.
그때,
쿵!
장대산이 땅에 내려서며 지축을 흔들었다.
만마성 무사들은 갑작스런 진동에 놀라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 사이 혁무천과 동대안, 영추문이 칠팔 명을 더 쓰러뜨렸다.
콰광!
장대산도 달려드는 자들을 훌훌 날려버렸다.
칼에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주먹을 휘두르는 장대산의 모습은 장비가 울고 갈 정도로 위엄이 넘쳤다.
만마성 무사들은 그 모습에 기가 질려서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따라오게!”
이척이 소리치고 그곳을 벗어났다.
혁무천은 미련 없이 등을 돌리고 이척을 따라갔다.
추적해오는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야 이척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함께 몸을 피한 정파무사 다섯이 놀라움을 억누르고 혁무천 일행을 바라보았다.
눈이 콩알만 한 자만 삼십 대로 보일 뿐, 나머지는 이십 대의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절정고수마저 가볍게 상대하다니.
문제는 그 정도 고수임에도 정체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혁무천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척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이척에게는 그 모습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혁무천이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요?”
“본래 등주의 정파 무사들과 협상을 위해 왔는데, 만마성 무사들이 복우산으로 가기 위해 북상한다고 하더군. 등주에 모인 정파무사들이 그 소식을 듣고 공격 계획을 세웠네.”
“정파도 기습을 제법 잘하더군요.”
이척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혁무천의 말이 자신들을 비꼬는 소리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힘이 강한 마도세력과 싸우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저들이 어떻게 역습을 했을 거라 생각하시오.”
“우리도 그게 의문이네.”
“의문이라 할 것도 없소. 그대들의 계획이 저들의 귀에 들어갔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철저히 비밀을 지켰다?”
“물론이네.”
“지금이 어떤 세상인지 잘 알면서 어떻게 그리 장담하는 거요?”
“자네 말은……?”
“저들은 당신들이 기습할 거라는 걸 우연히 알고 대처한 것이 아니오. 미리 알고 철저히 준비했다가 당신들의 뒤통수를 친 것이지.”
“저들이 우리 계획을 미리 알았단 말인가?”
“아마 당신들 속에 저들의 눈과 귀가 있을 거요. 그자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세운 모든 계획을 포기해야 할 거요. 당신들의 협상도.”
“으으음.”
이척이 침음을 흘렸다.
냉정한 말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혁무천의 말대로 만마성의 귀가 자신들 속에 숨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혁무천의 말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결국 자신들의 동료 중에 첩자가 있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피의 맹서를 한 동료들이네. 우리 속에 첩자가 있다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네.”
혁무천은 그 말을 한 자를 돌아다보았다.
사십 대 초반쯤 되는 중년인이었다.
그의 눈은 동료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형형하게 빛났다.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소. 나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니까.”
“우리를 도와준 건 고맙지만 동료를 모욕하지는 말게.”
“모욕이라… 어떤 게 정말 모욕인지 모르는군.”
“뭐야?”
“사실을 말했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
혁무천은 차갑게 말하고 시선을 돌려 이척을 바라보았다.
“더 할 이야기가 없다면 그만 가보겠소.”
그가 돌아서려는데 중년인이 버럭 소리치며 앞으로 나섰다.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