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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81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3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81화

81화

 

 

우문척의 입가에 하얀 웃음이 번졌다.

“훗, 역시 왔군.”

혈영에게 한상귀를 감시하게 했다. 무천이 그를 찾아올지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률은 이 할 정도.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가 왔다.

우문척은 그의 움직임이 자신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뭐라 하더냐?”

“그곳에서 기다릴 것이니, 만날 생각이 있으면 자신을 찾아오라 했습니다.”

무천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그를 눈치 채고 전음을 보냈다.

삼십 장이나 되는 거리. 게다가 어둠으로 인해 보이지도 않았을 터. 외부로 드러난 기운은 밤새보다 약한 그였다.

들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혈영으로선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무척 위험한 놈입니다. 놔둬도 괜찮겠습니까?”

“당분간은 놔두는 수밖에, 언젠가 결정적일 때 나를 위한 비수가 되어줄 테니까.”

물론… 쓰고 난 뒤 필요가 없어지면 반드시 제거해야겠지.

“가보자. 기다린다는데 만나봐야지.”

 

***

 

혁무천은, 뒷짐을 진 채 유유자적 걸어오는 우문척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우문척이 걸음을 옮기면서 입술을 비틀었다.

“먼 길을 왔군. 아쉽지는 않던가? 비무대회에 계속 참여했으면 팔대마룡은 충분했을 텐데.”

“어차피 철혈마련의 밥을 계속 먹을 생각은 없었으니 아쉬울 것도 없어.”

“한 장로를 만났다고 하던데, 이야기는 잘 되었나 모르겠군.”

“며칠 허비한 시간이 아까울 뿐이야.”

몇 마디 나누는 사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이 장으로 줄어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두 사람은 상대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한 장로를 동행시켰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물론 이유야 있지. 내가 돌아가기 전에 네가 떠날 것 같아서 말이야.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만나고 싶었거든. 어차피 너도 나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잖아?”

우문학과의 만남에 대한 대가를 말하는 것일 터.

“뭘 원하지?”

“원하는 거야 많지.”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게 좋을 거다.”

“나도 말했지. 들어줄 수 없는 것은 말하지도 않을 거라고.”

“그래서? 원하는 건?”

무심한 혁무천의 말에 우문척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서서히 지워졌다.

“아마 너도 천화광을 알고 있을 거야. 그를 좀 흔들어줬으면 해.”

“대상이 천화광인가, 아니면 만마성인가?”

차갑게 느껴지던 우문척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후후후후, 정말 말이 잘 통하는 친구야. 만마성을 자네처럼 가볍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군.”

“대답부터 해. 그래야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까.”

“굳이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알 텐데?”

우문척은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말하는 것과 혁무천이 추측하는 것, 그 차이는 무척 컸다.

“그럼 내가 알아서 판단하지.”

“좋을 대로 해.”

“단, 당장은 힘들어. 알고 있겠지만 난 내 동생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거든.”

“나도 지금 당장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길어져도 안 돼. 석 달, 그 안에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와야 해.”

“좋아. 그 정도 기간이라면 나쁘진 않군. 대신 이거 하나만은 명심하는 게 좋을 거다. 한 장로를 다그쳐서 내 동생을 찾는 일에 영향을 끼치지 말 것.”

“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마라?”

“알아들었으면 됐다. 만약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약속은 무효가 될 거야. 물론 그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할 것이고.”

“걱정도 태산이군. 걱정할 것 없다. 나는 너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많거든.”

“더 할 말 없으면 그만 가보지.”

혁무천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그때 그의 등에 대고 우문척이 말했다.

“한 가지, 천화광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말해 봐.”

“그는…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너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군.”

멈칫한 혁무천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우문척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인가 보군.’

어쩐지 그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 했더니…….

한쪽에 서 있던 동대안이 작은 입을 오물거렸다.

“그러게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하더라니까.”

 

***

 

우문척과 헤어진 혁무천 일행은 노숙을 한 후 아침이 밝자 길을 떠났다.

우화겸은 어젯밤에 따로 떠나가서 곁에 없었다.

우문척 일행을 쫓느라 복우산 끝자락까지 온 터였다. 남응현까지 거리는 이백 리지만 산길이어서 실제로는 삼백 리 이상이었다.

그들은 남응현으로 가기보다 일단 복우산을 벗어나기 위해 서남쪽으로 향했다.

 

한편, 정은맹의 청년기재 중 살아남은 자들은 지원 세력과 함께 새벽이 되어서야 총단에 도착했다.

그날 아침,

정은맹의 총단 회의실에서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소이다. 정파의 동도들이 실망해서 등을 돌릴지도 모르오. 맹주, 결단을 내려주시오!”

팽조환의 강경한 말투에 회의장 안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곧 그와 같은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면서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그렇소이다, 맹주. 놈들에게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이오?”

“우리의 힘도 작지 않습니다. 계획만 철저히 세운다면 충분히 해볼 만 합니다.”

“마침 철혈마련과 만마성의 주요 인사들이 복우산에 왔소이다. 이 같은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을 거요.”

강경파들은 사마진웅의 결정을 기다렸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마도를 물리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그들도 모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신중함을 강조하는 사마진웅이라면 반대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그들은 차선책도 준비해두었다.

그런데 고민하는 듯하던 사마진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소이다, 부맹주.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저들이 눈치 챈 이상 무작정 숨길 수도 없는 일, 척마대를 세상에 내보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하지요.”

강경파 고수들도 의외라 생각한 듯 바로 입을 열어서 답하는 이가 없었다.

“척마대는 최정예로 조직할 거요. 부맹주가 그들을 이끌어 주시오.”

사마진웅이 그렇게 말한 이후에야 팽조환이 급히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아, 알겠소, 맹주! 승낙해주셔서 고맙소이다!”

회의실에 모인 군웅들이 일제히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맹주의 결단에 감사드리오!”

“정의는 이길 것이외다, 맹주!”

정파가 긴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외침이었다.

사마진웅도 일어나서 마주 포권을 취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했다. 신아야,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든 책임은 이 애비가 지고 가마.’

 

***

 

햇살이 뜨겁게 쏟아지는 오후.

혁무천 일행은 마침내 깊은 산골을 빠져나와 관도로 들어섰다.

그들이 관도를 따라 남쪽으로 삼십 리쯤 내려갔을 때였다.

산굽이를 돌아가는데 저만치 앞쪽 공터에 일단의 무리가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을 본 혁무천의 눈에 이채가 반짝였다.

‘황보수?’

그랬다. 공터에 모여 있는 십여 명. 그들은 황보수와 청검기 무사들이었다.

혁무천 일행이 다가가자 그들이 몸을 일으켰다.

“나 혼자 만난다. 너희들은 여기 있어라.”

종환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기주님…….”

“그는 너희들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니, 우리 모두가 달려들어도 그를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은 나만이 매듭을 지을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본 맹에 엄청난 후환이 될 것이다. 종환, 너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만약 내가 죽더라도 절대 맹이 저자와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황보수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종환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혁무천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황보수는 다가오는 혁무천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를 기다린 건가?”

“이런 일은 빨리 정리하는 게 낫다 싶어서 말이야.”

“용케 우리가 가는 방향을 제대로 짚었군.”

“그곳에서 복우산을 벗어나는 길은 다섯 갈래네. 그 중 북쪽으로 가는 길은 제외하고, 동서로 가는 두 길도 제외하면 둘이 남지. 나는 내 인생을 오 할 확률에 걸고 내기를 해보았네. 그런데 운이 좋았어.”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아니네. 좋은 것이 맞아. 매일 자네 꿈을 꾸면서 살고 싶지는 않거든.”

혁무천은 황보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눈빛이 생각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그는 황보수가 정말로 목숨을 내놓고 자신을 기다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의외군, 도망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다니.”

“사실 나도 지난밤에 고민을 많이 했네. 어디론가 멀리 가버리면 자네도 찾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무심한 혁무천의 말에 황보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평생 누가 쫓아올까 봐 뒤만 바라보면서 살 것 같더군. 그래서 마음을 달리 먹었지. 죽더라도 그렇게는 살지 말자고 말이야. 뭐 내 아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기도 싫었고.”

그의 아들은 이제 스물두 살이었다.

황보강.

그의 꿈이자, 황보세가의 미래라 할 수 있었다.

도망만 다녀서는 꿈을 꿀 수도,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 해서 내가 용서해줄 거라 생각하나?”

“용서를 바랄 마음은 없네. 그리고 고맙게 생각하네. 어쨌든 자네 덕분에 비급을 무사히 가져왔고, 정파의 무사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와 은설을 데리고 섬에서 나왔으면 아무 문제도 없을 일이었어.”

“그럴 수 없었다는 걸 자네도 잘 알 거네.”

“그건 당신 생각이지. 나는 그곳의 무공 따위 조금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솔직히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네. 지금도 그렇고. 자네가 강한 것은 알지만…….”

황보수가 고개를 젓다 말고 몸이 굳었다.

혁무천이 어딘가를 향해 손을 드는 게 보였다.

무심코 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황보수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맙소사…….”

이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사람 키보다 큰 경석 바위가 서 있었다. 그런데 쇠만큼이나 단단하다는 경석이 가루로 변하며 깎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곳의 무공을 욕심냈으면 그때 당신들을 모두 죽이고 얻었을 거야.”

황보수가 도망치듯 떠난 것도 그걸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바뀌면 모두 죽을지 모르니까.

그때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닫고 황보수의 안색이 노랗게 떴다.

저토록 가공할 공력을 일으키고도 말까지 할 수 있다니.

천하의 누가 저런 가공할 기운을 자연스럽게 일으킬 수 있을까.

그가 아는 한, 천하를 통틀어도 열 명이 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말이 정말일지도…….’

“하지만 은설 때문에라도 그럴 수가 없었지. 설아는 정파가 강해지길 원했거든.”

황보수는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결국 우리를 살린 것은 은 소저였군.’

“마음 같아서는 당장 목을 치고 싶지만, 은설이 알면 실망할지 모르니 당신 목숨을 빼앗지는 않겠어. 대신 하나만 명심해둬.”

“말해 보게.”

“만약 은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검은 제일 먼저 정은맹을 향해 피를 뿌릴 거다.”

황보수는 그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녀도 살아서 그곳을 나왔군.’

물어볼 것도 없었다.

혁무천이 살아서 앞에 있지 않은가. 당연히 그녀도 살아서 섬을 벗어났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당신들은 은설이 항상 안전하기만 바라야 할 거야.”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면 최선을 다하겠네.”

황보수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도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는 몰라. 천기회 무사들과 함께 중원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그러니 찾는 것은 당신들이 능력껏 찾아. 나보다 먼저 찾으면 알려주는 것도 좋겠지.”

천기회 무사와 함께 있다고?

황보수는 어렴풋이 혁무천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알았네. 본 맹의 정보력을 총 동원해서 찾아보겠네.”

“약속만 지키면 빚은 갚은 것으로 하겠어.”

황보수는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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