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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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79화
79화
이번에는 청년기재들도 고집을 피우지 못했다.
철혈마련에는 악마 같은 자가 있었다.
그자의 손에 죽어간 사람만 십여 명이나 되었다.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삼초를 제대로 버틴 사람도 없었다.
남궁욱은 그 악마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해쓱하게 질린 표정이 되어서 뒤로 몸을 날렸다.
다른 청년기재들도 앞다투어서 혈전장으로부터 멀어졌다.
우문척은 추적을 서두르지 않았다.
꼬리를 잡은 이상 서두를 것이 없었다.
“놈들의 몸을 뒤져라.”
우문척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의 좌우에 있던 네 사람이 시신의 품을 뒤졌다.
곧 대여섯 권의 필사본이 나왔다.
정의단원 중 비급을 없앤 사람도 있었지만 아까워서 없애지 못한 자들이 지니고 있던 것들이었다.
얇은 필사본 책을 받아든 우문척의 미소가 짙어졌다.
“후후후후, 역시 예상했던 대로군. 다시 사냥을 시작한다.”
***
천화광이 혈전장에 도착한 것은 우문척이 떠나간 지 이각 정도 지났을 때였다.
천화광은 실망하지 않았다.
“제대로 쫓아왔군.”
위후승이 시신을 둘러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소성주, 철혈마련 측에서 시신을 뒤진 것으로 보입니다.”
“우문척이 비급을 찾았을 거라 보시오?”
“시신 전부를 뒤져본 걸로 봐서, 최소한 일부라도 찾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긴 뒤졌는데도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았다면 분노해서라도 시신을 저대로 놔두지 않았을 거요.”
천화광은 눈으로 본 것처럼 상황을 짐작하고 서쪽을 바라보았다.
“우문척에게 전부 넘겨줄 수는 없지. 어두워지기 전에 놈들을 찾아야하오.”
그때였다.
서쪽 멀리 보이는 산 위에서 붉은 연기가 솟구쳤다.
그 광경을 본 천화광이 씩 웃었다.
“생각보다 멀리 가지는 못한 것 같군. 갑시다.”
***
혁무천은 붉은 연기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누가 보내는 신호일까?”
동대안이 중얼거렸다.
혁무천은 시선을 내리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철혈마련이라면 굳이 신호를 보내지 않았을 거요.”
“그럼 만마성?”
혁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철혈마련과 만마성이 먹이 하나를 놓고 서로 먹으려 하겠군.”
동대안이 상황을 제법 그럴 듯하게 정리했다.
혁무천이 가능성을 더 추가했다.
“다른 자들도 몰릴 거요.”
만마성에서는 자파의 동료들에게 알리기 위해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먹이를 노리는 늑대 떼를 불러들이는 신호이기도 했다.
혁무천 일행도 그 중의 하나였다.
“어딘지 알겠소?”
혁무천이 바라보며 묻자, 우화겸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칠령봉 근처 같소. 아마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무연곡을 지나고 있을 거요.”
“무연곡으로 곧장 갈 수 있는 길이 있소?”
“있소. 따라오시오.”
***
무연곡은 계곡 입구에 있는 호수로 인해 뿌연 안개가 낀 날이 많았다.
유난히 안개가 짙은 그날, 인간의 발길이 드문 그곳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악다구니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비릿한 피 냄새는 인근의 맹수들마저 자극했다.
“진세를 흐트러뜨리지 마라!”
황보수가 악을 썼다.
그들은 결국 추격을 뿌리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황보수는 꼭대기가 보이지도 않는 절벽을 등지고 철혈마련 무사들에게 대항하기로 했다.
남은 청년기재와 청검기 무사를 합해봐야 사십여 명에 불과했다.
심심곡을 떠나올 때에 비해서 절반의 인원을 잃은 것이다.
도주한다 해도 결국은 하나하나 죽어갈 터. 그는 최선을 다해서 항쟁하며 우군이 올 때까지 버틸 작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들이 배수진을 친 장소가 좁아서 적도 많은 자들이 공격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문척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강했다.
황보수는 우문척의 공격을 상대한지 오 초식 만에 내상을 입고 이를 악물었다.
지난 오 년 동안 정체되었던 무공이 몇 달 만에 한 단계 진전을 이루었다.
패왕신권도 어느덧 칠성에 이르러 있는 상태였다.
섬으로 들어갈 때 만난 무천이란 자.
그와의 만남 이후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무공을 익힌 결과였다.
두 번 다시 누군가가 두려워서 도망치는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
그런 다짐도 했다.
그런데 오늘, 또 다른 벽에 막히고 말았다.
‘우문척! 우문양에게 밀려서 차대 련주 자리마저 넘겨줄 판이라던 게 다 헛소문이었어!’
하지만 놀란 사람은 황보수만이 아니었다.
우문척은 정은맹 육기 중 일개 기주에 불과한 황보수를 오초의 공격으로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내가 너무 얕봤군.”
약간의 분노가 서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린 그가 검을 뽑았다.
“오래 끌 것도 없겠지.”
화르르르르.
붉은 기가 도는 그의 검신에서 불꽃 같은 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황보수는 가슴이 답답한 압박에 이를 부서져라 악물었다.
‘젠장! 아직도 최선을 다한 게 아니었어!’
그는 하는 수 없이 칠성 경지에 이른 패왕신권을 펼쳤다.
어정쩡한 무공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자였다.
자칫하면 패왕신권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당할 수 있었다.
“차아앗!”
우르르릉!
뇌음과 함께 바위를 부숴버릴 경력이 해일처럼 밀려갔다.
“흥! 제법이다만, 그 정도로는 네 목숨을 구할 수 없다!”
냉랭히 코웃음 친 우문척이 검을 뻗으며 쇄도했다.
콰과과광!
패왕신권과 철룡마신검이 거리를 두고 충돌하면서 귀청을 찢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황보수는 핏덩이가 목구멍으로 솟구치려는 것을 억지로 밀어 넣고 쌍장을 내쳤다.
어차피 패왕신권으로도 안 된다면 죽음 밖에 없다.
아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콰광! 콰르릉!
연이은 굉음이 계곡을 뒤흔들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결국,
“크억!”
답답한 신음을 토하며 황보수가 주르륵 밀려났다.
안색은 백짓장처럼 창백했고, 입술 사이로는 핏줄기가 비쳤다.
‘이것이 한계인가?’
황보수는 가늘게 떨리는 두 손을 가슴으로 모았다.
어쩌면 마지막 공격이 될지 몰랐다.
자신은 죽는다 해도 청년들 중 몇 명은 살아야 할 텐데…….
그는 자신보다 청년들이 걱정되었다.
그들이 살아나야 정파에 미래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가족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후후후, 지금이라도 비급을 모두 내놓고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주마.”
우문척이 여유 있게 웃으며 황보수를 압박했다.
철혈마령대와 추멸단이 모두 도착해서 계곡의 삼면이 포위되었다.
지금도 정은맹의 무사들이 하나 둘 쓰러지고 있었다.
무릎을 꿇으면 시간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끝까지 저항한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개소리 마라! 우리는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황보수가 악을 쓰며 외쳤다.
“싫다면 할 수 없지! 놈들을 더 몰아붙여라!”
우문척이 명을 내리자 철혈마령대가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
피가 튀고 비명이 메아리치며 계곡을 뒤흔들었다.
온몸이 피로 물든 정파의 청년기재들이 하나 둘 죽어갔다.
“우리도 이제 그만 끝내지.”
우문척이 차갑게 말하며 황보수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천천히 들어 올리는 검신에서 다시금 붉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그때였다.
“오랜만입니다, 척 형님!”
낭랑한 목소리가 계곡으로 밀려들었다.
멈칫한 우문척은 계곡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상당히 많은 숫자, 족히 백 명이 넘는 인원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눈에 익은 자가 보였다.
‘저놈은!’
우문척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천화광?”
철혈마련에서 비밀리에 출발했다. 오면서도 최대한 조심했다.
수하들과 장로에게 그 어떤 말썽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최소한 하루 이상의 시간 여유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천화광이 어떻게 지금 여기에 나타난단 말인가.
아직 마룡선발대회도 끝나지 않았을 텐데.
‘숙부가 말해주었나?’
그래서 배제하고 논의했거늘.
숙부를 너무 과소평가했나보다.
“만마공자가 여긴 어쩐 일인가?”
“좋은 것이 있으면 이 아우에게도 좀 나누어주시지요!”
천화광이 다시 소리쳤다.
어느새 거리가 삼십 장 이내로 줄어들었다.
그와 함께 온 무사들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상황을 주시하며 내달렸다.
정의단의 청년기재들을 몰아붙이던 철혈마련의 장로와 철혈마령대 무사들은 공격을 늦추었다.
만마공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곧 만마성이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정은맹과는 격이 달랐다.
우문척은 빠르게 가까워지는 천화광을 보며 일단 무시하듯 말했다.
“뭘 나누어달란 말인가?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알아서 찾아보게나.”
“정파의 비전 비급. 설마 모른다고는 않겠지요? 이미 중원천하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문척은 그의 말이 의외였지만 겉으로는 일절 표를 내지 않았다.
“호, 그래? 그렇다면 이번 일을 더욱 확실하게 처리해야겠군. 오랜만에 강호에 나왔는데 뒤통수나 맞고 돌아갈 수는 없지.”
그 말이 천화광의 귀에는 만마성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천화광은 철혈마련과 싸우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가 닥친다면 또 몰라도.
“일단 저들부터 처리하고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누는 거야 나중에 이야기해도 되니까 말입니다.”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우문척은 마다하지 않았다.
이미 십여 권이나 되는 필사본 비급을 얻은 터였다. 추적하는 중에 살펴보니 개별 무공을 필사한 것이었다.
설령 더 있다 해도 많지 않을 터. 그 중 몇 권을 만마성에 넘겨준다 한들 크게 손해라 할 것도 없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천천히 걸음을 뒤로 물리던 황보수는 절망에 빠진 심정이었다.
철혈마련에 이어 만마성까지 나타난 이상 죽음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는 최후의 조치를 취했다.
“혹시라도 비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갈기갈기 찢어서 없애라! 씹어서라도 삼켜! 죽을 때 죽더라도 마의 무리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몇 사람이 품속에 손을 넣어서 비급 필사본을 꺼냈다.
그걸 본 우문척이 다급히 명을 내렸다.
“공격해라! 놈들이 책을 없애지 못하도록 해!”
공격을 멈췄던 철혈마련 무사들이 정은맹 청년기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뿐만 아니라 만마성의 무사들 중 일부도 공격에 합류했다.
우문척과 천화광은 공격에 나서지 않고 서로를 견제했다.
정은맹 청년기재들은 삼십 명도 안 되었다. 그들이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황보수는 철혈마련의 장로인 마혈마검 석등청을 상대했다.
석등청이 절정경지를 넘어선 고수라 하나 우문척에 비하면 상대하기가 훨씬 편했다.
새삼 우문척의 강함을 깨달은 황보수는 어떻게든 계곡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바늘구멍 같은 틈을 노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는 길이 보이는 법이었다.
‘어떻게든 버텨야 해! 아직은 포기할 때가…….’
그런데 그때, 곡 입구 쪽에서 한 무리가 또 나타났다.
그들에게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마도 놈들을 지옥으로 보내줘라!”
“황보 기주! 우리가 왔네!”
그들을 본 황보수는 눈을 치켜뜨고 입술을 깨물었다.
‘왔다!’
드디어 지원무사가 도착했다.
언뜻 봐도 삼사백 명은 될 듯했다.
부맹주, 벽력신도 팽조환이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
남궁무룡도 보였다. 심심곡의 무사들이 지원대에 합류한 상태였다.
서로를 견제하고 있던 우문척과 천화광도 그들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정파 놈들이 지원을 나왔군요.”
“훗! 이제는 대놓고 활동할 생각인가 보군. 차라리 잘 됐어. 숨어 있는 놈들 잡는 것보다 덤벼드는 놈들 잡는 게 더 재미있거든.”
우문척은 가볍게 조소를 짓고는 계곡 입구 쪽으로 돌아섰다.
“나머지 인원은 정파 나부랭이들을 막아라!”
“만마성 무사들은 철혈마령대와 함께 정파 놈들을 쳐라!”
양쪽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가다 보니 거리 백 장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들은 곧 가타부타 말도 없이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정은맹의 지원무사까지 왔군.”
혁무천은 사십여 장 높이의 절벽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