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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18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18화

118화

 

 

신출귀몰한 신법도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은 발을 땅에 박은 것처럼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검만 뻗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삼십여 번이나 검이 충돌했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치고, 옷자락이 검기의 파편에 찢겨져서 펄럭거렸다.

따당! 쾅!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이 장여의 거리를 둔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십 년 전쯤, 사부가 옛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가 중상을 입고 돌아왔는데,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중얼거렸지. 그리고 사흘 후 염라대왕을 찾아갔어. 나한테 이것저것 숙제만 잔뜩 남겨주고. 혹시 당신도 그때 있었나?”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이십 년 전이 마지막이다. 그때 죽을 뻔했지. 그 영감의 검이 지금의 너만큼이나 빨랐거든. 도망치지 않았다면 정말 죽었을 거다.”

주르륵.

노명의 어깨에서 붉은 혈화가 한 송이 피어나더니, 색 바랜 혈의를 더욱 붉게 물들이며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럼 십여 년 전에 사부를 만난 사람이 누군지 알아?”

“나는 모르는 일이다.”

노명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검을 다시 들었다.

어이없게도 자신이 밀렸다. 이십 년. 이제는 충분할 거라 생각했거늘.

아마 다시 겨루게 되면 어깨에 구멍이 뚫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끝까지 싸워보고 싶었다.

강호에서 칼날 위에 목을 걸어놓고 살아가는 인생. 어차피 언젠가 죽을 거라면, 한번쯤 목숨을 내놓고 검을 겨루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후우웅.

그의 검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검기가 하나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검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검강이었다. 아직은 크기도 작고 기세도 약하지만, 어지간한 절정고수들은 흉내도 내기 힘든 상승의 검학이었다.

그걸 본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거, 검강이다!”

“으아, 내 생전에 검강을 직접 구경하게 되다니.”

동대안도 섬혼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그의 검에서도 검강이 피어났다.

휘이이잉.

츠츠츠츠츠.

두 사람의 기운이 얽혀들면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은 한참 동안 깜박이지도 않았다.

팟!

동대안이 먼저 선공을 취했다.

땅을 밀듯이 박차고 튀어나간 그가 섬혼을 뻗었다.

꼬챙이 같은 검에서 뻗어나간 네 줄기 검강이 노명의 미간과 목, 심장, 단전을 노렸다.

이를 악문 노명도 피하지 않고 마주 검을 갈지자로 휘둘렀다.

떠더더덩!

눈 깜짝일 사이도 없이 네 번의 충돌임이 귀청을 울렸다.

노명은 동대안의 공격을 힘들게 막아내고는 반격을 가했다.

촤아악!

대기를 찢어낸 검강이 동대안의 허리에서 심장을 거쳐 어깨까지 단숨에 가르려 했다.

동대안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섬혼을 뻗으며 노명의 공세를 차단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의 강맹한 기운이 충돌하면서 땅에서는 먼지가 후욱 피어났다.

떠더덩! 콰광!

귀청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다시 뒤로 물러났다.

미간이 일그러진 노명의 어깨에서는 조금 전보다 더 많은 피가 흘러내렸다.

동대안도 충격이 작지 않은 듯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악다물고 있었다.

연이은 격돌로 잠깐 수그러들었던 두 사람의 검강지기가 다시 강해졌다.

필생의 적을 마주한 것처럼 두 사람은 눈을 번뜩이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누구도 물러설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그 정도면 된 것 같은데.”

혁무천의 목소리가 긴장을 깨뜨렸다. 목소리에 실린 진기가 두 사람의 진기를 진탕시킨 것이다.

그 바람에 검에서 뻗어 나온 검강도 파르르 떨렸다.

동대안이 불만인 듯 입술을 씰룩였다.

노명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부터는 혁무천과 상관없는 광천곡의 일이었다.

아무리 혁무천이 무리의 대장이라 해도 막을 수 없었다.

“무천, 이건 자네가 참견할 일이…….”

“제갈세가 사람들이 오고 있어. 둘 사이의 일은 나중에 해결해.”

“어이, 무 형! 싸움을 멈추시오!”

제갈위종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혁무천의 시선이 노명을 향했다.

“어떻게 하시겠소? 끝장을 보실 거요?”

노명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어떻게…….’

전력을 다해 끌어올린 진기가 나직한 말 몇 마디에 흔들렸다.

자신이 겪고도 믿기지 않았다.

문제는 눈이 작은 자 역시 자신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절정고수 둘의 진기를 말 몇 마디로 뒤흔들 수 있는 고수가 천하에 몇이나 될까.

열 명? 스무 명?

‘후우우우우.’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는 천천히 검을 내렸다. 그의 검에서 피어났던 검강도 안개처럼 스러졌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왔다.

“노 장로, 무슨 일입니까?”

그 목소리를 듣고 혁무천의 고개가 돌아갔다.

양화송이 공손두와 함께 객당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객당의 마당으로 다가오던 그는 혁무천을 보고 멈칫거렸다.

‘헛, 저 자식이 여긴 왜……?’

공손두도 혁무천을 알아보고 눈빛을 빛냈다.

“오호라! 여기서 자네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나 역시. 마천문이 언제부터 제갈세가의 혼인에 관심을 가졌는지 모르겠군.”

“지나가던 길에 혼인식이 있다는 말이 들려서 들렀다네. 사이가 좋든 나쁘든, 축하할 일이 있으면 축하해줘야지.”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정파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온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 깊이 묻지는 않고 화제를 돌렸다.

“비무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하더군. 그런데 왜 우문소소를 포기했나?”

그 말에 공손두가 피식, 웃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진짜배기들이 다 빠져나간 비무대회의 우승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서 우승자에 대한 대가를 포기했지.”

한마디로, 자존심이 상해서 거부했다는 말.

혁무천은 그게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남의 집 경사를 방해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만하는 게 어떻겠나?”

말은 담담히 하지만 둘 사이에서 묘한 냉기류가 흘렀다.

주위에 있던 자들은 숨을 죽인 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공손두가 입꼬리를 비틀며 피식 웃었다.

“우리도 싸우려고 온 것은 아니야. 노 장로께서 그만하시겠다면 더 할 생각 없네.”

“그럼 됐군. 저분도 더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으니까.”

혁무천의 말에 공손두가 노명을 바라보았다.

노명이 쓴웃음을 지으며 검을 집어넣고 어깨를 눌러 지혈했다.

“후우우우.”

제갈위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포권을 취했다.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는데 눈은 무심하게 보이는 기이한 표정이었다.

“제갈위종이라 합니다. 사천마룡이 우리 연아의 혼인을 축하해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더군요. 오빠 된 사람으로서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드립니다.”

“당연히 와 봐야지. 그래도 한때는 천하제일가 소리를 듣던 제갈세가 아닌가?”

비꼼이 섞인 말투였다. 그럼에도 제갈위종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하, 하, 하. 좌우간 고맙습니다. 기분 푸시라고 제가 술 한 잔 대접하지요.”

그때,

“위종, 쓸데없는 소리 말고 물러서 있어라!”

제갈진수가 제갈예경과 함께 다가오며 차갑게 말했다.

“아, 숙부님께서도 나오셨군요. 다행히 별 일 없이 화해했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제갈위종의 말에도 제갈진수는 공손두 일행을 주시했다.

“공손 공자, 오늘은 본가의 경사스런 날이오. 공연한 소란은 자제해 줬으면 싶소.”

“우리도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소이다.”

“그리 생각하신다니 다행이오.”

제갈진수가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공손두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공손두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행…이라. 제갈세가가 최근 들어 부쩍 형편이 좋아졌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나 봅니다.”

“무슨 뜻이오?”

“그러니 저에게 다행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갈세가 뭐 그리 대단해서.

다행이 아니면, 자신을 다그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런 뜻이 내포된 말.

제갈진수의 눈빛이 찰나 간 흔들렸다.

감정이 앞서서 말이 살짝 강하게 나온 듯했다. 마음에 안 드는 자라 해도 함부로 말하는 건 위험했다.

“오해하신 것 같구려. 나는 그저 싸움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을 뿐이오.”

“그리 생각하고 한 말이라니… 다행이오.”

“…….”

다행?

제갈진수는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은근히 화도 났다.

그러나 상대는 마천문의 소문주인 사천마룡이었다.

그는 더 이상 공손두를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혁무천 쪽으로 돌렸다.

눈빛이 차가워졌다.

뭔가 말썽을 일으킬 것 같더라니…….

“자네들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으면 좋겠군.”

“우리는 소란을 피운 적이 없소만. 방에 있는 우리를 큰 소리로 불러낸 건 저쪽이오.”

“…….”

혁무천이 토를 달며 공손두 일행에게 잘못을 떠넘기자, 제갈진수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하지만 공손두와 맞서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던 자다.

쌍마괴와 능화를 물리쳤다는 자.

책임을 물으려 했다가는 자칫 엉뚱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래저래 짜증이 치민 그는 고개를 반쯤 돌려서 제갈위종을 째려보았다.

“네가 마무리해라. 나는 바빠서 가봐야겠다.”

그러고는 공손두와 혁무천 일행을 향해 건성으로 포권을 취한 후 홱, 몸을 돌려서 객당을 떠나버렸다.

제갈위종은 쓴웃음을 지으며 혁무천을 돌아다보았다.

하지만 혁무천은 지금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다.

“들어가서 차나 마셔야겠어.”

공손두도 제갈위종의 술 접대를 거부했다.

“나중에 보지. 갑시다, 노 장로. 상처부터 치료해야겠습니다.”

제갈위종은 어깨를 으쓱하고 피식 웃었다.

그러나 입은 웃어도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무천, 공손두…… 앞으로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겠어.’

 

***

 

혼인식은 오시 초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방년 스물두 살인 제갈연은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한 모습으로 신랑을 기다렸다.

신랑은 형주의 명문인 등가장 장주의 장자, 등소명이었다.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부를 태우고 갈 가마와 함께 제갈세가로 들어선 그는 곧장 현천전으로 갔다.

커다란 현천전 앞에는 제갈세가의 가족과 혼인 축하를 위해 방문한 강호의 유명 인사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제갈세가의 사람 중에는 팔순을 넘은 사람만 해도 열 명이 넘었고, 개중 백 살이 넘은 사람도 있었다.

강호의 일에 관여치 않은 지 오래 된 원로들이었다.

그들의 반대편에는 강호의 인사 오십여 명이 서 있었는데, 무리가 둘로 갈라져 있었다.

정파의 무리와 마도의 무리로.

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 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식은 별 충돌 없이 진행되었다.

혁무천은 식이 진행되는 동안 정파와 마도의 인물들을 세심히 살펴보았다.

마도의 인물 중에는 만마성의 고수도 있었고, 귀천교의 고수도 있었다. 그 외 마도십문에 속한 고수도 칠팔 명은 되었다.

정파 쪽 역시 상당한 실력을 지닌 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 계셨군요.”

제갈위종이 담담히 말하며 다가왔다.

그는 혁무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입 끝을 슬쩍 비틀었다.

“꼭 늑대와 곰이 이빨과 발톱을 감춘 채 나란히 모여 있는 것 같지 않소?”

비꼼이 역력한 말투.

혁무천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속을 감추고 있는 사람이 저들만 있는 건 아니지.”

제갈위종의 눈 깊은 곳에서 순간적으로 이채가 반짝였다.

“설마 저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요?”

“그대도 걸리는 것이 있나보군.”

“…….”

그때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왔다.

“위종, 그분들이 쌍마괴와 능화를 사천으로 쫓아냈다는 무 소협 일행 분들이냐?”

학사 복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자였다. 나이는 삼십 대 초반쯤.

“예, 형님.”

제갈위종이 씁쓸함을 베어 물고 대답했다.

“제갈위군이라 하오.”

제갈세가의 소가주인 제갈위군이 느릿한 자세로 포권을 취했다.

혁무천도 포권으로 예를 받았다.

“무천이오.”

둘의 눈빛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옆에서 작은 불씨 하나만 던져도 뭔가가 펑! 하고 터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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