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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16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16화

116화

 

 

뇌음이 인 순간, 중년인이 이를 악문 채 뒤로 튕겨나가고, 혁무천 역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장한과 중년인은 땅으로 내려선 후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기문진이 펼쳐져 있거늘, 어디에서도 침입자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누군데…….”

중년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마지막 격돌의 순간,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다.

아마 상대가 바로 떠나가지 않았다면 극심한 내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기이한 것은 상대가 고의로 공력을 거두었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장 허공에서 꼴사납게 처박혔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어떤 자인지 짐작 가는 바라도 있습니까, 숙부?”

장한이 그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중년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혁무천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누군지 몰라도 정말 대단한 손님이 방문한 것 같구나.”

“설마 마천문의 사람은 아니겠지요?”

“그건 아닌 것 같다.”

마도의 인물이었다면, 마지막 공격에서 사정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대화를 엿들었을까요?”

“거리가 멀어서 듣지는 못했을 거다.”

중년인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저 그러기만 바랄 뿐.

“아, 조부님께서는…….”

장한의 말에 중년인이 죽옥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밖의 소란을 들었을 테니 나와 봐야 정상이거늘.

‘혹시……?’

 

와룡림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작은 폭포가 나왔다.

높이가 이 장에 불과해서 밖에서 보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외진 곳이었다.

폭포 아래의 소(沼)는 항아리처럼 움푹 파였는데, 직경이 오륙 장 정도 되었다.

그리고 그 소 옆의 커다란 바위 위쪽에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허름한 죽옥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새도 울지 않는 밤에 한 사람이 소 옆에 내려섰다.

혁무천이었다.

중년인과 일장을 겨룬 후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향을 틀어서 거꾸로 더 깊이 들어온 것이다.

본래의 목적지인 이곳에 오기 위해서.

그는 이곳에서 한 미치광이를 만났었다.

하지만 그자는 미친 척했을 뿐 진짜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정파의 위선적인 행태에 실망해서 스스로를 가둔 것뿐.

제갈청문.

세상은 그를, 제갈세가 역사상 첫째 둘째를 다투는 천재였으나, 한순간에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자로 기억했다.

혁무천은 그를 만난 후 제갈세가에 대한 단죄를 뒤로 미루었었다.

제갈청문은 그가 만난 정파의 인물 중 진양진인과 함께 진정으로 협의를 아는 자였다.

그래서 십 년 봉문을 약속받고 더 이상의 피를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오래 전에 땅으로 돌아갔겠군.’

그때 혁무천의 뒤쪽 삼 장 떨어진 곳에 한 사람이 날아내렸다.

“외인 중에 이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학창의를 입은 칠순 가량의 노인이었다.

혁무천은 돌아서지 않고 대나무로 엮은 죽옥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의 그 어떤 험담과 욕설도 폭포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으니, 이곳이야말로 정말 세상을 잊기 좋은 곳 아니오?”

뜬금없는 그의 말에 노인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저 노인은 모르나보다. 그때 그자가 한 말인데.

“대답하기 전에 하나 묻지요. 왜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고 혼자서 따라온 거요?”

“이곳은 본가의 장심(掌心)과도 같은 곳이다. 필요하면 언제든 소리를 쳐서 부르면 되지 않겠느냐.”

“그럼 내가 왜 노인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거라 생각하시오?”

노인, 제갈운정은 이마를 찌푸렸다.

침입자가 조카와 손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고 뒤를 쫓았다.

그런데 밖으로 도주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어서 몰래 뒤따라왔다.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세가의 아이들을 부르면 그냥 도주할지 몰라서 알리지도 않았다.

내심 자신이 있기에 한 행동이었는데, 침입자의 말을 듣고 보니 가슴이 섬뜩했다.

더구나 침입자는 무사들이 은신해 있는 곳과 기문진이 펼쳐져 있는 곳을 교묘하게 피하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거야 너만이 알겠지.”

그는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대충 둘러댔다.

혁무천이 그 말에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노인장은 스스로 생각할 때 신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오?”

제갈운정은 기분이 상했다.

어둠 속이고, 기이하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리 봐도 젊은 놈 같았다.

그런데 감히 자신에게 신뢰 운운하다니.

“네가 지금 노부를 놀리자는 것이냐?”

“놀리려는 게 아니라, 생사가 달려 있기에 물어본 거요.”

“뭐라?”

“신뢰가 있는 자라면 살 것이고, 없는 자라면 내일 해를 보지 못할 거요.”

“네놈이 어디서……!”

버럭, 노성을 내지른 제갈운정이 공력을 끌어올렸다.

바람도 없는데 머리카락이 좌우로 뻗고 옷자락이 펄럭였다.

그 순간,

쉬아아악!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어둠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가공할 기운이 노인을 짓눌렀다.

노인은 끌어올린 공력을 쌍장에 집중시키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놈이 돌아섰는데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묵기가 일렁거리는 검첨만이 두 눈에 가득할 뿐.

손가락만 까딱해도 그 검첨이 곧장 자신의 미간을 가를 것만 같은 느낌.

자신도 모르게 한 줄기 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일검이야 어떻게든 떨쳐낼 수 있겠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상대는 신묘한 신법을 쓰는 자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쾌검에 유령 같은 신법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다시 한 번 묻겠소. 귀하는 스스로 생각할 때 신뢰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으드득, 이를 간 제갈운정이 잇새로 씹어뱉듯 말했다.

“내 지금까지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소싯적 장난처럼 말했다가 번복한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일가를 이룬 스물다섯 이후 일흔여덟이 되도록 남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느니라.”

“다행이군요.”

순간, 제갈운정을 짓누르던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노부의 이름을 걸고 분명히 말하마. 노부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만 할 것이다.”

“저 죽옥의 이름이 매룡헌(埋龍軒)이지요?”

“그렇다만… 그 이름을 네가 어떻게……?”

뜬금없는 질문에 답하던 제갈운정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죽옥의 이름이 매룡헌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안 쓴 지 오십 년이 넘었다.

매룡헌은 제갈세가에게 치욕의 역사였다.

그래서 매룡헌의 주인이 숨을 거둔 후 누구도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것은 불문율과도 같았다.

오죽하면 세가의 젊은이들은 그 이름조차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어떻게 그 이름을 안단 말인가?

“제갈세가에서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 매룡헌에서 살았다고 들었지요.”

“…….”

“그래서 지금도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막상 와보니 사람의 온기가 없는 장식물이 되어버렸군요.”

“이곳은 우리에게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일 뿐이다. 그나마 보존하고 있는 것은 어른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일 뿐.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왜 신뢰 운운했는지 말해봐라.”

혁무천은 진심으로 아쉽고 씁쓸했다.

그래도 한때 자신이 탄복했던 사람이 살던 곳이었거늘. 정작 그 사람의 핏줄들은 그를 치욕으로 생각해서 방치하다니.

하지만 서로의 입장이 다르니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지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인 혁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노인장이 나를 본 이상 나는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만 하오. 노인장을 죽이거나, 아니면 약속을 받고 살려주거나. 그런데 신뢰가 없는 사람이라면 약속을 어길 테니 살려줄 수 없는 일 아니오? 그래서 물어본 거요.”

“허…….”

제갈운정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그러나 조금 전 상대의 검을 본 터라 마냥 화를 낼 수만도 없었다.

화는 나는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제갈운정은 주먹을 움켜쥐고 이만 갈았다.

‘아이들을 불러야 하나?’

그때 혁무천이 말했다.

“오늘 나를 본 것을 못 본 척 해준다면 나도 입을 다물지요.”

“……?”

“귀하들이 나눈 이야기 말이오.”

제갈운정의 눈이 커졌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기문진 때문에 어느 정도 소리가 제어되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은자 만 냥짜리 정보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소.”

표정으로 봐서는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정보도 하나 주지요. 손녀의 혼인 축하 선물이라 생각하십시오.”

 

***

 

객당으로 돌아온 혁무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 침상에 누웠다.

동대안이 가자미눈으로 흘겨봤다.

장평은 잠을 자는 듯 미동도 없었다.

혁무천은 두 사람이 잠을 자지 않는다는 걸 알고도 모른 척했다.

‘제갈세가가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저들의 선택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지.’

제갈운정에게 정파의 비전무공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철혈마련의 우문척이 최소 열 가지의 무공을 얻었소. 아마 그 사실을 잘 이용하면 구대문파 중 몇 곳 정도는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요.”

 

정은맹이 정파의 비전무공을 얻은 일은 제갈세가도 알고 있었다.

비록 정은맹이 정보유출을 철저히 단속해서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러나 우문척에게 그렇게 많은 정파의 비전 무공을 빼앗긴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결국 제갈운정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다행히 첫 번째 문제는 무난히 해결됐군.’

혁무천이 정보를 준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보다 쉽게 완성하려면 제갈세가가 필요했다.

그들의 뛰어난 병법과 기문진이.

 

***

 

제갈세가에는 객당의 손님들을 위한 식당이 따로 있었다.

혁무천 일행도 그에 대한 안내를 받은 터여서 아침이 되자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누군가가 무천을 알아보았다.

“어? 저 친구, 마룡선발대회에 나갔던 무천이잖아?”

사람들의 시선이 혁무천 일행에게로 쏠렸다.

그들 중에는 무천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마룡선발대회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도의 청년 기재를 뽑기 위한 비무대회.

다시 말해서, 마룡선발대회에 나가는 사람은 모두가 마도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정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혁무천 일행을 노려보았다.

“흥! 유명한 친구가 왔군.”

“설마 제갈세가에서 초대한 것은 아니겠지?”

“에이, 밥맛 떨어지는군.”

여기저기서 탐탁지 않아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차마 심한 말을 하지는 못했다.

마도의 눈은 어디에든 없는 곳이 없었다. 식당에 있는 무사 중에도 마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자칫하면 마도를 욕한 걸 빌미로 공격받을 수 있었다.

혁무천은 못 들은 척하고 식사를 했다.

조용히 지내려 했던 것이 무산되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간혹 호승심이 남다른 자들이 있곤 했다.

식사를 하던 자들 중 삼십 대 장한 하나가 일어나더니 혁무천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봐! 마룡선발대회에서 오차 전까지 통과했다며? 어때, 나와 한번 검을 겨루어보지 않겠나?”

혁무천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이, 내 말이 안 들리나? 귀 먹었어?”

결국 동대안이 투덜거리며 강탁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후우, 꼭 찍어서 먹어봐야 아나? 강 가야, 네 선에서 처리해라.”

강탁도 식사를 방해받은 것에 짜증이 났던 터였다.

“대형 대신 내가 상대해주지.”

“넌 빠져라. 내가 상대하려는 사람은 무천이란 자니까.”

“비무도 상대가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일초지적도 안 되는 자가 대형을 상대하겠다니.”

“뭐?”

“또 모르지, 나를 이기면 상대해 주실지도.”

“이런 건방진 놈이!”

“얼마 전에 혈왕동의 쌍마괴가 그런 말을 하며 대형을 건드렸다가 코피 흘리고 도망쳤지.”

그냥 짜증이 나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에 대한 반향이 생각 이상으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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