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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00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9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00화

100화

 

 

묵묵히 듣기만 하던 자경산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곳에 철혈귀령도 나타났습니다.”

우문소소의 차갑던 눈이 커졌다.

“뭐? 철혈귀령이 왜 그곳에 나타나?”

“아무래도 련주께서 무천을 잡기 위해 철혈귀령을 움직이신 것 같습니다.”

우문소소가 다급히 물었다.

“정말이야? 어떻게 됐어? 설마 무천이 다친 건 아니지?”

“둘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무천에게 당했습니다.”

“훗, 과연 무천이야. 하긴 철혈귀령 한둘로는 무천을 잡을 수 없을걸?”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우문소소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조석지변으로 변하는 그의 표정 변화에 자경산은 씁쓸한 마음이었다.

‘무천은 소공녀에게 오지 않을 거요.’

그런데 우문소소가 입술을 질겅 깨물더니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안 되겠어. 이번에는 나와 함께 가.”

“예?”

“무천이 이곳으로 오지 않으니 내가 직접 무천을 찾아가겠어. 내가 함께 있으면 철혈귀령도 무천을 해치지 못할 거야. 그리고 그 계집이 얼마나 예쁜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우문소소의 집착은 자경산이 생각한 것보다 더 심했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결정은 내가 내려. 경산은 따르기만 하면 돼. 내일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해 놔.”

차가운 우문소소의 말에 자경산은 고개를 숙였다.

지금으로선 그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

 

석양이 지고 어둠이 밀려들 무렵.

무복을 입은 남녀노소 십여 명이 광산현에 들어섰다.

합비 외곽에서 철혈마련 무사들과 한바탕 혈전을 치른 천기회와 혁무천 일행이었다.

그날 이후 서쪽으로 이동한 지 사흘째.

큰 마을을 피해서 빠르게 이동한 덕에 더 이상의 공격은 받지 않았다.

그 사이 천기회 사람들과 혁무천 사이의 갈등도 가라앉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혁무천은 더 이상 무의미한 말싸움을 벌이기 싫어서 아예 입을 닫다시피 했다. 그러니 갈등을 일으킬 여지도 없었다.

객잔에 들어간 그들은 일단 허전한 위장부터 달랬다.

그런데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였다. 조광유가 혁무천을 보며 말했다.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것이 있네.”

“말해보시오.”

“앞으로 본 회의 중요 기밀과 접하게 될 거네. 그러다 보면 본 회의 사람이 아닌 이에게 보여주거나 알려줄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네. 그러니 계속 우리와 함께 하겠다면 정식으로 회에 들어와야만 하네.”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설아를 지키기 위함이오. 나는 천기회에 들어갈 마음이 없소.”

“가입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동행은 무리네. 내일 오전까지 결정해서 말해주게.”

혁무천은 은설을 돌아다보았다.

“어떻게 할 거냐?”

“오빠…….”

은설이 머뭇거리자, 신도평이 말했다.

“은 소저는 본 회와 함께 하기로 하셨소.”

혁무천이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은설에게 물었다.

“사실이냐?”

은설이 입술을 살짝 깨물고 말했다.

“오빠가 함께 가자고 하면 갈게요. 복수는 조금 늦게 해도 되니까요.”

막상 은설이 그렇게 말하자 혁무천의 마음이 약해졌다.

“내 욕심 때문에 네가 마음 고생하는 건 나도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 봐.”

“오빠…….”

은설의 눈빛이 흔들렸다.

주산도를 나올 때만 해도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럴 만한 힘도 없었고, 백마궁은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기회의 세력이 생각보다 큰 걸 알고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들의 힘을 빌리면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을 듯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복수는 나와 함께 있어도 할 수 있다.”

“저도 오빠가 강한 건 알아요. 하지만…….”

상대는 마도십문 중 하나인 백마궁이었다. 혁무천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혼자서 상대할 수 없는 곳.

그런데 이번에도 신도평이 끼어들었다.

“귀하 혼자 백마궁을 무너뜨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넌 빠져.”

“뭐요?”

“나는 지금 은설에게 묻고 있다.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발끈한 신도평이 눈을 치켜뜨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천기회주의 아들이자 영검령 령주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지위를 떠나 같은 청년으로서, 은설을 좋아하는 남자로서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말을 너무 함부로 하시는군.”

“설아를 생각해서 많이 참고 있는 거야.”

혁무천이 신도평을 보며 싸늘하게 말하자, 은설이 황급히 말했다.

“그만해요, 신도 공자. 저도 장로님 말씀대로 오늘 밤에 생각해보고 내일 아침에 대답할게요.”

그녀는 혁무천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복수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자신을 지켜주려는 혁무천에게 바로 대답을 못하는 자신이 야속하기도 했다.

‘오빠, 미안해요. 자꾸 짐만 되어서…….’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은설을 바라보았다.

촉촉이 젖은 은설의 눈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혁무천도 차마 그녀를 더 몰아붙이지 못하고 씁쓸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다. 그럼 내일 아침에 대답해 다오.”

그 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점소이에게 방을 물어보았다.

 

밤이 깊어가는 시각.

혁무천은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소주천을 마친 후 눈을 떴다.

잠을 자려 해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냥 천기회에 가입할까?

가입한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저 남의 지시를 받기 싫은 것일 뿐.

자유롭게 지내고 싶을 뿐.

‘후우우우.’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쉰 그는 방을 나섰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면 나을 듯했다.

 

마당에서 하늘을 보니 달이 서쪽으로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 벌써 자정이 다 된 듯했다.

‘설아가 천기회에 들어가면 나도 들어가야 하나?’

문제는 천기회가 정파의 연합체라는 것이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식솔들을 죽음으로 내몬 위선에 찬 정파무리들.

아무리 은설을 위해서라지만 천기회에 가입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은설이 끝가지 남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녀를 찾기 위해 마룡선발대회까지 나갔는데…….

반려자로 생각한 것은 자신 혼자만의 생각이었던가?

혁무천이 곤혹스런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소?”

신도평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거지?”

“귀하와 은 소저에 대해서.”

“나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그럼 하나만 묻겠소.”

“물어봐.”

“은 소저를 아내로 삼으실 생각이시오?”

아내라…….

막상 그 말을 들으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당연하지.

그런 말이 나와야 하는데, 왠지 머쓱했다.

“내가 왜 너에게 그걸 말해줘야 하는 거지?”

“귀하의 나이가 서른 살이라면 은 소저와 열 살 이상 차이가 나오. 솔직히 어울린다 생각하시오?”

“열 살 차이가 어때서? 그 정도 차이 나는 사람이 한둘이던가?”

“괜히 나이 어린 은 소저를 힘들게 하지 말고 그녀에게서 떠나시오.”

“훗, 웃기는군. 네가 뭔데 떠나라 마라 하는 거냐?”

“나 역시 은 소저를 좋아하는 사람이오. 때문에 그녀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소. 솔직히 당신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은 소저는 다른 걱정 없이 하고자 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을 거요.”

“이제야 속마음을 드러내는군. 결국 설아를 차지하기 위해서 나에게 떠나라는 것이군.”

“나는 당신 같은 마도인에게 은 소저를 넘겨주지 않을 거요. 은 소저가 당신을 따라가서 고생하는 걸 원치 않소.”

“그렇게 자신 있으면 말로만 하지 말고 뺏어가 보지 그러나? 그럴 실력이 안 되면…… 입 닥치고 상관하지 마.”

혁무천의 도발에 신도평의 눈에서 노화가 일렁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였다.

감히 자신을 무시하다니.

앞으로 천하를 이끌어간 천기회의 소회주에게 입 닥치라는 말을 하다니!

말로만 하지 말고 뺏어가 보라고?

‘오냐!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보자!’

이를 악다문 그는 오른발로 땅을 밀면서 혁무천을 향해 미끄러져 갔다.

동시에 양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서 혁무천을 향해 뻗었다.

그 모든 동작이 눈 한번 깜박였다 떴을 때 벌어졌다.

게다가 그가 뻗은 양손에는 족히 오십 년을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공력이 실려 있었다.

후우웅.

백색 기운을 품은 장력이 혁무천의 가슴을 향해 밀려갔다.

혁무천은 그 자리에 서서 쇄도하는 신도평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거리가 석 자로 줄어들고, 신도평의 쌍장에서 뻗친 기운이 가슴에 닿을 때쯤에야 움직였다.

텅!

신도평의 장력은 세 푼의 간격을 남겨 놓고 튕겨나갔다. 반사적으로 반응한 호신강기를 뚫지 못한 것이다.

동시에 혁무천의 쌍수가 호선을 그리며 신도평의 쌍장을 쳐냈다.

떠더덩!

신도평은 튕겨진 손을 가슴으로 끌어모으고 재차 장법을 펼쳤다.

그런데 혁무천의 손이 마치 연기라도 되는 듯 유령처럼 허공을 누비면서 신도평의 양 손목을 억압했다.

신도평의 얼굴이 일그러진 순간, 혁무천이 두 손을 휘돌렸다.

신도평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시간도 없었다.

몸이 붕 떠서 한 바퀴 돌더니 바닥에 나뒹굴었다.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 돈 것만 같았다.

황급히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온몸이 저릿해서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크윽.”

뒤늦게 고통이 밀려들면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객잔의 방이 있는 쪽에서 한 사람이 뛰어나왔다.

“오빠!”

은설이었다.

혁무천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옆으로 다가온 은설이 당황한 표정으로 급히 신도평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이를 악문 채 일어나는 그를 부축했다. 밝은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핏기가 가신 듯 창백했다.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소.”

신도평은 몸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 컸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천하의 청년고수 중 자신을 능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물며 마룡선발대회에서 팔마룡에도 못 든 무천 정도는 자신의 실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어이없이 당하다니.

문득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린 그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설마…… 호신강기?’

정말 자신의 장력이 튕겨난 이유가 호신강기 때문이라면 혁무천의 무위가 초절정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패한 것도 당연했다.

너무 쉽게 당한 것이 어이없긴 했지만.

‘내가 방심해서 너무 쉽게 당한 거야. 조금만 신중했어도…….’

신도평이 자위하며 패배를 합리화시키고 있을 때, 은설이 혁무천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왜 신도 공자와 싸우신 거예요?”

“싸운 것 아니다.”

“싸운 것이 아니면, 왜 신도 공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어요?”

혁무천은 은설이 신도평을 부축한 것도 못마땅한데 자신의 말을 못 믿겠다는 듯 말하자, 욱한 마음에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가 먼저 손을 썼다. 아마 내 실력이 궁금했나 보지.”

“아무리 그런다고 이렇게 심하게 손을 써요?”

“심하게 안 썼다. 심하게 썼으면 저렇게 서있지도 못했을 거다.”

혁무천이 나름대로 순화해서 말했다. 그런데도 은설의 귀에는 토라진 아이의 투덜거림처럼 들렸다.

“어휴…….”

그때 신도평이 비틀거렸다.

“으으음.”

고통스런 신음까지 흘리면서.

그걸 본 은설이 황급히 그의 몸을 붙잡고 가자미눈으로 혁무천을 흘겨보았다.

“조금만 더 심하게 손을 썼으면 뼈가 부러졌겠네요.”

혁무천은 그녀의 눈빛보다, 그녀가 신도평을 잡고 있는 것이 더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를 붙잡고 있을 거냐?”

“보면 몰라요? 지금 혼자 서있기도 힘들어 하시잖아요.”

혁무천은 신도평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심하게 손을 쓰지는 않았다. 비록 진기로 신도평의 혈맥을 진탕시키긴 했지만.

아마 지금쯤은 진탕된 혈맥도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진짜 팔이라도 하나 부러뜨릴 걸 그랬나?’

그런데 신도평이 곧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은 소저…… 죄송하지만… 저 좀 방으로…….”

“예, 공자.”

혁무천이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부라렸다.

“설아야, 그는 혼자서도 충분히…….”

“오빠도 참, 걷기도 힘든 분을 혼자 방으로 가시게 놔둘 순 없잖아요.”

은설이 그렇게 말하고는 혁무천에게 전음을 보냈다.

<혼자 보내면 더 시끄러워질지 몰라요. 무슨 말인지 알죠? 잠깐 기다려요. 모셔다 드리고 올게요.>

그때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방에서 나왔다.

“헛!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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