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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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33화
133화
동대안이 그런 당가기를 바라보며 약간 장난기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혁무천이 피식, 실소를 짓고는 얼이 반쯤 빠져 있는 당가기와 운학을 바라보았다.
“공손두가 도착했는지 알아봤으면 싶은데.”
당가기가 재빨리 머리를 굴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알아보면 되겠습니까?”
“내일 아침까지. 아침식사 끝나면 마천문에 찾아갈 생각이야.”
***
아침 해가 막 서산 위로 머리를 내밀 무렵.
탕탕탕.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에잉, 아침부터 누가 시끄럽게 문을 두드려?”
만학장의 주인이 투덜거리며 나가더니 곧 누군가를 데리고 혁무천의 방으로 찾아왔다.
“이보게, 공자. 손님이 찾아왔네.”
새벽부터 뭔가를 쓰고 있던 혁무천은 붓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찾아온 사람은 철상과 철호였다.
어제와 달라진 점이라면, 옆구리에 도끼를 차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혁무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철상을 바라보았다. 철상이 먼저 말했다.
“나도 갈 거요.”
“……?”
그건 혁무천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럼 대장간은……?”
“대장간은 당분간 문을 닫기로 했소.”
무뚝뚝하게 혁무천의 말을 잘라먹은 철상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밤새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밥도 못 먹고 나왔는데, 밥은 언제 먹는 거요? 설마 밥도 안 주고 일만 시키는 것 아니오?”
“이곳은 밥을 주지 않소. 나가서 사먹어야 하오.”
“손님에게 밥도 안 주다니, 주인이 쫌생이인가 보군.”
만학장의 주인이 철상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허리의 도끼를 보고는 소리 없이 입술만 달싹였다.
‘생긴 건 꼭 똥자루처럼 생긴 인간이 어디서…….’
아침에 오기로 했던 당가기와 운학은 진시가 다 지나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어서 혁무천 일행은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만학장을 나섰다.
일행 중 몇 명이 한쪽을 슬쩍슬쩍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장대산과 철호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칠 척과 다섯 척. 덩치는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거기다 하나는 팔 척 장봉을 들고, 하나는 쌍도끼를 옆구리에 매달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어울렸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스무 살 동갑내기였다. 생일도 보름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걸 알고 철호가 곧바로 말을 놓았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친구 먹기로 했다.
그렇게 골목을 빠져나간 그들이 막 대로에 들어서자마자 대로의 남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비켜라!”
사람들이 놀라서 좌우로 갈라서자, 빠르게 달려오는 자들이 보였다.
송비가 그들을 보고 말했다.
“마천문 무사들이네.”
혁무천은 별 말 없이 한쪽으로 물러섰다.
목적이 있어서 마천문을 찾아가려는 터라 괜한 충돌을 원치 않았다.
앞서 달려오는 자는 십여 명. 그들의 뒤에서 또 십여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 걸음에 이 장 가까운 폭을 유지한 채 빠르게 달려왔다.
행인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고는 누구 하나 불만을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 혁무천 일행의 앞을 지나가던 중 무사 서너 명이 고개를 돌려서 혁무천 일행을 바라보며 멈칫했다.
개중에는 사십 대 중반의 중년무사도 있었다.
그는 혁무천 일행을 쓱 둘러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장대산을 볼 때는 눈이 한껏 커졌다.
하지만 갈 길이 급한 듯 멈칫한 사람들을 재촉했다.
“놈들의 일행은 아닌 것 같다. 가자!”
곧 뒤따라오던 자들도 혁무천 일행의 앞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송비가 그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일이지? 저 정도면 마천문에서도 정예무사들 같은데.”
“누굴 잡으러 가는 것 같습니다.”
목량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미 사라진 마천문 무사들 쪽을 바라보던 혁무천이 발걸음을 그쪽으로 돌렸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목량이 혁무천을 따라가며 물었다.
“따라가 보실 생각이십니까?”
“성도에서 마천문이 저런 식으로 잡으려 할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마도인들은 더더욱 아니라고 봐야겠지.”
“그럼 정파의 사람들을 잡으려고 한단 말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저희가 굳이 참견할 필요는…….”
“가진과 운학은 정파의 무사다.”
“예?”
“가진은 사천 당가의 후예지. 운학은 아마 청성파의 제자일 거야. 작년에 우연히 그들을 본 적이 있다.”
혁무천을 따라가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송비가 문득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말했다.
“그래서 합류하는 걸 놔두라고 했나?”
“당가와 청성, 아미파는 수백 년 동안 사천 무림을 지배해온 정파의 지주요. 아무리 몰락했다 해도 아직 남아 있는 영향력과 정보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그럼 그들을 이용하려고……?”
“그들이 정은맹과 연관되어 있다면 이용가치가 충분하지요.”
“끄응, 뭔가 되게 복잡한 거 같군.”
복잡한 것이 싫은 송비는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기 전에 관심을 꺼버렸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마천문 무사들이 달려간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름도 없는 작은 장원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소리가 오십여 장 밖에까지 들렸다.
혁무천은 삼십 장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싸움이 벌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들 앞을 지나갔던 마천문 무사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장원을 공격하는 자들은 적어도 백 명은 될 듯했다. 아마도 사방의 길을 막고 들이닥친 듯했다.
그에 대항하는 자들도 삼사십 명은 되었다.
그들은 거세게 저항하며 포위망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마천문도 작심하고 나선 듯 빈틈을 내주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건가? 지금 끼어들면 마천문이 우리까지 적으로 삼을 텐데.”
동대안이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혁무천도 그 때문에 곧장 나서지는 않았다.
마천문과 적이 되면 성도까지 온 목적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목량이 말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지요.”
동대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가까이 가자고? 마천문 놈들이 보면 우리까지 공격할지 모르는데?”
“그래서 가보자는 겁니다. 시비가 붙으면 잠시 상대해주고 물러나지요. 그러다 보면 틈이 생길 겁니다.”
혁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군. 기회를 줬는데도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
결정이 내려지자, 혁무천이 앞장서서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접근했다.
거리가 이십 장 정도 되었을 때 마천문 무사 중 서너 명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십 장 정도 되자 대여섯 명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 중 하나가 혁무천 일행을 보며 소리쳤다.
“어디서 온 자들이냐! 가까이 오면 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송비가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는 북풍표국 사람들인데, 지금 표행 중이오. 지나가던 중에 싸움이 벌어진 것 같아서 무슨 일인가 싶어 온 것이오. 근데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선 거요?”
송비가 입고 있는 옷에 ‘북풍(北風)’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 글자를 슬쩍 쳐다본 무천문 무사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다그쳤다.
“너희들은 알 것 없다! 죽고 싶지 않으면 멀찌감치 돌아서가라!”
그 사이 마천문 무사들 쪽에 서너 명이 더 합류해서 열 명이 넘었다.
“거 좀 알려주면 안 되오? 뭔데 그렇게 숨기는 거요?”
동대안이 투덜거렸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마천문 무사 중 눈초리가 쫙 찢어진 자가 칼을 들어 동대안을 가리켰다.
“말이 많다! 죽기 싫으면 가라!”
그때였다. 장원 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혁무천 일행 쪽으로 다가왔던 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싸우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장원 안에서 칠팔 명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만 가세. 잘못하면 우리까지 싸움에 휘말릴 것 같군.”
송비가 너스레를 떨며 눈짓을 보냈다.
혁무천도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하지요.”
그들은 곧장 옆에 있는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마천문 무사들이 장원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천금과 같은 기회를 얻은 정파무사들은 그들이 오기 전에 전력을 다해서 그곳을 빠져 나갔다.
삐이이익!
“놈들을 쫓아라!”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혁무천 일행 뒤에서 호각소리와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와서 대로로 들어섰다.
그때 더 이상 궁금함을 못 참겠다는 듯 동대안이 물었다.
“어이, 무천. 자네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줬지?”
그게 아니라면 안에 있는 자들이 밖의 사정을 그렇게 빨리 알아챌 수 없었다.
문제는 보이지도 않는 자들에게 어떻게 알려줬냐는 것이었다.
혁무천은 피식 웃고는 마침 전날 갔던 객잔이 보이자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객잔에서 식사를 거의 끝마쳤을 때 당가기가 들어왔다.
그는 새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안색이 창백했다. 아마도 상처 입은 것을 가리기 위해 옷을 바꿔 입은 듯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동대안이 그를 쓱 훑어보고 말했다.
“용케 찾아왔군.”
“세 군데나 들렀수.”
“많이 다쳤나?”
눈치 빠른 당가기가 그 말을 듣고 뭔가를 짐작해냈다.
“누군가 나타나서 도와줬다고 하더니, 그럼…….”
“알면 됐어. 속인 걸 생각하면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마음 착한 무천이 그냥 놔두지 않더군.”
마음 착한 무천.
혁무천은 동대안의 그 말에 묘한 마음이 들었다.
은설은 자신을 ‘악랄한 살인귀. 만인혈사를 일으킨 미친놈’이라고 했는데…….
당가기가 ‘마음 착한’ 혁무천을 보며 포권을 취했다.
“고맙습니다, 무 공자.”
“고마워할 거 없어. 시킨 일이 있어서 기회를 준 것뿐이니까. 기회를 살린 건 그쪽 능력이고. 공손두에 대해서는 알아봤나?”
당가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도무지 무천이란 자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자신이 그를 찾아온 것은 두 가지 목적 때문. 그는 먼저 그가 시킨 일에 대해 답을 해주었다.
“공손두는 어제 오후 늦게 돌아왔습니다.”
“양화송도 왔겠군.”
“그렇습니다.”
혁무천은 문득 당가기를 처음 만난 날 생각이 났다.
당가기는 알까? 그날 자신이 아니었으면 양화송에게 걸려 치도곤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걸.
‘모르겠지.’
그런데 당가기가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모시는 분이 무 공자를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그가 찾아온 두 번째 목적이었다.
“나를? 이유는?”
“도움 받을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거래하자는 건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혁무천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좋아, 일단 만나보지.”
***
혁무천은 목량과 동대안을 대동하고 당가기를 따라나섰다.
당가기가 그들을 데려간 곳은 동문 근처 구석진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골동품점이었다.
허름한 골동품점의 내실로 들어가자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 묻은 옷은 군데군데 찢어진 곳마저 있어서 격전을 치른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 중 쉰 살쯤 되어 보이는 중년인이 먼저 말했다.
“와주셔서 고맙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젊은 분들이구먼.”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지요.”
혁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자, 한쪽에 앉아 있던 사십 대 중년인 둘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먼저 입을 연 중년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당학문이라 하네. 정은맹의 성도지부를 맡고 있지.”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숨김없이 밝히자 다른 두 중년인, 당치문과 명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님……!”
“당 대협…….”
그럼에도 당학문은 혁무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마저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우린 마천문의 공격을 받아서 많은 피해를 보았네. 그럼에도 저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를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지. 아마 지금쯤 대대적인 수색을 시작했을 거네.”
한쪽에 앉아 있던 중년인 중 얼굴이 둥그스름한 명운이 씁쓸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성문도 놈들이 틀어막고 있네.”
그는 본래 청성파의 장로로 운학의 사숙인데 도인임을 감추기 위해 변복을 한 상태였다.
혁무천이 그들을 보며 물었다.
“우리에게 뭘 바라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