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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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32화
132화
그때, 목량이 미소 짓고 있는 혁무천을 슬쩍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대형. 이곳에서 볼일을 마치면, 곧장 비룡장으로 가실 겁니까?”
혁무천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곧 강호가 앞이 보이지 않는 폭풍에 휘말릴 겁니다.”
“그래, 그러겠지.”
“천하무림을 얻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딴 거 뭐하게?”
“…….”
목량은 하마터면 폭소를 터트릴 뻔했다.
강호의 누가 천하무림을 ‘그딴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놓고 잔뜩 긴장하고 있던 자신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본 혁무천은 무림의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다.
백리양의 제의에 답한 이유를 말할 때도, 황금의 힘이 과연 강호에서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었다.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고도 했고.
그러면서 이 세상이 마치 권력과 황금을 놓고 벌이는 장기판 같지 않느냐고 물었었다.
그래서 물어본 거였다.
혹시 폭풍전야에 놓여 있는 천하무림의 패권 다툼에 나서려는 것이 아닐까 해서.
그런데 그딴 거 뭐 하러 욕심 내냐는 투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아! 혹시… 은 소저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혁무천에게 은설은 그 무엇보다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마룡선발대회에 나선 것도 은설을 찾기 위해서였지 않은가.
‘비룡장에서 힘을 키워 그녀를 도와주려는 건가?’
물론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
또한 만마성에 간 것이나 지금 마천문에 찾아가려는 것도, 어쩌면 장대산이 말했다는 물건을 찾기 위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뭔가가 있을지도…….
‘정말 알 수 없는 분이군.’
목량은 쓴웃음을 짓고는 상념을 훌훌 털어냈다.
그가 무엇을 위해서 움직인들 무슨 상관일까.
자신은 이미 그를 위해 목숨을 내놓기로 작정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때, 혁무천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게 황금이라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 안 그런가?”
목량은 그 말을 듣고 침을 꿀꺽 삼켰다.
일반 강호인이라면 코웃음 칠 이야기였다.
무사가 돈을 좇다니!
하지만 목량은 가슴이 떨렸다. 얼마나 떨리는지 손 떨림을 막으려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그건 단순히 천하를 얻고 못 얻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일반 사람이 아닌, 천하 무림을 그딴 것 취급하는 사람이 한 말이라면.
‘대형은 그게 제왕의 도(道)로 가는 첫 걸음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다 못해 타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
세 시진 후.
혁무천은 대장간으로 가며 장대산을 데려갔다.
철상은 장대산을 보고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떡 벌렸다.
여덟 자에 가까운 장봉이 장대산의 손에 쥐어지니 장난감 막대기 같았다.
“저게 사람이여, 곰이여…….”
철상이 무심코 그 말을 내뱉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곰 두 마리가 목마를 타고 있다면 비슷할 듯했다.
장대산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더니 봉을 휘둘러보았다.
붕붕붕붕-!
쇠처럼 단단하고 무겁다는 철령목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졌다.
풍압으로 인해 바닥에서 흙먼지가 회오리치며 솟구쳤다.
장봉 끝에 새겨진 용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와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그러다 한 순간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장봉의 끝이 웅웅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장대산은 벌게진 얼굴로,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몸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봉을 쓰다듬었다.
파르르 떨리고 있는 진동의 여운이 손 안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오래 기다렸는데 왜 이제 찾아왔냐며 투정이라도 부리는 듯했다.
혁무천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마음에 드냐?”
장대산은 장봉을 슬며시 쥐고 씩 웃었다.
“어. 고마워, 대형.”
혁무천은 흐뭇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서 철상과 철호를 바라보았다.
장대산이 봉을 다루는 걸 본 후부터 철호의 표정이 달라졌다.
심장 저 깊이 가라앉아 있던 불길이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혁무천이 철상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더 이상 품 안에 가두어두기에는 호랑이가 너무 커버린 것 같소만.”
“무, 무슨 말이오?”
“호랑이를 집 안에서 키울 수 있는 것은 새끼일 때뿐이오. 크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피를 끓게 만들거든.”
철상은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쇠도 녹이는 푸른 불꽃이 두 눈에서 일렁거렸다.
“그대가 우리 부자에 대해서 뭘 안다고…….”
“성이 응씨라는 것은 알고 있소.”
충격이 컸는지 눈에서 일렁거리던 불꽃이 순간적으로 식었다.
“…….”
“무엇 때문에 대장간을 하고 있는지도 대충은 짐작이 가오.”
혁무천은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시선을 철호에게로 돌렸다.
“망치를 쥐고 싶으냐, 아니면 도끼를 쥐고 싶으냐?”
철호는 철상을 한번 바라본 후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이제는 도끼를 쥐고 싶습니다.”
“아직은 안 돼!”
철상이 버럭 소리쳤다.
“아버지…….”
“너 정도의 실력을 가진 무사가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지금 실력으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만큼 강호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최소한 한 단계는 더 끌어올린 다음에 가라. 그때는 말리지 않으마.”
철호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혁무천이 말했다.
“모자라는 건 내가 채워줄 수 있소.”
철상이 냉소를 지었다.
“훗, 우리 가문의 무공을 그대가 어떻게…….”
“팔 단계는 철호의 능력에 달려 있으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최소 칠 단계까지는 가능할 거요.”
철상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서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응씨라는 것을 알아본 것만 해도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조금 전의 말이 뜻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그대가 어떻게… 그걸…….”
혁무천의 말은 응씨 가문의 비전 심공인 철패공의 핵심에 속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과 아들밖에 모르는 내용을 저자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지금! 지금 말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도 허락하지 않을 거요.”
철상이 단호하게 말하며 혁무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혁무천은 쓴웃음을 짓더니, 손을 들어서 허공에 대고 서너 번 휘둘렀다. 뭔가를 쥐고 있는 것처럼 허공을 거머쥐고서.
목량이나 장대산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철상과 철호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씨 가문에서 가장 강한 무공, 수라마부(修羅魔斧)의 세 번째 초식을 혁무천이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나는 너희 응씨의 무공을 다 알고 있다.’라고 말하듯이.
손을 멈춘 혁무천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철상을 바라보았다.
“나는 북문 쪽 만학장이라는 곳에 있소. 내일 아침에 떠날 거요.”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돌아섰다.
“가자.”
***
혁무천이 만학장으로 돌아갔을 때 마침 당가기와 운학이 돌아와 있었다.
당가기가 먼저 자신이 알아온 사실을 말했다.
대부분 혁무천도 비룡장의 자료를 봐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두어 가지 내용이 귀를 쫑긋하게 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대대적인 출동준비를 하는 중이라 합니다. 인원은 약 오백 명 정도가 나선다고 하는데, 부문주인 귀천마검 구중탁이 이끌 거라고 합니다.”
“출동 이유는?”
“그게 조금 이상합니다. 준비하는 상황으로 봐서는 아주 먼 곳에 가는 것 같습니다.”
아주 먼 곳에 간다?
그렇다면 목적지가 사천성 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원으로 들어가려는 건가?’
흘러가는 강호의 정세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컸다.
“듣기로는 혈왕동도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했는데…….”
잠깐 대화가 끊긴 사이 그 말을 하던 운학이 당가기의 눈짓을 받고 말끝을 얼버무렸다.
목량이 그 이유를 짐작하고 태연하게 말했다.
“혈왕동도 마천문처럼 대대적으로 출동할 생각인가 보군요.”
“그게… 그냥 언뜻 들은 이야기여서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오.”
목량은 그 말만으로도 확신을 가졌다. 운학은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고 했지만, 그의 말뜻을 종합해보면 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목량이 이번에는 혁무천을 보며 말했다.
“대형, 아무래도 중원의 상황에 직접 뛰어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
혁무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가 비록 일반인들도 다 아는 상식적인 것을 몰라서 은설에게 면박을 당하곤 했지만, 전쟁에 대한 것은 전문가였다.
그동안 나눈 몇 마디 말만 듣고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멀리서 구경만 하려니 답답했겠지. 욕심은 나는데 뛰어들자니 눈치는 보이고,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다른 문파에 공격의 빌미를 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왜 움직일 생각을 했을까요?”
“어디선가 먼저 손을 내밀었겠지. 마천문이나 혈왕동은 울고 싶은데 때려주니 잘 됐다 생각했을 거고.”
“그럼 만마성이나 철혈마련이 손을 내밀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겠군요.”
“네 말이 맞다. 어쨌든 그리 되면 정은맹이나 천기회의 계획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다.”
“아무튼 한바탕 피바람은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옆집에서 일어난 싸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흘렀다.
송비와 동대안 등도 눈을 반짝이며 들었지만 호기심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가기와 운학은 그들처럼 태연할 수가 없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목량은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여유까지 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데 혈왕동의 움직임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까?”
당가기가 움찔하더니 결국 또 하나의 정보를 털어놓았다.
“이제 방금 생각났는데… 얼마 전 만마성의 간부들이 비밀리에 혈왕동을 방문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흠, 그럼 능화와 쌍마괴가 만마성에 간 것도 그 일과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만마성 간부들이 방문하고 사흘 후에 혈왕공자 능화가 혈왕동을 나섰으니까요.”
당가기의 그 말에 운학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만마성에서 돌아온 능화는 기분이 몹시 안 좋은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갔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건지…….”
그 말에 동대안이 불쑥 끼어들었다.
“얻어 터졌는데, 기분이 좋으면 정신이 이상한 놈이지.”
“예? 그게 무슨…….”
당기가의 눈이 커졌다.
능화가 얻어 터졌다고? 정말일까? 혹시 다른 사람을 말한 거 아냐?
그에 대한 정보는 정은맹에도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얻어 터졌다면… 능화가 누구에게 당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동대안은 슬쩍 눈짓을 해서 혁무천 쪽을 가리켰다. 다른 사람들도 혁무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가기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 그럼… 저자에게 능화가 깨졌다는 거야? 설마…….’
동대안이 그런 당가기를 보고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놀라? 촉도에서는 혼살마인가 뭔가 하는 늙은이보다 더 무서운 영감도 무천 앞에서 꼬리를 말았는데.”
“…….”
당가기는 그제야 곽우생의 정보가 사실이라는 걸 알고 숨을 멈췄다.
‘씨바, 진짜였어!’
그런데 송비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한마디 했다.
“맞아! 지천주! 하하하, 무 공자와 싸운 사람이 누군가 했는데, 이제야 생각났네. 십여 년 전에 모습을 감추었던 통천마군(通天魔君) 지천주였어!”
“콜록! 콜록!”
당가기는 사래가 들린 듯 기침을 하며 얼굴이 벌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