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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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31화
131화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격돌이었다.
금원방의 무사는 물론 혁무천 일행도 눈을 부릅떴다.
그토록 치열하던 격전이 갑자기 멈추자 사람들은 침 삼키는 것도 잊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장평의 가슴 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석도종이 이긴 듯했다.
그런데 석도종도 입을 꾹 다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내 운이 더 좋았던 것 같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장평이었다.
석도종이 이마를 찌푸리더니 복부를 움켜쥐었다.
“지독한… 놈…….”
분명히 검이 가슴을 찔렀다. 비록 심장을 찌르진 못했지만 근육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놈은 자신의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기 위해 모험을 한 것이었다.
심장이 뚫릴 각오를 하고서.
“독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곳이 강호더군요.”
“네놈…… 절대… 가만두지…….”
석도종이 이를 악물고 원한에 찬 눈으로 장평을 노려보았다.
복부를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대공자!”
적귀가 놀라서 소리치며 석도종에게 달려갔다.
석도종이 허리를 숙이며 검을 든 손으로 장평을 가리켰다.
“저놈을……!”
그의 말뜻을 눈치 챈 무사 둘이 무기를 빼들고 장평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그림자 하나가 장평 앞에 내려서는가 싶더니,
텅텅!
북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자들이 되돌아서 날아가더니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승부는 끝났다.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는다.”
장평의 앞에 선 혁무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사람들은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 듯했다.
“장평을 보호하려 한다면, 네놈들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다!”
적귀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혁무천이 무심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염치만 없는 줄 알았는데, 앞뒤 분간도 못하는군.”
“뭐라?”
“여기에 있는 자들이 다 죽으면, 그때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이… 미친놈이……!”
적귀가 검을 빼들고는 혁무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우수를 가슴 높이로 든 혁무천은 날아드는 적귀를 향해 일장을 내쳤다. 작정하고 펼친 일장에는 칠성 공력이 실려 있었다.
혁무천을 공격하려던 적귀는 숨이 턱 막히고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가공할 압력을 해소시키고 싶었지만,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쾅!
폭음과 함께 적귀의 몸이 뒤로 훌훌 날아가서 바닥에 떨어졌다.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킨 그는 불신의 눈빛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이런…….”
“이제는 내 말을 이해할 준비가 조금 된 것 같군.”
“너… 당신은 누구…….”
“우리는 이만 떠날 것이니, 막을 건지 말 건지는 알아서 하도록. 단, 이후에 벌어지는 불상사에 대해서는 나를 원망하지 마라. 그리고 저자를 살리고 싶으면 빨리 의원에게 데려가도록.”
혁무천은 적귀와 석도종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장평, 걸을 수 있겠나?”
“예, 대형.”
“치료는 가면서 하자.”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반원 형태로 길을 막고 있던 금원방 무사들이 쫙 갈라지면서 길을 터주었다.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에 대한 본능이었다.
***
면양에서 성도까지는 약 이백오십 리. 거의 평탄한 지형이어서 무인의 걸음이라면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부상당한 장평이 빠르게 걸을 수 없어서, 혁무천 일행이 성도에 도착한 것은 이틀째 되던 날 오후 무렵이었다.
그날은 비가 오려는지 오전부터 하늘에 제법 짙은 구름이 끼어 있었다.
혁무천 일행이 성도의 성문을 통과하자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 아는 곳이 있네. 그곳으로 가지. 비록 장원은 크지 않지만, 하루 이틀 쉬어가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거네.”
송비가 이제야 자신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요.”
혁무천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차피 목적을 이루려면 이삼 일은 성도에 머물러야 할지 몰랐다.
더구나 객잔이 아니라고 하니 더 마음에 들었다.
송비의 뒤를 따라가던 동대안이 당가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네들은 이제 갈 길을 가지 그러나?”
“아, 예……. 뭐, 그렇게 바쁘지 않은 일이어서 괜찮습니다.”
“자네들은 괜찮을지 모르는데, 우린 괜찮지 않거든?”
당가기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자신들의 정체를 눈치 챈 것 아닐까?
하지만 표정을 보니 그것 때문은 아닌 듯했다.
‘알려져서는 안 되는 곳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붙어서 정보를 캐내야 했다.
“사실 저희도 특별히 급한 일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아는 분께 두어 가지 소식만 전해주면 되지요.”
“그러니까, 빨리 가서 소식을 전해주라고.”
“하, 하, 하. 그 소식이야 저녁에 전해주어도 되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때 혁무천이 말했다.
“한두 사람 더 가도 괜찮은 것 같으니 그냥 가지요.”
동대안은 당가기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킁, 알겠네.”
송비가 안내한 곳은 북문 쪽 도현로에 있는 작은 장원이었다.
만학장(晩學莊).
이름 그대로 무림과는 상관없는 곳처럼 보였다.
송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
만학장의 주인은 대꼬챙이처럼 마른 사람이었는데, 역시나 학사였다.
“어? 자네가 어쩐 일인가?”
“성도에 볼 일이 있어서. 근데 우리 식구가 좀 쉬어가도 되겠지?”
“적당한 대가만 지불하면 나야 환영이지.”
송비는 품속에서 은자 두 냥을 꺼내주었다.
“사흘 정도 머물 생각이네. 이거면 되겠지?”
만학장의 주인은 낼름 돈을 받아 챙기고는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식사는 제공할 수 없네. 이해하게나. 나도 겨우 내 밥 챙겨먹기 바빠서 말이야.”
다행히 거처는 깨끗했다. 방 하나에 침상이 네 개 있었는데, 그런 방이 다섯 개나 되었다.
늦가을이 되면 사천 구석진 곳에 있는 학사들이 봄에 있을 향시를 보러 오는데, 그 학사들에게 시험을 볼 때까지 거처를 제공한다고 했다.
지금은 초여름이어서 학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거처를 정한 혁무천은 마천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비룡장에서 얻은 정보만 해도 마천문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정보에도 최근의 상황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돌아다니며 알아볼 필요는 없었다.
혁무천이 당가기에게 말했다.
“저번에 들으니 사천 무림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던데, 마천문과 관련된 정보 몇 가지만 알아봐 주면 좋겠군.”
“하하, 말씀하시지요. 저희가 알아볼 수 있는 일이라면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마천문에 대해서 뭘 알고 싶으신 겁니까?”
마천문에 대한 정보라면 정은맹 성도지부에 산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자신은 그곳에 가서 원하는 것만 고르면 되었다.
마천문에 대한 정보 수집을 당가기와 운학에게 맡긴 혁무천은 목량만 대동하고 만학장을 나와서 서문 쪽으로 가보았다.
그가 찾아간 곳은 전에 가보았던 대장간이었다.
땅! 땅! 땅!
대장간 안에서는 여전히 맑은 쇳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웃통을 벗은 청년의 뒷모습이 보였다.
‘철호라고 했던가?’
전에 봤을 때보다 키가 조금 더 큰 거 같았다.
근육은 여전했다. 다만 통통하던 몸에서 살이 조금 빠진 듯했다.
그래선지 오히려 전보다 더 강인한 느낌을 주었다.
혁무천은 철호가 망치질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철호의 부친이 슬쩍 혁무천 쪽을 봤지만, 바로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에 열중했다.
잠시 후, 망치질을 끝내자 철호의 부친이 집게로 잡고 있던 쇠를 화로에 집어넣고 고개를 돌렸다.
“작년에 왔던 손님이시구만.”
그제야 철호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몸을 돌렸다.
쇳덩이 같던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에 봤을 때보다 좋아졌군.”
철호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본 철호의 부친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손 볼 것이 있수?”
“오늘은 손보려고 온 것이 아니라, 구하려고 왔소.”
“구하려고? 무사가 구하려는 건 무기일 텐데, 아쉽게도 우린 도검을 만들지 않소.”
“봉을 구하려 하오.”
“봉?”
“아주 단단한 봉이어야 하오. 길이는 일곱 자 다섯 치. 끝에 두 자씩 철갑을 둘러야 하오. 무게는 오십 근 정도면 적당할 것 같소.”
철호의 부친, 철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십 근? 허어, 그렇게 무거운 봉을 누가 휘두른단 말이오?”
혁무천이 미소를 지었다.
“내 아우가 쓸 거요.”
“흐으음.”
철상이 이마를 찌푸렸다.
그때 혁무천이 한쪽을 보며 말했다.
“저 봉을 좀 봐도 되겠소? 손질만 조금하면 내가 말한 것과 얼추 맞을 것 같은데.”
철상은 그가 무엇을 보고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고민하는 것도 바로 그 물건 때문이었다.
대장간 구석진 곳에 기다란 봉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쇠만큼이나 단단하고 무겁다는 철령목으로 만들어진 봉이었다. 한쪽 끝에는 용 문양이, 한쪽 끝에는 호랑이 문양이 새겨진 철갑이 둘러져 있었다.
그런데 워낙 굵어서 사람이 쥐고 휘두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간혹 호기심에 봉을 쥐어본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무게에 놀라서 휘두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마음대로 하시구려.”
일단 철상은 혁무천에게 기회를 줬다.
봉이 있는 곳으로 간 혁무천은 손을 뻗어서 봉을 쥐었다.
보기보다 더 굵었다. 그의 손은 상당히 큰 편인데도 한손에 다 쥐어지지 않았다.
봉을 든 그는 가볍게 휘둘러보았다.
붕붕붕.
대장간이 넓지 않아서 자칫하면 다른 물건들을 후려칠 수도 있었는데, 그 어떤 것도 봉에 닿지 않았다.
깜짝 놀라서 제지시키려던 철상이 그 광경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무게가 마흔여덟 근이나 나가는 봉을 부지깽이처럼 가볍게 자유자재로 휘두르는데, 방해물을 절묘하게 피하고 있었다.
마치 봉이 살아서 부딪치는 걸 피해가는 듯했다.
몇 번 봉을 휘둘러본 혁무천이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좋군. 무게도 적당하고. 대산이 좋아하겠어.”
목량은 아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거구의 장대산이 저 봉을 휘두른다고 생각하자 절로 등골이 으스스해졌다.
“얼마를 드리면 되오?”
혁무천이 철상을 보며 물었다.
철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은자 백 냥만 내쇼.”
누가 들으면 ‘도둑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비싼 가격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싸게 판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혁무천은 일언반구도 없이 품에서 은자 백 냥에 해당하는 금자 다섯 냥을 꺼내 건넸다.
금자를 건네받은 철상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당장 급하지 않으면 세 시진 후에 다시 찾으러 오쇼. 손을 좀 봐놓을 테니까.”
혁무천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봉을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철호를 보며 말했다.
“너에게는 도끼가 어울릴 것 같군.”
철호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철상도 표정이 굳어졌다.
혁무천은 그들의 표정 변화를 알고도 모른 척 몸을 돌렸다.
“그럼 이따 찾으러 오겠소.”
대장간을 나온 혁무천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
그들은 성이 철 씨였다.
전에는 그런 줄로만 알고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동천마종 응철기와 너무나 닮았다.
그래서 슬쩍 떡밥을 던져봤는데, 제대로 물었다.
물론 저들이 아직 인정을 안했으니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봉을 가지러 올 때쯤에는 좀 더 확실한 것을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