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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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27화
127화
혁무천은 혈왕동 무사들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노인을 향해 돌아섰다.
노인의 채찍처럼 늘어진 도기가 허공에서 그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혁무천도 대천룡구검세 중 두 번째 초식인 창천비룡세를 펼치며 노인의 도기에 맞섰다.
“좋구나!”
노인이 탄성을 내지르며 칼을 비틀었다.
채찍처럼 날아들던 도기가 허공을 난자하며 혁무천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쩌저저저정!
두 사람의 검기와 도기가 뒤엉키면서 귀청을 찢는 굉음이 연이어 울렸다.
그들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삼초 십팔식의 공방을 벌였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공방이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대지가 터져 나가며 흙먼지가 솟구쳤다.
노인의 공격을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막던 혁무천이 기억 한 자락을 떠올리고 탄성처럼 한마디 내뱉었다.
“앙천마도!”
노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혁무천이 그의 도법을 알아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했다.
그 와중에도 혁무천은 검막을 펼쳐서 노인의 공세를 철저히 차단했다.
쩌저저정!
다시 삼초의 공방을 더한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삼 장의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일대를 휩쓸던 가공할 위력의 기운이 잦아들었다.
하늘로 솟구친 흙먼지가 안개처럼 흘렀다.
“네가 어찌 앙천의 도를 아는 것이냐?”
안색이 창백해진 노인이 곤혹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호에 나온 지 사십 년,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가 펼친 도법의 내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이십 대로 보이는 청년이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 사실이 대결로 인한 결과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혁무천도 안색에 핏기가 없었다.
칠성 공력으로 상대했건만 조금도 유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잠시 노인을 바라보던 그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지요.”
사실이 아니었다.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대해본 적이 있었다.
앙천마신(仰天魔神) 고불귀.
자신을 따르지 않았던 마도의 진짜 고수 중 하나.
앙천마도는 그의 독문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제대로 펼쳐본 것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앙천마도는 위력이 강한 만큼 많은 공력을 필요로 했고, 잘못 전개하면 자신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인, 지천주는 혁무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가 앙천마도를 익힌 후 남 앞에서 펼친 적은 지금까지 세 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십오 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더구나 지금의 앙천마도는 과거와 달랐다.
과거의 도식이 투박했다면, 지금은 부드러우면서도 지극히 효율적이었다.
“사부가 누구냐?”
“어차피 말해도 모를 거요.”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한 혁무천의 말에 지천주는 이마를 찌푸렸다. 하지만 더 이상 대답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상대는 천하 오대도법 중 하나라는 앙천마도를 상대하고도 흔들림이 없는 고수였다.
전력을 다한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고수.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군.’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호승심이 고개를 들었다.
“하긴 알 필요도 없겠지. 어차피 무사는 검으로 말하는 법. 사부가 누군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혁무천도 천망검을 사선으로 늘어뜨리고 무심한 눈으로 지천주를 응시했다.
“옳은 말씀이오. 다만, 앙천마도를 익힌 사람이 왜 혈왕동에 있는지 의아할 뿐.”
다시 한 번 지천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평정심을 회복한 그가 나직이 말했다.
“사람에게는 말 못할 이유가 하나씩은 있는 법이다. 일단은 그렇게만 알아라. 혹시 모르지. 나를 이긴다면 말해줄 수 있을지도.”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검과 도에서 휘황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한편, 동대안과 조릉의 대결은 말 그대로 막상막하였다.
어찌나 치열한지 무심코 바라본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철천지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면 저럴까 싶었다.
누가 죽든 둘 중 하나가 죽지 않고서는 대결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반면 장대산과 장평은 둘이 합공하고도 소원계에게 연신 밀렸다.
장대산의 단단한 장봉은 이미 삼분지 일이 잘려나간 상태였고, 머리카락이 풀어헤쳐진 장평은 이를 악물고 소원계의 짧은 도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원계가 편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편하기는커녕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덩치가 거대한 놈의 힘은 정녕 인간의 것이 아닌 듯했다. 게다가 칼을 쓰는 놈은 탐이 날 정도로 칼질을 예쁘게(?) 했다.
그래도 아직은 자신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문제는 눈곱만큼의 두려움도 없이,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두 놈은 젊지만, 자신은 늙었다는 것이었다.
당장이야 약간의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역전될 가능성이 컸다.
‘제기랄, 이런 놈들인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텐데…….’
그는 신경질적으로 칼을 휘두르며 거리를 벌리고 눈을 번뜩였다.
기회가 오면 약간의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일단 한 놈의 목을 쳐버릴 작정이었다.
송비와 영추문, 목량과 강탁은 혈왕동의 빈객을 상대로 백중지세를 이루었다. 빠른 시간 안에 승부가 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밀리지도 않았다.
특히 송비와 영추문은 의외일 정도로 손발이 잘 맞았다.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의 우세를 보이고 있었다.
콰광!
혁무천과 지천주의 대결에서 다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조금 전과 달리 검강을 일으켜서 부딪쳤다.
그 충돌로 인한 기파는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하며 일대에 휘몰아쳤다.
근접 거리에서 싸우던 표사와 혈왕동 무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혁무천과 지천주도 안색이 조금 더 창백해졌다.
지천주와 마주서 있던 혁무천은 표사들 쪽을 보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자신이 열 명 가까이 쓰러뜨렸는데도 혈왕동 쪽 무사들의 숫자가 두 배 이상 많았다.
더구나 개개인의 무력도 별 차이가 없었다.
뭉쳐서 방어에 치중한 덕에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들 듯했다.
보고 있는 중에도 표사 하나가 피를 뿌리며 비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한유림은 구원이 앞을 막고 지켜서 아직은 큰 이상이 없었다.
‘어쩔 수 없나?’
표사들이 무너지면 다음은 동료들 차례다.
당장 한두 명만 가세해도 목량과 강탁은 버티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혁무천은 냉소를 머금고 공력을 팔성까지 끌어올렸다.
검신을 둘러싸고 있던 강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지천주는 경악의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건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공격이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었다니!
“세상을 조금 더 살고 싶으면 전력을 다해야 할 거요.”
지천주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사대천마 외에는 천하의 누구도 위로 두지 않았던 자신이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그런데 화가 나기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으니 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오냐, 어디 숨겨놓은 재주가 있거든 마음껏 펼쳐봐라.”
혁무천은 지천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 몸을 날리며 대천룡구검세 중 네 번째 초식인 광룡혈류세를 펼쳤다.
쏴아아아아.
내뻗는 천망검에서 광란의 검강기가 폭류처럼 출렁거렸다.
마치 분노한 광룡이 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용틀임하는 듯했다.
아직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심장이 뚫리고 온몸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공포가 지천주의 심혼을 덮쳤다.
눈을 부릅뜬 그는 전력을 다해 칼을 휘둘렀다.
앙천삼혼절 중 하나인 앙천참혼이 십수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
강기의 폭풍우가 두 사람을 감싸고 휘돌았다.
콰르르릉!
뇌성벽력에 이어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광!
지천주는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 물러섰다. 창백해진 그의 입술 사이로 실처럼 핏물이 흘러나왔다.
전면을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대의 이차 공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신에게 거센 충격을 준 젊은 놈은 어느새 혈왕동 무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지천주는 그 자리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굳게 움켜쥔 도 끝이 가늘게 떨렸다.
젊은 놈은 사신이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냉정한 손속.
움직임은 유령이 따로 없었고, 상대의 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공격은 거부할 수 없는 아수라의 손짓 같았다.
혈왕동의 정예무사 칠팔 명이 순식간에 밑동 베인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혁무천은 표사들이 어느 정도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목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탁이 목량을 보호하려다가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오기로 버티고 있지만 온몸이 이미 피로 젖어 있었다.
그들이 상대하던 자는 탈명검 남도경. 중경 일대에서 이름 높은 절정고수였다.
그를 상대로 그나마 그 정도까지 버틴 것도 동대안의 지도로 실력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물러서!”
혁무천이 일갈을 내지르며 좌수로 일장을 내쳤다.
목량과 강탁이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남도경은 하늘에서 밀려드는 가공할 압력에 눈을 치켜떴다.
허공이 회오리치듯 회전하며 쐐기처럼 밀려왔다.
그는 허공을 향해 도막을 형성해서 혁무천의 장력을 막았다.
콰르릉.
뇌성과 함께 도막이 부서졌다.
이를 악다문 남도경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혁무천은 지상에 내려서자마자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남도경을 향해 쇄도했다.
남도경도 이를 악물고 마주 도를 휘둘렀다.
쩌정!
“크읍!”
짤막한 신음과 함께 남도경이 다급하게 뒷걸음질 쳤다.
혁무천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다시 일장을 내쳤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처리해야 뒤가 편한 법이었다.
피하기에 늦은 상황. 남도경은 다급히 좌수에 공력을 집중하고 혁무천의 장력에 맞섰다.
일장 반 거리를 격하고 뻗어간 장력이 남도경의 좌수 뼈마디를 부수고 가슴에 꽂혔다.
쾅!
굉음과 함께 남도경의 몸이 이 장을 날아간 뒤 나뒹굴었다. 서너 바퀴 굴러간 그는 검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려다 다시 꼬꾸라졌다.
웩!
한 움큼 핏물을 토해낸 그는 땅을 짚은 검 덕분에 그나마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지는 않았다.
혁무천은 그제야 공격을 멈추고 들끓기 시작한 진기를 진정시켰다.
겉으로는 아무런 표도 나지 않았다. 오롯이 서 있는 모습은 일부당관만부막개(一夫當關萬夫莫開)의 천장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화산의 용암이 끓어오르는 듯 진기가 들끓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지옥명화공과 빙정의 기운 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우뚝 선 그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전에도 그 기운을 얼핏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무당에서 무곡진인을 만난 이후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혹시 이것이 진인이 말한 그 혼돈의 기운이라는 것 아닐까?’
한편, 급반전된 상황은 혈왕동 고수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소원계는 벼락처럼 도를 휘두르고는, 장대산과 장평이 멈칫한 사이 삼 장 뒤로 몸을 날렸다.
동대안과 격전을 벌이던 조릉도 혁무천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의 끈질긴 놈만 해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자잘한 부상을 입고도 달려드는 것이 찰거머리가 따로 없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고수인 지천주와 대등한 격전을 벌인 놈이 언제 달려들지 몰랐다.
동대안은 그의 신경이 분산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씨바, 죽으면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조릉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혁무천에게 돌아간 순간, 그는 몸을 낮추고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뒈져!’
쉬아악!
섬혼이 벼락처럼 뻗어나갔다.
조릉도 아차 하면서 기형검을 마주 뻗어 섬혼을 걷어내고 동대안을 물러서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대안은 조릉의 검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