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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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23화
123화
목량은 의아한 듯 송비를 바라보고는, 곧 그 말을 한 이유를 눈치챘다.
“혹시… 사천으로 가는 표물이라도 있습니까?”
송비가 헤벌쭉 웃었다.
“역시 우리 량이는 눈치가 빠르다니까.”
사실 눈치랄 것도 없었다.
자신들이 사천에 가는 걸 송비가 반길 이유는 어차피 하나밖에 없었다.
“물량이 많습니까?”
“물량이랄 것도 없다. 한 자 크기의 작은 상자 하나만 전하면 되니까.”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귀한 것인가 보군요.”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작은 상자가 표물의 모든 것이라면 그 안에 그만큼 귀하거나 비싼 물건이 들어있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송비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게… 나도 잘 모른다.”
“예?”
“내일 오전까지 가져오기로 했는데, 표물의 주인은 자신의 정체와 물건의 내용을 알리지 않는 조건으로 제법 많은 돈을 미리 내놓았다.”
표물의 내용도 모르는데다, 표물 자체가 아직 없다고?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가서 자신들이 맡긴 표물이 아니라고 하면요?”
“그건 걱정할 것 없다. 표물을 갖고 갈 사람이 직접 오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봉인에 해놓은 서명만 같으면 내용이 뭐든 인정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대책을 세운 듯했다. 그렇다면 따져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송비는 자신이 세운 결정을 절대 꺾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차선책이라도 구해놓는 수밖에.
“후우우, 그럼 표행을 언제 시작할 예정입니까?”
“내일 아침에 표물과 사람이 오면 정오 전에 출발할 생각이다.”
목량은 혁무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결정은 혁무천이 내려야 했다.
혁무천은 짧고 확실하게 자신의 결정을 밝혔다.
“얼마 주실 거요?”
“……?”
“우리 인원은 총 일곱 명이오만.”
“…….”
목량도 입을 닫고 지켜보기만 했다.
***
한중의 초여름 밤 날씨는 선선한 편이었다.
혁무천은 방을 나와서 뒷마당을 거닐었다.
북풍표국의 뒷마당은 표국의 규모에 비해 무척 넓어서 담까지의 거리가 오십여 장이나 되었다.
넓이에 비해 특별히 가꾸어진 것은 없었지만 느긋하니 거닐기에는 그만이었다.
‘설아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중천에 떠있는 달을 보니 은설이 생각났다.
설마 오늘 밤에도 신도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남궁운 그 녀석도 은근히 설아를 노리는 것 같던데.
좀 더 참아볼 걸 그랬나?
아니야,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아니지, 설아도 하룻밤 정도는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혁무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그 생각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거리가 수천 리나 떨어져 있는데.
‘후우우우.’
소리 없이 한숨을 길게 내쉰 그는 몸을 돌렸다.
차라리 들어가서 그동안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무인도의 무공이나 정리해보는 게 나을 듯했다.
황보수 일행이 대부분 지워서 처음 있던 구결과는 다른 부분이 많지만, 개중에는 일행과 어울릴 만한 무공도 제법 있었다.
딸랑, 딸랑, 딸랑…….
혁무천이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방울소리가 들렸다.
자시가 다 된 시간 때문인지 몰라도 방울소리에서 왠지 모를 음산함이 느껴졌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고개를 돌린 혁무천은 담장 쪽을 바라보았다.
방울소리는 담장 너머 제법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표국 쪽으로 오는지 소리가 점점 커졌다.
‘평범한 방울소리가 아니다. 상당히 강한 공력이 실려 있어.’
그때 제법 강한 기운의 이동이 느껴졌다.
방울소리를 따라오는 듯했다.
미간을 좁힌 혁무천은 땅을 박차고 담장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뒷마당에서 사라졌다.
딸랑, 딸랑, 딸랑…….
북풍표국의 담장을 넘어 백 장 정도 달리자 방울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한중성 외곽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
어둠 속에서 제법 많은 인원이 움직이고 있었다.
간간이 싸우는 소리와 비명이 섞여서 들렸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걸까?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방울소리가 조금 전보다 빨라졌다. 살기도 강해졌다.
혁무천은 허공으로 솟구친 뒤 방울소리가 나는 곳으로 날아갔다.
달빛 쏟아지는 들판 위.
방울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노인과 삼십 대 장한 셋이 십오륙 세 정도 되는 한 소년을 보호하며 검은 무복을 입은 무사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들판은 핏빛으로 물든 상태였다.
언뜻 봐도 쓰러진 자가 십여 명은 될 듯했다.
노인과 무사들이 보호를 받고 있는 소년은 포위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려워하기는커녕 차디찬 표정을 한 채 당당히 서서 포위한 자들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노인이 분노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포위한 자들 중 쉰 살쯤 되는 자가 말을 받았다.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을 가진 것이 잘못일 뿐이니까. 지금이라도 저 어린놈이 가진 물건을 내놓는다면 모두 살려주마.”
“개소리 마라! 원구청! 네놈 따위는 감히 천구(天求))의 보물을 구경할 자격도 없다!”
딸랑! 딸랑! 딸랑!
욕설과 함께 방울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공력이 실린 방울소리는 사람의 뇌를 뒤흔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전면에서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던 흑의무사들이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 물러섰다. 개중 두세 사람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으로 귀를 막았다.
동시에 노인이 물러서는 흑의무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단숨에 삼 장 거리를 좁힌 노인이 흑의무사들을 향해서 방울 달린 지팡이를 휘둘렀다.
“이런 지독한 늙은이!”
원구청이 짜증내듯 한마디 내뱉고 노인의 측면을 공격했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노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퍼벅!
일격에 흑의무사 둘을 날려버린 노인이 몸을 빙글 돌리며 원구청의 공세에 맞섰다.
원구청은 섬서 오대세력 중 하나인 북현문의 장로로 절정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그 사이 흑의무사들이 중앙의 소년을 노리며 신형을 날렸다.
노인이 뒤늦게 소년의 안위를 걱정하며 물러서려 했지만 원구청이 놓아주지 않았다.
“마령(魔鈴) 늙은이! 당신은 내 검이나 받아봐라!”
발이 묶인 노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소주!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소년은 흑의무사 둘의 공격을 받고도 밀리지 않았다. 나이는 어려도 능히 일류고수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흑의무사 숫자가 셋으로 늘어나자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무공만 따지면 셋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생사결의 경험이 일천해서 적의 합공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소주!”
노인이 소리치며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방울소리가 급박하게 울리며 허공 가득 지팡이 그림자가 생겨났다.
원구청도 이번 공격은 무시하지 못하고 일 장 정도 뒤로 물러났다.
노인은 그 틈을 이용해서 소년을 향해 몸을 날렸다.
흑의무사 셋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거기다 원구청까지 뒤에서 가세했다.
앞이 막힌 노인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른 사람들도 부상이 심한데다 적을 상대하느라 몸을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서 가시오, 소주!”
순간, 원구청의 검이 노인의 어깨를 갈랐다.
스치듯 맞았음에도 살이 갈라지고 피가 뭉클거리며 흘러나왔다.
노인은 이를 악다물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소년은 흑의무사들을 더 상대하지 않고 뒤로 돌아서 내달렸다.
얼마나 도망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걸음이라도 더 가야 했다. 그게 자신을 위해 죽어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흑의무사들도 그를 놔주지 않았다.
“쥐새끼가 어딜 가려고!”
누군가가 내지른 욕설과 함께 흑의무사 넷이 소년의 앞을 가로막았다.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소년은 포기하지 않고 입술을 깨문 채 검을 들었다.
흑의무사들이 소년을 향해 쇄도했다.
둘이 어떻게 해보려다가 낭패를 당한 터였다. 셋이 달려들어서 겨우 우세를 점할 수 있었을 뿐.
어린놈이라고 해서 얕보았다가는 자칫 놓칠지도 모르는 터. 그들은 조금도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소년은 전력을 다해 맞섰지만, 넷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뒤로 물러서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그의 몸에 하나 둘 상처가 새겨졌다.
그리고 끝내 흑의무사의 검이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소년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흑의무사의 눈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땅!
소년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가려던 검이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그럼에도 소년은 검첨에서 뻗어 나온 기운에 의해 충격을 느끼고 주르륵, 뒤로 물러났다.
이를 악물고 물러선 소년은 갑자기 눈앞이 뭔가로 가려지자 눈을 치켜떴다.
사람의 등이었다. 누군가가 자신과 흑의무사 사이에 나타난 것이다.
조금 전 검이 튕겨나간 것을 떠올린 소년은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구해줬다는 걸 깨달았다.
쾅!
뒤이어 폭음과 함께, 자신을 공격했던 흑의무사가 뒤로 훌훌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소년이 놀랄 일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한쪽으로 물러나 있어라.”
소년을 향해 무심한 어조로 말한 혁무천을 흑의무사 셋이 공격했다.
그리고 공격할 때만큼이나 빠르게 쓰러지고, 날아갔다.
단숨에 흑의무사 넷을 처리한 혁무천은 흑의무사가 땅에 떨어뜨린 검을 발로 툭 찼다.
검이 빙글빙글 돌면서 앞으로 날아갔다.
어둠을 가르며 날아간 검은 노인을 공격하던 흑의무사 둘을 스친 후 방향을 우측으로 틀었다.
두 장한을 공격하고 있던 흑의무사들이 뒤늦게 날아드는 검을 발견하고 대경해서 다급히 검과 도를 휘둘러 쳐냈다.
쩌정!
귀청을 울리는 충돌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그럼에도 날아가던 검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흑의무사 둘을 마저 베어버렸다.
순식간에 흑의무사 중 절반이 쓰러지자 상황이 급변했다.
원구청은 그 광경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자가 검을 날린 수법은 단순한 비검이 아니었다.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는 검은 살아있는 생명체라도 되는 듯 방향을 바꿔서 또 다른 먹이를 노렸다.
‘서, 설마… 어기어검?’
만약 사실이라면 자신들은 죽은 목숨이다.
대경한 그는 다급히 뒤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모두 조심하고, 힘을 합쳐서 상대해라!”
그가 주의를 주고 상대하는 법을 명했음에도 흑의무사 셋이 더 쓰러졌다.
이제 남은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서 칠팔 명에 불과했다.
보물을 얻기는커녕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 몰랐다.
원구청은 미련을 버리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모두 물러서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살아남은 흑의무사들이 썰물 빠지듯 뒤로 물러섰다.
혁무천은 그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 이상 더 나설 것도 없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년이 먼저 혁무천에게 다가가며 포권을 취했다.
“고마워할 것 없다. 저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선 것뿐이니까.”
“그래도 어쨌든 소협 덕분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어깨만 피로 물든 게 아니었다. 옆구리 쪽도 붉게 변해 있었다.
게다가 얼굴이 창백한 걸 보니 과도한 공력 소모로 내상을 입은 듯했다.
그리고 삼십 대 장한 셋 중 하나는 숨을 거두었고, 둘도 부상이 심했다.
노인이 소년 옆으로 다가오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소주의 말씀이 맞소. 도와줘서 고맙소이다.”
혁무천이 두 사람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천구문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