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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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무당산을 내려온 혁무천 일행이 균현(均县)으로 들어가려 하자 일단의 무리가 앞을 막아섰다.
모두 이십여 명. 그들은 누가 봐도 마도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인상이 험악했다.
게다가 옷도 만마성의 무사임을 알리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 중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턱을 쳐들고 물었다.
“너희들이 무당산에 올라갔다는 자들이더냐?”
혁무천 일행이 올라가는 걸 본 모양이다.
어쩐지 올라갈 때 막는 자들이 없다 했더니, 산에서 내려오는 자들을 노리는 듯했다.
그래야 무당산 안에서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동대안이 삐딱하게 대답했다.
중년인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안 그래도 험악한 중년인의 인상이 더욱 살벌하게 느껴졌다.
“무당산에 올라가서 뭘 봤느냐?”
“그야 무당산을 봤지.”
동대안은 중년인의 인상이 마음에 안 들었다. 만마성의 인물이어서 더더욱 싫었다.
중년인은 그의 마음도 모르고 욕설을 뱉었다.
“이 죽일 놈의 새끼가…! 눈구멍이나 아니나 뚫리다가 만 놈이 어디서……!”
처음 듣는 욕설에 동대안의 눈빛이 새파랗게 반짝였다.
“오호, 산뜻한 욕인데? 좋아, 당신은 특별히 구멍을 두 개만 내주지.”
눈구멍에.
그런데 그때,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호오! 풍호 아닌가? 풍혼문이 무당에는 웬일이지?”
앞을 막아선 자들 뒤에서 한 사람이 뒷짐을 진 채 걸어 나왔다.
그 역시도 나이가 사십 대로 보였는데, 먼저 나섰던 자가 고개를 숙이는 걸 보니 그가 수장인 듯했다.
소항진을 알아본 그는 혁무천 일행을 풍혼문 무사라고 생각한 듯 입가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목량이 그를 알아보았다.
“각산의 살인귀, 각산일흉 만도응이란 잡니다, 대형. 무공은 절정 경지에 도달해 있고, 손속이 잔인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럼 눈에 구멍을 뚫어서 죽여도 문제될 것 없겠군.”
동대안이 코를 씰룩이며 섬혼을 뽑았다.
만도응이라는 자도 칼을 뽑아들었다.
“두 놈만 남기고 다 죽여라. 어차피 입은 한두 개만 있어도 되니까.”
만마성 무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들고 혁무천 일행을 포위했다.
“옳은 말이야. 말해줄 사람은 한둘만 있어도 되지.”
동대안이 씩 웃으며 말하고는, 땅을 박찼다.
번쩍! 쉬쉬쉭!
검집을 빠져나온 섬혼이 허공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 만마성 무사들의 몸에도 구멍이 났다.
장평도 도를 빼들고 만마성 무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바탕 난전이 벌어졌다.
장대산과 영추문, 강탁, 목량도 각기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자들을 상대했다.
혁무천은 뒷짐을 진 채 구경만 했다.
“너는 나서지 말고 내 뒤에 있어.”
소하민은 그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배시시 웃었다.
“알았어요.”
어깨를 배배 꼰 그녀는 은근슬쩍 옆걸음질로 혁무천 바로 옆까지 다가갔다.
아마 풍혼문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속이 울렁거려서 배를 움켜잡았을지 몰랐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실력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장대산이 덩치 큰 삼십 대 무사의 장봉을 뺏고 목을 잡아서 멀찌감치 내던지자, 서 있는 만마성 무사는 만도응 하나밖에 없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만도응은 옷이 여기저기 찢겨져나간 상태였다.
상처가 제법 심한지 몸 곳곳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동대안을 상대하다 입은 상처였다.
그래도 다행히 두 눈에 구멍이 뚫리지는 않았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조금 전과는 달리 목소리가 떨렸다.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말 그대로 잠깐 사이에 스무 명이 넘는 수하들이 모두 쓰러졌다. 명색이 만마성 팔당 중 하나인 도귀당의 정예무사들이.
그 중 칠팔 명은 죽은 듯했다. 나머지도 부상이 심한지, 아니면 일어나봐야 손해만 볼 것 같아서인지 일어나지 않고 쓰러져 있었다.
절대로 저놈들은 풍혼문 따위에 속해 있는 놈들이 아니었다.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주면, 그대는 물론 수하들도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거다.”
조용히 서 있던 혁무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만도응은 혁무천이 저 괴물들의 수장이라는 걸 알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뭘 알고 싶은 거냐?”
“현재 무당산을 감시하는 인원은 몇이나 되지?”
조금도 어려울 것 없는 질문이었다.
“모두 백 명 정도 된다.”
“그럼 그대들 같은 무리가 넷은 더 있다고 볼 수 있겠군.”
“그, 그렇다.”
“최근 들어서 내려온 명령 중 특이한 것이 있을 것 같은데.”
만도응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런 명령이 있었다. 하지만 이급 비밀이어서 남에게 알려줄 수는 없었다.
그가 망설이자 혁무천이 시선을 돌렸다.
“말하기 싫은 모양이군. 대산, 다른 자를 하나 일으켜라.”
“어.”
장대산이 빼앗은 장봉이 마음에 드는지 붕붕 돌리며 일어났다.
“동 형, 저자는 치워버리시오. 말하지 않는 자의 입은 필요 없으니까.”
“그러지 뭐.”
혁무천이나 동대안이나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척하면 착이었다.
쓰러져 있던 만마성 무사 중 두어 명이 눈치를 보며 상체를 일으켰다. 마치 자신을 택해달라는 듯.
화들짝 놀란 만도응이 다급히 대답했다.
“자, 잠깐! 이제 생각났네!”
혁무천이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말장난 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만도응도 거짓말로 속일 생각은 없었다. 거짓말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물론이네.”
만도응의 말에 의하면, 닷새 전에 명령이 내려왔다고 했다.
무당산에 대한 감시 방법이 그때부터 달라졌다.
전에는 산을 오르려는 무림인들을 무조건 막았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들을 그냥 놔두었다가, 내려오면 은밀히 미행하라고 했다.
미행해서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일로 무당산에 갔는지 알아내라는 것이었다.
앞서 무당산에 올라간 무림인들은 그렇게 처리했다.
대원 중 다섯 명이 산에서 내려온 자들을 미행했다. 그 중 세 명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혁무천 일행을 건드린 이유는 단순했다.
모두 젊은 놈들이었다.
멀리서 보니 덩치 큰 놈을 제외하고는 그저 그런 놈들처럼 보였다. 자신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듯했다.
그렇다면 힘들게 뒤쫓느니 바로 잡아서 정보를 빼내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어쨌든 놈들에 대한 정보만 얻으면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결국 이 꼴이 되고 말았다.
만도응은 그런 제안을 한 조장 놈을 패죽이고 싶었다.
혁무천은 약속대로 만도응과 살아난 만마성 무사들을 보내주었다.
싸우다 죽은 일곱 명의 시신도 그들이 처리하게 했다.
그러고는 균현은 그냥 지나치고 다른 곳에서 쉬기로 했다.
만마성 무사들이 몰려오는 것은 겁날 것 없지만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 또한 반갑지 않았다.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것 같군.”
혁무천이 소항진 남매를 보며 말했다.
소항진도 더 이상은 동행을 고집할 수 없었다.
끝까지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에게는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제갈세가의 혼인식에 따라온 것도 실은 무당과 관련된 임무 때문이었다.
“언제 형주에 들리거든 꼭 풍혼문에 들러주시오.”
“그럴 기회가 되면.”
소하민도 아쉬움과 간절함, 단호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거들었다.
“안 오시면… 제가 찾아 나설 거예요. 사방팔방에 부탁하면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저희 표국의 정보망도 제법 괜찮거든요.”
혁무천은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시간을 내보지.”
그제야 소하민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
섬서성 남단의 한중은 한나라 시대부터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사천으로 넘어가는 촉도의 시작점이어서 고대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또한 많은 물자와 사람이 한중을 통해서 사천을 들락거리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상업이 발달하면 물건을 안전하게 나를 표국이 필요한 법.
한중에는 표국이 이십여 개나 되었다.
그 중 한중성 외곽에 있는 북풍표국은 이십여 개의 표국 중에서도 말단에 속해 있었다.
표사라고 해봐야 십여 명. 두어 가지 표물을 맡으면 모두가 달라붙어서 개점휴업 상태가 되곤 했다.
그런데 오월 어느 날, 일단의 무리가 북풍표국을 찾아왔다.
정문으로 막 나오던 젊은 표사 하나가 그들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찾아온 사람들 중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저게 곰이야, 사람이야?’
곰도 그를 보면 기가 죽을 듯했다. 더구나 그 곰 같은 자가 들고 있는 장봉은 굵기가 팔뚝처럼 굵었는데 길이가 팔 척은 될 듯했다.
그래도 인상은 순해 보여서 무섭지는 않았다.
“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의 질문에 가장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 대답했다.
“국주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는 목량이라고 합니다. 아마 국주님께 이름을 말씀드리면 아실 겁니다.”
그랬다. 북풍표국을 찾아온 사람들은 무당산을 떠나온 혁무천 일행이었다.
소항진 남매와 헤어지고 닷새째 되는 날 한중에 도착한 것이다.
“따라오십쇼.”
표사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며 일행을 안내했다.
혁무천 일행은 젊은 표사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북풍표국은 목량의 사부와 관련이 있었다. 정확히는 국주가 목량과 강탁의 사부와 의형제였다.
“와하하하! 량이가 왔다고?”
건물 안에서 걸쭉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뛰어나왔다.
혁무천 일행은 그를 보고 한 사람을 떠올렸다.
‘장비와 정말 비슷하군.’
‘웃음소리도 비슷할 것 같은데?’
‘설마 저 사람도 장씨는 아니겠지?’
목량은 반가운 듯 빙그레 웃었고, 강탁은 왠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강녕하셨습니까, 숙부님.”
“와하하하, 정말 량이가 왔구나. 호오, 말썽꾸러기 탁이 놈도 왔군.”
강탁은 그의 말투에 불만이 많았다.
“에이, 저도 이제 곧 서른입니다, 숙부. 말썽꾸러기라는 말 좀 그만하십시오.”
“이놈아, 네놈이 말썽꾸러기가 아니면 누가 말썽꾸러기냐?”
그는 나이가 사십 대 중후반쯤 되었다.
생김새는 설명할 것도 없이 장비와 판박이였다.
이름도 ‘비’였다. 다행히 성은 송씨였지만.
“대형을 모시고 사천으로 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목량의 그 말에, 송비의 시선이 동대안에게로 향했다. 아무래도 그의 나이가 가장 많아 보였다.
‘눈이 정말 쬐끄만한 친구군.’
하지만 무시하지는 않았다.
눈은 작지만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걸 본능으로 눈치 챈 것이다.
생긴 것과 성격은 장비지만, 머리까지 장비는 아니었다.
“목량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무천입니다.”
그런데 묵의를 입은 청년이 인사를 건네는 것 아닌가?
송비는 재빨리 시선을 돌려서 혁무천을 쳐다보았다.
여자보다 더 곱게 생긴 얼굴이었다. 피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떻게 남자새끼 피부가 저렇게 고와?’
아마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을지 몰랐다.
“험, 나는 송비라고 하네. 량이와 탁이에게는 숙부가 되지. 어쨌든 잘 왔네. 자, 안으로 들어가세.”
북풍표국은 대지가 무척 넓은데도 건물이 네 채밖에 안 되었다.
한 채는 일반 건물로, 장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기거했다.
다른 한 채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였고, 나머지 두 채는 표사와 표두, 국주가 기거했다.
국주의 가족은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혼인을 해보지 않은 진짜 총각이었다.
혁무천이 안내를 받고 들어간 방은 상당히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자리에 앉자 시비가 차를 내왔다.
송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천으로 간다고 했지?”
목량이 대답했다.
“예, 숙부.”
“사천 어디로 가는 길이냐?”
“성도에 갈 겁니다.”
“오호, 그거 잘 됐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