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20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20화
120화
비록 순간적이었지만 매우 강렬한 기운이 충천했다.
대략적인 위치는 무당산의 중턱.
중요한 예식이 있다더니, 그 때문인 것 같다.
‘흐음, 오랜 세월 잠자고 있던 잠룡이 기지개를 펴려고 하나 보군.’
정은맹과 천기회는 차치하고, 남궁세가와 제갈세가에 이어 무당파까지. 정파의 주요 문파들이 꿈틀거리며 용틀임을 시작했다.
마도세력들이 이러한 정파의 움직임을 어찌 모를까.
어쩌면 그들은 구문팔가가 웅크리고 있던 대지에서 세상으로 기어 나오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번에 쓸어버리기 위해서.
정파의 힘을 뿌리까지 뽑아버리려고!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게 있지.’
냉소를 지은 혁무천은 자신의 계획에 무당파라는 이름을 포함시켰다.
은설도 무당파라면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
태자파의 서암에 도착하자, 혁무천 일행과 소하민은 밖에 남고, 소항진만이 청안도장의 방에 들어갔다.
“아버님께서 도장님께 전하라는 서찰입니다.”
소항진은 서찰이 든 봉투를 청안도장에게 건네주었다.
청안도장은 칠순임에도 둥근 얼굴에 웃음기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서 편안한 인상이었다.
무공보다는 경전을 연구하거나 도를 닦는 일에 더 열심인 평범한 노도사 같았다.
“허허허, 오래 전 일이어서 잊은 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계셨구먼.”
청안도장은 나직이 웃으며 봉투에서 서찰을 꺼냈다.
차분하게 서찰을 읽어본 청안도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짙어졌다.
“가거든 고맙다고 전해주게나.”
굳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 정도만 해도 뜻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듯했다.
소항진도 내용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함께 온 시주들도 풍혼문 사람들인가?”
“아닙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의 친구들이니까요.”
부드럽게 휘어져 있던 청안도장의 눈매가 일자로 펴졌다.
“세상이 험하여 그런 것이니, 너무 의심이 많다고 무당을 탓하지는 말게나.”
선문답 같은 말에 소항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흠칫하고는 청안도장에게 물었다.
“혹시 그들을……?”
“별일은 없을 거네. 시주 친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려는 것일 뿐이니.”
소항진이 다급히 일어났다.
“안 됩니다. 자칫하면 일이 커질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 마시게. 심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니까.”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소항진은 급히 방을 나섰다.
“허, 거참… 걱정 말래두….”
청안도장은 고개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혁무천 일행은 태자파 앞마당 한쪽에서 소항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반각쯤 지났을 때, 무당파의 청색 도복을 입은 도사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냥 볼일을 보기 위해서 지나가는 줄 알았다.
혁무천이 “우리에 대해 궁금한가 보군.”이라고 말하기 전만 해도 그들의 모습을 구경만 했다.
그 사이 무당파 제자의 숫자가 이십 명 가까이 늘어났다.
모두 이십 대로 보이는 젊은 도사들이었다.
그들은 자유분방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아홉 명씩 나누어져서 좌우를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 직후 사오십 대로 보이는 도사 셋이 나타났다.
“빈도는 허중이라 하네. 시주들은 어디에서 오신 분들이신가?”
세 도사 중 오십 대 나이로 보이는 도사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소하민이 재빨리 나서서 답했다.
“풍혼문의 소하민이라고 해요. 아버님의 명을 받고 오빠와 함께 청안도장님을 찾아왔어요.”
“허허허, 여시주는 그렇다 치고, 다른 시주들은 어디서 오셨는가? 빈도의 눈으로 봐서는 풍혼문 무사들이 아닌 것 같네만.”
허중은 예리한 눈으로 혁무천 일행을 하나, 하나 찍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다 미간을 찌푸렸다.
‘허어, 어디서 이런 자들이……!’
다들 젊은 자들이건만 그들에게서 강함이 느껴졌다. 개중 몇 명은 절정 경지에 오른 듯했다.
더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포위되다시피 한 상황인데 너무나 태연하다는 것이었다. 무당파가 자신들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 자신하고 있는 듯.
순간 속에서 뭔가가 묵직하게 치밀었다.
마도에 눌려 지내는 동안 쌓인 분노가 가슴 속에 덩어리져 있던 그였다.
혁무천 일행의 태도에서 자신들을 무시했던 마도의 행태가 겹쳐 보였다.
그래선지 건네는 말투도 딱딱해졌다.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무당의 검을 원망하게 될지도 모르네.”
동대안은 그런 허중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다.
“무당은 원래 손님을 이렇게 대합니까?”
“우리가 부른 손님이 아닌 것으로 아네만.”
“불렀든 안 불렀든, 여기까지 들여놓고 이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정확한 신분만 밝히면 되는 일인데, 왜 못 밝히는 것인가?”
“기분이 나쁘니까 그러는 것 아뇨?”
동대안이 계속 토를 달며 대들자, 사십 대 중년도사가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마도의 사람이어서 못 밝히는 것은 아닌가?”
그때 목량이 말했다.
“사문이라 할 만한 문파에 속해 있지 않다 보니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것일 뿐입니다.”
“말하지 않겠다면 우리가 알아내는 수밖에 없겠구먼.”
허중은 냉랭함이 느껴질 정도로 무겁게 말하고는, 좌우의 도사들을 향해 슬쩍 손짓을 했다.
혁무천 일행의 좌우에 서 있던 도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던 목량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조심하십시오. 구궁검진입니다.”
“진에 해박한 시주가 있었군. 그렇다면 순순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도 알 터, 이제 그만 대답을 하시는 게 어떻겠나?”
무당파 제자들은 각기 아홉 명씩 진의 방위를 따라 이동했다.
그들이 이동할 때마다 검기의 그물이 펼쳐지는 듯했다.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볼까?”
장평이 냉랭히 말하고는, 도를 빼들며 무당파 제자들을 향해 쇄도했다.
쉬악!
번뜩이는 도기가 섬뜩한 기음을 발하며 대기를 갈랐다.
무당파 제자들도 마주 검을 뻗었다.
츠츠츠츠츠.
검식이 사슬로 이어진 듯 끊이지 않고 흘러서 장평의 도식을 휘감았다.
그 직후,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장평의 도가 튕겨나갔다.
장평은 자신의 도가 철벽에 부딪친 느낌이 들자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무당 제자들은 다시 진세를 유지하며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그때 혁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대산. 동 형과 함께 상대해봐라.”
“어.”
장대산이 짧게 대답하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동대안도 섬혼을 뽑아들었다.
어지간한 사람보다 머리 두 개가 더 큰 장대산이 나서자 무당제자들도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진을 믿는 듯 흐트러짐 없이 방위를 밟았다.
장대산은 그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달려들었다.
진세고 뭐고 필요 없었다. 상대의 검이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무당의 제자들은 상대를 상처 입혀도 되는지 잠시 잠깐 망설였다. 자칫하면 상대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 사이 장대산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진세를 향해 휘둘러졌다.
쾅!
강력한 권이 진세의 막을 두들기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장대산은 권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진세를 두들겼다.
콰과과광!
검기가 서린 무당 제자들의 검도 그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기껏해야 옷자락이 찢겨나가고, 살갗이 붉게 변했을 뿐.
참으로 괴물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만근 무게가 실린 장대산의 주먹질은 무당제자들이 펼친 구궁진을 뒤흔들었다.
뒤이어서 동대안의 섬혼과 장평의 도가 흔들린 진세의 틈을 파고들었다.
산에서 무공만 익힌 무당의 제자들이 천하에 장대산 같은 괴물이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게다가 무당 제자들은 지닌 실력에 비해서 피를 본 경험이 부족했다.
그 작은 차이가 승산을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동대안의 섬혼과 장평의 도가 빈틈을 파고들면서 무당 제자 중 서너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바람에 진세의 빈틈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갈! 참으로 괴물 같은 자로구나!”
결국 허중이 더 보지 못하고, 일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혁무천이 우수를 들어서 그를 향해 일장을 쳐냈다.
“도장은 구경이나 하시지요.”
그가 펼친 장법은 무인도의 벽에서 얻은 후 나름대로 정립한 무진일선공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마도의 무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펼쳤는데, 생각보다 위력이 강력했다.
후우우웅!
대기를 일그러뜨린 장력이 삼 장을 격하고 허중에게 밀려갔다.
허공에 떠 있던 허중은 눈을 부릅뜨고 몸을 틀면서 쌍장을 뻗었다. 두 줄기 장력이 휘돌면서 강력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어림없다!”
무당이 자랑하는 태허장이었다. 면장의 일종인 태허장은 공격보다 방어에 더 적합한 절정 무공이었다.
찰나의 순간, 혁무천의 무진일선공과 태허장의 방어막이 정면으로 뒤엉켰다.
콰르르릉.
천둥 같은 뇌음이 울리고, 허중의 신형이 뒤로 튕겨나갔다.
본래의 자리에 내려선 그는 주춤주춤 두 걸음을 물러선 뒤 이를 악다물고 경악을 삼켰다.
자신을 물러나게 만든 자는 검은 무복을 입은 청년이었다. 그자는 팔성 공력이 실린 태허장과 맞서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바로 그때,
“원시천존! 그만 물러서게나!”
서암에서 나온 청안도장이 다급한 걸음으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그는 허중마저 밀린 것처럼 보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허중의 무공이 절정경지에 오른 것은 십 년 전이었다. 허자 항렬 중에서는 세 손가락에 들고, 무당파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에 드는 고수.
그런 허중의 안색이 핏기도 없이 창백했다.
‘허어…… 이런…….’
솔직히 청안도장은 소항진이 놀라서 말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강호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무당의 현 무력은 과거에 뒤지지 않았다. 그 중심에 있는 무력이 바로 칠성조와 구궁조였다.
그런데 구궁조 두 개조가 나서고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했다.
아니, 제압은커녕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진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리 삼대제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구궁진이라 하나, 절정고수 두세 명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청안도장의 외침에 무당 제자들이 일 장 정도 물러섰다. 대여섯 명은 동작이 부자연스러웠는데, 도복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동대안 등도 공격을 멈추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원시천존. 시험해보려 했다가 창피만 당하고 말았구려.”
청안도장의 씁쓸함 가득한 말에 혁무천이 무심하게 답했다.
“검은 시험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칫해서 귀 파의 제자들이 죽기라도 했다면, 그 잘못을 누구에게 책임지라고 하실 겁니까. 우리에게 살인자라며 검을 겨눌 겁니까?”
냉정한 혁무천의 말에 청안도장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시험을 하고자 했다면 굳이 검을 뽑지 않아도 되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본 후 판단해도 되었다.
적인지, 아닌지.
어쩌면 그동안 갈고 닦은 힘에 대한 과신이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자신들이 시험의 주재자이며 상대는 시험의 대상일 뿐이라는, 같잖은 오만함이 부른 결과일지도 몰랐다.
“원시천존…….”
오십 년 도를 닦고도 오만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니.
부끄럽기만 했다.
“노도가 어리석었구려.”
“사숙!”
허중이 소리치며 나섰다.
“사숙께서는 무당의 어른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하신 겁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솔직히 저자들의 정체도 아직 밝혀진 것이 없잖습니까.”
“물러서라, 허중.”
“책임을 져야 한다면 소질이 지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저자의 정체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저자에게 우리 무당을 다그칠 자격이 있는지도 알아볼 것입니다.”
챙!
검을 뽑아든 허중은 정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너도 검을 뽑아라!”
“어허! 물러서라 하지 않았느냐?”
“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