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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19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19화

119화

 

 

제갈위군이 먼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문을 열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혈왕동이 그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 어찌 하실 생각인지 물어도 되겠소이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될 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만.”

“하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일자로 길게 뻗은 제갈위군의 눈은 티 하나 없이 맑았다.

‘도대체가 속을 알 수 없는 자군.’

‘제갈위군이었나?’

혁무천은 제갈위군을 보고 궁금했던 사실 하나를 확신했다.

그가 바로 와룡림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너무 학문만 파고드는 데다 순해서 탈이라는 소문이 돌던 제갈세가의 소가주.

그의 가슴 속에 뜨거운 불길이 잠자고 있는 걸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아쉽게도 오늘은 바빠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구려. 언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어 봤으면 싶소.”

제갈위군이 포권을 취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무천이란 자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동생의 혼인이 진행되는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혁무천도 여운을 남겼다.

“어쩌면 머지않아서 그런 때가 올 거요.”

제갈위군은 지그시 그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위종, 그만 가보자. 어르신들께서 기다리시겠다.”

“예, 형님.”

제갈위종은 아쉬움을 접고 뒤돌아섰다.

“그럼 무 형, 나중에 봅시다.”

“그러지. 아, 너무 속에만 담고 있지 마. 오래 담고 있으면 병이 날 수 있으니까.”

난데없는 혁무천의 말에 제갈위종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하지만 별 말 없이 돌아서서 멀어졌다.

그때 동대안이 어딘가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저 친구는?”

“하하하, 이게 얼마 만이오, 무 형?”

혁무천은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소항진이 보였다. 소하민도 그와 함께 오고 있었는데, 미소 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곧 혁무천 일행 앞에 도착한 그녀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공자.”

“오랜만이군.”

“무창에서 헤어진 것이 정말 아쉬웠는데,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나는군요.”

“강호가 생각보다도 좁은 것 같아.”

“혼인 축하차 오셨나 봐요?”

“그냥 지나가던 길에 들렀을 뿐이야. 그보다… 여긴 어쩐 일이지? 제갈세가와 잘 아는 사인가?”

혁무천이 말을 돌리자, 소항진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아, 오늘의 주인공인 등소명이 내 이종사촌 동생이오.”

그랬나?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무 형,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실 생각이오?”

“무당산에나 가볼 생각이다.”

소항진 남매를 떨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사천으로 넘어가려면 어차피 무당산 옆을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와중에 무당의 복심(腹心)을 엿볼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고.

그런데 소항진이 눈을 크게 떴다.

“이럴 수가! 우리도 무당산에 갈 생각인데!”

뭐?

“하하하하, 정말 우리는 인연인가 봅니다. 함께 가시지요!”

소항진이 무척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반면 혁무천은 입맛이 썼다.

소하민의 기대에 찬 표정을 보니 정말인 듯했다.

그때 소항진이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은 소저는 함께 안 다니시오?”

“설아는… 볼 일이 있어서 잠시 어디에 갔다.”

혁무천은 대충 둘러대고 서두르는 척했다.

“흐음, 이제 볼 것 다 본 것 같으니 그만 가야겠군.”

“벌써 말이오?”

“자네는 동생의 결혼식이니 더 있어야겠지만, 우리는 갈 길이 바빠.”

“하하, 사촌동생이긴 하지만 우리가 없다고 혼인식에 무슨 문제가 생기겠소? 갑시다!”

“…….”

 

제갈세가를 나온 혁무천과 일행은 곧장 서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소항진과 소하민이 합류해서 이제 일행이 아홉 명이나 되었다.

비록 한시적이지만 일행이 되었기에 혁무천은 소항진을 일행에게 소개시켰다.

인사를 나눈 후 소항진의 표정이 달라졌다.

혁무천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간 후 반년 동안 정말 열심히 무공을 연마했다.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이제 절정 경지를 눈앞에 둔 상태였다.

그런데… 일행 중 목량이라는 자를 제외하면 자신보다 약하게 보이는 자가 없었다.

그나마 강탁이라는 자가 자신과 비슷할 뿐, 눈이 콩알만 한 동대안, 얼음덩어리처럼 싸늘한 장평, 곰 두 마리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장대산, 심지어 영추문이라는 여자 같지 않은 여자도 자신보다 강했다.

‘제길,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자들이 뭐 이리 강해?’

명색이 호북십삼호 중 풍호로 불리는 자신이 무명 무사들보다 약하게 느껴지다니.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기회를 봐서 비무를 해보자고 할까?’

보이는 것과 실전은 다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랬다가 정말 패한다면 무슨 창피야?

결국 소항진은 고민만 하다가 비무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

 

무당산은 황제의 칙명에 의해 사방 백 리를 보호받았다.

마도세력의 공세에 절망적이었던 무당파는 그렇게 해서 겨우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백 년 무당파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힘이 없는 자존심은 아무 쓸모도 없는 종이호랑이일 뿐이었다.

그들은 사형제들의 주검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

 

반드시 복수를 해주겠노라!

무당의 힘으로 강호에 정의를 세우리라!

 

그러고는 삼대가 숨을 죽이고 지냈다.

그 와중에도 맥이 끊긴 무당 최고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한번 꺾인 기둥을 바로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도에서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을 속이고 힘을 키우는 일은 지난하고도 지난했다.

조금만 수상하다 싶으면 만마성 무리가 입구를 틀어막고 물자의 보급을 차단했다.

그 바람에 싸움도 가끔 일어났다. 무당산 일대가 피로 뒤덮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 하나 이루어나갔다.

새로운 기재를 들이고,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내고, 새롭게 체계를 정비했다.

그렇게 칠십 년이 흘렀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마도의 눈을 철저히 속이고 두 개의 힘을 만들어냈다.

일곱 명씩 이루어진 칠성조 일곱.

아홉 명씩 이루어진 구궁조 일곱.

인원은 모두 합해봐야 백십이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세월의 일천 제자만큼이나 강했다.

그런데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오월. 그들이 모두 자소전에 모여서 경건한 예식을 치렀다.

경전 암송이 끝나자, 칠순의 노도인이 무릎을 꿇고 있는 제자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칠성이 빛을 발하고 있도다. 이제 곧 천하가 우리 무당의 힘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백십이 명의 제자들은 물론, 앞쪽에 서 있던 오십여 명의 도인들 모두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원시천존!”

“죽음을 두려워 마라.”

“원시천존!”

“죽음이란 흙에서 태어난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

“원시천존!”

“우리의 의기로 인해 강호가 평안해진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느냐.”

“원시천존!”

“정의를 위해서 검을 뽑고, 악을 멸하여 정의를 세워라!”

“원시천존!”

모두들 결사의 항전을 앞두기라도 한 것처럼 결연한 표정들이었다.

칠순의 노도인, 청연도장은 말을 마치고 향로에 기다란 향을 세 개 꽂았다.

그러고는 깊숙이 부복하며 외쳤다.

“원시천존이시여, 제자들을 굽어 살피소서!”

“굽어 살피소서!”

 

자소전에서 한창 의식이 치러지고 있던 시각, 혁무천 일행이 무당산 초입에 들어섰다.

산을 오르는 길은 당금 무당파의 현실을 보여주듯 군데군데에 잡초가 나 있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이각쯤 올라가자, 산문과 전각이 보였다.

전각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이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해검지였다.

혁무천 일행이 해검지 앞에 도착하자 젊은 도인 셋이 막아섰다.

“본산은 사흘간 향화객을 받지 않습니다. 향화를 올리실 생각이시면 저 아래쪽의 도관에서 올려주십시오.”

올라오는 중에 몇몇 작은 도관이 있었다. 일반 향화객을 받는 곳인 듯 양민들이 간혹 드나드는 게 보였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온 것은 향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특히, 혁무천 일행은 그냥 지나는 길에 들른 것이지만, 소항진과 소하민은 나름대로 임무가 있었다.

“청안도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아마 풍혼문의 소항진이 만나러 왔다고 하면 허락해주실 겁니다.”

이제 이삼십 대로 보이는 도사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도사가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시천존, 종화라 합니다. 청안 사조님을 만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혹 증표나 서신이라도 있으십니까?”

소항진이 품속에서 서신을 하나 꺼냈다. 하지만 건네지는 않았다.

“죄송하지만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보고 직접 전하라 하셨으니까요.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해주십시오.”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그렇게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허락이 있을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소항진은 혁무천을 돌아다보았다.

자신이야 기다릴 수 있지만, 혁무천 일행은 뜻이 다를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소?”

혁무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지.”

소항진이 다시 무당의 도사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지요.”

 

혁무천 일행은 해검지를 둘러보며 연락을 기다렸다.

무당산에 오르려면 검을 풀어놓아야 하고, 소림에 오르려면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무당에는 해검지가 있고, 소림에는 하마비가 있다.

하지만 강호에 알려진 유명세와 달리 규모는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수백 개의 무기를 보관할 수 있는 전각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앞에 있는 연못 때문에 해검지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검을 풀어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무당이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데 검을 풀어놓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대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방문객의 신분을 적어놓는 것으로 해검을 대체했다.

혁무천 일행도 기다리는 동안 자신들의 이름을 방문첩에 기재했다.

 

이각쯤 지났을 때 위로 올라갔던 도사가 내려왔다.

“사조님께서 태자파의 서암으로 모시라 합니다.”

그제야 삼십 대 도인 종화가 옆으로 비켜서서 합장을 했다.

“종은 사제가 안내해드릴 것입니다. 오늘 중요한 예식이 있으니, 정해진 곳 외에는 다니지 마십시오.”

중요한 예식이라는 말이 묘하게 혁무천의 신경을 건드렸다.

마도세력에 밀려서 웅크린 지 칠십 년. 그동안 무당파는 부흥을 위해 몇 번이나 힘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부흥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고, 그로 인해 더욱 삼엄한 감시 하에서 마도의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그런데 향화객조차 막고 중요한 예식을 치르고 있다니.

‘뭔가 있군.’

 

어쨌든 혁무천 일행은 종은이라는 도인을 따라서 산문을 넘어섰다.

산을 오르는 길은 한산했다.

오가는 무당의 제자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중요하다는 예식 때문인지, 아니면 쇠락으로 인해 제자의 수가 급감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산이 정말 멋지군. 기가 굉장히 세게 생겼어.”

동대안이 좌우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무당산은 규모에 비해서 높이는 높지 않았다. 동대안이 어린 시절을 지낸 사천의 준봉에 비하면 뒷동네 야산처럼 느껴질 뿐.

그러나 깊고 깊은 계곡이 사방으로 뻗어 있고, 끝없이 이어진 능선은 수십 마리 용이 똬리를 튼 듯했다.

“마천제가 무당파를 단신으로 찾아와서 혈해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람이 아니셨던 거지 뭐.”

혁무천은 이어진 영추문과 동대안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앞장섰던 오인 중 하나가 바로 무당파의 장로 진경도장이었다.

강호에 나온 자신이 무당산을 방문했을 때, 무당파는 진경도장을 지키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막아섰다.

그날, 무당 제자 삼백여 명이 그의 천망검에 피를 뿌렸다.

해검지에서 태자파, 자소전까지 혈로가 이어졌다.

지금은 붉은 자국조차 보이지 않지만.

‘응?’

무당산 위쪽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어 있던 혁무천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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